[펌글, 좋은나라닷컴]
김희선의원(61세)은 자신의 가족사에 대한 해명 자리에 독립운동가 김학규선생의 아들이자 김의원의 삼촌뻘 되는 당년 50세의 김일진이라는 사람을 대동해 김의원은 김학규선생의 손녀가 맞다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김일진...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눈에 익은 이름입니다... 일진 ... 일진이라...그렇습니다.
학교짱 일진이 아니라 김희선의원의 아버지 일련(一鍊), 고모 일선(一銑), 일신(一信), 삼촌 일호(一鎬), 일건(一鍵), 일룡(一龍)... 일진... 바로 이것입니다.
김일진씨는 김희선의원의 아버지, 고모, 삼촌의 일자 항렬을 그대로 따르는 확실한 삼촌이 맞습니다. 근데 왜 김학규선생은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일진이라 지었을까요? 안동김씨의 항렬이 아닌 의성김씨의 김의원 집안 항렬을 따랐을까요?...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것은 김희선의원이 독립투사의 손녀가 되기위한 비장의 카드였습니다.
즉, 김희선의원은 언젠가 닥칠 가족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아버지 일련, 고모 일선, 일신, .... 그리고 작은 삼촌 일진..... 일자 돌림 항렬의 삼촌을 작은 할아버지 집안에 두어 누가 얼핏 보더라도 어... 일자 돌림항렬까지 ...하면서 김학규 선생의 손녀가 맞네... 하는 식의 더욱 확실하게 일족임을 표시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
증조할머니는 일찍 아버지를 여윈 두아들 성범, 학규(너무 자식이 많으면 나중에 힘드니)를 홀몸으로 어렵게 키우며 나는 떡을 썰테니 너희들은 독립운동을 하여라 하여 큰아들(김의원 친조부)김성범은 독립군 자금책을 맡아 활동하던중 일본순사에게 고문당하여 순직하시고 작은 아들(김의원 작은조부)김학규선생은 광복군 3지대장이 되어 항일투쟁에 나서고, 이에 질세라 나이어린 조카 일련(김의원 아버지)도 독립운동에 나서 해방이후 김구 선생의 밀명을 받고 정보수집(?)에 나서다 저 멀리 황량한 시베리아 어느 수용소에서 행방불명된 참으로 숭고하고 위대한 가문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어 손녀 김희선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눈물겨운 항일투쟁과 어느날 갑자기 날아온 아련한 동정심까지 유발시키는 아버지의 엽서한장을 널리 알려 국회의원에 두 번이나 당선되며 항일투쟁에 나선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친일청산에 나서는 손녀 ... 그야말로 대한민국 어느 가족보다 드라마틱하고 영광스러운 가족사를 쓰고 있었습니다.
아 ... 김희선은 행복했습니다. ... 누구나 그렇게 인정해줬습니다.
독립투사의 손녀답게 모든 행동도 투사적으로 터프하게 바꾸었습니다.
그렌데 ...
어느 XX넘이 갑자기 작은할아버지 김학규선생의 본관이 다르다고 태클을 걸어왔습니다.
잡아죽이고 싶었습니다. ... 근데 본관이 뭐지? ... 아.. 쓰벌 본관은 신경도 안썼습니다. 성만 같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김해 김씨인지 의성 김씨인지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이리저리 자료를 뒤져보니 아... 씨봉 김학규선생의 본관은 안동김씨이고 자신은 의성김씨였던 것이었습니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아.. 어떻게 써온 위대한 나의 가족사인데... 잠도 안오고 밥맛도 없었습니다...빗발치는 항의에도 며칠간 입다물고 대책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아 ...맞다 ... 좋은 아이디어 하나가 번쩍 떠올랐습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재가를 하여 자신도 한때 성을 장씨로 바꾼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 바로 이거야!
그래서 김희선은 홀몸이 되신 증조할머니를 안동 김씨 집안으로 재가 시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자신의 예를 봐도 어머니가 재가하면 자식은 성도 바꿀수 있는데 그까짓 본관 쯤 바꾸는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임신한 몸으로 재가하여 안동김씨 호적을 갖게하기로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재가한 어머니가 낳은 자식은 그쪽 집안 호적에 자동으로 올려지기 때문입니다. .... 졸지에 김학규선생을 애비의 얼굴도 모르는 유복자로 만들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붕 ... 더 난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할 수없이 작은할아버지를 몇 살인지 알수 없는 그저 어린나이 때문에 증조할머니가 의성김씨 호적에 올리지 않고 재가한 안동김씨 집안 호적에 올렸다고 둘려댔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과 같이 살았다고 했습니다. 현재로 따지면 의성김씨 주민등록 되어있는 큰아들과 안동김씨 주민등록되어 있는 작은아들과 함께 안동김씨 집안에서 살았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버린 것입니다.... 아~ 나의 미스테이크....
게다가... 그 시대상황에 아이 둘 딸린 여자가 어떻게 대한만국 유교 보수의 대표주자 안동김씨 집안으로 재가할 수 있었나는 둥 별의 별 소리가 다 나왔습니다. 사실 그 시대에는 지금의 호적같은 제도 없었던 것입니다. 단지 집안에서 족보형태로 자신들의 가족임을 나타내었기에 두 아들과 함께 안동김씨 집안으로 재가를 하였더라도 족보에 두 아들을 같이 올리든지 아니면 둘다 안올리던지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시벌... 공부 좀 할껄....
그러나 김희선은 너희가 증조할머니 재가하는 거 봤어 하면서 여태까지 꼬불쳐둔 비장의 카드 김일진을 내놓습니다.
처음 계획은 증조할머니가 재가를 하는게 아니었기에 지어준 일자 항렬 김일진...
효과는 있었습니다. 군침을 흘리며 기다리던 조선 동아 까지 김희선의원은 독립운동가 손녀가 맞다고 꼬리를 내렸습니다(그러니 조선 동아 시키 욕 들어먹지 ...자세히 보면 모순투성인 가족내력을 못보고 있으니.....) 재빨리 그 기사를 김희선의원 자신의 홈페이지 상단에 자랑스럽게 걸어놨습니다. ....아 ~ 이제 됐구나 하며 두 다리를 쭉 뻗고 못다잔 잠을 잘려는 순간 ...... 이건 또 머야 .... 청소차 피하니 똥차가 나타난 꼴입니다.
이름하여 백파(김학규)자서전....
나는 지금으로부터 50년전(年前), 즉(卽) 1900년(年) 11월(月) 24일(日)에 한국(韓國) 서북부(西北部) 해안(海岸) 일평원지대(一平原地帶)인 어떠한 농촌(農村)에서 출생(出生)하였다. 내가 생장(生長)한 촌락(村落)-평안남도(平安南道) 평원군(平原郡) 서해면(西海面) 사산리(蛇山里)-는 비록 그 범위(範圍)가 크지는 못하나 아침에 산(山)으로 기어오르는 선명(鮮明)한 조양(朝陽)과 저녁에 해변(海邊) 지평선(地平線)으로 떨어지는 낙조(落照)가 심(甚)히 아름답게 보이는 미려(美麗)한 한 개(個)의 농촌(農村)이었다.
나는 당년(當年)으로 50세(歲)의 늙은 아버지와 35세의 젊으신 어머니 몸에서 태어났으며 4남(男) 2녀(女)의 동생(同生) 중(中)에서 4째 막내동이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직업(職業)은 의사(醫師)였고 가정(家庭) 형편(形便)은 중산계급(中産階級)에 속(屬) 하였다.
내가 5세(歲)가 되던 해에 불행(不幸)히도 아버지는 불쌍한 우리 6남매(男妹)를 남겨 놓고 사망(死亡)하였다. 그리하여 우리집 호주(戶主)는 당년(當年) 20세(歲)밖에 안되는 나의 장형(長兄)으로 바뀌게 되었다. 가세(家勢)는 빈한(貧寒)하여졌다.
이렇게 시작되는 백파자서전.....
닝기미... 또 머리가 아팠습니다. 저런게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백파자서전이라해서 김학규할아버지가 아닌줄 알았습니다. 아... 작은 할아버지 김학규자서전이라 하지요 ...왜...왜...
사실 그런게 있다 하더라도 관심없었습니다. 누가 그런거 까지 신경쓸까 하며 말입니다.
진짜 이번에는 심각했습니다...
시붕... 거 어렵게 증조할머니까지 안동김씨 가문으로 재가를 시켰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일단 뜨고 조용해지길 바라며.....
나의 의견 ->
지금 현재 상황으로 보면 백파선생과 김희선의원 둘중에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백파선생이 숨기고 싶은 가족사 때문에 자서전에서 거짓말을 했을까요? 오우 노우!
절대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 투쟁하신 분이 그런 가족사가 부끄럽다고 속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김희선의원은 작은할아버지가 너무 어렸을적에 일어난 일이라 기억을 못해서 그랬느라고 변명하시면 제가 달려가서 물어 뜯어버릴 겁니다. 아니.. 손자도 알고 아들도 며느리도 알고 온 동네사람이 다 아는 사실을 백파선생 혼자 모르게 가족들이 왕따를 시켰다는 말입니까?
그럼 김희선의원은 어떻게 증조할머니가 안동김씨 집안으로 재가한 것을 알았습니까? 설마 꿈속에서 증조할머니가 나타나 일러주신 건 아닐거고 분명 아버지나 삼촌 고모 아니면 할아버지한테 들어온 가족 이력아닙니까?
근데 이것보다 그 시대나 지금이나 어머니쪽의 재가는 어느 가족이나 숨겨고 싶은 허물입니다. 그래서 온 친척 가족은 입을 다물고 자식이나 손자대에 이르면 그런 사실을 알아채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증조할머니때의 일이라면.... 이런 상식적인 일이 김희선의원 가족사에는 마치 티브이 주말드라마를 보듯이 뒤죽박죽입니다.
게다가 김희선의원 홈페이지에는 독립유공자의 손녀를 증명할 수 있는 사진하나 없습니다. 달랑 알아볼 수 없는 엽서하나가 전부 다 입니다. 도대체 뭘보고 믿어달라는 겁니까? 하다못해 할아버지, 아버지가 쓰시던 소품하나는 구해서 구색을 맞춰놓아야 하는거 아닙니까?
끋으로 김희선의원에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친일청산하자니 눈물없이는 볼수없는 가족사는 왜 건드리나 하면서 본질을 호도하고 계신데... 친일청산 하십시오. 그 전에 마흔넘어 나이에 5남1녀의 가장으로 가정을 팽캐치고 어린 동생을 도와 독립군 자금책을 맡아오시다 왜정의 고문으로 돌아가신 친할아버지와 코흘리게 10살때부터 독립군 자금책을 맡은 할아버지와 작은어머니(김학규선생 부인)를 거들다 29세의 절믄 나이에 김구선생의 밀명을 받고 활동하시다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생사불명이 되신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가족사를 복원하여 하루라도 빨리 국가건국무공훈장을 신청하여 떳떳한 국가유공자 집안으로 거듭 태어나시길 바랍니다.
P.S 이 글은 저작권이 없습니다
첫댓글 그런대 더이상한것은 그럼 김일진은 의성김씨 항렬을따라서니 의성김씨인가요?? 완전개족보네요 자기아버지는 안동김씨고 아들은 의성김씨라??? 무슨 이런개족보가 다있습니까??
拾 叭 撚 입니다 구매자도 없겠지만~~~
김희선 웃기네요....ㅎㅎㅎ 안동김씨랑 의성김씨 두 집안을 완전 콩가루로 만들어 버리는구만..ㅡ.ㅡ;; 왜 종친회에서는 다들 가만히 있는건지...
기미선 구국하면 차분히 조져야 합니다.이런 여자 완전희 조져서 국회의원 사퇴는 못시켜도 박정희 대통령 욕하는 자리 선봉은 못나오게 아예 조져서 파 묻어야 합니다.
종친회라... 의성김시, 안동김씨... 이제 보니 수구꼴통 집안이네요... 고명하신 국회의원 덕 보며 살고 싶다는건지... 돌아가신 조상님들이 보고 계시며 대대손손 후손들이 쳐다보고 있습니다... 정의롭게 진실을 밝히십시오... 족보만 공개하면 만사 끝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