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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걱정되는 요즘 미국 경제에 관한 단상
권종상 추천 0 조회 29 10.06.23 22:27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월요일 치고는 조용하고, 우편물도 별로 없고, 일도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경기 한파가 체감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우리 곁을 완전히 물러간 것으로 알았던 겨울도 6월이 넘은 지금까지 여기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아침에 인터넷 카페에 들러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설탕을 조금 넣어 마셨습니다. 그리고 이생각 저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래도 별 걱정없이 이렇게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제 자신은 지금 미국에서 꽤 운좋은 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도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고, 건강을 잃고, 자신감 잃은 모습들을 주위에서 봐 와서인지 희희낙낙거리기가 미안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지금의 경기는 '바닥을 쳤다'고 하는 일부의 의견과는 달리,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만 재단하자면 끝없는 나락으로 침몰하는 것 같습니다.

월요일이면 보통 우편물 건수는 오버타임이 충분할 정도여야 합니다. 그러나 광고 우편물조차도 크게 줄은데다가 여름철 비수기까지 겹친 우체국은 월요일이 오히려 주말처럼 별 일 없이 조용할 뿐입니다. 방학이 겹친 탓인지 아침에 일곱 시가 다 되어서 집을 나섰지만, 차가 별로 밀리지 않은 까닭에 무사히 7시 30분 일 시작시간에 맞춰 제 차를 대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이 동네 차량 혼잡에 일조를 하던 보잉사의 직원 수가 확 줄어들었다는 데서 차량소통이 원활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더 빠를 듯 합니다.

물론, 이메일의 발전으로 인해 이른바 '트레디셔널 메일'의 건수는 크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요즘은 넷플릭스라고 불리우는 우편 배달 DVD 가 아니라면 우리에겐 일거리가 없을 것이라는 자조적인 우스개를 나눌 정도로, 우체부들의 우편배달량은 크게 줄어들었고 사실 제가 일하다 말고 커피 한 잔 할수 있는 여유도 우편물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가지는 것이 가능해지긴 했습니다. 시애틀에서 가장 번잡하다는 브로드웨이조차도, 빈 아파트 구하기가 가능하다는 사인이 여기저기 붙어 있고 상업용도 건물들도 빈 곳이 많아 브로드웨이를 걸어봐도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드는 곳들이 나올 정도입니다. 아무리 수치를 가지고 장난친다 해도, 소매경기의 불황은 눈에 보입니다. 엊그제는 친구들과의 모임을 위해 중국집엘 갔었는데, 그 바빠야 할 토요일 저녁, 우리 그룹을 포함해 딱 세 테이블이 채워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거의 그 집 문 닫을 때까지 있었는데, 그 세 팀이 다인듯 했습니다.

브로드웨이에서도 버글거리는 집들이 있긴 합니다. 전통 드라이브 스루 스타일의 저렴한 햄버거를 파는 Dick's 와 월남국수집 같은 곳들은 점심만 되면 자리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버글댑니다. 불황이라는 것이 분명히 느껴지는 것은 여러 경로로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코스트코에 가보면 점심시간에 근처 직장인들이 버글대는 것을 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외식하려면 점심 한 끼에 간단한 샌드위치 정도로 때우려 해도 6-7달러는 줘야 하지만, 코스트코에서 파는 핫도그는 1달러 50센트입니다. 여기에 음료수까지 끼워서 주는 가격이 이 정도이니, 요즘 같은 때 한 끼 때우기로는 딱인 셈입니다. 이럴 때 보면, 와서 먹는 사람들 중엔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블루칼러 뿐 아니라 양복을 쫙 빼 입은 화이트칼러 전문직 종사자들도 꽤 됩니다. 집에서 점심 싸가지고 오는 것이 오히려 돈이 더 들 정도이니 차라리 이렇게 때우겠다는 것이겠지요.

맥다널드 햄버거 집을 가보면 사람들이 늘 꽉 차 있는데, 서버라고 서 있는 사람들은 과거처럼 10대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매니저급은 물론이고, 서빙을 하는 사람들까지도 족히 3-40대는 되어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과거 맥다널드, 버거킹 같은 곳은 청소년들의 방학 아르바이트 자리로 여겨졌지만, 더이상 그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된 듯 합니다. 과거에 연봉 깨나 받았다는 사람들까지도 지금은 이런 자리를 놓고 다퉈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다보니 미국 안에서도 양극화는 계속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중소기업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대기업은 더욱 커집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형적인 맘앤팝 스토어들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 동네에서 꽤 크다는 서점 두 개가 사라진 자리엔 로컬 서점 대신 '반스 앤 노블'이나 '보더스'같은 대형 서점이 들어서 문화공간을 겸하고 있는 식입니다. 여기 가 보면 보통 인터넷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어서, 랩탑 들고 구직광고 뒤지고 있는 사람들을 꽤 볼 수 있습니다.

지금껏 효율과 생산성만을 외쳐 왔던 미국경제는 이 상태에선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이 전형적인 소비경제는 지금껏 충분한 임금을 받고 이를 소비해 왔던 중산층들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레이거노믹스, 유럽에선 대처리즘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의 본격적 발호 이후 생산시설은 모두 임금이 저렴한 곳을 찾아 옮겨 버리고 효율을 위해 복지는 희생해 온 이 나라의 경제는, 지금 끝을 모를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빚을 내서라도 소비를 해 온 이나라 경제의 악습은 결국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 되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살 집을 빚내서라도 더 큰 TV를 사는데 쓰도록 해 왔지만, 이제 더이상 집값이 투자처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소비의 버릇은 이들이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이유가 됐고, 갑자기 나락으로 빠져버린 수많은 사람들을 양산했습니다.

이제 구조적으로 정말 정신차리고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데, 기득권을 이미 쥔 사람들은 그것을 내어주는 것에 계속 저항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부자들에게서 이른바 '연대세(사실은 '부자세'에 가깝습니다)'를 걷어 사회정의 보장을 위해 가난한 이들에게 지급했다는 것 같은 예는 이곳에서 볼 수 없습니다. 가까운 뱅쿠버만 가도 완전히 이곳과는 틀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외화내빈은 '기회의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지금껏 투기경제와 소비경제를 이끌어 왔습니다. 그런 미국이 휘청되고 있는 것, 수많은 악재들로 둘러싸인 것이, 지금 제 눈에도 이렇게 명확하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자기 수정에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 나라의 미래가 어떨지, 참 암울합니다.
이런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땅이 바로 내 자식들이 살아갈 땅이기 때문입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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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6.24 00:13

    첫댓글 이런저런 시름잊고...... 오늘은 같이 C.C 까쇼 정도의 가벼운 놈에 서로인 한점 곁들이며 보냈으면 하는 밤입니다. 한국도 월드컵에 묻혀 지나가는 오늘 하루가 참 씁쓸하기만합니다. 언제 한국 들어오실때 꼭 연락주시길....

  • 10.06.24 12:02

    내말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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