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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금) 오전 10시부터 서울 중구 충정로에 있는 농업박물관 앞에 제11회 세계한글작가대회에 참석한 국내와 재외 작가 70여 명이 모여 김정식 국제PEN한국본부 사무총장으로부터 농업박물관에 관한 얘기와 마주 보이는 4·19혁명기념회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연극공연만 했던 동양극장 이야기도 했다. 서대문이라고 알고 있는 돈의문(敦義門)이 있던 자리인데 삼성병원이 있다.
김수근이라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가 설계한 옛 MBC문화방송과 경향신문이 함께 사용했던 건물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경향신문 자리는 원래 러시아의 상징이었던 터미콜라의 성당이 있던 자리다.
창덕여중은 1970년대 초반에 제동에 있던 학교가 옮겨왔다. 여기가 원래 프랑스 공사관이 있던 자리다.
이화여자고등학교의 이화박물관을 관람했다. 유관순 열사의 행적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유 열사의 애국심을 되새겨보았다. 이화박물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작가들은 유관순 열사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덕수궁 중명전(重明殿)에 갔다. 김경식 사무총장이 설명했다. 중명전의 본래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며, 황실 도서관으로 지어진 전각이었다. 처음에는 1층의 서양식 건물이었으나, 1901년 불에 탄 이후 지금과 같은 2층 건물로 다시 지었다. 1904년 덕수궁에 큰불이 나자, 고종은 중명전을 임시 거처로 사용했으며, 1907년 강제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때까지 머물렀다. 중명전 외에도 환벽정, 만희당을 비롯한 10여 채의 전각들이 있었으나, 1920년대 이후 중명전 이외의 건물은 없어졌다. 중명전은 1905년 일본의 강압 속에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비운의 장소다.
정동제일교회를 잠시 들러 설명을 듣고, 배재학당으로 갔다. 배재학당 동관은 1916년 준공하여 배재중·고등학교가 1984년 2월에 강동구 고덕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사용한 곳이다. 배재학당은 선교사 아펜젤러(H.G.Appenzeller) 목사가 1885년 8월에 세운 학교다. 이 동관은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근대 교육의 발상지에 현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건국 대통령 우남 이승만 박사(1875.03.26.~1965. 07. 19)가 의자에 앉아있는 동상이 있다. “학교법인 배재학당에서는 위대한 동문이자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인 우남 이승만 박사의 탄신 150주년을 맞아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우남 이승만 박사의 공적과 뜻을 기리고자 동상을 제작하였다”고 씌어 있다. 그 동상 의자 옆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는 작가들이 많이 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 들러 자유로 관람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자리는 대법원 자리다.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이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 말의 근원은 덕수궁 돌담길 옆에 가정법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덕수궁으로 들어갔다. 김경식 사무총장이 덕수궁에 관해서 자세하게 설명했다. 선조가 임진왜란 당시 의주에서 돌아왔을 때 경복궁과 창덕궁이 모두 불타버려 월산대군의 후손들이 사는 가옥들을 임시로 사용하면서 경운궁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당시 선조가 주로 사용했고 이러한 유래로 ‘옛날 임금의 집’이란 뜻인 석어당(昔御堂)이라는 건물명을 갖게 되었다.
즉조는 ‘즉위’와 같은 말로, 인조가 이곳에서 왕위에 오른 것을 기념하기 위해 붙인 이름인 즉조당(卽阼堂)이 있다. 대한제국기 중건 전각으로, 1904년 대화재 이후 재건되어 즉조당과 복도로 연결된 편전인 준명당(浚明堂)이 있다. 덕수궁의 정전으로, 1902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 황제국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 즉조당 앞에 새로 지은 건물인 중화전(中和殿)이 있다.
조선의 5대 궁 정전 중 유일하게 20세기에 창건되었으며,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으로 세워졌다. 중화(中和)는 중용에서 유래한 말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성정을 의미하며, 대한제국이 열강의 침탈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독립과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중화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제11회 세계한글작가대회 4일째 ‘문학 역사 기행’을 마쳤다. 오후 12시 30분, 시청 앞 건너편에 있는 한식 전문 식당에서 불고기 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오후 1시 30분에 내년 제12회 세계한글작가대회를 기약하며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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