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적금’ 깨는 청년들
2022년 대선을 보름 남짓 앞두고 지난 정부가 청년들의 목돈 만들기를 돕겠다며 내놓은 게 ‘청년희망적금’이다. 만 19∼34세가 매달 50만 원 한도 안에서 2년간 저금하면 연 10%에 가까운 금리를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은행 기본금리에 정부가 주는 장려금과 비과세 혜택이 더해져서다. 급여가 3600만 원 이하인 사람만 가입할 수 있어 “무직, 실직 청년은 어쩌란 말이냐”, “금수저 알바생은 되고 고연봉 흙수저는 안 되냐”는 불만이 쏟아졌지만 290만 명이 가입하며 히트를 쳤다.
▷한도를 꽉 채워 꼬박꼬박 저축한 청년이라면 만기가 되는 다음 달 1298만 원이 찍힌 통장을 받아들고 꽤나 뿌듯해할 것이다. 스무 번째 저금 날이던 지난해 9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1000만 원을 모았다는 인증샷이 쏟아졌다. 이들과 달리 파격적 금리 혜택을 포기하고 중간에 적금을 해지한 청년도 86만 명이 넘는다. 가입자 10명 중 3명꼴이다. 직장에 들어가면 희망적금과 비슷했던 ‘재형저축’부터 가입해 종잣돈을 모았던 부모 세대라면 혀를 찰지 모른다.
▷물론 중도 해지 청년 중엔 “티끌 모아 티끌”이 싫다며 코인이나 주식 ‘한 방’을 찾아 떠난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저축은커녕 생활비도 빠듯하다”며 마지못해 적금을 깬 청년이 대다수다. 번듯한 일자리를 얻지 못해 소득은 불안한데 전월세 가격부터 지하철 요금까지 안 오르는 게 없으니 허리띠 졸라매고 적금부터 깨는 것이다. 희망적금의 업그레이드 버전 ‘청년도약계좌’가 외면받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도약계좌는 5년간 매달 70만 원까지 저축해 5000만 원 정도를 모으는 것인데, 가입자가 정부 예상치의 20%도 안 된다.
▷SNS에 ‘거지방’을 만들어 돈 쓰지 않는 것을 서로 독려하고, 생활비를 한 푼도 안 쓰는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하는 청년들에게 저축은 사치일 뿐이다. 취업난 속에 고물가와 고금리의 충격을 온몸으로 맞다 보니 빚 수렁에 빠진 청년도 한둘이 아니다. 2030세대가 금융권에서 대출받았다가 갚지 못한 돈은 반년 새 40% 넘게 늘었다. 빚 돌려막기를 하며 금융회사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20, 30대는 142만 명이나 된다.
▷총선을 앞두고 이번에도 정부와 정치권이 2030세대를 겨냥한 청년 대책들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하지만 교통비와 아침밥을 지원하고 전월세 대출을 늘려주고 빚을 탕감해주는 땜질식 처방으로는 벼랑 끝에 몰린 청년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미래 세대에게 필요한 건 푼돈 얹어주는 적금 통장이 아니라 꼬박꼬박 월급 주는 질 좋은 일자리다. 그래야 자립해서 스스로 돈도 모으고 빚도 갚아 나갈 수 있다. 청년을 ‘희망고문’하는 공약들을 가려내는 건 이제 우리의 몫이다.
정임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