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에 살면서 한국에 대한 글을 더 잘 쓰고 싶어서 한국에 왔다는 콜린 마샬 칼럼리스트는 책 <한국요약금지>에서 서울의 동네가 건축적으로 가치가 없어 보이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될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끼고 영어 학습에 올인 하는 것도, 서양에 집착하는 것도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썼다. 또 해마다 진화하는 성형수술이 한국 사람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목구비에 불과하고, K-팝 역시 내게 큰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고 썼다.
콜린은 미국인 브랜든 리가 2018년 제작한 유튜브 영상 <Seoul Wave>와 싸이의 <강남스타일>, 봉준호의 <기생충>, 황동혁의 <오징어게임>을 언급한다. 하나는 콜린과 같은 이방인이 본 서울이고, 나머지는 한국인이 그린 서울이다. <Seoul Wave>는 한 남성의 출퇴근길을 따라가는 사이사이 고층 빌딩과 만원 지하철, 성형수술 상담, 심야 영어수업, K-팝 오디션, 먹방과 프로게이머의 경기 등을 담았다. 7분 내내 화려하고 번쩍이는 장면에 눈이 가지만, 왠지 모를 씁쓸함이 남는다.
영상에도 ‘한 없이 밝고 열정적으로 보이지만 어둡고 쓸쓸한 단면 역시 존재한다’, ‘어딘가 모르게 우울한 영상 분위기랑 정신없는 트랜지션(transition, 편집)까지 완벽한 영상이다.’ 같은 댓글이 붙어 있다. 콜린은 리의 영상을 소개하며 "한국에서는 수백만,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똑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서 좁은 길 위의 서로를 짓밟는다. 그런 경쟁은 창조적 한국을 만들기도 했지만 비창의적이고 경직된 나라라는 이미지를 덧씌우는 데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고 촌평한다.
콜린은 <강남스타일>에 대해 마이클 잭슨 같은 동작을 하는 어린 소년, 마구간 컷, 갑작스러운 폭발, 헤이, 섹시 레이디라는 후렴구, 디스코 볼이 달린 버스 등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요소와 음악 자체의 묘한 매력에 매료되어 거듭 영상을 돌려봤다면서 "한국 속의 좋지 않은 것들을 훨씬 가벼운 방식으로 암시한다"고 했다. <강남스타일>의 이 같은 풍자는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도 드러난다. 콜린은 <기생충>이 공간과 냄새로 표현한 계급성과 <오징어게임>에서 패자들이 보여준 무자비한 폭력성은 한국 사회의 단면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소재의 참신함과 높은 인기에도 <오징어게임>에 대한 많은 영문 기사는 드라마 자체보다 한국 사회 전반에 주목한다. 한국에 대한 서구권 국가들의 기사는 대부분 늘 같은 우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저출생, 높은 자살률, 대기업의 경제 지배, 끊임없이 압박받는 학생들, 위협적인 북쪽 이웃, 성형 중독 등이 가득 채워진 깊고 음울한 우물이 바로 그것이다. 심지어 <더 네이션(The Nation)>의 데이브 지린의 표현을 빌리자면 1988년 서울 올림픽은 고문, 강간, 노예, 죽음의 공포 쇼로 묘사되기도 했다.
콜린의 시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두 배나 높은 한국의 자살률을 거쳐 0.078명이라는 저출산 현상으로 이어진다. 그는 "CEO의 자살은 초경쟁적 경제의 압박 탓일 수 있다. 학생의 자살은 대학 입시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탓일 수 있다. 젊은 여성의 자살은 소셜 미디어 내에서 벌어진 팔로어의 공격 탓일 수 있다고 지적하는 동시에 여러 개인의 자살만큼이나 주목해야 할 자살로 '한국이라는 국가 자체의 자살', 즉 결혼과 자식 낳기를 거부하는 세태를 얘기한다.
20, 30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사회에서 결혼을 하기 힘들 것이란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언론들도 한국 사회에 대한 일종의 항의로서 재생산 거부가 급증하는 현실에 주목해왔다. 최근 몇 년 간에는 미혼의 대체 용어인 '비혼'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의도적인 선택, 즉 결혼과 함께 거기 수반되는 어떤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사를 표현한다.
콜린은 영화 <미나리>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탄 윤여정을 두고 서양인들은 K-그랜드마(grandma)의 등장에 대비해야 한다며 윤여정의 첫 작품인 <화녀>(1971), <충녀>(1972) 등을 열거한다. 그는 <충녀>의 경우 "이런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설명을 읽기보다는 직접 봐야만 하는 영화라고 추천한다. 그러면서 김기영 감독에 대해 사후 20년이 지난 지금, 김기영은 가장 중요한 한국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자격이 충분하다고 평한다.
또 <극한직업>을 매개로 한 한국의 치킨 문화를 얘기하며 "난 한국에서 맛없는 프라이드치킨을 먹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극찬하는가 하면, 영화 <1987>과 이한열 열사 그리고 끝까지 사과하지 않은 채 사망한 전두환을 연결 짓고, <아이 캔 스피크>와 일본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면서는 한일 문제에 대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전한다.
이에 더해 소설 <82년생 김지영>에 나오는 '맘충(Mom+벌레충蟲)'이 'mom-roach'로 번역된 이야기를 하면서는 "모두 심호흡을 해야 했을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한국관광공사가 소리꾼 이날치를 앞세워 만든 홍보 영상을 언급하며 <심청가> <흥부가> <적벽가> <춘향가> <수궁가> 등 판소리 다섯 마당을 읊고, 한국의 대표적인 1세대 건축가 김수근의 명과 암도 가감 없이 설명한다.
콜린은 어떤 나라나 사회도 그 전부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면서 결코 한국을 마스터할 수 없기에 한국을 더 공부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대신 그는 와인을 즐기는 '와인 코노셔(Wine Connoisseur)'처럼 한국을 즐기는 '한국 코노셔(Korea Connoisseur)'가 되고 싶다고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