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옥엽] 응급실

응급실/ 조옥엽 소리가 한방에 사방을 휘어잡자보이지 않는 면도날이 미친 듯허리를 비틀며 허공을 휘젓고 다닌다속도가 생사를 가르는 곳하얀 가운들이 바람의 머리칼 잡아타고 날아다니고직립을 잃어버린 몸들이 눈을 감고 허공을 떠다닌다문지방 넘는 순간모두 같은 신분이 되고 마는 이상한 나라에서달아나려는 넋과 그 손 놓지 않으려는 이들의치열한 줄다리기에 팽팽해진 공기 주머니언제 어느 구석에서 터질지 모르는 두려움에깨알처럼 박혔던 소망 일제히 꼬리를 감추고오직 하나의 일념만이 하늘로 솟구친다표정 없는 차깔한 백색의 벽면은소박한 일상의 옷 다시 찾아 입고 싶은간절함으로 북적대는 대기실들썩이는 의사의 입술이 곧 신의 전언인 양전신의 세포 곧추 서고오랜 가뭄 끝에 떨어지는 빗방울 받아꼭꼭 씹어 삼키듯 온몸으로 받아 적는 문장들연타로 치고 드는 돌팔매질에 가슴팍 속속 패여 나가도금세 수평을 되찾는 유려한 강물처럼억장 천길 만길 무너져 내려도터져 나오는 울음 꾸역꾸역 삼키며내일의 끈 놓지 않으려 안간힘 쓰는 납빛 얼굴들으스러진 알전구 움켜쥔 채 혼돈의 바다 문턱을 넘는다지팡이 짚고 빛을 찾아 다시 절뚝절뚝 걸어 나간다 - 계간『애지』2016년 봄호  조옥엽 시인의 시는 제목에서처럼 실제의 응급실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면도날이 미친 듯/ 허리를 비틀며 허공을 휘젓고 다”니는 곳이 바로 응급실이다. 응급실에서는 일반적으로 “속도가 생사를 가르는 곳”이기도 하다. 생과 사의 사이, 그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우리가 몸을 누이게 될 지는 결정하는 데는 ‘속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존재고 뭐고 없다. 오직 물리적인 시간과 물질의 몸의 문제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린 이미 “직립을 잃어버린 몸"이며, ”눈을 감고 허공을 떠“다니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달아나려는 넋과 그 손 놓지 않으려는 이들의/ 치열한 줄다리기에 팽팽해진 공기”는 응급실의 풍경이면서 지금 우리 삶의 현재진행형인 모습이기도 하다. “직립을 잃어버린 몸”처럼 우리는 이 세계에 대하여 할 수 없는 게 별로 없다. ‘나’라는 개인으로서는 오직 ‘견딤’만이 생존의 방법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삶을 바라보는 대기실에서의 또다른 우리는 “전신의 세포 곧추 서고/ 오랜 가뭄 끝에 떨어지는 빗방울 받아/ 꼭꼭 씹어 삼키듯 온몸으로 받아 적는 문장들”이 있다. 또 다른 나는 그렇게 “수평을 되찾는 유려한 강물”의 시간을 지나 “빛을 찾아 다시 절뚝절뚝 걸어 나간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시간이 그냥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으스러진 알전구 움켜쥔 채”견뎌야 한다. 그런 견딤의 시간이 ‘나’와 ‘나’ 사이에 있다. 그런 사이를 살아가는 일,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일이고 모습일 것이다.  “있음”, 어쩌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닐지 모른다. 그것을 있게 하는, 있게 하려는 삶의 모습, 그런 치열함이 빚어내는 힘겨움, 그 아름다움에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없음” 혹은 “없어질 수 있는”지금 여기 이 자리가 가장 중요한 몰입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연타로 치고 드는 돌팔매질에 가슴팍 속속 패여 나가도”, “터져 나오는 울음 꾸역꾸역 삼키며” 안간힘으로 버티는 것. ‘있음’은 그렇게 우리가 지켜야 할 나의 확인이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 그런 질문에 대하여 스스로 대답하는 일, 결과가 아니라 우리는 그렇게 과정으로 존재하는 오늘을 산다는 것, 이 시가 성찰하고자 하는 방향이 아닐까 싶다. (이승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