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꼭 가봐야할 사찰] 33 삼보의 은혜가 충만한 공주 갑사
‘추갑사’ 진수는 도량 곳곳 빛나는 ‘삼보 은혜’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岬寺)’라는 말이 있듯이 가을에 가볼만한 산사는 공주 갑사가 제격이다. 단풍이 물든 산사의 정취는 물론 눈부시도록 청명한 계룡산의 하늘, 도량에 곳곳의 성보들은 불법승 삼보의 은혜를 되새기는 기회도 준다.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岬寺)’라 했던가? 가을의 갑사는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삼보(三寶)의 은혜는 보석처럼 빛난다. “왜 삼보에 귀의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법계차제초문(法界次第初聞)>에서는 “부처님은 스스로 깨달았고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므로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고, 위대한 부처님의 말씀은 마음의 본보기로 삼을 만하기 때문에 귀의하는 것이며, 승가는 부처님을 따르는 화합하는 대중이기 때문에 귀의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 자연 그대로 ‘계룡산 법신’ 천진보탑
단풍과 함께 계룡산에 숨겨진 삼보의 은혜를 찾아 나서는 것 또한 나름대로 멋진 나들이가 될 만한 시절이다. 공주 갑사는 신라 화엄 10찰 가운데 한 곳으로 계룡산에는 삼불봉(三佛峰)이 있다. 삼신불(三身佛)이 산으로 솟아올라 중생을 보살펴 주시는 은혜이다. 계룡산의 최고봉은 옥황상제의 천황봉이 아니라 사천왕을 나타내는 천왕봉이다. 인도 아쇼카왕은 사천왕의 우두머리인 북방 비사문천왕 즉, 다문천왕에게 부처님 사리를 이곳 계룡산에 보내 바위 속에 갈무리해 두게 했다. 아도화상이 이곳 사리탑을 참례하고 ‘천진보탑’이라 불렀고 이를 계기로 갑사가 창건되었다고 한다.
문화재자료 제68호 천진보탑. 계룡산 신흥암 위에 봉우리처럼 우뚝 솟아있는 자연바위로, 아도화상이 ‘천진보탑(天眞寶塔)’이라 이름 붙여 놓았다고 한다. 출처=갑사 홈페이지
<대공양예참문>에 “여덟 말 너 되나 되는 부처님의 오색사리가 아쇼카왕에 의해 천진보탑에 모셔졌는데 그 보배로운 탑의 높이는 5000 유순으로 천상과 인간에 의해 장엄되었다”고 했다. 기원전 3세기에 건립된 계룡산 천진보탑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법신(法身)을 보여주었다.
이뿐만 아니라 갑사에는 국보298호 ‘삼신불괘불탱화(야단법석삼신불화)’가 있어 매년 가을 초 기허당 영규대사 추모 다례재에 참석하면 삼신불을 친견하는 가피를 입게 된다. 이 야단법석불화는 효종 원년(1650)에 제작되었는데 길이 12.47m, 폭 9.48m의 크기로 전체적으로 상·중·하 3단 구도를 이루고 있다.
상단은 아름다운 천상세계가 펼쳐지고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제자, 금강역사 등이 배치되어 있고 중단에는 육계가 지나칠 정도로 뾰족하게 솟고, 반달 모양의 중앙 계주와 둥근 꼴의 정상계주를 갖춘 삼신불이 있다. 지권인을 한 법신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보관을 쓰고 손을 들어 설법인을 취한 보신 노사나불, 우측에는 팔이 유난히도 길고 손 또한 큼직한 항마촉지인의 석가모니불이 있다. 하단에는 문수·보현보살과 사천왕이 서 있고 중앙에는 부처님을 바라보며 법을 청하는 사리불이 있어 이채롭다.
보물 제256호 갑사 철당간 및 지주는 유일한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이다.
➲ 갑사 ‘법보’ 범종과 월인석보, 철당간
다음은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법보의 은혜인데 보물 478호 갑사 범종은 선조 17년(1584)에 근령스님에 의해 주성 되었는데 범종 소리는 모든 중생들을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 범종 표면 명문에는 “1583년 7월에 북방 오랑캐의 전란이 크게 일어나 그로 인해 충청, 경상, 전라도 사찰의 그릇과 쇠붙이를 나라에 바쳐 병기와 화포를 주조하도록 했다. 사람들이 모두 탄식해 말하기를 사찰이란 아침, 저녁으로 임금과 중생을 위해 범종이 울려야 하기 때문에 권선하여 계룡산 갑사에서 대종을 새로 주조하니 만세에 전해지리”라 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공출되어 부평 병기창에서 무기로 만들어지는 위기를 맞았으나 일본의 패망으로 갑사로 돌아오게 됐다.
범종은 높이 131㎝, 입지름 91㎝로 용뉴는 음통이 없고, 두 마리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다. 범종 아래 네 곳에 연못을 만들고 가운데가 볼록한 연꽃을 아홉 개씩 두어 37존불을 나타냈다. 네 개의 당좌에는 부처님의 법을 굴리는 보륜이 신령스런 기운에 싸여 갑자기 나타난 모습이다. 특히 연꽃을 밟고 선 지장보살은 지옥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해 오른손에는 육환장을, 왼손에는 밝은 구슬을 들고 있다. 또 다른 법보는 보물 582호로 유일한 갑사의 월인석보 목판이다. 선조 2년(1569) 충청도 한산에 사는 백개만(白介萬)의 시주로 충남 논산 불명산 쌍계사에 있던 것이다.
국보 298호 갑사 ‘삼신불괘불탱화(야단법석삼신불화)’. 매년 가을 기허당 영규대사 추모다례재는 야외에서 삼신불을 친견하는 기회도 된다.
➲ 당간(幢竿)을 세우는 의미
또한 갑사에는 높은 간대에 당을 매달아 펄럭이며 부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함으로써 중생의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는 당간이 있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교의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 <잡아함경> 염삼보경(念三寶經)과 당경(幢經)에 보면 사찰 입구에 당간을 세우는 의미를 알 수 있다.
“세존께서 상인들에게 ‘당신들은 넓은 벌판을 가다가 온갖 두려움이 생겨 마음이 놀라 온 몸에 털이 곤두서거나 할 때 마땅히 여래에 대한 일을 생각해야 한다. 과거 세상에 제석천과 아수라가 싸울 때 제석천이 여러 하늘들에게 ‘너희들이 아수라와 싸울 때 두려움이 생기거든 꼭 나의 최복당(摧伏幢)이라는 깃발을 기억하라․ 그 깃발을 기억하면 곧 두려움이 없어질 것이다’ 하였다. 하물며 여래는 탐·진·치 삼독(三毒)을 여의었고 모든 괴로움에서 해탈하여 어떤 두려움과 무서움도 없어 도망치거나 피하는 일이 없거늘 그 여래를 기억함으로 해서 모든 두려움을 없애지 못할 이치가 있겠는가?” 했다.
갑사 철당간(鐵幢竿)은 보물256호로 유일한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이다. 지름 50cm인 24개의 철 원통을 연결한 철 당간을 15m 높이로 세우고 양 옆에 돌로 만든 당간지주를 세워 지탱했다. 당간은 원래는 28개였으나 고종 30년(1893) 벼락을 맞아 4개가 없어졌다고 한다. 갑사의 범종과 월인석보 목판, 철당간은 법보의 은혜를 알기에 충분하다.
임진왜란 승병장 기허당 영규대사 진영.
➲ 여전히 외면당한 의승 1000여명
또한 갑사에는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한 스님들이 계셨기 때문에 승보의 은혜가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스님들은 의승군(義僧軍)을 조직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이때 분연히 일어선 스님이 조선 승병장(僧兵將) 기허당 영규(騎虛堂 靈圭)대사이다. 영규대사는 갑사로 출가한 뒤 서산대사 휴정의 문하에서 법을 깨우쳐 그의 제자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승 500명을 규합하여 왜적들이 점거한 청주성을 수복했다.
의병장 조헌과 함께 1592년 8월18일 금산전투에서 격전을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700여명의 조헌 의병과 1000여명의 영규 승병들이 모두 전사했다. 전투가 끝나자 조헌이 이끈 의병들의 무덤은 금산 칠백의총이 되어 추모하고 있다. 그러나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킨 의승병 1000여명은 아직까지 국가로부터 외면당한 채 금산 골짜기의 버려진 영혼이 되어버렸다. 하루빨리 의승천인총(義僧千人塚)을 조성하여 추모해야 한다.
단풍이 물드는 푸른 가을 하늘을 만끽하며 갑사에서 삼보의 은혜를 되새겨 봄직도 하다.
[불교신문368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