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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성 여행기 5 "신루하이-더거-신롱"
2019년 5월 18일 아침 7시 30분에 간즈에서 더거로 출발했다. 중간에 "마니깐거"라는 마을 앞에서 검문이 있다. "마늘 깐 거"가 아닌게 다행이었다. 여권을 들고 있으면, 경찰이 내 얼굴과 여권을 동시에 촬영한다. 아마 서쪽으로 갈수록 티벳의 독립 정신이 강한 사람이 더 많이 있을 것이고, 혹시 그들과 연관되어 불상사를 일으킬지 몰라 사전에 예방하는 차원일 것이다. 검문소 바로 옆에는 "당의 은혜에 감사하고, 조국을 사랑하자"라는 붉은 글씨가 있다.
<당의 은혜에 감사하고, 조국을 사랑하자>
<산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곳곳에 씌어 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본 구호. "중국 정부의 정치 이념이 무엇인지 잘 알 것, 몸가짐을 바르게 할 것, 규칙을 엄수할 것, 당의 올바른 기풍을 견지할 것"이라고 대충 해석해 보았다. >
<"玉龙拉措/玉隆拉错/新路海(위롱라추어/신루하이,모두 같은 말이다)" >
<입구를 지나면 작은 강이 흐르고 그 너머에 호수가 있다.>
아, 시퍼런 물이 잉크처럼 번져있구나! 멀리 멀리 산 위에 쌓인 만년설이 녹아 신비의 천연수가 되었구나! 바이칼 호수가 맑고 깨끗하다 한들 이보다 더 명징(明澄)할소냐? 푸른 하늘의 정기를 받아 바위틈으로 흘러 흘러 한 방울 한 방울 호수에 쌓인 물 아니더냐? 가슴을 활짝 열고 호수 위를 맴도는 신비로운 공기를 마셔보자. 아, 저 푸른 하늘과 저 파란 물빛이 내 가슴을 파랗게 물들이고 온 세상을 휘감아 도는구나! 해발 4040미터에 위치해 있는 이 호수가 진정 산정(山頂) 호수렸다!
중국의 네이버에 해당하는 百度를 찾아보면 신루하이에 대한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新路海藏语名为玉龙拉措,玉是心,龙是倾,拉措是神湖。相传藏族著名史诗《格萨尔王传》中的英雄格萨尔爱妃珠牡来到湖边,被秀丽的湖光山色和幽静的环境所吸引,徘徊湖边流边忘返,她那颗眷念美丽河山的心犹沉海底。后人为了纪念珠牡,取名为玉龙拉措"<百度에서>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신루하이는 장족 언어로 위롱라추어인데, "위"는 "마음"이란 뜻이고, "롱"은 "한쪽으로 기울다", "라추어"는 "신의 호수"라는 뜻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장족의 저명한 역사시(历史诗) "거사얼왕전" 중의 영웅인 "거사얼"의 사랑하는 부인(愛妃) "주무"가 호수 주변에 왔다가, 수려한 호수의 빛과 산의 색채, 그리고 그윽하고 고요한 분위기에 매료되어서, 호수 주위를 배회하며 여기저기 방향없이 떠돌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잊었다. 아름다운 산하를 그리워하는 그녀의 마음이 바다 밑에 가라 앉는 듯 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주무"를 기념하기 위해 "위롱라추어(마음이 한 쪽으로 기운 신의 호수)"라고 이름 붙였다.
<참고>
* 颗: 心의 量词
* 眷念[juànniàn] 가슴 가득 그리워하다.
호수의 빛이 너무 아름다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잊고, 마음이 호수 아래로 향했으니, 그녀는 결국 이 호수에 빠져 죽었을 것이다. 죽지 않았던들 그녀를 기념하여 호수의 이름까지 지어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런 저런 이유로 물에 빠져 죽는 것이 여인네가 아닌가 싶다. 심청이도 물에 빠져 죽었고, 논개도 물에 빠져 죽었고, 심지어는 3천명이나 되는 궁녀가 낙화암에서 뛰어내려 백마강에 빠져 죽었다. 옛날 연속극을 보아도 화를 참지 못하여 마당의 우물에 빠져 죽는 것은 여자이지 남자가 아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왜 치마를 뒤집어 쓰고 죽는지 모르겠다. 아마 시퍼런 물이 무서워서 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 여자에게 바지를 입혔다면 혹시 자살률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그러나 신은 그렇게 무심하지 않다. 위의 여인들이 자발적으로 죽었다면, 사고로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은 대부분 남자인 듯 하다. 여름에 산골에서 물놀이하다 죽는 것은 남자요, 바다에서 수영 잘 한다고 뽐내다가 죽는 것도 남자요, 물에 빠진 사람을 살려낸다고 물에 뛰어 들다가 죽는 것도 남자다. 여자들은 자살을 할 지언정, 이런 무모한 짓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녀 비율은 변하지 않는 듯 하다!
호수에 도착하니 넓은 호수에 딱 두 명의 여인이 있었다. 처음에 생각하기를, 서 있는 여인은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것으로, 두 번째 여인은 물위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다가 이 호수의 전설이 생각나서, 혹시 물에 빠져 죽으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었다. 자세히 보니, 한 여인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듯하고, 두 번째 여인은 오랜 시간 엎드리고 있어서 무엇을 하는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바위에는 티벳어로 새겨진 글이 많다.>
<물가 잔디밭에는 키가 1센티가 될까 말까 한 꽃이 화려한 꽃분홍 수를 놓고 있다.>
<나중에 한 가족이 소풍 왔다. 사진을 찍어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주위 어른들은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내 마음도 즐겁다. 하지만, 막상 아이는 얼떨떨해 한다.>
얼핏 보면 아무런 동물이 없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동물이 한 둘이 아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새 한 마리가 나무 가지 위에 앉아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호수 위에는 기러기 한 쌍이 유유히 헤엄치며 세월을 낚고 있다. 풀 뜯는 것도 귀찮다는 듯, 야크 한 마리가 물 속에 풍덩 빠져 나를 바라본다. 잔디 아래를 자세히 보면, 개미는 바쁘게 움직이고,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도 들려온다.
<신루하이를 지나 한 시간 정도 가면, 바위를 깎아 만든 부처상과 벽화가 있다. >
<맞은 편 쪽에 돌로 탑을 쌓기 시작한다>
<마을 안으로 조금 들어가면 보이는 바위의 조각 그림>
<역시 부처 옆의 사찰>
<숙소: 불연호텔: 스님들이 주로 묵는 호텔이다.>
더거의 명소로는 인경원과, 인경원(印经院) 바로 위에 있는 껑칭스(更庆寺) 뿐인 듯 했다. 인경원(印经院)은 불경을 인쇄하는 곳이며, 동시에 사찰이다. 입장료 없이 들어가면 일단 카메라를 맡겨야 한다. 사진을 찍지 말라는 표시가 여기저기 붙어 있다. 들은 바로는 인쇄하는 사람들이 불경을 인쇄할 때, 눈알을 번득이며 재빨리 인쇄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라고 했는데, 그날은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단지 몇 사람이 앉아서, 큰 통속에 있는 누런 황색 물에, 인쇄판으로 보이는 나무 판을 이리저리 담그며 색을 먹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컴컴한 방에 수 많은 불경 인쇄판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시렁이 나타나는 데, 감시원 몰래 한 장을 빼어내서 살펴보니, 우리나라 8만대장경처럼 티벳어로 된 인쇄원판이었다. 아이들은 뛰어 다니고, 지키는 사람은 감시에 소홀하고, 이렇게 귀중한 것을 왜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할까 의문이 들었다.
사다리를 타고 한 층을 더 올라가면 옥상이 나타나는데, 이 옥상에서 바라보면 산밑에 지어진 붉은 색의 집들이 저녁 햇빛을 받아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 아래 더거 시내가 반쯤 보이고, 그 너머에 더거를 둘러싼 산이 보인다.
<사람들이 인경원을 돌고 있다.>
<인경원 정면>
<인경원 옥상에서 아이들이 사진 촬영하라고 포즈를 취한다. 아이들은 수학여행이나소풍으로 이곳에 온 듯 했다. >
<인경원 주위를 도는 사람들>
<인경원 옥상에서 바라본 성냥갑같은 산밑의 집들>
<인경원에서 나오다가 보이는 집: 호텔이나 상가인듯>
<보행자 거리>
<인경원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껑칭스(更庆寺)라는 사찰이 있다. 안에서 공부하는 스님들>
<껑칭스 안의 모습: 만다라인 듯>
<그날 저녁 식사하던 옆집 식당의 부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아침에 시내에서 채소를 사고 파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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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거를 가는 이유는 인경원을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더거를 거쳐서 야칭스라는 사찰을 가기 위해서이다. 오명불 학원과 다불어 야칭스는 동티벳 여행자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거리이다. 우리가 묵은 호텔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무슨 이유인지, 외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도 야칭스 출입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야칭스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뉴스에도 없고, 다녀온 사람도 없으니 그 이유를 알 도리가 없다. 더 이상 알려고 해도 소용없다. 중국에서는 경찰이 안 된다면 그게 법이다.
<야칭스: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사진>
호텔에서 이야기 하기를, 그러나 백옥이라는 곳을 거쳐서 돌아서 가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5월 19일 아침 백옥을 향해서 출발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중간에 검문에 걸려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 지도에서 A 코스는, 호텔에서 못 가는 코스라고 했다. B 코스는 가능할 수도 있다고 했으나, 막상 가보니 불가능했다. 결국 야칭스는 가지 못했다. >
더거에서 백옥으로 가는 중간 지점에 검문소가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여권을 받아 이것저것 검사하더니, 결국 딱 한 마디, 귀에 쩡쩡하게, 우렁차고 힘차게 말했다. "취불리아오!"(去不了: 거불료: 갈 수 없다). 상부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군대에서 까라면 까라, 는 말이 있지만, 여기는 안 된다면 안 되는 것이다. 이유를 달거나 대들어봤자 입만 아프다. 사실은 대들지도 못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금 더 가서 검문소가 있다. 바위에 크게 西藏이라는 글이 보인다. 바로 여기에서 문창과 백옥으로 갈라진다. 문창은 본래 외국인 통행금지 지역이고, 신앙심이 대단히 깊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
다시 더거로 돌아와서 케이씨님은 경찰서장을 만나서 사정을 해보겠다고 했다. 나도 케이씨님을 따라서 경찰서로 갔다. 경찰서의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경찰서장과 이야기할 때, 어떤 중국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경찰서 입구를 통과하니 수위실이 텅 비어 있었다. 아무런 안내판이 없어서 건물 안으로 무조건 들어갔다. 1층을 왔다 갔다 해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참으로 이상하다. 외부 침입자가 와서 폭탄을 투여해도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여기도 모든 문은 다 잠겨있고,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 거리지 않았다. 다시 밖으로 나와, 케이씨는 수위실에 적혀있는 핸드폰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오늘이 일요일이다!" 일요일은 경찰도 쉰다?!
그래서, 눈물을 참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매운 국수를 먹으니 참았던 눈물인지 뭔 가 한 방울 툭 떨어져 국수에 덤벙 떨어졌다. 이 모든 것이 신롱(新龙)이라는 곳으로 향하라는 신롱(神弄)이리라!
<더거에서 신롱으로 갈 때 샛길로 차를 몰았으나, 주민들이 출입구를 봉쇄하였다. 사람은 내려두고, 운전수는 멀리 돌아서 바로 옆에 있는 아스팔트 길로 차를 몰고 왔다.>
<운전수를 기다리면서 주위의 경치를 촬영하였다. 비가 온 뒤라 산뜻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기다리며 찍은 사진>
<자동차는 신롱을 향해 달린다.>
<달리는 자동차에서 바라 본 장면>
<자동차를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운전부주의로 모래에 빠진 듯 하다.>
<자동차는 산 밑과 강 사이에 나 있는 좁은 길을 잘도 달린다.>
유튜브에 올리고 링크
<동영상 첨부가 안 되어 생략>
<동영상 1분 26초: 신롱 가는 길>
<저녁 식사: 같은 삼겹살을 10가지 다른 양념으로 재워서 가져왔다. 맛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를 구별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새롭게 태어난 용( 新龙 = 新龍)이나 가능할 것이다!>
<다음 날 일찍 동네를 돌다가 학교 앞에 갔다. 신롱 초등학교 앞: 웃을 소(笑)라고 크게 써 있다. 그 아래 "웃으면서 일 하자!"라는 작은 글자가 보인다.>
<초등학교 앞:"인생 100가지 행위 중에 효가 우선이다"라고 씌어 있다. 사진에 보이는 사람은 이웃 주민인데, 이 학교의 학생이 6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
<아이들이 삼삼오오 등교하고 있었다. 남자 아이들은 머리를 짧게 깎고, 여자 아이들은 머리를 길게 땋은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목에 붉은 천을 감았다. >
<유치원인듯! 유치원 생들을 촬영하는 데, 웬 여자가 갑자기 나타났다. 아무래도 장족이 아니라 한족인 듯하다. >
<부모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
<산 중턱에 큰 사찰이 있어 올라가던 중 찍은 사진: 스님이 아닌 일반인의 즐거운 모습 조각상>
<먹을 것이 없어서, 털이 부시시하고 뼈만 남은 송아지>
<산 중턱의 절에 있는 부처상>
<부처 상에서 샛길을 따라 내려오면 시장이 나온다.>
<썰다 만 칼이 그냥 놓여있다.>
<고기 표면에 붙어 있는 털을 태워 없애는 듯>
<죽음을 기다리는 오리와 거위 그리고 토끼들>
한참을 걸었더니 피곤했다. 건축물만을 구경할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면 어떨까 싶어 다리 난간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옛날 교육학 수업할 때,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공항에 나가서 사람들을 관찰하면 정말 재미있다"라고 했었다. 수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중국 신롱의 다리 위에서 실습을 한다.
<삶의 현장으로 걸어가는 현지인의 모습에서 살아 있는 힘이 느껴진다. 가방을 든 사람은 영화 배우 같다. >
<동충하초를 팔고 있는 이 사람은 아무래도 코미디언처럼 보인다. >
<할머니와 즐겁게 이야기하며 걷는 아이의 얼굴에 "행복"이라고 써 있다.>
<A: 그런데 말이야, 내 헤어 스타일 어떠냐? B: 솔직히 말해 웃겨유? A: 음, 얀마, 형님한테 말조심 혀! 최신 유행 스타일도 모르는 주제에!>
<야, 왕년에 나도 잘 나갔다구! 짜식들이 까불고 있어, 아이구 내 몸이 왜 이리 건들거리냐? 왕년에 한국에 이주일이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데, 한번 내기해볼까? >
<음, 죽으나 사나 핸드폰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라구? 그런데, 아무래도 소 한 마리 팔아 새것으로 교체해야 쓰것다! 자식들이 반대하것지? 반대만 해봐, 이것들을 어디 가만두나! 보자 보자 하니까! 요즘 집안에 군기가 완전 제로야!>
다리를 지나는 주민들을 바라보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정신을 차리니,이미 날은 밝을 대로 밝은 대낮이었다. 멀리 또다른 구름과 또 다른 파란 하늘이 나에게 손짓하며 빨리 오라고 미소를 보내고 있다. 그래 힘을 내서 가자, 다음 목적지로!
그때 어디서 와당탕 소리가 났다! 우리 차가 눈 앞에 보였다. 리탕가유! 리탕이라, 배(梨)를 삶아서 만든 탕? 그러면 배즙이네! 이거 맹탕이면 안 되는데! 야칭스처럼 허탕이 되면 더욱 곤란하고! 아이구 여탕만 아니면 되겄다! (다음은 "리탕과 야딩"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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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도 더거에서 만난 말못하는 소녀가 생각 납니다...인경원을 자발적으로 안내해주고 국수집도 알려주고 했는데... 아직도 그 속에서 잘 살고 있겠죠.. 아주 오랜 기억이 되살아나네요... 살짝 땀나는 오후, 첫 장의 사진부터가 시-원 합니다.
그런 소녀를 본 적이 없네요. 대신 중국말로 인경원 안내를 해준 초등생을 본 적이 있습니다.
구름사진이 넘 멋있네요^^ 설산과 구름 그리고 호수...언능 가고 싶군요.
예, 여기는 구름과 산과 호수와 절 뿐인듯 합니다.
여름에는 자연산 송이도 있습니다...^^ 기대해 주세요...ㅎㅎㅎ
실크로드여행중 만난 거대호수 암드록쵸 같아요. 중국호수는 죄다 암드록쵸로 보이네요. ㅎ 호수가에서 케시님이 닭칼국수 요리해주셧는데,
그날이후 케시님은 내게 엄마였어요..애들을 소중히 여기기는 여기나 거기나 ...
암드록초가 어딘지 생각이 안 나네요. 닭칼국수는 언제?
암드록초는 티벳에 있는데요...ㅎㅎㅎ
실크로드 여행중 신장 최서단에 있는 큰 호수는 싸리무호수구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