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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곧바로 아침 농사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작년 가을에 산윗밭에 심어놓은 마늘과 양파를 수확하는 날입니다.
각자 엉덩이 방석을 하나씩 끼고 마늘부터 캐기 시작했습니다. 마늘은 보통 잎이 마르기 시작할 때, 그리고 태풍이 오기 전인 6월 말 경에 캡니다.
먼저 행자님이 쇠스랑으로 마늘 근처를 찔러 흙을 올렸습니다. 뒤따라가며 스님이 손으로 줄기를 잡고 마늘을 뽑았습니다.
쉽게 뽑히지 않는 것은 괭이로 주변의 땅을 찍어서 뽑았습니다.
“땅이 너무 딱딱해서 마늘 캐기가 엄청 힘이 드네요.”
주변에 흙이 묻어서 무겁기도 하고 흙을 털어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땅에 대고 툭툭 쳐서 흙을 털면 마늘에 상처가 생기기 때문에 아기 다루듯이 손으로 살살 흙을 털어냈습니다.
“아이고, 힘들다”
땀을 흠뻑 흘려가며 한 고랑을 겨우 끝냈습니다. 스님의 뒤를 따라가며 행자님이 마늘을 스무 개씩 묶었습니다.
“스님, 참 드실 시간입니다.”
밭 주변에 있는 산딸기를 따와서 참으로 먹었습니다.
참을 먹고 나서 양파 수확을 시작했습니다. 주먹보다 더 큰 양파가 이미 땅 밖으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양파는 잘 컸네요. 이것 보세요. 이렇게 커요.”
큼직한 양파를 뽑는 일은 마늘을 뽑는 것보다 한결 수월했습니다. 손으로 잡아당기기만 해도 땅에서 쑥쑥 빠졌습니다.
“이 동네에서 우리가 제일 부자네요. 밭농사를 지어서 이렇게 많이 수확하는 곳은 이 동네에서 우리밖에 없어요.” (웃음)
스님이 지나간 자리 뒤에는 양파가 가득 쌓였습니다.
수확한 양파와 마늘은 가지런히 펴서 밭에 눕혀 두고 3일 동안 말리기로 했습니다. 햇빛에 강하게 노출되면 좋지 않기 때문에 잎으로 가려둔 후 윗 밭을 내려왔습니다.
다음은 몸이 불편한 동네 어르신댁에 마늘을 수확해주러 갔습니다.
지난번에 정글을 이루던 잡초를 다 뽑아드렸는데 어르신의 밭에는 또다시 잡초가 무성했습니다. 무성한 잡초 사이에 간간히 마늘이 보였습니다.
“마늘 뽑는 것보다 잡초 뽑는 게 더 일이 많네요.” (웃음)
한참 동안 잡초를 뽑다가 잠깐 마늘을 뽑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발우공양 전까지 수확을 다 못할 것 같네요. 여기까지만 하고, 오후에 다시 와서 수확을 합시다.”
두북 수련원으로 다시 돌아와 9시부터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두북 공동체 대중이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저수지 공사와 동네 어르신 밭에 마늘 캐는 일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늘 숙제로 안고 있었던 저수지 공사가 어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사실은 몇 백만 원짜리 공사인데 포항에 계신 거사님 한 분이 마음을 내어 주셔서 공사를 잘 마무리했습니다. 이제는 ‘비야 와라! 우리는 준비됐다’ 하고 있으면 될 것 같아요. 빗물이 저수지에 가득 차면 앞으로는 전기 펌프를 사용하지 말고 저수지 물로 논농사를 지으면 될 것 같습니다. 밭작물도 가능하면 지하수를 퍼올리지 말고 저수지 물로 농사를 지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지하수를 퍼올리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많이 드니까 에너지는 최대한 절약하면 좋겠습니다.
아침에 어르신 밭에 있는 마늘을 캤는데 풀이 너무 많아요. 오후에 일할 때는 먼저 예초기로 풀과 마늘 줄기를 다 베어버리고 나서 마늘을 수확하는 게 일하기가 더 수월할 것 같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곧바로 오전 10시부터 전법활동가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주간반과 저녁반을 대상으로 오전과 저녁에 각각 생방송을 하는 날입니다.
오전 법회에는 주간반 활동가들이 모두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스님은 지난 일주일 동안에 있었던 일을 소개하면서 최근 북한의 식량 상황을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지난주에 서울에 가서 북한 전문가들과 조찬 모임을 했습니다. 최근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어요. 특히 이번에 새로 확인된 내용은 식량 부족으로 인해 식량 가격이 급격하게 치솟았다는 것입니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온 이후 쌀값은 4,000원에서 5,000원 사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했고, 옥수수값은 1,800원에서 2,000원 사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는데, 최근 들어 쌀값은 7,000원으로 올랐고, 옥수수값은 5,000원을 상회하는 등 식량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북한에 식량 부족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말해줍니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식량 가격이 조금 올라서 식량난이 심각하지는 않다고 봤습니다. 왜냐하면 식량난이 심각하면 시장에서 거래되는 식량 가격에 변화가 있어야 되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시장 가격을 통제하기 때문에 그렇지 식량난이 심각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해서 의견이 팽팽이 맞서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식량 가격이 갑자기 치솟으니까 양쪽 모두 이구동성으로 식량난이 심각하다는 평가를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대외적으로 전혀 문호를 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인도적 지원을 할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이런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면서 법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네 명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스님이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그중 마지막 질문자는 미국이 G7과 연대하여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데 여기에 한국이 가담하면 중국에게 화를 입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세계정세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스님의 답변을 듣고 질문자가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각국의 패권 다툼에 이해관계까지 얽혀 있어서 그 사이에 끼인 우리나라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난할 때 괜히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가 작금의 어려움에 처했으니 세상에는 공짜가 없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스님은 이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서 있는 위치
“질문자가 말한 대로 우리는 미국에 여러 가지 기여한 바도 있고, 도움받은 바도 있는데, 늘 우리는 도움받았다고만 스스로 생각해 온 겁니다. 반대로 미국 입장에서는 늘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니까 이렇게 우리를 압박하는 거예요.
‘우리 때문에 너희가 잘 살게 됐으니까 우리가 지금 좀 어려우니 그때 준 걸 다 갚아라’
사실은 여러분이 몰라서 그렇지 미국이 우리나라를 굉장히 크게 압박을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 사드를 배치했을 때 중국이 아주 거세게 압박했던 것과 달리 미국은 보이지 않게 부드럽게 압박을 해서 그렇지 실제로는 엄청나게 압박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누가 정치를 해도 겉으로는 큰소리를 칠 수 있겠지만 막상 나라를 운영하려고 하면 이런 압박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잘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굴복하는 것이 잘하는 것도 아니에요.
즉문즉설에서 ‘남편이 폭언하고 협박을 할 때 어떻게 대응하는 게 지혜로운가?’ 하는 것처럼 이런 미국의 압박을 견뎌내면서도 어떻게 해야 중심을 잡고 지혜롭게 우리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해야 합니다.
이런 입장에 서 있는 걸 너무 슬프게만 생각하시면 안 돼요. 대한민국은 지금 세계에서 경제력이 10위권이고 군사력이 6위권입니다. 대한민국은 옛날처럼 더 이상 작은 나라가 아니에요. 대한민국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는 세계정세에 큰 영향을 줍니다. 다만 지금 우리나라의 위치가 세계 최강국인 미국, 두 번째 강대국인 중국, 세 번째 강대국인 일본, 네 번째 강대국인 러시아, 이 사이에 끼어있다 보니까 우리의 힘이 미약하게 보일 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의 위치가 유럽의 강국들 수준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한 줄 소감을 다 듣고 나서 다음 주 법회를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낮에는 더위를 피해 실내에서 여러 가지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후 공양을 하고 5시가 되어 다시 작업복을 입고 몸이 불편하신 마을 어르신 밭으로 나갔습니다
아침에 못다 한 마늘 뽑기를 마저 했습니다. 뽑아야 할 마늘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땅이 딱딱하고 잡초가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스님, 심었던 마늘보다 수확량이 작은 것 같아요.”
“그렇네요.”
열심히 했다고 늘 결과가 좋지는 않습니다.
“이야, 머위 좀 봐요.”
마늘을 캐다가 높이 자란 머위를 발견했습니다. 남은 마늘은 행자들이 캐도록 하고 스님은 머위대를 수확했습니다.
마늘을 다 뽑고 남은 잡초도 말끔히 벴습니다. 행자는 예초기를 돌리고 스님은 낫으로 슥슥 벴습니다.
“아, 언제 낫이 빠른지 예초기가 빠른지 내기를 해야 하는데.”(웃음)
금세 풀을 다 베고 쌓아놓은 머위대도 깔끔히 정리해서 상자에 담았습니다.
수확한 마늘은 어르신댁 앞으로 옮겨드렸습니다.
아래로 내려오니 상추밭도 풀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상추밭에 풀도 좀 매드립시다.”
풀을 걷어내니 상추가 소복이 자라 있었습니다.
밭 주변으로 풀을 좀 더 베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수고했어요! 정말 일을 많이 했네요.”
6시 45분에 농사일을 마치고 나니 산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직장을 다니는 저녁반 전법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생방송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저녁 법회에서도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네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활동을 하면서 남을 이기고 싶고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자꾸 올라오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마음공부를 하다 보니까 저에게 남을 이기려는 업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영상 제작하는 일을 했는데, 남들에게 빨리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혀서 심사받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영상을 공유했습니다. 주체적이고 진취적인 면이 있는 것은 저에게 장점이긴 한데, 앞으로는 어떻게 관점을 잡고 수행을 해야 할까요?”
“질문 초반에는 참회를 하듯이 이야기하더니 뒤에 가서는 진취적이고 주체적이고 이러면서 자랑하듯이 얘기를 하니 잘했다는 건지 잘못했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웃음)
뭐든지 적극적으로 하는 것은 장점이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정토회가 하는 일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고 함께 하는 일이기 때문에 혼자만 잘한다고 무조건 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어요. 함께 하는 일은 다른 사람과 연관을 맺고 조화를 이뤄가면서 해야 됩니다. 즉 협력을 해야 됩니다.
신자유주의가 한창 유행할 때는 ‘똑똑한 한 사람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 이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회 전체적으로도 소수의 기업이 많은 수익을 내거나 소수의 사람들이 부를 축적해도 괜찮다는 분위기였어요. 몇몇 CEO들의 연봉은 수십억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대중 정부 말기에 신자유주의 열풍이 불기 시작해서 이명박 정부 때 꽃을 피웠죠.
그런데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회적 가치가 연대를 굉장히 중요시하는 것으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열심히 하는 개인주의보다는 함께 이익을 나누고 연대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졌습니다. 똑똑한 한 사람보다 여러 명이 모인 중지가 더 소중하다는 문화가 새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우리는 유럽 문명을 선진적인 모델로 생각하고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유럽 사회가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대응하는 모습은 많은 허점을 보였죠. 특히 유럽 문명이 추구했던 자유주의가 뭐든지 내 맘대로 해야 한다는 이기주의에 기반한 자유주의라는 게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대다수의 유럽 사람들이 코로나 방역 지침을 준수하지 않고 내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식으로 일관했습니다. 마스크를 끼라거나 가게 문을 닫으라는 정부의 권고에 내 권리를 왜 정부가 간섭하냐며 반발했고, 휴양지 출입을 금하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내가 어디서 산책을 하든 내 권리이다’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그 결과 유럽 전역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급속한 확산을 불러왔습니다.
이러한 이기주의에 바탕을 둔 자유주의는 공동체 전체에 큰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개인의 자유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공동체의 이익을 훼손하지 않도록 절제가 포함된 자유주의를 지향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공동체적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겠죠. 가령 일본, 중국, 대만, 베트남, 한국 등 아시아 나라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이 유럽에 비해 훨씬 적었습니다. 왜 아시아에서는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민주주의가 발달했다기보다는 공동체에 위기가 닥치면 서로가 자신의 욕구를 절제하는 문화가 아시아에는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아 사람들은 마스크를 끼라고 하면 대부분이 마스크를 꼈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라고 하면 대부분이 거리를 유지했잖아요.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이런 아시아 사람들을 향해 ‘정부가 너무 국민을 통제한다’, ‘국민이 정부의 말을 너무 잘 듣는다’ 하며 비판적으로 봤습니다. 심지어 ‘전제주의적인 문화 때문에 그렇다’, ‘유교적인 문화 때문에 그렇다’ 하면서 비꼬기도 했죠.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런 모습을 굉장히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엄격히 말해 공동체적 자유주의라고 할 수 없고 전체주의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무조건 차단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방역 때도 아파트를 봉쇄해버린다든지, 거리를 봉쇄해버린다든지, 호텔에 감금해버린다든지, 이렇게 해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은 빨리 막았는데, 개인의 자유를 굉장히 침해하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어떤 자유주의 국가에서도 원치 않는 모습이죠. 코로나 바이러스만 막으면 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겁니다.
앞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한 것도 겪고 살아야 하는데 이런 이유로 개인의 자유가 지나치게 억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럽이 추구해 온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도 이번에 많은 모순이 있었잖아요. 중국이나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적 시스템도 위기 대응에 효과적이긴 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측면에서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이나 대만은 강제적 통제가 없었지만 정부가 국민들을 향해 적극적으로 자제할 것을 요구하면 국민들이 어느 정도 협력을 했습니다. 사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외국에 비하면 방역에 굉장히 협조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서 제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협력하는 것이 미래에는 점점 더 중요한 가치가 될 것입니다. 정토회 역시 협력이라는 가치를 매우 중요시합니다. 정토회는 개개인의 자유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수행이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고 상호 협력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해요.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질문자의 그런 성향을 너무 고집하면 정토회 안에서 마찰이 일어날 위험이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 튄다거나 자기 맘대로 한다는 평가를 받기가 쉬워요. 질문자는 뭐든지 적극적으로 하고 겁 없이 일을 벌여나가는 장점이 있는 반면, 너무 개인주의적으로만 행동하게 되면 미래의 가치와 수행의 가치에는 좀 덜 맞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질문하는 것을 보면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진 것 같긴 해요. 진취성을 없애라는 말은 아닙니다. 뭐든지 적극적으로 하되 개인 취향을 조금 자제하면서 항상 사람들과 의논하고 협의하는 방향으로 일을 해나가는 연습을 해봤으면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허가를 맡아라’, ‘협력해라’, ‘의논해라’ 이러면 신이 안 나고 재미가 없어지는 특징이 있어요. 내 마음대로 하게 해 주면 적극적으로 하고, 내 마음대로 못하게 하면 그만두고, 이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수행은 항상 전체를 고려하면서 자기의 뜻을 가지고 해 나가되 타인을 고려하면서 하는 겁니다.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일을 하더라도 도반들을 살피고 사전에 의논하고 협력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개선해나갔으면 좋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튀지 않고 대중 속으로 스며 들어서 모둠원들과 함께 의논하면서 공부해 나가겠습니다.”
이어서 다음 질문자와의 대화를 계속했습니다. 네 명의 질문에 대해 답을 하고 나니 벌써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방청객의 질문은 받지 못하고, 스님이 닫는 말씀을 했습니다. 저녁 법회에는 직장인들이 많기 때문에 직장 생활과 전법 활동을 병행하는 것의 고충에 대해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직장 다니랴 활동하랴 일이 너무 많죠?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주일에 3일씩 시간을 내서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진행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해보겠다고 결심을 하셨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수행자’라는 이름을 부여해 주는 겁니다. 머리도 안 깎고 출가도 안 했는데도 ‘수행자’라는 이름을 주는 이유는 그만큼 이 활동이 여러분들에게 수행이 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수행자 이름만 떡 달아놓고, 먹는 거 다 먹고, 자는 거 다 자고, 결혼도 하고, 직장도 다니고, 그러면서 수행자 이름도 달고 싶다는 건 욕심입니다. 출가하는 것까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일주일에 3일은 저녁마다 시간을 내서 전법을 하고, 주말에는 어느 정도 시간을 내서 수행을 하겠다는 정도가 되어야 수행자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마세요. ‘직장 다니랴 활동하랴 일이 너무 많다’ 이렇게 생각하면 점점 힘들어집니다.
‘원래는 출가를 해서 다 버려야 하는데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이 정도는 해야지!’
이렇게 생각하면 가볍게 전법 활동을 해나갈 수 있어요.”
사홍서원을 한 후 생방송을 모두 마쳤습니다.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산아랫밭에 감자를 수확하는 날입니다. 오전에는 감자를 캐고, 오후에는 평화재단 기획위원들이 두북 수련원을 찾아와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