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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 경총포럼 특강
일시 : 1월26일 오전7시30분
장소 : 서울시 롯데호텔 사파이어볼룸
주최 : 한국경영자총협회
대상 : 한국경영자총협회 포럼 회원 80여명
도지사 특강
소개하신 대로 저는 혁명적 노동운동의 한 심볼인 사람이다. 제 자신의 꿈이 한국노총 위원장이었다. 1978년에 한일도루코 노조 분회장을 했다. 금속노조 분회장을 2년정도 했다. 선배들 생각이 혁명적 노동운동이었다. 그래서 공장을 가서 일했다.
우리나라 학생운동에서 우리 집안이 제일 프롤레타리아 혁명, 혁명적 노동운동에 대해 제일 정통에 속한다. 소위 위장취업의 원조가 제가 속한 집안이다. 저는 그 집안에서 가장 성공한 효자중의 효자다. 현장에 가서 다 실패했다. 그런데 저는 1970년에 상과대학에 입학했는데 70년에 전태일 씨가 분신을 했다. 청계천에 가서 노조간부들에게 한자, 일반상식을 알려줬다. 당시 한글로 된 노동법이 없었다. 다들 초등학교 졸업할까말까 한 사람들이었다.
저는 청계천에 가서 서울 창동의 판자집에 밤에 가서 공부를 가르쳐 주는 등을 했다. 그러다 재단보조, 미싱시다 등을 몇 달 했다. 학교는 71년에 제적당하고, 강제징집당하고 했다. 제적된 이후 시골에 가서 농사도 짓고, 공장도 다녔는데 갑자기 박정희 대통령이 복학을 시켜줬다. 전국적으로 190여명이 제적됐는데 저도 그중 하나였다. 또 하자고 해서 휩쓸려서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됐다.
사실 공장에 가서 어려운 사람과 해야 한다 생각했다. 집안 자체가 어려워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고 군사독재 타도하고, 노동자가 득세하는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식화가 대학에 와서 됐다.
고교 때까지 집안이 선비집안이고, 어렸을 때는 서당 다녀서 배운 것이 공익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유교적인 것 때문에 우리가 일본 식민지 했다는 것이 너무 치욕적이었다. 나라가 잘 돼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살았다.
대학 1학년때 반미, 반일 데모했다. 들어라, 양키들아 라면서 일본, 미국이 나쁜 나라라고 선배들에게 들으며 의식화가 됐다. 제적 후 공장 다니고 하면서 의식화가 점점 돼서 이런 상태 벗어나려면 노동자, 농민이 단결해서 정부를 바꿔야 한다. 재벌, 기업은 돈 벌기위해서는 제국주의자 앞잡이가 되니 확실한 민족주의 생각을 가진 농민, 노동자를 의식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은 공장 적응을 못 하는데 나는 잘 했다. 나는 죽식아동이었다. 죽만 먹었다. 밥을 마음껏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원 없이 먹는다. 떡도 먹는다. 어제도 사할린 동포 행사를 갔더니 떡을 주더라. 많이 먹었다.
대학교 다니던 사람이 공장 현장가서 일하면 다 손들고 나오는데 저는 괜찮더라. 처음엔 절망을 많이 했다. 하루종일 같은, 단순한 노동을 한다. 평생 이러고 살려니 너무 힘들더라. 그런데 결국 이 어려운 이들과 힘을 합쳐 소위 말해 노동해방세상을 만든다고 생각하니 견딜만 하더라. 저는 유교적 헌신사, 자기를 희생하면서 진리를 깨우치고 죽는 선비정신도 좋다고 생각했다.
제가 들어가서 열심히 하니 나중에 1,000여명이 근무하는 한일도루코 공장을 들어갔다. 요즘은 용인에 와있더라. 당시는 개봉동에 있었다. 그리고 제가 노조위원장이 됐다. 알게 모르게 운동권에서 당시 성공한 사람이 됐다.
현장에 가서 조금 있다 나오는데 저는 공장에서 7년을 살았다. 뿐만 아니라 금속노조에서 일하던 세진전자 노조위원장이 집사람이 됐다. 저는 총각으로 청년부장, 집사람은 여성부장을 했다. 그리고 결혼을 했다. 집사람도 노조간부출신이다.
형님은 대구상고를 나왔는데, 나와서 은행을 다녔는데 노조위원장이 됐다. 저하고 생각이 똑같다. 아주 착실한 분인데 당시 은행 비리가 많았는데 우리는 기본적으로 비리를 싫어한다. 형님의 경우, 정직, 청렴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서 인기도 있고 해서 노조위원장이 됐다.
제 동생은 원래 공무원 시험 준비 하다가 나중에 관두고 성남에서 당시 콘티라는 공장을 들어가서 감옥도 가고 했다. 제가 영향을 많이 미쳤다.
우리 집안은 재산이 별로 없다. 주변도 그렇다. 7남매중 대학도 저만 나왔다. 감옥도 갔다오고 하니 여러 가지로 제 나름대로 이러다 나중에 어떻게 생활하느냐는 생각을 많이 했다.
또 원래 혁명가들은 결혼을 안 했다. 레닌도 안 했다. 동거는 했는데 결혼은 안 했다. 자식도 없다. 세습이란 개념이 공산주의에 없다. 권력, 재산을 인민이 공동으로 나누는 이상적 생각이다. 북은 아주 예외다.
모택동도 보면 장가는 4번 갔지만 자식은 6.25전쟁와서 죽었다. 호지명도 결혼을 안 했다. 자기는 베트남, 조국과 결혼한다고 결혼을 안 했다. 거기도 세습이 없다.
유독 북한만이 3대세습을 한다. 공산국가가 아니다. 진짜 김씨 왕조다. 저는 공산주의,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모택동, 체 게바라 등 여러 공부를 했다. 나름대로 제가 거의 아는데 세상에 북이 공산주읜가, 아닌가. 제가 배운 이론으론 아니다.
제가 감옥을 두 번 갔다. 첫째로 80년에 갔다. 서울대 70여명이 잡혀갔다. 안병직 교수도 사실 우리 집안이다. 직접 영향을 많이 받았다. 감옥에 가있을 때, 서울 구치소, 안양 교도소, 목포 교도소에 있었다. 목포교도소에 1987년에 있었는데 김대중 대통령 된다고 다 했는데 노태우 대통령이 됐다.
그 후 광주 교도소에 갔다. 좌익수들이 많다. 저는 답답해서 일 좀 하겠다고 해서 국화를 키우는 원예반에 1년 있었다. 전부 좌익수들과 있었다. 재일동포 공작원, 남파 간첩들이었다.
광주교도소의 좌익이라는 사람을 보니 나보다 이론수준이 낮다. 감옥에서 공부할 수가 없어서 그랬다. 그리고 주사파들이 감옥에 들어왔는데 저를 주사파로 만들려고 한다. 주사파 이론 핵심은 수령론이다. 수령이 전인민을 지도하는데 수령은 머리고, 인민은 손발이라는 것이다. 나는 군사독재 반대하는 민주주의자라 못 믿겠다고 했다. 수령론을 없애면 믿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이런 식의 이론은 성립될 수 없다고 했다. 오직 북한만 있다. 다른 나라는 없다. 저는 포섭이 안 됐다.
이런 부분에 대한민국의 독특한 권력중심이 있다. 북도 집중돼있고, 남한도 세계에서 이렇게 대통령 중심적인 나라가 없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문화다.
이번에 소말리아에서 6기 청해부대, 최영함이 작전을 했다. 저희와 자매함이다. 마침 이번에 최영함이 가서 쾌거를 이뤘다. 우리 군이 우수하다. 잘하니 정말 좋다. 박수 한 번 보내드리자.
이 사진은 애기봉이다. 김포에 있다. 애기봉에 있는 봉우리 바로 밑이 조강마을이다. 강물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다. 서해바다와 강이 만나는데 강이 시작돼서 조강이다. 건너는 개풍군 조강마을이다. 예전에 같이 장보고 하던 이웃동네다.
애기봉 지대가 조금 높은데 해병2사단 관할이다. 그런데 애기봉에 불만 밝히면 북에서 포를 쏜다고 한다. 야포를 쏴도 온다. 최장거리가 3km, 최단이 400m다.
왜 쏘냐? 깜깜한 데 불을 밝히면 남조선 불을 보는 것 자체가 심리적 동요를 가쳐오고, 강력한 세뇌효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거기다 십자가까지 밝히니 의도가 분명하다고 한다. 포를 쏜다고 해서 포를 맞으러 갔다. 그런데 안 쐈다. 만반의 준비를 했다. 연평도 직후였다. 빛 자체가 강력한 메시지다.
NLL을 오해하는 분이 있는데 당시 UN군이 바다를 다 장악했다. 원래 재해권에서 물려준 것이다. 우리가 올라가서 잡은 것이 아니고, 원래 다 잡았는데 물려준 것이다. 8월30일에 휴전협정을 했는데 중립지대만 나와있고, NLL은 조금 늦게 됐다. 이것을 그동안 말을 안 하다가 북에서 요즘 말을 한다. 오해하는 분이 많은데 우리가 물려준 것이다.
경기도가 요녕성, 산동성, 하북성, 광동성과 자매 성이다. 천진시는 우호협력도시다. 성장, 서기가 왔다갔다하는데 요녕성장이 특히 이야기를 한다. 경기도 기업 좀 보내달라. 공짜 부지 마련한다고 한다. STX는 대련에 가있다. 요지는 좋은 기업이 가서 발전시켜달라는 것이다.
저는 성장에게 김정일 만나서 철도만 놓자고 말하라고 한다. 신의주에서 단동까지 40분이다. 서울까지 2시간이면 올 수 있다. 실제로 철도만 다니게 하면 우리 기업이 왜 배타고 산동성가나.
일본이나 한국으로 봐서는 요녕성이 가깝다. 지금 사실 광동성이 앞서있지만 광동성 공무원도 우리와 교육 같이 하고 하는데, 특히 광동성과 요녕성을 비교하면 요녕성은 우리와 관계를 밀접히 가지고 싶어한다.
실제로 남북관계 좋아지만 동북3성이 발전한다. 이곳의 가능성이 있고, 또 러시아에도 한족이 많다. 땅도 좋고, 엄청나다. 시베리아, 만주 일대가 우리의 하나의 생활권이 된다.
탈북자 문제로 북한의 무산철광 건너편에 중국 남양도 갔었다. 중국과 조그만 도랑을 경계로 하고 있다. 한 마을이다. 한국말 하고 서로 일 돕고 한다. 국경만 중국국경이다. 이런 곳이 수두룩하다. 이 일대가 일제시대나 그 이전에 우리가 같이 살던 곳이다.
북한인민들이 굶어죽는데 북한 지도자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은 보시는대로 이렇게 뚱뚱하다. 북한 지도자 하려면 저 정도 말라야 하는 것 아닌가.
남북한 제일 차이나는 비대칭은 사상이다. 우리는 종교만 해도 불교, 천주교, 기독교 등인데 천주교만 해도 추기경이 뭐라 하면 밑의 신부들이 이야기하고, 당도 한나라당 안에도 당안의 당이 있다. 이렇게 나뉘어질 수 있나.
우리는 세계 200개 넘는 나라중에 가장 성공한 나라다. 우리 세대의 꿈은 다 이뤘다. 그런데도 자살률 1위, 불평, 불만 정도가 1위. 대통령 뽑고, 이명박 대통령 압도적 다수로 됐는데 되고 106일간 청와대 앞에서 촛불시위한다.
북한은 세계에서 제일 실패한 정권이다. 땅도 넓고, 자원많고 중국, 소련과 붙어있다. 우리는 3면이 바다에, 1면은 철조망인데 우리는 사사건건 불만이고, 북은 자유없고, 총살시켜도 철통같이 단결한다.
제가 조사해보니 징기스칸 당시 몽골인구가 200만이다. 송나라는 7,000만이다. 문화, 경제, 역사, 인구, 규모 등에서 비교가 안 된다. 그런데 몽골이 송나라를 무너뜨리고 97년간 지배했다.
여진족은 당시 인구가 100만이 안 됐다. 조선은 1,000만명, 명나라는 1억명이다. 그런데 청태종, 홍타이지에게 남한산성에서 인조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데 그뿐만 아니라 명나라도 정복했다.
상무정신을 가지고 진취적 리더십으로 큰 나라를 다 무너뜨렸다. 나라 크다고, 문화찬란하다고, 경제발전했다고 나라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송은 남송, 북송으로 나뉘고, 명은 이자성의 난이 일어났는데 명황족들이 진압을 위해 청을 불렀다가 당했다.
경기도에 미군 90%, 육, 해, 공군의 2/3가 주둔하고 있다. 전부 다 가보고, 대구의 K2에도 가서 전력체크를 했다. 이번에 상세히 체크해보니 미군없으면 유지 안 된다. 정보, 핵, 그리고 전반적 전력 자체가 힘들다.
북은 땅굴을 다 파놨다. 지하갱도에서 쏘고 들어가고 하는데, 갱도를 우리 포로 못 부순다. F15가 가서 큰 폭약을 가지고 가까이 근접해서 때려야 갱도를 부술 수 있다. 지금 장사정 포로 저쪽 갱도를 부술 수 없다. 지금은 우리 전력에 문제가 있다.
전쟁막는 길은 무엇인가 고민을 많이 했다. 결론은 단결이다. 천안함때 아직도 안 믿는 사람이 있다. 연평도는 대낮에 80발을 쐈다. 현장가보니 너무 처참하고, 북이 한 것이 명백해서 자작극이라는 소리는 못 한다.
그러나 천안함, 심지어 KAL기 폭파에 대해서도 아직 훌륭한 신부님들조차 지난 이명박 대통령 선거때도 제게 KAL기 폭파자작극이다. 진실을 밝히자는 것을 같이 발표하자고 한다. 이번에 천안함도 46명 죽었는데 응징한 것이 무엇인가.
국론 분열 중에는 전쟁을 불러온다. 대북관계에 대해서는 일정한 통일이 돼야 한다.
중국, 미국 2자회담에서 중국이 물건도 450억달러를 사주고, G2로 대접받고 있다. 제가 미국 국무부 고위층에게 이야기한다. 한반도에서 시간이 미국편인가, 중국편인가 묻는다. 시간이 갈수록 중국 영향력이 커진다. 또 우리는 중국과 가깝지만 미국은 멀다. 지금 하는 짓은 포기하는 것 같다고 제가 이야기 했다.
오바마는 국내정치 때문에 한미 FTA 도장 다 찍어놓고 새로 하자고 한다. 적어도 세계대국이 우리 위치를 보고 합의를 다해놓고 도장을 다시 찍자고 한다. 정말 그런 식으로 하면 한반도에서 당신을 위험하다. 그렇게 하면 나도 인정 못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중국이 가진 힘, 근접성을 볼 때, 또 사사건건 북한 편을 들 때, 한미관계는 이명박 대통령이 잘 하고 있다. 외교라인이 전부 미국통인데 중국통은 없다. 외교부 장관, 차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류우익 대사님, 저와 굉장히 친하지만 중국통은 아니다.
중국 사람들과 비공식적으로 말 통하고 하는 사람이 부족한 것 아닌가, 배려 안 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사실 보면 전문가도 많지 않다. 그래도 골라서 중국관계 소통을 할 필요가 있지 않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중국관계가 큰 문제로 본다.
상해 황포강에서 제가 찍은 사진이다. 운하 논쟁이 국내에 있어서 중국 운하를 다 가봤다. 경항 대운하가 2,000km다. 항주에서 북경까지 복원한다. 우리는 이상한 풍조가 있다. 세계 어디를 가도 물이 있으면 배가 있는데 우리는 잘 없다.
4대강도 그렇다. 한강살리기하면서 경기도는 수질이 더 좋아졌다. 여주군의 경우 보가 3개 생긴다. 1조 이상 공사를 한다. 여주 생긴지 1,500년이 됐는데 장사가 제일 잘 된다. 거기다가 1,500년만에 이제 우리 여주가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땅값도 많이 오르고, 보의 발전 수입이 1년에 많이 들어온다. 관광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좋은데 왜 반대를 하는가.
나는 다른 곳 하기 싫으면 경기도에 좀 달라고 했다. 우리는 정말 웰컴이다. 돈이 없어서 하천정비를 못 한다. 경기도 강이 2,700개인데 강 하나 정비에 1,000억씩 들어간다.
대한민국이 전쟁겪고, 분단되고, 식민지 거치고, 자원없는데 이렇게 성공했다.
김연아가 벤쿠버에서 금메달딸 때 눈물이 났다. 김연아가 군포 수리고 출신이고, 경기도 홍보대사다. 군포에는 빙상경기장이 없고 아파트만 있다. 그런데 피겨퀸이 나왔다. 천신만고 끝에 세계1등이 됐다. 저는 어릴 때 피겨는 소련이나 동유럽 여자만 하는 줄 알았다.
장미란은 고양시청 선수다. 바가 휘어질 정도로 무거운 무게를 든다. 예전에 소련여자만 드는 줄 알았는데 이제 아니다.(일동 웃음) 완전히 DNA가 달라졌다.
제가 세종대왕 동상 세우는 것 등에 비판을 했다. 요즘 당신, 정치인 중 누구를 존경하냐고 물으면 저는 이승만이라고 한다. 그러면 젊은 기자들 이상한 사람이라고 한다.
저는 대학 다닐 때, 이승만 나쁜 영감이라고 배웠다.
제가 이승만 동상 광화문에 세우자고 하니 4.19회에서 전화온다. 김지사, 애들 190여명 죽인 영감이야 한다. 조금 있으면 백범기념회에서 연락온다. 백범, 누가 죽였는지 모르나 한다. 또 흥사단에서 도산 동상을 세워야지, 이승만 동상 세울 수 있나 한다. 동아일보에서도 인촌선생 동상 세워야지 한다.
어제도 대학생 400명 강연하는데 이승만 사진 걸어놓고 우리나라 건국한 사람 누구냐고 물어도 10명도 손 안 든다. 서울법대 강연가서도 150명 모아놓고 이 사진 띄워놓고 물어도 한 명도 손 안 든다.
제가 묻는다. 이순신 장군이 대한민국 국민이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한다. 조선조 장군이다. 그러면 베트남에서 시집온 며느리는 국민인가? 국민이다. 오바마가 케냐 유학생의 아들이지만 케냐인이 아니다. 미국인이다. 우리는 국가와 민족 개념이 없다. 완전 잘못됐다. 북한이 핵을 가지면 우리 민족이 가지는 것이니 우리 것이라고 하는데 웃기는 사람이다.
조선족도 우리 민족이니 우리 국민이라 하는데 아니다. 민족과 국가를 혼동하고 있다. 저도 도지사 된 후 알았다. 개인적으로 공부를 많이 했다.
우리는 광화문에 동상세운다고 하면 대한민국 역사는 없고 조선역사만 계속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는 1945년 8월15일부터 시작된다.
국사하는 교수들에게 물으면 논쟁소지 많고, 시험보면 시끄러워서 시험범위 제외라고 한다. 아니, 대한민국 역사에 무슨 논쟁이 있는가.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성공한 우리 역사에 무슨 논쟁이 있는가.
이승만이 잘못해서 분단됐다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 이야기는 김일성 밑으로 가서라도 통일을 했어야 했다는 것인가. 저는 반대다.
해방직후 중국, 소련이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그 꼬리에 있는 우리가 어떻게 공산화가 안 됐는지 희한하지 않은가. 이승만의 탁월한 선택이 있었다.
1898년 이승만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당시 선교사들의 의식화 교육이다. 미국식으로 민주국가 세워야 한다는 세뇌를 받아서 감옥을 청년때 6년 살았다. 감옥에서 쓴 독립정신을 읽어보면 요즘봐도 탁월한, 100년 앞을 내다보는 탁견을 가지고 있다. 자유가 왜 소중한지, 공산주의 왜 안되는지, 왜 민주주의 해야 하는지에 대해 써있다.
이승만이 과도 많지만 공이 정말 많다. 오늘 대한민국의 위대한 초석을 세운 사람이다. 욕할 때 하더라도 잘 한것은 평가를 해줘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1년에 마이카를 한다고 했다. 당시 선배들, 서울상대 교수들이 다 안 된다고 했다. 기술, 자본, 시장없고 세계 역사상 자동차를 후진국에서 성공한 역사가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그런 역사가 없다. 영국 롤스로이스가 1971년에 넘어갔다. 작년 GM흔들리고, 도요타 리콜 당하는데 현대, 기아차 승승장구다. 세계1등 될 것이다. 포철도 반대했다. 철광석 없고, 기술 없다고 했다.
중화학 공업은 자본, 기술, 시장 종속돼서 국가가 종속국가로 간다고 했다. 우리는 경공업, 생필품 기반위에 중화학 공업 하자고 한다.
박정희는 당시 운동권에서 볼 때 종속화의 길이었다. 그런데 지금 지나고 보면 경기도 일자리 중 자동차가 제일 많다. 전국적으로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반대하던 자동차가 전세계 유일하게 성공했다. 이론적으로 안 되는 것인데 우리는 했다.
제가 44살에 대학 졸업했다. 24년6개월만에 했다. 아이가 초교 6학년때 했다.
서울, 경기, 인천을 합치면 북경의 70%다. GTX는 교통이 하도 막혀서 이한준 경기도시공사 사장이 전문가인데 철도, 토목 등 4개학회가 뭉쳐서 만든 작품이다. 경부고속도로 타고가다보면 판교, 분당, 죽전, 수지, 오산, 동탄 등 경북고속도로 옆에 포도송이처럼 베드타운이다. 안 막힐 수가 없다.
박정희 신도시는 포항, 울산, 구미, 창원, 거제, 안산이다. 반드시 일자리가 있고, 대학이 있다. 주거가 있다.
노태우 신도시는 분당, 일산이다. 베드타운이다. 일자리, 대학이 없다. 그저 아파트만 있다. 이것이 교통란의 주범이다.
이명박 신도시는 보금자리 주택이다. 100만평 이하로 한다. 제가 세게 말씀드렸다. 세계 대통령 중에 이명박 대통령만큼 도시 전문가가 어디 있는가. 박정희 신도시때도 도시계획 거의 관여하셨다. 현대건설 회장 출신이다. 잘하는데 왜 이렇게 하십니까 했다.
40년 묶어놓은 그린벨트 풀어서 임대주택 지으면 단기적으로 서민 표 나와도 장기적으로 책임 어떻게 지시겠습니까 했다. 환경단체가 너무 세게 나온다고 한다. 과천에 한다고 해서 제가 싫다고 했다. 정부청사 옮기고 공공기관 10개 있는데 다 지방으로 옮긴다. 그런데 거기다 임대주택만 짓는다고 해서, 그린벨트 그냥 두라고 했다.
대통령이 국가 미래를 봐야지, 당장을 볼 필요 없다. 우리는 중임이 아니라 5년 단임이다. 단임제가 우리나라에 필요하다.
저는 고3때 3선 개헌 반대 주동해서 무기정학 받았다. 그리고 유신으로 넘어갔다. 이승만 대통령도 3선 개헌했다. 유신헌법 후에는 체육관에서 대통령 뽑다가 87년에 직선제가 됐다. 저는 5.3 인천사건을 하다가 2년6개월 징역을 살았다.
실제로 대통령이 중임이 되면 반대하는 사람은 지난 번 촛불시위보다 심하게 할 것이다. 오바마를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정치 갈등 증폭시킬 것이다. 단임제가 정치 갈등이 적다. 독특한 우리의 현실이 있다.
여러 면에서 이명박 대통령께서 경제 많이 아시고, 판단도 좋으시고 하시는데 제가 볼 때는 조금 더 이명박 표 신도시를 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하신 것보다 더 좋은 것을 할 수 있는 실력이 있는 분이다. 왜 못하나. 초기 촛불시위 때문에 누가 반대하나를 많이 보신다. 그러니 과감한 개혁이 안 나오는 것이다.
비즈니스프렌들리도 가뜩이나 이명박이 부자에 그러니 소리가 많아서 못 한 것 아닌가. 어제도 성남 모란시장을 가니 이명박 대통령이 서민 생각 너무 안 한다고 하던데, 실은 재래시장에 도움을 많이 주고 있는데 그 사람들 생각은 아니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봐야 한다.
일자리 이야기 많이 하는데 공무원이 만드는 것처럼 이야기 한다. 공무원이 어떻게 만드나. 제가 볼 때는 규제 혁파가 중요하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에 많이 없앴지만 더 해야 한다. 도시계획, 철도, 도로 등 바꿀 것이 무궁무진하게 많다.
GTX는 세계 최첨단 철도다. 하게 되면 뉴욕, 파리를 앞서는 중요한 수출품이 될 것이다. 철도시장이 원자력 시장의 3배다. 중국이 저렴하게 하고, 금융도 해줘서 앞서 가고 있다. 앞으로 남북관계 좋아지면 철도로 서울에서 베이징까지 4시간이면 간다.
외국에 가서 경기도라고 하면 경기도가 어디냐고 한다. 하도 설명해도 안 돼서 명함을 줬다. 문광부에서 쓰라고 한 경기도 스펠링을 보고 외국인들이 정지두라고 한다. 삼성 공장 3개, 현대기아 공장 4개, LG 공장 있다고 하면 정말이냐고 납품하자고 한다. 그리고 몰려온다. 이렇게 한 도에 있는 경우가 없다.
지금 우리 기업이 해외로 나간다. 국내 기업도 국내 투자를 안 한다. 생각해봐야 한다.
저는 노조경험이 많아서 공무원 노조와도 원만하게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생각이 확고하셔서 혼란 없이 잘 하고 있다. 앞으로 발전해야 할 점도 많다.
경기도에 규제가 많다. 수정법, 군사, 팔당 등이 다 규제다. 기아차공장도 그린벨트다. 1971년에 공장을 짓고 있는데 그린벨트로 덮어씌웠다. 양주 빙그레도 64년부터 했는데 그린벨트 지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안 고친다. 제가 계속 해서 고치고 있다. 이런 것 이명박 대통령이 과감히 고쳐야 한다.
기업이 당하는 어려움을 듣고 도와주면 되는데 계속 잔소리하고, 명령하고 해서 안 된다. 우리는 기업SOS지원센터에서 차타고 계속 다니면서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하고, 전화드려서 우리가 찾아가라 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섬기는 행정을 하자고 했다.
가장 바람직한 공무원 상은 119다. 밤낮없이 부르면 바로 온다. 불이 안 나도 숨이 답답해서 불러도 간다. 119는 무조건 현장에 즉시 출동한다. 무엇이든 예스다. 장난전화를 해도 간다.
119처럼 행정을 바꾸자고 해서 365일 24시간 여권발급 등 행정을 다 하고 있다. 또 5일장이 경기도에 많은데 버스타고 장터로 나간다. 아주 시골까지 간다. 찾아가서 무엇이 문제인지 듣고 한다. 호응이 아주 좋다. 공무원이 이렇게 할 줄 몰랐다고 하는데 해야 할 본분이다.
울지마 톤즈 보셨나. 감동적이다. 우리가 의료도 참 잘한다. R&D도 잘한다. 왜 우리에게 투자하냐고 물으면 한국 젊은이들 머리 좋고, 부지런하고, 한 번 한다면 해내고, 손재주도 제일 좋다고 한다.
다만 언론이 이런 부분도 비춰줘야 한다. 다녀보면 좋은 것이 너무 많다. 외국 바이어들이 감탄하는 것도 비춰줘야 하는데 아직 관심이 적다.
해양레저부분도 대형조선보다 성장속도 빠르고, 부가가치 높다. 비행기 부분도 마찬가지다. 게임부분도 우리가 1위, 중국이 2위다.
경기도가 세계선인장의 70%를 수출한다. 사막 한 평 없는데 그렇게 한다. 수경재배를 하고, 접을 잘 붙인다. 한 송이 당 1달러 이내로 수출한다. 농업의 기업화, 과학화, 현대화가 되면 세계적 경쟁력이 있다.
대한민국이 IQ도 세계에서 홍콩다음이다. 홍콩은 대한민국 면적의 1/90이 안 된다. 도시니 빼면 한국이 머리가 제일 좋다. 북한이 3등인데, 밥도 못 먹는데 3등이다. 밥만 먹으면 우리와 같다. 우리 민족이 머리가 굉장히 좋다. 다들 인정한다. 손재주도 좋아서 다 인정한다. 앞으로 1등이 더 많아질 것이다.
대한민국이 여러 가지로 발전기회를 가지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젊은이들 만나면 일자리를 원한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이다. 기업을 돕는 것이 공직자들이 할 일이다. 노사관계는 많이 안정됐다.
남은 문제가 정규직, 비정규직 등인데 비정규직 나쁘다고 하는데 퇴직, 고령화 등에는 비정규직도 맞는 부분이 많다. 가사노동, 일, 양립 등 부분. 연세 드신 분들이 사회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은 비정규직이 유리한 점도 많다.
언론도 전부 비정규직 악이라고 쓰는데 무리하게 정규직화 시키면 취업이 더 어렵다. 노조만이 아니라 편견, 잘못된 선동 등도 극복돼야 한다.
대한민국이 앞으로 세계적 통일강대국의 목표를 가져야 국민 단결된다. 다들 그만하면 살면 됐지, 뭐. 좀 쉬자. 고 한다. 기업이 가지고 있는 창업, 혁신, 개혁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다. 확실한 국가적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는 합의가 필요할 때다. 감사합니다.
질의응답
-질의
지금도 노동운동 때의 생각으로 정치에 임하시는지, 바뀌셨으면 이유가 무엇인지
-도지사
바뀐 부분도 있고, 안 바뀐 부분도 있다. 안 바뀐 부분은 어려운 사람에 대한 이해다. 시간날 때 택시운전하고 했는데 택시하면서 느낀 점은 이 세상에 어려운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은 대변을 많이 한다.
바뀐 점은 과거 혁명적 방식으로 풀어나가려고 했다. 때려 부수자, 데모하자 등이 운동권 논리다. 말로 할 수 있는 것 꼬투리를 가지고 하는 것인데 대표적으로 광우병 촛불시위이다. 미국 쇠고기 반대하는 아줌마들이 항의를 많이 해서 광우병 없다고 하면 30년 뒤에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 생각가지고 어떻게 사는가. 잘못된 선전, 선동을 하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가장 중요한 점에 경영자, 리더십의 중요한 점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하는데 어려운 이들을 이해하고, 함께 하고, 나눌 수 있는 정신은 과거와 같다. 생각이 잘못 돼서 국가를 부정하고, 기업의 존재가치를 부정은 아니지만 상당히 약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다. 그런 부분 생각이 바뀌었다.
기본적으로 바닥과 이해는 그대로다. 여러 면에서 과거가 깡그리 부정되는 것은 아니고, 상당한 부분에서는 연장선상에서 생각이 달라진 점이 많다.
민노당, 진보신당에 가까운 사람 많다. 저에게 맛이 상당히 갔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부정한다거나 축재에 관심많은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이들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을 왜 나쁘게 생각하는가. 한나라당에도 저보다 훌륭한 분들이 상당히 많다. 이 사람들 생각은 지배계급이라고 한다. 독선적이고, 악의 대상으로 본다. 그런 점에 대해 상당히 우리 사회에 굳어진 인식이 문제다. 벽을 헐 수 있는 역할이 제가 해야 할 일로 생각한다.
-질의
무상시리즈 이야기가 없으셨다. 또 오세훈 시장의 항쟁과 김문수 지사가 비슷한 길로 갈 것으로 봤는데 차별화다. 무상과 복지에 대해 말씀달라.
-도지사
경기도는 김상곤 교육감이 1년반전 당선됐다. 김상곤 교육감은 저보다 선배다. 김상곤 교육감은 내 옛날 생각과 비슷하다. 무상급식을 들고 나왔는데 당시 저도 한나라당, 도의회도 한나라당이었다. 오래 싸웠는데 싸움이 힘들었다.
우리는 공짜 정신 비판하는데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가난한 사람에게도 공짜로 주는 것을 반대로 하는 것으로 본다. 우리는 포퓰리즘을 비판하는 것이다. 복지는 어느 당보다 열심히 해야 한다고 본다. 결국 김문수는 피도 눈물도 없다고 선동이 됐다. 제가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에 의회는 서울, 경기도 의회가 2/3가 민주당이다. 경기도는 무상급식 1원도 안 했다. 유기농, 축산품 가격보전 400억을 한 것이다. 국가가 지원하면 WTO위반인데 도가 하면 아니다. 농축산인은 경기도에서 데모가 없다. 학교급식통한 판로가 확보돼서 그렇다.
일단 경기도는 의회가 무상급식조례 스스로 철회했다. 돈이 없다. 우리는 서울보다 학생이 150%많고, 예산은 70%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도의원들에게 계속 말을 하고, 설득했다. 조례 만들어도 돈이 없어 소용없다. 세금 올릴 권한도 지자체에 없다. 안 되는 일을 해봐야 휴지조각이니 하지 말자고 스스로 철회했다.
서울시는 늦게 시작했다. 노하우가 우리보다 부족하다. 노사관계도 이 집은 합의 했는데, 저집은 왜 합의 안 하냐의 질문과 비슷한 것 같다.
경기도는 무상급식 1원도 안 했고, 조례도 상정 안 했다. 경기도는 의회가 민주당 2/3지만 이것도 도민의 뜻, 제가 도지사가 된 것도 도민의 뜻이다. 의회자체를 부정하고 도정을 가져갈 수 없다. 의회가 저와 마음이 안 맞는 것은 대화를 통해 나가는 것이 소명이다. 의회와 붙어 싸우려면 제가 싸움 못하겠는가. 평생 싸움만 하고 살았다.
언론 속성을 보니 싸움하면 써주고, 노사간의 합의하면 한 줄도 안 써준다. 현대파업 울산시가 깨질 정도로 하면 1면 톱이다. 노사관계 원만하면 안 나온다. 그러면 거꾸로 질문하겠다. 싸움 많이 하면 잘 하는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