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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0: 40 세례 베풀던 곳 - 요 10: 42 많은 사람
요 10: 40 세례 베풀던 곳 -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주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
예수님은, 불신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아 예루살렘에서 떠나 요단강 저편으로 가셨다.
1]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세례를 베풀던 곳에는 많은 사람이 찾아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던 곳으로 은혜가 넘치는 곳이다.
그리스도교의 세례는 - 스스로 세례를 베풀거나 여러 번 거듭하여 세례받거나 종교 의식적으로 씻는 것(정결한)과는 달리 - 세례를 주는 사람을 통해 단 한 번 거행한다는 점에서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권한 세례(마 3: 1-6)와 공통된다.
* 마 3: 1-6 –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그리스도교회는 맨 처음부터 사람들을 세례를 통해서만 받아들였다. 세례식을 하기 전이나 한 후에 세례받는 사람은 아주 일찍이 확정되어 있던 방식을 따라 신앙을 고백했다.
세례는 보통 세례받는 사람이 완전히 물에 잠기는 식으로 거행했다. 이는 이미 세례를 뜻하는 헬라 어('밥티제인'은 '담그다', '잠기다'를 뜻한다) 자체에서 드러남을 미루어보더라도 알 수 있다. (잠기는 그것은 죽음을 상징한다).
* 행 8: 38 -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 골 2: 12 –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 롬 6: 4 -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그렇지만 신약 시대 이후의 증언에 따르면 물이 부족할 때는 그저 머리에 세 번 물을 붓는 것도 허용되었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거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고 한다.
* 행 2: 38 -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 마 28: 19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 행 2: 41 -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세례는 어른들에게 주었다. 온 '집'이 세례를 받을 때에 더러는 어린아이들도 함께 세례받았으리라는 점은 배제할 수도, 입증할 수도 없다.
* 행 16: 15 -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 행 18: 8 -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 고전 1: 16 -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요 10: 41 아무 표적도 -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치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
그곳은 물론 적막한 땅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곳에도 대중으로 하여금 그를 따르게 하셨다.
1]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이 예수님을 믿은 이유는, 세례 요한의 이적(세례 요한은 이적을 행치 않았음)을 본 까닭이 아니고 그의 증언한 말(그의 메시야 증언)이 참된 까닭이었다.
이곳에서의 이적은 예수가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한 것외에는 성경에 다른 기록이 없다.
* 마 3: 13, 16 –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2]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말의 진실성은 이렇게 귀하다.
요 10: 42 많은 사람 -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
요단강 변에는 많은 사람이 찾아와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 믿는 역사가 일어났다.
1]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세례가 베풀어지는 곳에서는 많은 사람이 예수를 구주로 믿었다.
* 행 2: 41 -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2]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 10: 30-42)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이란 이름으로 깊이 있게 말씀하셨다. 이 일로 인하여 예수님은 유대인들로부터 배척을 받으시고 핍박을 받으셨지만 그런 일에 구애받으심이 없으셨다.
양과 목자와의 관계를 천명하실 때에도 29절 말씀에서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라고 하셨다.
주님은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를 풀이하시는 중에 오묘하신 삼위일체에 관한 전리를 밝혀 놓으셨다. 그리고 30절에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는 말씀으로 요한복음 1: 1말씀에 대한 진리를 친히 풀어주셨다.
(1) 예수와 하나님은 하나
예수님께서 유대인들 앞에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하신 말씀은 그들의 마음을 격동케 한 하나의 폭탄선언이 되었다. 이에 따라 유대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하였다.
① 이 말씀은 본질에서 아들은 아버지와 하나라는 뜻이다.
아들과 아버지는 본질적인 면에서 말하자면 한 본체가 되신다.
* 빌 2: 6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한 하나님의 본체는 그 안에 세 인격적인 위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시다.
② 이 말씀은 권능에서 아들은 아버지와 하나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돌로 치려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고 하신 말씀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 아버지의 일이심을 분명히 하심으로 그가 행하시는 모든 권능은 아버지와 동등이심을 밝히셨다.
③ 이 말씀은 또한 그의 위치에서 아들은 아버지와 하나라는 뜻이다.
아들과 아버지는 한 본체이시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동등하시다. 그러므로 그의 위치에서도 동등하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다”라고 하신 말씀에서 아들의 위치가 아버지와 동등하심을 알 수 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는 주님의 말씀이 “나와 하나님은 똑같은 분이시다”라는 말로 그들은 듣게 되었다. 그들이 이처럼 듣기는 잘 들었지만 이 말씀을 영적으로 소화시키지 못했으므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손에 돌들을 들었다.
그들의 말은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다”라고 했다.
(2) “하물며”
예수님은 신성모독을 한다고 하여 돌로 치려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그들의 판단의 불합리성을 성경을 들어 공격하셨다.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이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고 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시편 82: 6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신 것이다.
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재판장으로 삼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율법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재판하는 재판장들에게 신들이란 칭호를 부쳐서 부르셨다. 물론 이 말씀은 그들이 하나님이란 뜻으로 하신 말씀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한 대행자로써 백성들을 재판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신이 그들을 주관하셨기 때문이다.
②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을 신이라 하셨다.
이것은 “다 지존자의 아들이라”라고 하신 의미에서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왜 신이라고 하셨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은 곧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을 의미한다. 이들에게는 모두 하나님의 이들의 권세가 주어져 있다.
이들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에 연합되어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 그 자체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가 되시는 분이다. 하물며 이런 분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했다고 하여 신성모독이라고 정죄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③ 재판장이나 지존자의 자녀들이나 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피조물이다.
하물며 예수님은 그들을 창세 전에 선택하신 분이요 그들의 창조주가 되시는 분이다. 그런 분이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고 하여 어찌 신성모독이라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신성 모독한다고 공박하는 유대인들에게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일을 행한다고 인정한다면 결국은 사람은 못 믿더라도 그 일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만약 예수님이 하신 일이 아버지의 일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 사람은 예수야말로 하나님이 아들이심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3) 삼위일체(trinity)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y)란, 하나님께서 그 본체에 있어서는 한 분이시지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세 구별된 인격으로 존재하신다는 진리다. 이 진리는 매우 신비하지만 기독교 진리의 핵심이 된다.
삼위일체를 믿지 않는 자는 신앙 사상에 큰 결함을 가지게 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을 알지 못하며 자신 안에 거하시는 성령에 대해서도 바르게 알지 못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을 가지지 못한 자이다. 하나님은 존재 양식에 있어서 각각 독립된 세 분의 실재적 개체이며 본질에 있어서는 서로 완전 동일한 일체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신앙 대상을 유일신이라 할 때 그것은 하나님 같은 존재와 품성, 능력을 가지신 분이 없으며 또 하나님만이 구원의 유일한 근거라는 점에서의 유일성을 말한 것이다.
하나로만 강조하려는 단일신론과 각 삼위 하나님의 독립적 존재를 마치 어느 한 인간이 집에서는 가장이고 교회에서는 장로, 사회에서는 사장이듯이 하나님은 각 상황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나타난다고 보는 것은 양태론이다.
둘 다 인본주의적 사고에 젖은 것으로서 성경이 제시하는 완전히 상호 독립된 세 분의 실재이면서도 또한 서로 간의 본질이 완벽히 동일한 일체라는 신비한 진리를 왜곡한 것이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본질적 속성의 일부 또는 전체를 각각 다른 세 개체가 나누어 갖는 상태를 말한다.
즉 그 세 개체는 공통의 속성을 각기 다른 상태로 갖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세 개체이면서도 독립된 세 개체의 모든 본질이 완전히 일치됨에 따라서 그 본체가 하나임을 말한 것이다. 물질세계에서는 그 유례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오묘한 진리이다.
① 삼위일체 교리의 성경적 증거
이 진리는 자연에는 계시 되지 않으며, 인간 이성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특별 계시의 교리이다.
ⓐ 구약의 증거
혹자는 '삼위일체'란 용어가 성경에서 발견되지 않음은 물론 구약은 이 교리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구약 가운데는 삼위를 암시하는 내용이 아래와 같이 나온다.
첫째, 일체성의 강조
* 창 16: 7-13 – 하갈과 이스마엘 - 7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8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9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12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 창 18: 1-21 – 아브라함의 아들 – 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16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20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 창 19: 1-22 - 소돔과 고모라가 무너지다. 롯이 구원받다.
* 출 20: 3 -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 신 6: 4 -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 사 44: 6 -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 사 48: 16 -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것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것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에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의 영을 보내셨느니라.
* 사 63: 10 -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둘째, 개체성의 강조
* 창 1: 26 -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 창 3: 22 -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 창 11: 7 -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 민 6: 24-26 –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 시 110: 1 -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 사 6: 3, 8 –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 사 48: 16 -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것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것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에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의 영을 보내셨느니라.
* 사 61: 1 -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 신약의 증거
신약에서는 구약보다 더 명확한 삼위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특히 성자의 성육신과 성령의 강림이 그 절정으로 다음 사건에서도 잘 나타난다.
* 요 1: 14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요 15: 26 -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첫째, 일체성의 강조
* 요 10: 30 -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 고전 8: 4 -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 엡 4: 5-6 –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 약 2: 19 -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 계 22: 13 –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둘째, 개체성의 강조
* 마 3: 16 –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 마 28: 19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 눅 1: 35 -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 요 1: 1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요 6: 27 -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 요 15: 26 -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 요 20: 28 -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 행 5: 3-4 –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 롬 9: 5 -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 고전 2: 11 -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 고전 8: 6 -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 고후 13: 13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 갈 1: 1 -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 딛 2: 13 -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삼위일체(trinitas)라는 말은 라틴 교부 터툴리안이 사용했다.
교회는 일찍부터 세 분이신 한 하나님을 고백하고 예배했으나, 325년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 이전에는 성자(聖子)께서 성부(聖父)와 동등하시며 함께 영원하시다는 진리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리고 교회 안과 주변에는 잘못된 견해들이 있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양자라는 견해(養子說)와 예수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난 하나님이시라는 견해(가現說)였다. 이 두 견해는 교회 역사에서 거듭 발견되는 그리스도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전형적인 잘못된 견해다. 유대주의적 에비온파는 양자설을, 신비주의적인 영지주의자들은 가현설을 말했다.
3세기에도 양자설에 해당하는 단일신론(monarchianism)과 가현설과 유사한 양태론적 단일신론이 있었다. 양태론적 단일신론은 양태론(modalism)이라고도 한다. 한 하나님이 아버지, 아들, 성령의 세 모양으로 나타나신다는 주장이다. 사벨리우스가 주장했으므로 사벨리우스주의라고도 한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선호하는 잘못된 이해인데, 우리 교회에 만연되고 있는 이해이기도 하다.
삼위일체 교리를 물, 얼음, 수증기 혹은 해, 햇빛, 에너지 등으로 설명하면 양태론의 오류에 빠진다. 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로 비유하거나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심을 확인하는데서 깨닫게 된 교리이므로 성경 말씀대로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면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아야 한다.
인격은 본래 논리적인 분석을 통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자기소개에 대한 신뢰와 사귐을 통하여 알게 되는 것이다. 유한한 인간은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다 통달할 수 없다.
* 고전 2: 10 -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인간들에게는 너무 높고 기이해서 능히 미치지 못할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 시 139: 6 -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결론 : 예수님은 그곳에서 벗어나사 다시 요단 강 저편에 이르러 거하시니 많은 사람이 주님이 계신 곳에 왔다가 요한이 예수를 가르쳐 증거한 것이 다 참이라고 말하면서 예수를 믿었다고 했다.
우리는 세례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를 바라본다. 예수님의 말씀의 증거를 가지고 그를 믿으며 그를 영접해야 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는 이 사실을 처음부터 밝히 말씀하셨고 그의 행하신 일들이 그를 증언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하나이시다. 세례 요한의 증언를 통해 많은 사람이 그를 믿었다. 우리는 신약성경의 증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하자.
둘째, 양의 특징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른다.
27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그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른다는 것은 그를 믿고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유대인들이 그를 믿지 않은 것은 그의 양에게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속한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선택을 뜻한다.
* 요 6: 39 -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게 주신 자들’이 양들이며 그들은 다 믿고 순종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다.
셋째, 양의 복은 영생이다.
예수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있다.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양을 아시고 양들에게 영생을 주신다. 또 그가 주신 영생을 받은 자들은 영원히 멸망치 않으며 그들에게서 그 영생을 빼앗을 자는 아무도 없다.
* 요 6: 40 -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며 사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롬 8: 1).
택자들은 다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고 거룩의 열매를 맺다가 영광에 이를 것이다.
* 롬 8: 30 -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세상에서 혹시 성도들에게 닥칠 환난, 곤고, 핍박, 기근, 헐벗음, 전쟁, 그 무엇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을 것이다.
* 롬 8: 35-39 –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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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마음이 즐거워야 행복해 진다고 합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모든것이 긍정적으로 보이게 되므로
얼굴엔 늘 미소를 짓게되고 밝고 유쾌하게 된답니다.
얼굴에 환한 웃음과 함께 오늘도 멋지게 시작하시고요.
항상 웃음이 있는 그런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