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가 환율 상승을 막기 위한 총력전에 들어갔다. 시중은행의 외화 유동성 확보를 지원하고 외화대출 규제는 완화하기로 했다. 최근 외환보유액과 외국환평형기금 외에 국민연금을 활용하는 등 가용수단을 총동원하는 모습이다. 20일에도 1달러=1451.4원(주간 종가 기준)이 돼 금융위기였던 2009년과 비슷한 '위험수위'이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김범석 제1차관 주재로 금융위원회·한국은행·금융감독원과 긴급 거시경제·금융 현안 간담회를 열고 '외환수급 개선법안'을 발표했다. 대책의 핵심은 외환유입 규제 완화다. 정부는 시중은행의 선물환 포지션 한도를 국내은행은 전월 말 자기자본 대비 50%에서 75%로, 외국계은행 국내지점은 250%에서 375%로 각각 높이기로 했다. 선물환 포지션 한도를 높이면 환거래가 더 활발해져 국내로 외화가 더 많이 유입될 수 있다.
외화대출 규제도 완화한다. 기존에는 외화대출을 받아 해외투자에 사용하지 않고 원화로 환전해 주식·부동산 투자에 투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외화대출을 규제했다. 그러나 한은 외환거래업무 취급세칙을 개정해 내년 1월부터 대기업 중소기업 중견기업의 시설자금 용도에 한해 원화 용도의 외화대출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 경우 달러가 시장에 나와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일부 국가와는 달러로 환전하지 않고 상대국 통화로 결제할 수 있는 조건을 구축한다. 9월 시작된 한국인도네시아 간 현지통화직거래체제(LCT) 무증명 한도를 상향한다. 말레이시아 등 주요 아세안 무역국과의 엘시티 체결도 추진하기로 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액 4000억달러 아래로 떨어지면 심리적 요인으로 환투기가 발생할 수 있다며 통화당국이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정부 "외환보유액 9위, 큰 걱정 없다"…전문가 "4000억 달러가 마지노선"
정부는 최근 환율 상승을 막기 위해 잇따라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 19일에는 통화당국과 국민연금공단의 외환스와프 한도를 기존 500억 달러에서 650억 달러로 증액하고 만기를 2025년 말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국민연금이 해외주식 등을 구매하기 위해 달러가 필요한 경우 정부가 외환보유액에서 달러를 먼저 공급한 뒤 반환받는 형태로 환율에 대응할 여력을 높이는 조치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데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까지 겪은 한국이 환율 상승에 적극 대응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다. 다만 '긴급처방'이 마지노선에 이르렀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환보유액 4000억 달러 선이 대표적인 예다. 다만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외환보유액이 세계에서 9번째로 많고 과거 외환위기와 달리 지금은 우리가 (달러 채무국이 아닌) 채권국이기 때문에 걱정이 크지 않다" 고 설명했다.
반면 환율이 이틀 연속 1달러=1450원대로 떨어지면서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코스피는 20일 장에서 2400선이 무너진 뒤 막판 낙폭을 줄여 2400선을 간신히 지켰다. 코스피가 2400선 아래로 떨어진 것은 10일 이후 8거래일 만이다. 이날 외국인투자자의 순매도 금액은 8200억원으로 지수를 끌어내렸다. 기관도 800억원가량 순매도했다. 개인이 7900억원 순매수했지만 지수 하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코스닥은 전일 대비 2.35% 하락한 668.31로 마감했다. 이재원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원화 가치가 하락한 데다 미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 속도를 늦출 것임을 시사한 영향으로 외국인 자금이 이탈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