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비스무리한 글을 쓴 적 있지만 걍 대충 제가 아는 선에서 몇마디 해볼게욤.
원문 올리신 분에 대한 태클은 전혀 아니고, 그냥 '참고'삼아 얘기하는 것인데요, 사실 근대 이전의 "중국무술의 실전성"조차도 상당히 의심가는 정황이 많은 편입니다. 기본적으로 뭐랄까, 유전학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고유의 '전통'을 강조하는 무술의 유파는 사실 그 '장구한 역사'라는 점에 있어서 매력적입니다만(사실 진짜로 '장구한 역사'가 제대로 추적되는 무술은 거의 없지만요..예컨데,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중국무술 태반은 대충 오래되어봐야 300년 정도..?), 유전학적으로 오랜 세월동안 고립된 곳에서 좁은 유전자풀 내에서 진화해온 개체들이 넓은 곳에서 광범위한 유전자풀을 통해 진화해온 개체들과의 생존경쟁을 배겨낼 수 없는 것처럼, 고유의 체계를 오래동안 절대적으로 유지해왔다는 소리는 바꿔말해 그만큼 실전에서 다른 유파와 만나 부딛히며 그 실전성을 검증받을 기회가 없었다... 는 것과 같은 소리가 됩니다.
특히, 중국무술의 각 유파는 "무술이 밥먹여주냐"라는 문제에 부딛혔을 때 소위 '대중화'가 되는데 (에도 시대 이후에 검술의 대중화를 생각해보셈), 가전으로 내려오는 무술을 대중적으로 가르쳐 수강료를 받아 '장사'를 해야 하는 입장이 되면서부터는 자기 유파의 '실전성'을 의심받는 것은 그야말로 장사 쫄딱 망하게 되는 지름길이 되어버립니다. 즉, "강한 무술"이라는 상품의 매력이 유지되지 않으면 무술을 팔아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이 것을 의심받게 될 만한 상황이 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 폭력과 살인에 의지를 해서라도 - 그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나서야 된다는 뜻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무술도장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반드시 지켜야 했던 것은:
(1) 공개적인 장소에서 그 실전성을 검증받을만한 각종 시합이나 도전은 절대절대절대로 피한다
(2) 피치 못하게 승부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되면, 절대절대절대로 비공개로 한다
(3) 승부의 양상도, 가급적이면 패배자에게 절대적인 모욕을 주는 방식은 피한다
(4) 그러한 승부의 결과가 새어나가거나, 공개적 승부에서 패하거나 하는 결과가 벌어지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복한다
이 네 가지가 되겠습니다.
대충 이러한 양상이 시작된 것은 보통은 명대 정도라고들 하는데 그 때 까지 기록이 확실히 추적되는 무술의 유파가 거의 없기 때문에 확인하기가 힘들고, 확실한 것은 청대에 들어서는 대충 무술유파들이 거의 모두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청대 중반까지는 특정 상회가 특정 지역에 대한 상권을 독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지의 특징적인 무술문파가 그 지역에서의 도장경영권을 독점하고, 타지의 무술문파의 이권을 침입하지 않는 형태로 공존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미 기본적으로 무술간의 상호교류가 발생할래야 할 수가 없지요.
문제는 세상이 혼란해지고 치안이 불안해지는 청대말로 접어들면서 인구의 이동, 특히 도시지역으로의 지방인구의 유입이 늘면서 지방에서 먹고살길이 막막해진 무술가들이 대도시로 들어와 무술장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계기로 오늘날 중국 무술의 각종 유파들이 그 유명세를 띄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영화 <황비홍>이라든지, 비슷한 시기의 무술가들을 다룬 중국의 무협영화들을 보면 항상 무술 문파들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 모습이 나오는데, 한 몫 잡고자 지방에서 대도시로 올라온 뜨내기 무술가들이 그만큼 크게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이 분쟁의 양상은 기본적으로는 대도시 지역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유명 유파의 영역에 외지의 '장사꾼'이 들어오는 형태로 시작되고,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끊임없는 접전과 패싸움 속에서 살아남아 그 이름을 널리게 알리게 되면 그는 무술의 '명인'이나 '달인'으로 알려지게 되고 새로이 떠오르는 '브랜드'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죠.
청대말은 무술계에 있어서도 그야말로 '난세'였고, 그런 만큼 당대에 이름높던 '고수'들은 적어도 그 이름값을 할 만큼의 실력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예컨데, 오늘날 세계에 널리 보급된 양식태극권의 시조인 양로선 같은 경우에도 폐쇄적인 가전무술이었던 진식태극권을 배워와 그것을 나름대로 간소화하고 체계화하여 대도시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지요. 팔극권이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도 창주의 무술가였던 이서문이 대도시 지역에서 활동을 했고, 특히 당대 군벌들을 위해 일을 했기 때문인 점도 큽니다. 대충 우리가 그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중국무술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세상 밖으로 등장한 것이지요.
문제는, 이렇게 새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무술들도 중국의 상황이 안정되면서부터는 기존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버렸고, 특히 문화대혁명의 시기를 전후로 대부분의 무술가들이 대만으로 망명을 했기 때문에 대만이라는 좁아터진 섬에 대륙에서 건너온 무술가들이 다 같이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에 부딛히기 됩니다. 분쟁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예전의 시스템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 중에 머리가 깨인 사람들은 각종 체육회나 연구회 등을 설립하여 무술간의 교류를 통해 중국무술의 생존을 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도 있었으나... 너무 늦었다고나 할까요. 어쨌든, 중국 무술이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하는 것은 1959년 중국의 공산화가 및 무술가들의 대량망명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에 앞서 이미 2차대전 이후 미국에 일본 무술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태권도 역시 미국으로 넘어간 한국 무술가들의 노력으로 정착되기 시작했으나, 본격적으로 '무술'의 붐을 일으킨 것은 역시 단 한 사람 - 부르스 리의 힘이 컸습니다. 그리고, 자존심이 넘치는 만큼 명민한 사람이었던 부르스 리는 소위 '전통무술'의 문제를 가장 먼저 깨달은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르스 리 자체가 이미 홍콩시절에 뭐 -_-a 한마디로 양아치였던데가 아마츄어 권투대회에 출전해 입상한 경력도 있었고, 애초에 홍콩을 떠난 것도 패싸움을 벌인 결과 발생하는 법적인 문제를 피해서였기 때문인 만큼 소위 '스트리트 파이트'(...라 쓰고, '쌈박질'이라고 읽는다)에는 이골이 나있던 양반이었기 때문에 이미 실전에서 뭐가 통하고 안통하고에 대한 개념이 있는 양반이었던게죠.
특히, 정신차리고 미국에서 공부하며 도장을 경영하던 시절에 발생한 개인적인 결투를 계기로 전통무술의 문제를 완연히 깨닫고 그 때 부터 무술간의 교류 및 타 무술의 실전적 기술의 도입을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아직 오늘날 MMA의 단계로까지는 오지 못했다고는 해도 무술의 실전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타격기 뿐만이 아니라 초근거리에서의 공방, 그래플링 테크닉, 그라운드 테크닉 등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최초로 깨달은 사람 중 하나이기도 했지요.
어쨌든 부르스 리 쇼크 덕분에 동양무술에 대한 거대한 붐이 일어나고, 특히 부르스 리의 사후 초보적인 단계에서 이종격투기가 시도되기 시작하면서 슬슬, 현대적 무술은 MMA의 개념을 잡아나가게 됩니다만.. 여전히 중국의 전통무술은 -_-a "진짜 고수는 그런데서 놀지 않음"이라는 한 마디로 그 흐름에서 쑥 빠져있었습니다.
=_=; 그리고, 마침내 인터넷과 공개시합, 프로페셔널 파이팅 등의 세상이 된 후에 이제는 공개적으로 나와서 자신을 입증하지 않으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시대가 왔을 때, 비로서 얼굴을 들어낸 중국의 '전통무술가'들은 뭐... 그야말로 예상된 참패를 했지요.
사실, 당연한 일입니다. 어느 무술이 쎄고 약하고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그 사람 자체가, (어느 스포츠맨도 마찬가지지만) 실전을 상정하고 실전을 위해 연습하고 실전을 거치면서 배우고 반성하고 해야 실력이 늘죠. 제대로 된 스파링의 체계 자체가 없는 무술이 온죙일 스파링을 해대는 무술과 어떻게 붙어 싸워 이기나요.
...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무술에 한 가지 의의가 있다면, 실전성의 면에서 일단 문제가 있다고는 해도 '몸만들기'의 영역에서 모든 문파들이 꽤나 체계적인 훈련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정한 투로나 형을 되풀이한다고 해도, 그것을 깔끔하고 아름답게, 정확하게 되풀이할 수 있는 것만해도 이미 굉장한 신체능력이니까요. (-_-; 태극권 느리니까 쉬운 것 같죠. 양식태극권이나 오식태극권, 혹은 간소화된 태극권의 형태라고 해도 진짜 팔다리 허리 등 각도 제대로 맞추면서 정확히 하려면 장난아니게 힘듭니다...)
예컨데, 동영상 속에 나온 무술가들의 약속된 대련형태야 사실 별 볼일 없는 것이지만, 정말로 주목할 것은 그 신체능력이거든요. 기본적으로 유연성과 민첩성은 정확한 타격은 물론 부상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고, 그러한 정확성을 장시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기본단련으로 체력이 뒷받침되야 합니다. 물론, 동영상 속의 몸집으로는 실전에서의 체급의 문제가 있기는 하니까, 정말로 싸우고싶다면 일단 몸만들기 후에 몸불리기도 해야 하지만, 그 모든 것의 기본이 되는 기본신체훈련 - 특히 유연성 - 의 면에서 중국무술로부터 배울 것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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끗
첫댓글 공감합니다. 전통무술에 환상을 가진 사람들은 광신도처럼 믿음 집착 현상을 보이는 경향이 강하더군요. 전통무술(태권도 포함)이 실용적인 격투기(종합 격투기는 말할 것도 없고 킥복싱같은 입식타격기를 봐도)와의 대결에서 대 참패를 하면, 철저하게 그 패인을 수련자의 우열문제로만 돌립니다. 즉, 무술 시스템의 우열은 전혀 없고 오직 수련자의 우열만 존재한다는 식이죠. 이런말을 하면 '오~~' 하면서 멋지다고 수긍하는 사람들도 많죠. 그런데 그 말대로라면 무술의 효용가치가 부정됩니다. 한마디로 무술은 실전 대결에 도움 안된다는 소리가 되는 것이죠.
게다가 한편에서는 실전성 운운하면서 실전 무술이니, 삼국시대 무사의 상무정신이니 하면서 허세를 부리다가도 실전성에 대한 검증을 운운하면, 무술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천박한 것이다. 라는 식으로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우연히 태권도 선수가 킥복싱 선수를 이기면, 민족주의에 심취해서 사실 태권도가 약한 무술이 아니다. 라고 주장합니다. 태권도가 패배할 때는 무술의 우열이 없다고 하더니, 태권도가 승리할때는 태권도가 약한 무술이 아니라면서 말을 바꾸는 것이죠. 또 타 격투 체계와 비교할 때는 무술의 우열이 없다고 하면서, 무도 태권도와 스포츠 태권도의 비교에는 무도 태권도가 더 강하다고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