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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성 여행기 6 "리탕-야딩"
<신롱 - 야딩 풍경구>
2019년 5월 20일 신롱에서 리탕으로 출발했다. 중간에 잠깐 쉴 수 있었는데, 누런 송아지 몇 마리가 있었다. 아직 세상의 따끔한 맛을 보지 못한지라, 천진난만하게 카메라를 바라보기도 하고, 갑자기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이 앙증맞고 귀여웠다.
"모든 동물의 새끼는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 어디에선가 강의가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모든 새끼는 귀엽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그러면 뱀의 새끼도 귀엽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뱀만은 예외다"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뱀은 사탄이니까? 이것은 타고나면서 자연히 그렇게 된다." 그러자 또 한 사람이 말했다. "내 친구는 뱀이 귀여워서, 방안에 뱀을 네 마리나 키운다. 그 사람에게도 뱀은 사탄이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래서 뱀을 사탄(四嘆)이라고 하는 겁니다. 넉"사", 탄식할 "탄" - 그러면서 네 번이나 긴 호흡을 하였다.
<동충하초 캐는 사람들의 텐트>
중간에 4286미터의 고원지대를 지나게 된다. 안내판에는 基本草原保护区(기본초원보호구)라고 적혀있었다. 사람들이 무심코 버렸을 법한 휴지가 산 정상에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그 근처에 동충하초를 캐는 사람들이 묵는 하얀 텐트가 보였다. 사실 이런 곳에 공장이나 회사 같은 돈벌 수 있는 일터가 없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점이나 식당 등 자영업을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장사꾼은 많고, 손님은 없으니 돈 벌기가 어려울 것이다. 저 사람들이 동충하초를 많이 채취하여 돈 좀 많이 벌기를 기원해 본다.
<창밖에 보이는 장면. 산에, "중국공산당만세!", 라고 씌어 있다.>
<리탕 전경: 드디어 리탕에 도착했다.>
<우리가 묵은 숙소 "초원지야(초원의 밤)" 호텔>
리탕이라는 도시는 해발 4000미터에 위치해 있다. 지금까지는 4000미터 이상 지역을 지나온 적은 있지만, 4000미터 이상에서 숙박을 해본 적은 없었다. 해발 4000미터 호텔 방에 들어가면 쌀쌀했고, 방 밖으로 나오면 햇볕이 따가왔다. 밤에도 몸이 으씩으씩 떨리고, 뭔지 모를 싸늘함이 뼈속 깊이 스며드는 듯 했다.
나는 핸드폰의 기압계 앱을 바라보았다. 630 헥토파스칼을 나타내고 있었다! 일기예보를 할 때, 1000 또는 900 얼마를 이야기하는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기압이 630 헥토파스칼이라니! 빵 봉지가 빵빵 하듯, 내 몸도 말을 안해서 그렇지, 오장육부 피부, 눈동자까지 지금 그렇게 팽창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몸이 춥고, 머리가 어지럽고, 늑신하게 두들겨 맞은 느낌이 드는 것이구나!
해발 100미터를 올라갈 때마다, 대기의 온도는 대체로 약 0.5-0.7도 낮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 기압은 어떤가? 정확한 문서를 찾아보지 않았지만, 지금 내 눈으로 확인하는 바에 의하면, 100미터 올라갈 때마다 기압은 약 10헥토파스칼 낮아지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었다. 대단히 중요한 발견이다! 왜냐하면 1기압은 1013헥토파스칼인데, 현재 4000미터에서 600헥토파스칼 정도이니까! 다시 결론, 온도: 100미터 산으로 올라갈 때마다 0.6도 내려간다. 기압: 100미터 산으로 올라갈 때마다 10헥토파스칼 내려간다!
*리탕은 여행의 중심지로, 야딩을 다녀오고 또 거니에 설산을 다녀온 본부 역할을 했다. 따라서 리탕 시내의 구경거리에 대한 기록은 나중에 한꺼번에 올린다. 아래는 2박 3일 야딩 여행기이다.
<리탕에서 야딩 가는 길>
5월 21일 오전 9시, 리탕에서 야딩 풍경구로 향했다. 야딩 풍경구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돌로 가득 찬 산의 연속이었다. 큰 돌도 아니고 작은 돌이, 한 마디로 "징글징글"하고 "바글바글" 했다. 징역 10년에 처해진 죄수에게 1) "너, 10년 감옥에 있을테냐?" 아니면 2)"여기 1평방키로의 돌의 갯수를 다 세면 내 보내줄테니, 여기서 돌의 갯수를 세어보겠느냐?" 했을 때, 그는 처음에는 돌의 갯수를 세어보다가, 며칠 지나면, "차라리 감옥이 훨씬 낫다"고 포기하고 곧장 감옥으로 돌아갈 것 같았다.
<먼저 투얼산 표지석이 나타난다. 이곳을 왜 토끼산이라고 하는지는 멀리 보이는 산의 토끼 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
사실은 이 일대가 바로 海子山地质公园(해자산 지질공원: 하이쯔샨띠즈꽁위엔)이다. 3,287㎢의 면적의 1,145개의 크고 작은 호수들이 있어 하이즈산[海子山: 바다의 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해자산 표지석>
수많은 작은 돌로 뒤덮인, 넓고 평평한 대지 위로 자동차가 달리는 시간은 30분 이상이 될 것이다. 아스팔트 길은 이 산을 이리 감고 저리 감고, 빙그르 돌아 호수 옆을 지난다. 큰 호수와 직경 몇 미터 정도의 작은 호수를 수 없이 지나면 다시 그 자리로 또 돌아온 양, 방금 전에 보았던 장면이 다시 연출된다. 중간 중간에 사람들이 차를 멈추고 멀리 끝없이 펼쳐진 돌평선을 바라다 본다. 해는 쨍쨍 내려 돌 위를 달군다. 나는(*여기에서 "나는"은 이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I)" 또는 "날다(fly)") 열기구를 타고 공중을 누빈다. 둥실둥실 떠 있는 구름이 나에게 다가와 부딪치고 부서진다.
<공원 옆에 장사꾼은 어디 가고 공예품만 가지런히 놓여있다.>
중간에 热乌寺(열오사)라는 절이 있다. 이 절이 아름답거나 역사가 깊어서 여기에 적는 것이 아니다. 남송 말에 건설되었다는 이 절의 이름이 특이해서다. 热乌(열오)는 티베트 말로 "항아리가 터진 곳은 절을 건설하는 곳이다"라는 뜻이다(위 안내판에 한글로 그렇게 적혀 있다.) 항아리가 깨진 곳에 왜 절을 지어야할까? 그러면 절을 짓고 싶으면 항아리만 깨면 되는 것인가? 그러면 유리창을 깨면 무슨 절을 짓고, 산통이나 요강을 을 깨면 무슨 절을 지으며, 꿈을 깨면 무슨 절을 지을 것인가?
그런데 좀더 자세히 읽어보면, 이 사찰은 위 아래로 나누어져 있고, 윗절과 아랫 절의 종파가 서로 다른데, 스님들은 화목하게 지낸다고 되어 있다. 아하, 각 종파의 항아리를 깨뜨리고 화목하게 사는 곳이란 뜻인가, 내 마음대로 상상의 날개를 펴다가 접었다 했다.
<점심 때가 되어서 중간에 있는 도시 따오청 광장에 들렀다.>
<따오청 시내>
<야딩 풍경구를 가기 위해 샹그릴라전에 도착했다. 숙소: 따오청 르와 국제 유스호스텔>
나는 유스호스텔 종업원에게 "르와"가 무슨 뜻인지 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본래 이곳의 명칭이 "르와전(日瓦镇"(전: 전이란 한국의 "읍"정도에 해당하는 행정구역이다.)이었는데, 야딩풍경구를 개발하면서, 르와전이 샹그릴라전으로 변경되었다고 했다. 내가 다시 묻기를, "이곳을 돌아보니, 일반인의 집이 보이지 않으니, 어찌된 일인가?"라고 물으니, "호텔과 상점이 들어오면서, 일반인들은 근처의 따오청으로 이사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펀득 떠 올랐다.
<유스호스텔 3층에서 직원 한 명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큰 동물의 뼈를 사용하여 화지를 눌러 놓는다!>
<상글릴라전은 대부분 호텔과 식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네 그늘에 아줌마들이 앉아 휴식을 취한다.>
<샹글릴라전은 지금도 호텔을 건설하고 있는 곳이 많다.>
<야딩 풍경구에 대한 설명: 여러 곳에 야딩 풍경구에 대한 설명과 지도가 나와 있으나, 실제 가보면 헷갈리게 되어 있어서, 필자가 곰곰이 생각한 후 작성한 안내 지도>
1. 샹글릴라전 숙소에서 매표소까지는 약 6키로인데, 정규적으로 운행하는 시내버스를 타거나, 택시 합승(일인당 10위안"1800원")내고 간다.
2. (1)매표소에서는 풍경구 입장권을 구입한다. 입장권은 60세 이하 150위안(27000원), 65세 이하 80위안(14400원), 65세 이상 무료이다. (2)충고사까지 가는 버스표 120위안(21600원)을 구입한다(나이와 관계 없이 모두 공통). 따라서 60세 미만자의 경우 총 비용 270위안(48500원)이 필요하다.
3. 버스 종점에서 충고사까지는 걸어서 간다.
4. 충고사에서 진주해까지 걸어서 간다.
5. 충고사에서 낙융목장까지 갈 사람은 이미 입장권은 구입했으므로 또 입장권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 버스표만 구입하면 된다. 버스표는 왕복 80위안(14400원)이다(연령에 관계없이 모두 해당). 물론 걸어갈 사람은 버스표 없이 6.7키로를 걸어가면 된다.
6. 낙융목장에서 우유해까지는 걸어서 간다. 여기서 말을 탈 수도 있으나 끝 부분은 경사도가 심해서,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한다.
7. 우유해에서 오색해까지는 걸어서 간다.
* 결국 하루 구경하기 위해서는 60세 이하의 경우 62,900원(48500원+14400원)이 필요하다.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위 도표 작성하고, 메모한 것 대조하고, 야딩 홈페이지(www.yadingtour.com)에서 확인하는 데 며칠 걸렸다!! 그래도 두 지점간의 거리는 조금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
<야딩 풍경구 매표소>
2019년 5월 22일 아침 7시에 택시로 야딩풍경구 매표소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은 북적거리고 있었다. 이 풍경구 안에 있다는 3개의 호수를 하루에 모두 보기 위해 일찍 몰려드는 사람들이었다.
버스는 곧 출발하였다. 갈지자를 그리며 버스는 작고 큰 바위를 돌아 고개를 하나 넘었다. 버스를 타기 전, 지도 상으로 보아 별로 멀지도 않은 야딩풍경구가, 실제로는 왜 그리 먼지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버스를 타고 가면서 이해가 되었다. 야딩 풍경구로 가는 길이 끊임없는 Z자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산 중턱을 깎아서 왕복 2차선의 아스팔트 길이 놓여있었다. 길 수백미터 아래에 계곡이 있어서, 만약에 사고가 나면, 버스가 100번은 굴러야 계곡 바닥에 도착할 것이므로 사고가 난다면 전원 사망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꾸불텅 꾸불텅한 길을 버스는 시속 40키로 이하로 달린다. 목적지까지 1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이 사진에서 보면 평범한 산길 같지만, 실제로는 타는 사람 모두 가슴을 조아려야 하는, 경사도가 심한 길이다. >
<중간에 잠시 쉬면서 사진 찍으라고 하는 지점>
버스에 승차한지 한 시간이 지난 후인 8시 30분에 버스에서 내린다. 약 200미터 걸어서 충고사에 도착한다. 나는 나이도 나이려니와 체력이 그렇게 강한 편이 아니어서, 내 체력에 맞는 범위까지만 구경을 하기로 작정하였다. 괜히 하나라도 더 보겠다고 무리수를 두었다가는 본전도 찾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하다는 우유해나 오색해를 보려면 모든 것을 무시하고 낙융목장으로 가서, 거기서 다시 말을 타고 갔다가, 또 거기서 걸어간다면 목적은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역시 다른 것을 보지 못하니, 마음 편하게 되는대로 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다.
<충고사는 바로 길 옆에서 보인다.>
<충고사>
<충고사: 뒷편에서 촬영>
충고사에 대한 역사나 전설을 대충 읽어보고 진주해로 향했다. 4100미터 위치한 진주해로 올라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왼쪽 철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방법과, 충고사의 오른쪽 뒤에 있는 흙길을 따라 올라가는 방법이다. 그 어떤 방법을 택하건 올라가는 높이는 마찬가지지만, 오른 쪽 흙길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 힘이 덜 든다. 어떻든 4000미터 이상에서 걷는 것 자체가 힘든 상황에서 산을 올라간다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올라가면서 우선 보이는 것은 다양한 동물들이다. 이 동물들은, "사람은 자기를 해치지 않는다"라는 것을 경험으로 습득했는지, 멀리 도망가지 않는 것이 그들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사람 주위를 맴돌고, 사람이 무엇인가 먹을 것을 던져주기를 바란다. 올라가기가 힘든 김에 이들을 볼 때마다 나도 휴식을 취하게 되니, 이들을 관찰하는 것이 나에게는 임도 보고 뽕도 따는 이중의 이득을 가져온다.
몇 번을 쉬면서 가다보면, 드디어 큰 산이 하나 보이는데 그 산이 仙乃日(선내일: 시엔나이르)이다. 또 호수가 하나 보이는 데 그 호수가 卓玛拉错(탁마랍착: 주어마라추어: 진주해)이다.
선내일 산은 반쯤 구름으로 가려져 있었고, 두 봉우리 사이에 몇십 미터는 되는 것으로 보이는 만년설이 반쯤 잘려 나가 단면이 보였다. 그 신비함에 어떤 사람은 절이나 기도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멍하니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만년설에 덮여 있는 산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지, 가슴이 울렁거리거나 심장이 뛸 정도는 아니었다.
<진주해 안내 표지판>
산 앞에 있는 호수 진주해는 주위에 있는 초록색의 산과 선내일 산이 되비쳐서 그야말로 빼어난 경치였다. 호수는 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그 빛을 달리했는데, 계절과 날씨에 따라 색다른 옷을 갈아입을 것으로 보였다. 호수 주위에는 다람쥐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는데, 사람들이 먹이를 주지 않으면, 생떼를 쓰는 듯 깝쪽거리며 오두방정을 떨었다.
<진주해의 물빛>
내려오면서 여기저기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는 모습도 보였다. 어떤 꽃은 이미 지고 있는 것도 있고 져 버린 것도 있었다. 산에 있는 나무들은 키가 크지 못했고, 혹독한 겨울을 난듯, 침엽수도 칙칙한 빛을 띄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낙융목장에 관한 이야기
<충고사 바로 위에서 80위안(14400원)내고 버스표를 구입한다. 길이 좁아 이 도로에 맞는 특수 버스를 구입했다. 한 줄에 3명씩 탄다.>
버스 운전수에 대해 한 마디: 버스 타기 전부터 운전수는 진언 비슷한 말을 끊임없이 목청을 돋구어 해댄다. 마치 미치광이처럼 큰 소리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 해대는 것이다. 몇십 분 후에 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는 그때까지 하던 이상한 말을 딱 멈추고, "따올러(到了: 도착했습니다)"하면서 다시 보통 사람이 되어 어디로 사라졌다. 숨죽이고 운전수의 독백을 듣던 사람들이 마지막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이었다.
<버스에 내리면 보이는 안내판: 여기서부터 낙융목장이다.>
<여기가 바로 낙융목장이다. 계곡에 있는 평평한 지역이다. 저 멀리 보이는 집에서 말을 타고 올라간다. 사실 말타고 가는 사람은 드물다.>
<앞에 보이는 흰 산까지 가서 오른쪽 계곡으로 올라가면 우유해와 오색해가 있다.>
낙융목장이란? 산과 산 사이에 계곡이 넓어져서 평평한 풀밭을 형성하고 있는 곳 --- 여기가 바로 낙융목장이다. 실제로 말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목장에 나무로 다리를 놓아 사람들이 풀을 밟을 수 없도록 했다. 이 나무 다리를 건너면 바로 말 타는 곳이 나온다. 이 마방에서 약간의 오르막 길을 걸어서 우유해까지 간다.
<낙융목장 가운데에 물길이 나 있어서 위에서 흘러오는 물이 다양한 도안을 그리며 아래로 흘러간다.>
<흐르는 물은 제법 넓은 곳도 있다.>
<대지가 높아 온도가 낮으므로 이제 풀이 나기 시작한다. 한 여름 여행자는 이곳에서 많은 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징검다리처럼 잔디가 형성된 곳도 있다.>
<강을 이루는 곳도 있다.>
<한 무리의 사슴이 있었다.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건너 오는데, 아무도 먼저 건너가려하지 않았다. 그때 용감한 사슴 한 마리가 첨부덩 거리며 물 속으로 발을 담갔다. 나머지도 그때서야 비로소 개울을 건넜다.>
<어느 정도 올라가면 호수가 나온다. 처음에는 이것이 우유해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으나, 우유해는 아직도 멀었다.>
<올라가면서 계속 뒤쪽을 본다. 오른 쪽으로 거대한 산이 있다. 수시로 구름에 덮였다, 걷혔다를 반복한다.>
<뒤쪽에 보이는 산을 확대해 보았다. 왜 한쪽만 바위가 떨어져 나갔는지 궁금하다.>
<뒤쪽 바위. 오른 쪽에 두꺼운 만년설이 쌓여있다.>
<역시 뒤쪽 바위>
<계곡에 쌓인 만년설>
이미 충고사에 다녀오느라 힘이 다 빠진 상태에서 계속 걷는다는 것은 내 나이에는 무리였다. 아무리 걸으려고 해도, 발걸음을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약 100미터 걷고 쉬고, 또 100미터 걷고 쉬고, 거의 그런 속도로 걸었다. 여행객 중에는 산소통을 휴대하고 가는 사람도 있고, 실제로 산소통을 열어 산소를 흡입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 중에는 곧잘 걷는 사람이 보였다. 뛰듯이 걷는 젊은이도 있었다. 숨이 차서 이야기할 기운도 없었지만, 그들은 보통의 평지를 걷듯, 그렇게 여유있게 걸었다.
하여튼 이제 그만 올라갈까, 라는 생각을 여러 번 하다가 말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곳, 즉 말을 탄 사람들이 내리는 곳까지 왔다. 시계를 보니 2시 30분이었다. 낙융목장에서 11시 30분에 출발했으니, 약 4.5키로를 걷는데 3시간이 걸린 셈이다.
말에서 내리는 지점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일부는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일부는 땅바닥에 앉아서 졸고 있었다. 그중에는 경찰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고, 구급대원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와 같은 처지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사람들은 위쪽을 보거나 하늘을 보며 아쉬워하는 모습이 자신도 모르게 나타났다. 이미 위쪽 호수를 다녀온 사람들은 개선 장군이나 된 듯이 희희낙락거렸다.
<말에서 내려 이 길을 걸어 올라가야 우유해, 오색해가 나온다.>
잠시 뒤, 고개를 들어 위쪽을 보니,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 그냥 하염없이 앉아서 쉬는 사람 등 가지각색이었다. 나는 더 이상 못 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가볼까, 하는 마음도 그때까지 도사리고 있었다. 이제 다시는 이곳에 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 것도 간신히 왔는데, 여기서 2-3시간을 더 가야한다니! 그것도 평길이 아니라, 지금부터 오르막길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련은 남았지만 어쩔 수 없으니 깨끗이 포기하기로 했다. 포기하고 앉아서 쉬는데, 올라가볼까, 하는 생각이 또 들었다. 화룡점정이라고 했듯이, 용을 다 그려놓고, 눈동자를 그려놓지 않으니, 용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그림이 된 찝찝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모든 것은 원리와 원칙이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상황인 것이다. 가지 못할 상황이라는 최후 판단을 내리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괜히 가다가 죽기라도 하면? 그러면 나머지 일행들이 얼마나 황당해할 것인가? kbs 9시 뉴스에 나오겠지? 사람들은 내가 노욕(老慾)이 과했다고 혀를 차겠지? 우리 가족이 이 소식을 듣겠지? 그러면 여기로 온다고 울면서 수속을 밟겠지? 마치 개그 콘서트 김원효가 된 듯, 생각은 생각으로 이어지고, 가정법이 연결되면서, 수 없는 앞날의 사건들이 공중에 담배 연기처럼 고리를 형성하였다. "소고기 먹다 머리에 마블링이 끼기 전에" 확실하게 다시 한번 침을 꿀꺽 삼키며, 배추 포기에서 뿌리 잘라내듯, 화끈하게 포기해 버렸다!
그때, 케이씨님이 나타났다. 오색해까지 다녀오는 중이라고 했다. "그래 오색해가 어떻던가요?" 내가 물었다. "좋지요, 뭐," 간단명료한 대답이었다. 아래 사진은 케이씨님이 촬영한 사진이다.
<우유해: 케이씨님 촬영: 과연 빼어난 경치다!>
<오색해: 케이씨님 촬영: 역시 빼어난 모습이다.>
<호수 주변의 사람들을 보여주기 위해, 위의 사진 일부를 확대하였다.>
<에피소드 하나>
내려오는 중에 화장실에 들려야 했다. 마침, 칸이 몇 개가 놓여있는 화장실이 있었다. 그런데 화장실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듯 하였다. 잘 들어보니 맨 왼쪽 화장실에서 한 중국 남자의 말소리가 들렸다. 다가가서 들으니, 안에서 문을 잠갔는데, 밖으로 나가려고 해도 문을 열 수 없으니, 문 좀 열어 달라는 것이었다. 중국 화장실은 안에서 열리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밖에서 손으로 손잡이를 돌려 열려고 해도 열리지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한국인이다. 중국인을 부를테니, 기다리시오"하면서 큰길로 나왔다.
길가던, 좀 건장해 보이는 사람에게 사실을 말했더니, 알겠다며, 화장실로 갔다. 그러나 그 중국인도 화장실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더니, 그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큰길로 나오고 있었다. 그 사람이나 내가 큰 죄를 지은 듯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나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치는 줄 알았다. 어디서 "쾅" 하는 굉음과 함께, 화장실 문이 몇 미터 떨어져 나가 내동댕이쳐져 땅바닥에 쑤셔 박혔다. 참다 못한 그 사람이 구두발로 젖 먹던 힘을 다해 발로 차버렸던 것이다. 뚜벅뚜벅 걸어오던 그 사람은 내 앞에 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와, 미소 한 줄기를 나와 중국인에게 보내더니 유유히 사라졌다.
중국에서 화장실 안으로 문 잠그는 것, 아주 조심해야 한다! 남자이니까 발로라도 차서 박살을 내지, 여자이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제2의 이미자가 되어, "헤일 수 없이 수 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웠"을 것이다.
<내려 오면서 보이는 원주민의 집: 돌로 지어졌다.>
<원주민의 집: 흙으로 덮었다. 내부가 궁금했지만 볼 기회가 없었다.>
낙융목장까지 다시 걸어서 내려오는데는 2시간이 걸렸다. 여기서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숙소인 샹그릴라전에 도착하니 오후 6시 15분이었다. 길고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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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즉 5월 23일 다시 리탕으로 오는 중에 길에서 잠시 쉬었다. 자동차가 오지 않는 틈을 타서 중국인들이 길 가운데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어떤 중국인: 마이클 잭슨 말년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날 보고 어떡하라고! 차라리 날잡아 잡수쇼"하는 듯 하다. >
<다음은 "거니에쉬에샨"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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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후속편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애독자입니다 ^^ 시원시원한 사진뿐 아니라 꼼꼼한 설명과 재치있게 작성하여 주신 글들로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ㅎㅎ거니에설산에 이어 리탕시내 편까지~~ 기다리겠습니다~~加油!
하하하, 별말씀을!
정말 에피소드 애독자가 되었습니다~~ 사진과 더불어 설명을 자세히 적어주셔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야딩풍경구를 어떻게 구경을 해야할 지 판단이 서네요..감사합니다^^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니, 다른 면도 잘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유해
갈까 말까....!
요것이 제일 중요합니다...ㅎㅎ
우유해와 오색해를 목표로 해서 야딩풍경구를 구경하고 돌아왔습니다..
우려했던것과는 달리 목적지에 잘 도달하여서 그저 감사한 마음입니다^^
맛깔스러운 여행기 그 때를 회상하며 잘 감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핸드폰 사용비는 언제나 받나요? 하하!
화장실 문짝 대목에서 크게 웃었습니다.
전철안임을 깜박잊고ㅋㅋㅋ
감사합니다.
낙융목장산책 참좋은데... 야딩 참좋은데 진짜 아는사람만 아는 고산증세로 정말 슬로우 모션~~~~~ 저희는 돌틈에서 라면도 끓여먹었는데 케이씨님이 생각보다 많이 끓이고 타이밍이 안맞아서.. 진짜 3그릇먹었던 기억이..... 나름 계란도 넣어주셨었음..
야딩의 고산증세와 광경은 진짜 꼭 느껴보셔야 암.. ㅠㅠ
요즘에는 야딩에서 끓인 라면은 패스
관광객이 많아서 눈치 보임.....ㅎㅎㅎ
은아님이 혹시 남인도여행 조아조아님 룸메 이신가요 ? 여쭈어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