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를 노래
라빈 드라나드 타고르
내 진정 부르고자 했던 노래
아직까지 부르지 못했습니다
악기만 이리저리 켜보다 세월만 흘러갔습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고
말도 다 고르지 못했습니다
준비된 것은 오직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꽃은 피지 않고
바람만이 한숨 쉬고 지나갔습니다
나는 당신의 얼굴를 보지 못했고
당신의 목소리 또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아는 것은 오지 내 집 앞을 지나는
당신의 가벼운 발걸음 소리뿐입니다
내 집에 당신의 자리를 마련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아직 등불을 켜지 못했으니
당신을 내 집으로 청할 수 없습니다
나는 늘 당신을 만날 희망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당신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작가소개]
라빈 드라나드 타고르
Rabindranath Tagore(1861~1941)
인도 시인. 벵골 문에부흥(서벵골과 방글라데시 삼각주 일대를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 집안 분위기 탓에 11세 부터 시를 썼고 16세에 는 첫 시집 <들꽃>을 냈다. 초기 작품은 유미적이었으나 갈수록 현실적이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해졌다. 교육 및 독립 운동에도 힘을 쏟았으며 시집 <기탄질리>로 1913년 아시아인 처음으로 노밸 문학상을 받았다. 영국은 1906년 벵골지방을 힌두교 지역과 이슬람교도 지역으로 분활하여 인도의 반영운동을 완화하려 하였으나 인도인들의 저향으로 무산되었는바, 벵골 명문가의 자손인 타고르는 이러한 저항세력의 이념적 지도자였다.
벵골 명문가의 대성이라 불리던 아버지 더벤 드라나드의 15명의 아들 중 열네 째로 태어남 1877년 영국에 유학하여 법률을 공부하며 유럽 사상과 친숙하게 됨, 귀국 후 뱅골어로 작품을 발표하면서 영역하였다. 1891년 아버지의 명령으로 농촌의 소유지를 관리하면서 가난한 농민행활과 접촉하게 되어 농촌개혁에 뜻을 두었다. 아내와 딸의 죽음은 종교적 경향의 작품인 신에게 바치는 송가인 <기탄질리>를 쓰는데 영향을 주었다. 기탄질리는 인간과 신과의 관계 속에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감정을 노래한 103편의 연작시인바, 타고르는 1910년 출간한 이 시집으로 1913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세계 각국을 순방하면서 동서문화의 융합에 힘썼다. 뱅골분활 반대투쟁 때에는 이념적 지도자가 되는 등 독립운동에도 힘을 쏱았다. 그가 세운 학당은 1921년 국제적 바바라티대학으로 발전하여 오늘날 국립대학이 되었다. 뱅골지방의 옛 민요를 바탕으로 많은 곡을 만들기도 했으며 그가 작사작곡한 <자나 가나 마나>는인도의 국가가 되었다. 오늘날 간디와 함께 인도의 국부로 칭송받고 있다. 한국을 소재로한 <동방의 노래><패자의 노래>를 남겼는데. <패자의 노래>는 일제강점기인 1929년 일본을 방문한 타고르에게 동아일보 기자가 한국 방문을 요청하자 이에 응하지 못함을 미안하게 생각하며 <동아일보>에 기고해준 작품이다. 인도 역시 1947년 독립 때까지 영국의 식민지였다.
일제치하 때 한용운님이 읊은 '님의 침묵' 이 조국의 광복에 대한 의지와 신념을 노래한 내용이라는 해설이 유력한바,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작품인 위 '내가 부를 노래' 역시 영국에게 뻬앗긴 조국의 광복을 염원하는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정 부르고자 했던 노래는 '바라는 마음뿐 말도 다 고르지 못했고 아직 때가 이르지 못했다' 고 화자는 말한다. 이어 '당신을 내 집에 초대해야 하지만 내 집에 당신의 자리를 마련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아직 등불을 켜지 못했으므로 아직은 당신을 청할 때가 아니다' 고 탄식한다. 당신으로 묘사된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그 때 불러야 할 노래에 대하여 아직 가사도 다 쓰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토로한 작품으로 이해함이 옳을 듯하다. '나는 늘 당신을 만날 희망 속에 살고 있다' 는 화자의 마지막 대사가 매우 간절하고 절실하게 느껴진다. (삼해 생각)
첫댓글 감사합니다
무공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활기차게 건필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