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아버지가 기타를 사주셨다.
아버지는 여느 아버지와 다르게 아주 개방적이고 자유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는 절호의 기회를 내버리고, 기타를 배우지 못했다.
나는 음악적 재능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후회한다. 그래서 노인회관 노래 교실에 무척 열심히 다닌다.
단 한번도 결석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젊은 시절 류트와 오르간 연주자로 유명했다.
류트는 르네상스·바로크 음악에서 많이 쓰였던 현악기로 기타처럼 손으로 뜯는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말하려면 먼저 아버지 빈첸초 갈릴레이부터 끄집어내야 한다.
빈첸초도 류트 연주자·작곡가로 명성을 떨쳤기 때문이다. 빈첸초는 세속적인 성악곡 마드리갈과 기악곡 책을 여러 권 펴냈다. 그는 ‘카메라타’의 일원으로 고대 그리스의 연극과 음악을 깊이 연구했다.
그들의 연구 성과는 오페라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도 그 영향을 받았다.
아버지 빈첸초의 재능을 이어받은 아들 갈릴레오는 오르간 연주에 뛰어났다.
류트 연주 실력은 아버지를 능가했다고 한다. 아버지 빈첸초가 대위법(2개 이상의 독립적인 선율을 조화롭게 배치하는 작곡법)을 시도한 ‘류트를 위한 6개의 소품’을 아들 갈릴레오가 즐겨 연주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그의 가문은 전문적인 류트 연주자 집안이었다. 작곡가인 동생 미켈란젤로가 지은 ‘류트 독주를 위한 토카타’도 갈릴레오가 즐겨 연주했을 가능성이 크다.
교황청은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죄목으로 그를 재판에 회부했다. 종교재판 이후 가택연금을 당한 갈릴레오는 운동의 법칙을 실험하고 류트를 연주하는 것으로 말년의 위안을 얻었다.
임시로 안치된 갈릴레오의 주검을 피렌체로 옮길 때, 추종자들은 오른손 엄지와 중지 등을 빼냈다.
추종자들은 종교적인 성인으로부터 손가락을 채취하는 관례처럼, 갈릴레오를 과학의 성인으로 여겼음직하다.
그 손가락 2개가 유실됐다가 2009년 말 다시 발견됐다. 손가락 채취에 대해 과학자 정종구는 <눈으로 듣는 음악>에서
“류트를 연주한 손가락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고 했다. 천문학자 갈릴레오는 사라졌지만, 엄지와 중지는 남아 여전히 류트를 연주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