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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임길택 시비 옮기는 날/제가 경과보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경과보고
해광스님(일명 육잠스님)이 이곳 거창에서도 가장 오지인
가북 덕동 산중턱에 자리 잡으신지 21년 되었다.
워낙 차분하시고 마음이 고운 분이시지만
내 여기 있다 하면서 휘젓고 다니시지 않으셨기에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인품이 높으시고 도량이 넓으셨기에
사람들은 아름아름 스님 얘기를 듣고 찾아가게 되었고
그렇게 스님을 한번이라도 만났던 사람들은
마음 속 깊이에서 부터 스님을 존경하게 되었다.
스님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 호롱불로 생활하시면서
주위에 있는 나무 하나 풀 한 포기도 아끼고 사랑하셨다.
거처를 얼마나 정갈하게 유지하시는지
혼자 거처하시면서도 자세 하나 흩어지지 않는 생활을 하시는지
한번 이곳에 와본 사람은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비슷한 사람들은 서로를 당기는 지
탄광촌 아이들 등 주옥같은 글을 쓰신 임길택 선생님과도 친분이 두터우셨다.
평소에도 두 분은 편지로 주고받을 정도였고
임길택 선생님 암투병 말기에는 스님에 의탁해서 두곡산방에 거처하셨다.
그때 임길택 선생님이 해광스님을 위해 쓰신 시가 바로 여기 시비에 있는 것이다.
============================(전문)
( 스님 재산 )
장작더미에
기대어 놓은
지게와
작대기 하나
그리고
녹다만 눈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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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길택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10주년 되는 날
거창문학회, 거창작가회의, 창작동인 예장,
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
글과 그림
두곡산방
등등의 단체들이 뜻을 모아
스님이 거처하는 산방 앞 밭가에 시비를 세웠다.
그 시비의 나무를 스님께서 일찍이 준비해 두었고
그 형식과 내용도 다
스님이 준비하셨다.
단체들에서는 그저 경비 조금과 행사 당일 회원들이 참여하는 정도였다.
계곡을 꽉 메운 사람들
사람은 가도 그 향은 남는 법
그날
그 향을 쫓아 많은 분들이 모여서
시비를 세우고 선생님의 생전 모습과 뜻을 가슴에 새겨 넣었던 것 같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부터 불행한 씨앗이 자라기 시작했다.
(스님이 계신 산방 아래에 빈집 두 채가 있었는데
작년 늦은 때부터 천주교 신부를 파계한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되었다.
동생과 아내 이렇게 세 명이 그 집에 거처하게 되었는데
이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그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주위 땅들을 몰래 아름아름 사들이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산방 근처 모든 땅을 사들였다.
국선도 수련원을 만든다고..
원래 이 집 마당을 거쳐 산방에 가는데
마당에 송아지만한 개를 세 마리를 키워 사람의 접근을 막기 시작했다.
그래서 산방에 가기 위해서는 이제
산길을 빙둘러 돌아가야 한다.
농사를 짓는다고
스님께서 오랜 시간 애지중지하던
나무들을 함부로 베어내었다.
그리고 밤마다 이상한 음악을 틀어서
스님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조용히 정신적 도량을 키우시던 스님에게
치명적인 괴롭힘이었다.
치사해도 그렇게 치사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임길택 선생님이 암투병하시던 암자가 따로 있었는데
그곳에 가는 길을 나무담을 쌓아 출입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았다.)
견디다 못한 스님께서
"출가한 자로서 어찌 일반인과 싸우겠는가?
다 욕심이다.
중은 원래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닌데
내가 너무 오래 있었다."
하시면서 산방을 정리하셨다.
우리들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그 모든 것을 알리면 우리들이 불편해하고 우리들이 수고로울까봐
혼자서 조용히 정리하신 것 같다.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부랴부랴 찾아간 사람들에게
스님께서 쓰시던 물건들도 나누어 주시고
임길택 선생님과 주고받은 편지들도
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부에 맡기셨다.
남은 것은 임길택 선생님 시비인데
글과 그림 단체분들과 논의하시길 그곳에 그대로 두기로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나무로 된 시비라 비나 눈이 오면 덮어주어야 하는데
그걸 할 사람이 없어서 걱정이라고 하셨다.
거창지역 관련된 단체 사람들이 급히 모였다.
7월 3일이었다.
이곳에는 이제 관리할 사람이 없다.
산방을 산 사람들은 그저 별장처럼 쓴다고 하니
한 달에 한번 올까말까 하고
국선도 수련원을 만든 사람들은
그럴 위인이 되지 못할 것 같다.
마침 책읽는공원에 빈터가 있고 그 옆이 도서관이니
이리저리 임길택 선생님 시비가 서있기에
뜻도 맞고 그 의미도 살릴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뜻이고
그 시비와 깊은 관련이 있는 스님의 의중을 알아보고 결정해야 한다.
우리들은 이렇게 뜻을 모았다.
그래서 일요일(7/8)
여러 단체 사람들이 같이 모여 스님을 찾아뵙기로 하였다.
스님과 뜻이 한 곳에 모여지면
제안서를 만들어 군에 요청할 예정이다.
7월 8일
참가 단체 : 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 5인, 거창문학회1인, 거창작가회의 1인, 창작동인예장 1인, 푸른산내들 1인
스님은 우리의 뜻에 동의해 주셨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임 선생님 사모님께는 스님께서 연락하기로 했다.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어
뒷수습으로 모인 우리 모두는 가슴이 아팠다.
스님께서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으신 것 같았다.
군과 협의하였으나 여러 복잡한 법적 문제가 있을 것 같다.
도서관 옆과 거창초등학교 두 곳이 물망에 올랐으나
거초 경우 학부모위원회와 동창회 등 복잡하고 절차를 거쳐야 하고
기간도 오래 걸릴 것 같아
일단 녹색환경과 계장의 묵인 아래 조용히
우리가 마음 먹은 도서관 옆으로 옮기기로 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조만간 만들어질 시비 공원으로 옮기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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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 선생님. 이원수 선생님, 권정생 선생님, 이오덕 선생님
이어 우리 어린이 문학의 큰산이셨던
임길택 선생님
임길택 선생님 시비가 있던
거창군 가북면 내촌마을 덕동 두곡산방
이제 시비는 이곳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하산합니다.
7월 29일 일요일 오후 2시
이 산에서 하산합니다.
그리하여 오늘
뜻있는 분들 모여
시비가 서있던 자리를 기억하려합니다.
해광스님
임길택 선생님 사모님
글과그림
거창문학회
거창작가회의
창작동인 예장
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
그리고 임길택 선생님과 해광스님을 그리는 모든 분들
우리는 기억할 것입니다.
이 계곡의 물소리를 기억할 것입니다.
이 계곡의 엉겅퀴도 기억할 것입니다.
이 계곡의 풀색과 흙냄새를 기억할 것입니다.
이 계곡의 나무와 바람과 구름의 흔들림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임길택 선생님이 생전
해광스님과 함께 거닐며
오손도손 나누었던 이야기와
눈길 주었던 그 모든 것을 다
가슴에 담을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다들 울지는 않을 것입니다.
울지 않고 가슴에 또렷하게 새겨가며
채곡채곡 담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