陕西历史博物馆 (shǎn xī lì shǐ bó wù guǎn, 산시리스보우관) 5번, 24번, 27번, 527번, 610번 버스 이용 "翠华路(陕西历史博物馆)" 하차 (동절기) 9:00~17:30, (하절기) 8:30~18:00 매일 한정 인원 무료개방 (2시 이전 2500명, 이후 1500명)
서안시 소채동로(小寨東路)와 취화로(翠華路)의 교차로 입구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섬서역사박물관은 전체면적 7만여평방미터의 국가급 역사박물관으로 중국에서 가장 큰 규모와 가장 현대화된 역사박물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중앙에 위치한 건물은 2층 높이, 면적은 6㎢ 로, 원시시대부터 1840년 아편전쟁 중에 섬서성에서 출토된 각종 전시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서쪽에는 2500㎡의 주제 전시관이 있는데, 주로 실크로드 등 섬서성의 역사, 문화 등에 관련된 문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주요 전시품은 청동기, 도용, 금·은 장신구, 당나라 무덤 벽화 등이다.
동쪽에 있는 2555㎡의 역사문화전시관에는 주로 중국과 외국의 문화 교류를 주제로 한 전시품들이 있으며, 전국 각 성과 시의 문화 전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은 현대적인 시스템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전시관 내에는 문물보호 센터, 도서관, 다용도 학술보고실 등이 갖춰져 있다. 컴퓨터를 이용한 전시품과 자료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자동 조절 에어컨과 인공 조명시스템, 6개국어 동시통역 시설 등이 설치되어 있다.
## 민가의 고부
고씨집안의 반가(班家)로 명. 청시기 건축예술, 고가구, 전통문와 등을 관람 할 수 있고 회족거리와 이어져있어 소수민족 회족의 전통 양식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 데당부용원(레이저쇼)(따탕푸롱위엔)
대당부용원
환상적인 야경으로 빠져드는 곳 - 대당부용원
大唐芙蓉园 (dà táng fú róng yuán, 따탕푸롱위엔) 5,19,21,22,24,27,30,34,41,44,212,224,237,320,400,408,500,501,521,527,601,606,609,610,701,715,721,720,游4,游6,游8,游9 버스 이용 9:00~21:00 68위안
부용원은 본래 오랜 세월동안 명성을 떨친 황가의 어원으로서 천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 서안(西安)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안탑(大雁塔) 에서 가깝다. 수(隋)나라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약 1300년에 이르는 유서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어서인지 고풍스럽고, 깊이 있는 매력과 분위기가 물씬 풍기며 주변 환경의 아름다움도 일품이다.
오늘날의 부용원은 당나라 부용원 유적 위에 지어진 것으로 중국 최초로 성당(盛唐:당나라의 전성기)시기의 문화와 당대 시대상 및 생활상을 전방위적으로 속속들이 재현해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조선시대를 재현한 민속촌과 같은 위상을 지닌 곳이다. 볼거리도 많거니와 단순히 오락으로 즐기고 넘기는 눈요기 거리가 아니라 역사를 배우고, 현재와 미래를 사색할 수 있게 도와주는 즐거운 학습장으로 매우 유익한 관광지라 할 수 있다.
부용원 안에는 자운루(紫雲樓 ), 사녀관(仕女館), 어연궁(御宴宮), 방림원(芳林園), 황명구천극장(凰鳴九天劇場), 행원(杏園), 육익차두(陸翼茶杜), 당시(唐市), 곡강류음(曲江流飮) 등의 관람관들이 준비되어 있으며 다채로운 구성으로 "오감"(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체험을 할 수 있어 중국 서북 지역에서 단연 손꼽히는 테마공원이다.
특히 매력적인 야경으로 최근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밤 어스름이 찾아올 때면 부용원 중앙에 위치한 호수에서 분수처럼 물이 뿜어져 올라오고, 그 위로 레이저가 쏘아지며, 수면 위에는 세계 최대규모의 수막(水幕)영화가 펼쳐진다.
화려하고 몽환적인 야경은 관광객들에게 국제도시로 그 어느때보다도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당나라시대로 돌아간 듯한 환상적인 체험을 선사한다. 참고로 이 곳을 배경으로 촬영된 중국 드라마 "대당부용원"은 국내에서도 방영된 바 있다.
## 진시황릉 (차창관광)
진시황릉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진시황릉
秦始皇陵 (qín shǐ huáng líng, 친스황링) 기차역에서 녹색 306번 관광전용선 버스를 이용 40위안 (변동가능)
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황제 진시황이 여기에 묻혀 있다. 능묘는 37년간이 걸려 완공되었는데, 무덤의 둘레가 6㎞, 높이는 40m에 달한다. 무덤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야산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내부는 개발이 되지 않아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고 해도 내부는 볼 수가 없다. 진시황이 무덤을 설계할 때 훗날의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서 수은 등을 이용한 여러 가지 함정들을 설치해 두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그 비밀을 풀 수 없어 과학이 조금더 발전하여 그 비밀을 풀 수 있을때 발굴 한다고 한다. 따라서 진시황릉 까지 간다고 해도 내부에는 들어갈 수 없고, 밖에서 사진 촬영을 하거나 릉 위에 오르는 정도의 관광을 할 수 있다. 요새는 릉 주변을 아름다운 공원으로 만들어 미니 전동카나 마차로 릉 주위를 돌거나 공원 주변에 전시해 놓은 옛 유물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
진시황 병마용갱
죽은 진시황을 지키는 진시황 병마용
兵马俑 (bīng mǎ yǒng, 빙마용) 기차역 입구에서 306번 버스나 7번 관광버스를 타면 병마용갱까지 바로 갈 수 있으며, 요금은 5위안이다. 08:30~17:30 90위안(12월-2월까지는 65위안)
병마용이란 흙으로 빚어 구운 병사와 말을 가리키는데, 불멸의 생을 꿈꿨던 진시황이 사후에 자신의 무덤을 지키게 하려는 목적으로 어마어마한 규모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꼽힐 만큼 거대한 규모와 정교함을 갖추고 있다. 서안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약 30km, 진시황릉에서 북동쪽으로 1.5㎞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74년 중국의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했고, 그제서야 세상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현재에도 발굴이 진행중이다. 현재까지 3개의 갱이 발견되었으며 700여개의 실물 크기의 도용(陶俑)과 100개가 넘는 전차, 40여필의 말, 10만여개의 병기가 발굴되었다. 병기들 대부분이 실제무기이며 현재는 창고에 보관 중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도용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자세와 표정, 복장, 헤어 스타일을 갖고 있어 그 섬세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병마용갱은 총 3개의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1호갱은 당시 농민이 처음 발견한 것이고, 후에 2, 3호갱이 발견되었다.
1호갱은 세 곳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동서 길이가 약 230m, 남북으로 약 62m로 총 면적이 12㎢ 정도이다. 1호갱은 동서 쪽을 향한 긴 모양으로 장군과 병사가 배열되어있고, 2호갱은 면적이 약 6000㎡이며, 보병과 기병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2호갱은 발굴이 되고 있는 상태에서 전시되어 있다. 3호갱은 면적이 520㎡으로 凹모양이며, 병마용들은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역시 현재까지도 발굴 작업이 진행중이다. 학자들은 발견된 3개의 갱 외에도 진시황릉 근처에 아직 발굴되지 않은 더 많은 병마용갱이 묻혀 있을 거라고 보고있다.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대규모의 당나라 왕실 원림이다. 고대부터 수려한 풍경과 질좋은 지하 온천수때문에 역대 제왕들의 관심을 받아왔던 장소이다. 화청지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는데, 일찌기 서주(西周)시기, 주유왕(周幽王)이 이곳에 려궁(驪宮)을 지었으며, 후에 진시황과 한 무제도 이곳에 행궁(行宮)을 건립하였다. 특히, 당 현종 천보년간에 건설한 궁전누각이 가장 화려하며 이때 정식으로 "화청궁(華淸宮)"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당시(唐詩) 중에는 화청지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는 시가 비일비재할 정도로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했다.
화청지 동쪽구역에는 정말약(郭沫若)이 쓴 "화청지" 금자편액이 걸려있으며, 구역 내에는 하화각, 비하각, 오간정(1936년 서안사변 당시 장개석이 머물던 곳) 등의 건축물이 있다. 그 중 온천석벽에 있는 <온천송비(溫泉頌碑)>는 중국 비석예술 중에서도 우수한 예술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중앙구역에는 당 화청궁 어탕유적박물관이 있으며 연화탕, 해당탕, 태자탕, 상식탕, 성진탕 등의 당나라때 현종과 양귀비가 온천을 즐기던 탕과 문물 진열실이 있다.
화청지 온천의 수질은 매우 깨끗하며, 수온은 항상 43℃를 유지한다. 다량의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어서 관절염, 신경통 등에 효과가 있다. 또한 매일 육각정 무대 앞에서는 당나라 시기를 재현한 공연이 열린다.
## 진시황 지하궁전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고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진시황릉의 내부를 가상으로 꾸며놓은 공간
## 화산
화산
중국의 오악(五岳) 중 하나인 화산
华山(huá shān, 화산) 서안 기차역에서 투어버스 旅1路 탑승, 华山索道 하차 100위안 (비수기 50위안) 케이블카 이용 편도 60위안, 왕복 110위안
화산은 섬서성의 성도인 서안에서 동쪽으로 120km 떨어진 화음시(華陰市)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옛날에는 태화산(太華山)이라고 불렸었다. 해발 2200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며 중국 국가급풍경구로 지정되어있다.
화산은 중국의 유명한 오악(五岳) 중에 하나로 산세가 험한 편이다. 구불구불 굽어진 12km길이의 등산로는 도처에 깍아지른 듯한 절벽들이 있어 옛부터 화산에는 하나의 길만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화산의 오봉(五峰) 중에서도 동봉(東峰/朝陽_조양봉이라고도 불림), 서봉(西峰/蓮花_연화봉이라고도 불림), 남봉(南峰/落雁_낙안봉이라고도 불림)이 비교적 높은데, 동봉은 조양대라 불리는 전망대가 있어 새벽에 일출을 볼 수 있으며, 또한 이 전망대의 이름을 따서 조양봉이라고도 불린다. 서봉은 봉우리 정상의 취운궁 앞에 있는 거석의 모양이 마치 연꽃과 비슷하다고 하여 연화봉이라고도 불리며, 남봉은 화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써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옛날 이 남봉의 정상에 있는 노군동(老君洞)에 도가(道家)의 시조인 노자(老子)가 은거했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중봉(中峰/玉女_옥녀봉이라고도 불림),과 북봉(北峰/雲臺_운대봉이라고도 불림) 두 봉우리가 있으며, 이 옥녀봉과 운대봉에도 이름과 관련된 전설들이 내려오고 있다.
화산에는 명승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사당, 누각, 암벽조각 등은 산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으며, 화산에서 비교적 유명한 고적들로는 옥천원(玉泉院)과 진무궁(眞武宮), 금천궁(金天宮/백제사) 등이 있다. 화산에서 북쪽으로 7km떨어져 있는 서악묘(西岳廟)는 옛날 서악화산(西岳華山)의 신에게 제사지내던 사당이다.
## 계림시내
## 비림
비림
비석들이 모여 이루어진 숲 비림
碑林博物馆 (bēi lín bó wù guǎn , 베이린 보우관) 14번,402번 버스 이용 박물관역에서 하차 8:00~18:45 (하절기), 8:00~18:00 (동절기) 30위안-45위안 (변동가능)
서안의 삼학가(三學街)에 자리잡고 있는 섬서성 비림박물관 내에 위치하고 있다. 북송 철종(哲宗)년간(1090년)에 처음 지어져 현재까지 9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비림은 현재 7개의 대형 진열실과 8개의 회랑 그리고 8개의 비정(碑亭)에 한대부터 청대까지 2300여 개의 비석을 수장하고 있으며, 그 중 1000여 개를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전서,예서, 초서,행서 등의 각종 서체를 비교할 수 있으며 유명 서예가들의 필체를 직접 감상할 수 있다.
비림은 중국 고대 서예 예술의 보고이자 고대 문헌서적과 비석의 조각 도안 등이 집대성되어 있는 곳으로, 대외 문화 교류의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유적지이다. 서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꼭 가볼만한 곳이다.
대안탑은 서안시내에서 4km 떨어진 자은사(慈恩寺) 내에 자리잡고 있다. 자은사는 648년 당대 황제 고종이 어려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만든 절로 현재의 모습은 청대에 재건축한 것이다.
대안탑은 중국에서 유명한 불탑 중 하나로, 652년에 당(唐)나라 현장(玄奬)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과 불상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7층의 누각식전탑으로 총 높이가 64m에 기반부 둘레는 25미터이다. 외부는 벽돌로 지어졌지만, 탑 내에는 나선형의 계단이 있어서 걸어 올라갈 수가 있다. 매 층의 사방에는 각기 하나의 아치형 문이 있어서 먼 곳까지 내려다볼 수도 있다. 그리고 당대의 두보 등 많은 저명한 시인들이 대안탑에 올라와 본 후 많은 문구들을 남겼다.탑 내부로 올라가는 데에는 따로 입장료를 받고 있다.
또한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당대 중엽에는 진사에 급제하면 먼저 곡장(曲江), 행원(杏圓)에서 잔치를 한 후에 대안탑에 올라와서 탑 벽에 기념 친필을 남기는 것을 대단한 영예를 여겼다. 유명한 당대시인인 백거이(白居易) 역시 진사에 합격하고 난 후, "자은탑에 친필을 새긴 17명 중 가장 어린 사람이다.(慈恩塔下題名處, 十七人中最少年)"라는 유명한 귀절을 남겼다.
## 로마시거리
## 종루야경
종루
가장 보전이 완벽한 명대의 건축, 종루
钟楼 (zhōng lóu, 종로우) 시내 대부분의 버스가 종루를 지나므로 "钟楼"라고 씌여있는 것만 잘 골라 타면 된다. 남문에서는 도보 10분 27위안, 고루와 통합패스 40위안 2008 섬서성 관광의 해를 맞아 2009년 3월 30일까지 입장료 무료~!!(노동절, 국경절 기간 제외)
종루(鐘樓)는 서안중심에 위치한 동서남북 사방이 연결되어 있는 교통중심지역이다. 우리나라의 동대문이나 남대문과 비슷한 위치로 총 높이가 36미터, 총 면적이 1377.4 평방미터다. 서안의 종루는 중국에 남아있는 수많은 종루중에서 제일 크고 보존이 완벽하여 서안의 상징적인 건축물일뿐 아니라, 예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종루는 명태조 주원장 홍무제 17년인 1384년에 시간을 알리기 위해 건설된 것으로, 외관 3층, 내부 2층 정방형의 누각형태다. 처음 건축되었을 때는 지금의 서안시 광제가(廣濟街) 입구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명나라 만력 10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이 건물의 특징은 못을 사용하지 않고 건물을 올렸다는 것인데, 사면에 회랑이 둘러져 있고 내부에 계단이 있어서 올라가 서안시내를 둘러볼 수 있게 해 놓았다. 또한 누각 안에 보전되어 있는 종은 고대시대때 아침을 깨우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서, 새벽에 종이 울리면 종루의 문을 열고 저녁에 종이 울리면 종루의 문을 닫았다고 한다.
종루가 서안 중심에 위치해 있고, 종루를 기준으로 교통이 4방으로 통하기 때문에 이 주변에는 크고 작은 상점과 먹거리 장터가 열려 있다. 종루가 있는 곳은 8차선의 넓은 도로로, 종루에서 서안성벽까지 양쪽의 도로변에 새로 지어진 건물과 백화점, 은행,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고 성벽 왼편으로 고가(古街)가 펼쳐져 있다. 이곳은 북경의 유리창 거리처럼 그림, 옥, 도장, 장식품 등 고물건을 판매하는 상점거리인데 거리 끝에는 비림(碑林)으로 들어서는 문이 있다. 종루에서 이 거리까지는 대략 300미터 떨어져 있으며, 종루로 가는 버스를 이용하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 명대성벽
서안성벽
높고 두터운 서안역사의 상징
西安古城墙 (xī ān gǔ chéng qiáng, 시안구청치앙) 종루행 버스를 타고 종루 다음역에 하차 (하절기) 08:00~21:30, (동절기) 08:00~19:00 40위안 (2009년 3월 30일까지 무료)
서안성벽은 중국에서 보전하고 있는 건축물중에서 가장 완정한 고성중의 하나다. 전체 길이가 13.6km, 높이가 12m, 폭이 15m로 높고 두터운 고성벽이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성벽은 명나라 홍무제 3년에서 11년까지에 걸쳐 건설되었으며 그 역사가 이미 600년에 이른다. 고대 전쟁사를 보면, 이 성벽은 유일한 줄입통로로서 통치자에게 있어서는 방어를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성벽은 동서남북의 4개문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고, 주변에는 넓고 깊은 호성하(護城河)가 흐르고 정문에서 시작되는 정로를 가로지르는 조교(弔橋)가 놓여있다. 1982년 7월에는 섬서성정부의 주창아래 서안시민 몇십만명이 힘을 합쳐 독특한 풍격의 환성공원(環城公圓)을 조성했는데, 성 정상부분에는 조그마한 화원을 여러개 만들어 놓았다. 서안성벽은 단지 역사적인 건축물의 의미를 넘어서 공원과 성, 길, 물이 어울어진 공원이 조성됨으로서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서안성벽은 입장료를 받고 오를 수 있게 되어 있으며 넓은 성을 둘러보게 하기 위해 모형전동차도 운행한다. 더운 여름 저녁에는 이곳에서 더위를 식히는 서안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기도 한다.
** 교자연
교자연
다양한 교자의 잔치, 서안교자연
西安饺子宴 (xī ān jiǎo zi yàn, 시안지아오쯔 옌)
교자연은 서안시 해방로에 위치한 교자관(餃子館)에서 처음 만든 것으로,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남북의 교자를 모두 모아 놓은 것이다.
우리가 보통 '만두'라 부르는 속이 들어간 전병쌈을 중국에서는 '교자'라 부르며, 정작 중국에서의 만두는 속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밀가루떡을 말한다. 토지가 비옥한 남방에서 쌀을 주식으로 먹는 반면, 척박하고 추운 기후의 북방에서는 밀로 만든 국수나 만두, 교자를 즐겨 먹었다. 지금은 지역에 상관없이 누구나 좋아하는 전통음식이면서도 별미가 되었는데, 중국인들은 춘절(설날)에 가족끼리 교자를 빚고 찌어 먹음으로서 새해를 맞는다.
돈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중국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교자라는 음식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반달형의 교자모습은 옛날 돈의 모습과 유사한데, 고대부터 돈을 좋아하던 중국인들이 음식을 돈의 모양처럼 만들어 먹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설날에 교자를 가족끼리 만들어 먹으면서 일부러 동전을 몇개 넣어 두는데, 그 동전을 깨무는 사람에게 돈복이 온다고 믿는다고 한다.
북경의 유명한 훈둔(만두국)부터 광동의 얌차에 이르기 까지 교자의 모습과 맛, 재료가 각양각색인데, 고기, 야채, 버섯 등의 다양한 재료와 물고기, 꽃, 나비 등의 다양한 모양의 교자를 찌거나, 삶거나, 굽거나, 튀겨서 내 놓는다. 이런 다양한 교자의 종류가 180여 종 이상이라고 하니, 역시 음식의 천국은 중국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서안의 한 음식점에서 시작된 서안의 교자연은 이미 2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해외 관광객에게까지 그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넓다란 대륙 곳곳에서 맛볼 수 있는 다양한 교자의 맛들을 이곳 서안에서 한번에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첫댓글 양귀비가 즐겼던 온천에 저도 한 번 푸욱 담궈보고 싶네요.
함께 가시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