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순례
수동 성 안나 성당
신성근 신부(성사전담사제)
「우암산을 등지고, 어릴 적의 신앙을 품은 집」
청주 시내에도 예전에 비해 성당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는 성당은 하나뿐입니다.
제게 그곳은 수동 성 안나 성당입니다.
놀이터 같았던 마당,
복사하며 오르내리던 제대,
처음으로 성체를 모셨던 떨림,
그리고 신부님의 권유에 이끌려 소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던 자리.
그 모든 시작이 이곳이었습니다.
메리놀 선교사의 땀으로 세워진 성당
수동 본당은 1964년 9월 6일 서운동 본당에서 분리,
청주에서 3번째로 설립된 본당입니다.
그리고 성당은 1965년 9월 26일 착공,
1966년 8월 15일 봉헌되었습니다.
이 성당은 함 제랄드 신부님의 헌신 결정체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에 계신 부모님의 재산과
신부님 개인의 모든 것을 털어 지은 성당입니다.
우리나라가 아직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기,
교회 역시 넉넉하지 않았던 때에
자신의 것을 내어놓아 세운 성전입니다.
이 사실은 결코 잊혀서는 안 됩니다.
이 벽돌 하나하나에는
선교사의 기도와
낯선 땅에서 흘린 땀이 배어 있습니다.
그들의 희생 위에
오늘 우리의 신앙이 서 있습니다.
내덕동과 서운동 사이, 우암산을 배경으로
이 성당은
내덕동 주교좌 성당과
서운동 예수 성심 성당
그 중간 지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뒤로는 우암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도시의 길을 마주합니다.
한때는 기차역이 가까웠고,
시청이 길 건너에 있었으며,
도시와 시골의 정서가 묘하게 교차하던 공간이었습니다.
지금은 도심 공동화로 고령화가 진행되었지만,
성당의 고요함은 여전합니다.
조용하지만 깊은 성당
지금은 청주가 발전하여 확장된 도시지만,
예전에는 내덕동 주교좌 성당에서 서운동 성당으로 가는 중간,
곧 청주 시내 가운데에 자리했습니다.
청주 시내 공동화 현상으로 어르신들이 많지만,
비어 있지 않습니다.
가볍지 않습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누구나 오며 가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자리.
성 안나의 이름처럼
앞에 서기보다 뒤에서 품어 주는 성당입니다.
어른이 되어 다시 찾는 성당
저는 종종 생각합니다.
어느 성당이든
어린 시절 다녔던 그 성당을
어른이 되어 다시 방문했을 때,
그 안에는
예전 정서와 신앙의 향기가 보존되어 있어야 한다고.
건물이 세월의 흔적을 보이고,
제대의 방향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 공간이 지니고 있던 기도와 기억이
그대로 숨 쉬고 있어야 한다고.
성당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세대의 믿음이 켜켜이 쌓인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수동 성 안나 성당은
선교사의 희생과
우리 교회의 어려웠던 시절의 눈물과
수많은 신자의 봉헌이 겹겹이 쌓인 집입니다.
「감사와 경외의 마음」
이 성당을 대할 때
우리는 개발 논리나 효율성보다
감사와 경외의 마음을 먼저 가져야 합니다.
보존은 과거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은혜를 기억하는 방식입니다.
우암산을 등지고 선 이 조용한 성당이
앞으로도 오래도록
누군가의 유년을 품고,
누군가의 첫영성체를 기억하며,
누군가의 부르심이 시작되는 자리로 남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배어 있는
선교사의 기도와 땀을
우리가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