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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홍씨(당성홍)인주도령중랑장공파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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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 유적방 스크랩 <<몽려전쟁기의 살리타이와 홍복원>>
홍왕식 추천 0 조회 101 14.10.27 13:2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09.12[1970년 연세대 석사학위논문, 다시 손질해 재정리함]

[‘활무덤’ 인골 위에 놓인 활; 대흥안령 북부 훌룬부이르 몽골스텝 하일라르 샤라탈라 (Shara tala: 金山)묘지 9~10세기 실위(室韋)무덤 출토, 1998년 가을 발굴. 장지우허(張久和) 내몽골대 교수 제공]

 

 

 

 

표지글[補遺]:

 

mbc 역사드라마 "무신(武神)"을 감상하며 다시

 

손질함

 

 

 

***방주(房主)가 이 드라마를 시청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전혀 인

 

기가 있을 수가 없는 본서에 대한 조회가 폭주하는 데에 깜짝 놀라 의아해하

 

고 있는 차에 이를 접하게 됐다.

 

 

 

본서는 1970년에 쓴 방주의 석사학위 논문으로, 일반 독자에게는 조금도 흥

 

미롭지 않을 수가 있다. 사실의 고증과 검증이라는 측면에서는 논문심사시에

 

도 특출하다는 인정을 받았지만, 그 이외에는 아주 재미가 없는 무미 건조한

 

내용들로 일관된다.

 

 

 

그러나 방주는 고희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한눈 팔지 않고 이 분야(Mongol史)

 

만 연구해오며 그 역사의 복원과 서술에 고민해온 사람으로, 드라마에 대한

 

나름대로의 소회나 평론이 있을 수는 있다.

 

 

 

지면이 허락되는 범위 안에서, 지난 회까지 되찾아 보면서, 이런 글들을 메모

 

해 나가려 한다. 기왕에 본서에 관심을 가져준 시청자들게 감사드리는 의미

 

도 있다. 계속 주목해 주어도 좋겠다. 부족한대로 방주가 관계 시청자들의 이

 

야기 상대가 될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본서를 집필한 소회의 일단을 요약하면 이러하

 

다. 홍복원(洪福原) 일가는 개전초기에, 이성계

 

(李成桂)일가는 몽ㆍ려전쟁  말기에 각각 휘하

 

군병을 거느리고 몽골에 투항한다. 당시로서는

 

홍복원일가나 이성계일가나 모두 고려 조국을

 

배반하고 몽골에 투항한 대표적인 고려계 몽골

 

군벌가문이다. 물론 몽ㆍ려전쟁기 당시로 보면

 

홍복원 몽골군벌가문이 이성계몽골군벌가문을

 

비교도 안 되게 압도하는 거대세력이었다. 

 

 

 

 역사에 "만약에..."란 없다지만, 그러나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면 그런 역사적 상상력은

 

절대로 필요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만약에 이성계 고려계 몽골군벌 일가가 대도(大

 

都: 몽골제국 수도 베이징)권력 자장권의 서해

 

북부지대에 기반을 두고 홍복원 고려계 몽골군

 

벌일가가 이에서 많이 벗어나 비교적 자유로우

 

면서 몽골리안 루트로 직통하는 동해북부지대에

 

기지를 확보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이성계장군

 

이 아닌 홍복원 장군이, 원ㆍ명교체기에 이씨조

 

선 아닌 홍씨조선을 창업했을 수도 있다.

 

 

 

그랬더라면 홍복원 태조의 후손 중에서 이성계

 

태조 후손 세종대왕과 같은 걸출한 성군이 나와

 

홍태조의 매국이력을 승화시켜 가문역사를 아주

 

다르게 썼을 수도 있다.

 

 

 

역사적 상상력을 무한히 발휘해 사실을 또다른

 

차원에서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도 때로는 필요

 

할 수 있다. 그럴 자유가 없는 역사과학은 곧잘

 

광신적 교리의 역사적 합리화를 추구하는 허구

 

의 역사를 양산해갈 수가 있어서다. 이는 물론

 

새역사를 창조해가는 작업과 절대로 무관할 수

 

가 없다.

 

 

 

이씨조선 왕조가 창업돼 500여년 왕좌를 지켜

 

오면서 홍복원 장군일가는 오랫동안 지하로 숨

 

어들어갔다. 남양홍씨일가들도 매국노일가라고

 

매도한 나머지 그랬는지 홍복원장군계 후예들

 

을 정통 남양홍씨족보에서 제적시켰다.

 

 

 

 

물론 상당부분의 홍복원장군 일가들은 원제국

 

하 그들의 기지였던 요양과 심양지역에 주로 남

 

아 살아오고 있겠지만, 한반도 한국에도 살아오

 

고 있음이 분명하다. 1919년에 남양홍씨 본보

 

출간과는 별도로 홍복원장군계들만 따로 떼어

 

낸 “남양홍씨세보”를 편찬해내서다(홍종학"남

 

양홍씨세보"大邱府 京町 一丁目 敬信館 1919).

 

 

이제 고려계 몽골장군 홍복원장군 일가와 이성

 

계장군일가가 그 후예들끼리 원탁에 마주 앉아

 

역사와 현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착각

 

투성이일 수도 있는 어느 부분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제대로 복원하고 무한히 자유롭게 해석

 

해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아직도 현지에서 살아숨쉬고 있음에 거의 틀림

 

이 없는 쿠빌라이칸의 직계 후손 제주도의 양왕

 

(梁王: Baljawarmir) 후손 “Borjigin 양씨”(梁氏)

 

들이다. 이들도 이제 생존용으로 편의상 오래

 

덮어써왔던 고ㆍ량ㆍ부 양씨의 후손 “제주 양

 

씨”란 허울을 벗고 제 몽골사람 민얼굴을 드러

 

내어 역사차원의 대내적인 몽ㆍ한수교도 이루

 

어내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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