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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야...느그이모가 이상하다..." " 왜? 엄마?" " 의사가 뭐라고 하는 디 무슨소리인지 모르겄다아..." " 뭐?"
작년 봄에 유방암 수술한다고 나에게 연락이 왔을 때 나는 어젯밤 꿈을 해몽하기 전이었다. 자꾸 엄마는 무슨 보자기를 싸고 막내이모는 끌어 댕기고, 자세히 보니 이모는 왠 아이를 업고 있었다. 꿈에서도 이모는 눈이 보이지 않았다. 눈꺼풀도 퇴화가 되어 뜨지도 못하게 딱풀로 붙인 것처럼 그렇게 맹인으로 우두커니 한 아이를 업고 보따리를 끌어 안은 모습을 꿈에 본 날 엄마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이른 새벽에 혼자 눈뜨고 혼자 밥 해먹는 세월이 십 수 년이 지난 지금에 덜컥 암에 걸렸다는 통보를 조카인 나에게 알려준 울 엄마나 울 이모는 가족이 모두 뿔뿔히 흩어진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라고 해야 되나 변변하게 내 세울 것도 없었다.이런 말하면 더욱 속상한 우리 외가의 족보다.
뭐하나 뼈대있게 출세한 사람 한 사람도 없는데다 그렇다고 돈이나 많은 집안이면 그럴 듯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돈없고 빽없고 아무것도 없는 집안에 지지리도 못 살때 울엄마 치마 잡고 잘 걷지도 못한 걸음으로 우리집에 처음 왔을 때 조카인 우리들에게 연탄불에 직법 밥을 해주시던 막내이모는 참 착하셨다.
앞이 안보인다고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은 우리 생각과는 정반대이셨다. 바늘에 실을 꿰어달라고 해서 드렸더니 다 헤어진 내의를 꿰메시고. 방실방실 웃으시면서 머리 빗겨주며 해 주던 옛날애기에 니 외할아버지가 첫 외손주라고 박하사탕 사준 애기며. 여섯살 때 목화솜으로 핀 꽃을 내가 그렇게 좋아해서 외삼촌이 한아름 따 준 애기며. 영세민이라고 동사무소에서 준 정부미로 가래떡을 뽑아 눈 오는 겨울날 노릇노릇하게 구워 헤헤대가며 같이 먹는 울 이모는 늘 부지런하게 움직이셨다. 일곱살 때 옻나무에 타서 벅벅 긁고 앉아 있는 나를 이모가 계란노른자로 덕지덕지 발라 준 그 애기들을 들으면서 몇 년을 그렇게 같이 살았다.
큰언니였던 엄마는 앞이 안보여도 글자는 배워야 한다면서 그래야 나중에 사람이 된다고 맹인학교에 나이가 서른이 넘은 이모를 맹학교에 입학을 시킨 후 돌아온 날 방바닥에 철퍼덕 주저 앉아 켁켁대고 꺼이꺼이 울으셨다. 부모복도 지지리도 못 만나더니 형제 복두 지지리도 없는 년이라고 했다.그 때 그 아픈 애길 하셨다. 이모 나이가 열 일곱인가 그 때 외할아버지가 남의 집 첩도 아닌 씨받이로 보내시더니 그 값을 외할아버지 노름빚으로 고스란히 넘어갔다면서 내 귀에 고함지르듯이 죽어서도 외할아버지는 눈 고히 못 감았을거라고 또 가슴치면서 울으셨다. 그 때 내 나이는 잘 기악이 안나지만 아마 중학생이었을 것이다. 나이 열 일곱에 씨받이로 팔려 간 이모 과거 애기는 울 엄마에겐 엄청 큰 비밀이었을텐데, 얼마나 서러우셨으면 방바닥을 두둘기면서 엉엉 우시던지. 큰 언니가 되서 제대로 앞 못보는 동생 앞날에 대한 건사를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이 나에게 그대로 전해왔었다.그 이후로 막내이모는 맹학교에서 점자도 배웠지만 안마도 배웠다. 졸업을 하면 안마사로 나간다고 방학하면 울 집에 와서 헤헤 웃으시면서 내 발을 요리저리 만지고 다리가 아플 땐 여길 저길 누르는 혈을 알려주기도 하셨다.그렇게 산 세월에 이 십년이 지난 지금에 막내이모가 덜컥 암에 걸렸다고 진단을 받은 날부터 그 후엔 툭하면 나 언제오냐고 조카인 나를 찾아 댄다고 얼른 오란다.다급하다.울 엄마의 목소리에도 물기가 어리고 있었다. 유일하게 조카중에 나 하나 여자다. 그럼에도 울 이모는 내가 딸처럼 생각하시나 보다.
가려니 아침부터 꾸물대던 날씨가 진눈깨비인지 눈인지 비인지 오락가락 싱숭생숭하다. 이모는 아직 눈이 하얗다는 것을 모른다. 물론 색을 모른다. 꿈도 목소리로 꾼단다. 이건 누구 목소리인데.. 언젠가 꿈에서 내가 그러더란다. " 이모? 이모방엔 왜 거울이 없어?" 본인의 얼굴을 한 번도 거울로 본 적이 없는 울 이모한테 내가 그렇게 물었다고 한다. 내가 꿈에서 보였다고 하지 않으신다. 네가 꿈에 들렸다고 지나갔다고 꿈 꾸는 애길 하실 때 그 먹먹함이 나도 짐작 못할 무채색으로 목구멍이 콱 맺혀었다. 나는 그 때까지 앞 못보는 사람은 꿈에선 볼 수 있디고 착각을 한 것이다. 아!. 꿈에서도 못 보고 소리로만 꿈을 꾸시는구나! 내가 몰라도 이모는 이미 그렇게 사신 세월이 결코 짧은 것이 아니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니 라디오에선 어디는 눈이 많이 내려 교통길이 혼잡합니다.여행이 있으시다면 잠시 미루시고 단단한 준비를 하시고 운행을 하시길 바란다고 낭랑한 어나운서의 목소리가 상냥하다. 나의 막내이모가 있는 곳엔 지금 폭설이 내리고 있단다.
찬 눈이라고 시럽다고 해도 창문 열어 자꾸 손을 내밀어 손바닥에 눈을 쌓일 정도로 눈 맞이하던 이모에게 오늘 가장 큰 눈으로 배웅을 해 주려나 보다.한 번도 흰색으로 날리던 눈을 보지 못한 울이모에게 느린 걸음같이 흩날리는 눈쌓인 도로에서 나도 달리기 시작했다. 나의 막내이모에게 . |
첫댓글 막내이모님 뵙고 오신건가요? 아름답고 착한 막내이모의 이쁜 조카 정자님~ 무사히 잘 다녀오시길....
호스피스병원에 계십니다..금요일날 또 찾아 뵈야지요..염려주셔서 고맚습니다..
가슴 미어지지 않도록 잘 잡아 매세요. 에구........
이모님은 어떠신가요. 기가 막히네요...
준비하라고 하시는 데...참 지나간 세월이 이렇게 무료할 수 있을까 ..생각도 듭니다..
내 마음에도 폭설이 내리네요.
돌아오는 길에 먼 산에도 눈이 많이 샇여 있더군요...미끄러우니 조심하세요...함께님
이모님의 아픔을 생각하며....정말 많이 악화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자님, 힘내셔요, 막내이모님께 마음으로라도 힘이 돼 주셔요,
고맙습니다...헤헤..웃어야지요..그래야 울 이모도 좋을 것 같습니다..
.... 눈길을 달려가실 정자님 ~~~
눈길을 타고 지금 돌아 왔습니다..좋은 날 되소서..
정자님과 작은이모님과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오늘 같이 추운 날이면 더 생각 나실 거 가토........
추우면 연탄에 이모랑 구워먹던 가래떡이 생각내요...헤헤..피터정님 건강하시구요...고맙습니다...
아픈 이야기를 담담히 해 주시는 정자님~! 힘 내세요!! 이모님의 선종을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참 좋은 오늘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