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uzzle of Conscious Experience; The Hidden Mind; by David J. Chalmers, sidebar by Francis Crick and Christof Koch; 10 page(s) We are at last plumbing one of the most profound mysteries of existence. But knowledge of the brain alone may not get to the bottom of it File size: 270 KB
번역원고 사이언스 올제 2004년 12월 호 게재
의식적인 경험의 수수께끼(the PUZZLE of conscious experience)
이제 우리들은 마침내 가장 심오하고 신비스러운 경험 중의 하나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러나 뇌에 관한 지식만으로는 그 신비스러운 바닥에 닿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내면세계의 주관적인 경험인 의식은 신경과학자들에게는 가장 커다란 도전 중의 하나이다. 뇌의 동작 방식과 의식에 관한 신경학적인 측면에 대한 상세한 지식조차도 왜 그리고 어떻게 인간이 자의식(self-aware minds)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설명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의식적인 경험은 가장 익숙하면서도 가장 신비스럽다. 우리가 의식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아는 것은 거의 없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떠한 것으로도 의식을 설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주관적인 관점에서 보면 뇌는 비교적 이해하기가 쉽다. 당신이 이 페이지를 볼 때 일련의 처리과정이 있다. 즉 광자가 당신의 망막을 두드리고 전기적인 신호가 시신경을 지나고 뇌의 여러 영역을 거쳐서 마침내 당신은 미소를 짓거나 당혹스럽게 눈살을 찌푸리거나 한마디 소견을 말한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주관적인 요소들이다. 당신이 그 페이지를 볼 때 당신은 그것을 인식하고 그 상과 단어들은 직접적으로 당신의 사적인 정신생활의 일부로 경험된다. 당신은 그 상의 색채와 모습에 대하여 생생한 인상을 느끼게 된다. 동시에 당신은 어떤 감정이나 사고가 생성되는 것을 느낄 수 도 있다. 그러한 경험들이 모여서 의식, 즉 마음의 내적 생활을 형성한다. 여러해 동안 의식은 뇌와 마음을 연구하는 과학자들로부터 비켜 있었다. 과학의 주된 견해는 객관성에 의존해야 하므로 의식과 같이 주관적인 어떤 대상을 수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심리학에서 지난 세기 초에 우세하였던 행동주의 운동은 외적인 행동에만 치중하여서 내적인 정신과정을 이야기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 인지과학의 등장으로 머리의 내부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은 여전히 출입금지구역으로 남겨져 있어서 밤늦은 시간의 술안주 정도로 치부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수년 동안 많은 수의 신경과학자, 심리학자 그리고 철학자들이 의식은 연구될 수 없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그 비밀을 캐 들어가기 시작했다. 새로 시작되는 분야에서 대개 그러하듯이 다양하게 뒤엉킨 이론들이 난무했고 기본적인 개념들이 종종 대립되는 형태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철학적인 사고가 지극히 중요하였다. 이 분야에 있어서의 관점들은 광범위해서 의식은 신경과학과 심리학의 표준적인 방법들로 설명될 수 있다는 환원주의적인 이론에서부터 우리들은 결코 의식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신비주의적인 입장까지 실로 다양하다. 나는 이들의 주장들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이들 모두에서 얼마간의 오류를 찾을 수 있고 진리는 이들의 양 극단 사이의 어딘가에 놓여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환원주의적인 입장에 대해서 말한다면 신경과학의 도구들은 비록 많은 것을 제공하기는 하였지만 의식적인 경험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으며, 신비주의적인 입장에 대하여 말한다면 의식은 새로운 종류의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이론의 상세한 국면까지 아직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면밀한 사유와 경험에서 나온 추론이 의식에 대한 일반적인 특성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그곳에는 새로운 근원적인 법칙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고 정보의 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가냘프고 어렴풋한 미명은 바로 의식에 대한 이론은 아마도 우주나 우리들 자신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관점에 있어서 놀라운 결과를 제시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운 문제들(The Hard Problem)
과학자들은 의식이라는 단어를 여러 가지의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다. 이 문제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먼저 이 용어와 관련되어 종종 모이게 되는 많은 문제들을 구분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나는 의식에 대하여 쉬운 문제와 까다로운 문제들로 구별하는 것이 유용하다는 것을 알았다. 쉬운 문제들이 결코 사소한 것은 아니며 실제로 심리학과 생물학에 많은 도전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쉬운 문제들은 중심부에 신비스러움이 자리 잡고 있는 어려운 문제들과 공존하여 있다. 의식에 관한 쉬운 문제들에 대하여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어떻게 사람은 감각 자극을 식별하여서 적당하게 반응할 수 있는가? 뇌는 어떻게 많은 다양한 근원으로부터의 정보들을 통합하며 그 정보들을 행동을 조절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가? 사람은 어떻게 자신의 내면의 상태를 말로 표현할 수 있는가? 이러한 의문들은 모두 의식과 연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은 모두 인식체계의 객관적인 기전과 관련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들은 인지심리학(cognitive psychology)과 신경과학 분야의 지속적인 연구가 이들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어려운 문제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뇌에서의 물질적인 과정이 주관적인 경험으로 나타날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난제에는 사고와 인식의 내적인 측면, 즉 주제와 관련하여 사상(事象)을 느끼는 방식들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서 우리들이 무엇을 볼 때 선명한 청색과 같은 시각을 경험하게 된다. 또는 멀리 떨어져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오보에의 소리, 강렬한 통증을 동반한 고통, 활기찬 행복감이나 사색에 잠긴 명상의 순간을 상상해 보라. 이 모든 것이 내가 의식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정말 신비스러운 마음이 발현되어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구별을 하기 위해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철학자인 프랭크 잭슨(Frank Jackson)이 고안한 사고 실험을 해보자. 23세기의 신경과학자인 메리를 가정해 보자. 그녀는 색각(color vision)과 관련된 뇌의 감각체계에 대하여 세계적으로 학계를 이끌고 있는 전문가이다. 그러나 그녀는 흑백의 방에서만 평생을 살아서 다른 색채를 본적이 없다. 그녀는 뇌에서의 생물학, 구조 그리고 기능을 포함한 물리적인 처리 과정에 대하여 알아야할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지식으로 그녀는 쉬운 문제, 즉 뇌가 어떻게 자극을 식별하고 정보를 통합하며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것과 관련해서 알아야할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다. 그녀의 색각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그녀는 어떻게 색상에 대한 명칭이 빛의 스펙트럼 상의 파장과 일치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메리가 색각에 관련된 중요한 어떤 것, 즉 적색에 대한 경험이 어떤 것인가를 알 지 못한다. 또한 뇌의 기능과 관련된 물리적인 사실로부터 추론될 수 없는 의식적인 경험의 어떤 부분들이 존재한다. 사실상 누구도 왜 이러한 물리적인 과정들이 의식적인 경험과 동반되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왜 우리들이 어떤 파장의 빛에 관한 정보를 처리하고 있을 때 우리들은 짙은 자주색을 경험하게 될까? 도대체 왜 우리들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무의식적인 자동인형은 그러한 과업을 동일하게 수행할 수 없는가? 우리들이 의식과 관련된 이론에 대하여 답을 알고 싶어 하는 많은 의문점들이 산적해 있다.
신경과학이면 충분할까?
나는 의식이 뇌로부터 생성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우리들은 주관적인 시각경험은 시각피질의 작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사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관련성 그 자체이다. 주관적인 경험은 분명히 물리적인 과정으로부터 생성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데이빗 첼머는 (David J. Chalmer)는 오스트레일리아 애들레이드대학교(Adelaide University)와 옥스퍼드대학교(the University of Oxford)에서 로우즈 장학생(Rodes Scholar)으로서 수학을 연구하였다. 그러나 의식에 대한 매력에 이끌려서 그는 다시 철학과 인지과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인디애나대학교(Indiana University)에서 이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애리조나대학교(the University of Arizona) 철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챌머는 ‘의식과 다양한 논문들(The Conscious Mind and numerous articles)’의 저자이다. ‘의식 그 어려운 문제를 설명하기(Explaining Consciousness: The Hard Problem)’는 이 논문에서 제안된 의견에 대한 반응을 첼머의 회답과 함께 모은 것을 출간한 책이다.)
신경과학과 심리학 분야에서 현재 진행 중인 의식에 대한 연구와 관련된 소동에 대하여 말할 것 같으면 이러한 신비는 이미 밝혀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자세한 연구가 수행될수록 거의 모든 현재의 연구는 단지 의식과 관련된 쉬운 문제에 대해서 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의식과 관련된 쉬운 문제에 있어서의 연구결과의 진전으로부터 유래한 환원주의적 관점의 확신은 그러나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샌디에이고 소재 새크생물학연구소의 신경생물학자인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과 캘리포니아공과대학의 크리스토퍼 코흐(Christof Koch)에 의해 제시된 가설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그들은 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대뇌 피질의 어떤 발진으로부터 생성되며 초당 40회 정도로 뉴런이 흥분되는 것과 동기화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크릭과 코흐는 이러한 현상은 예를 들면 색상이나 형상과 같은 하나의 인지된 대상의 서로 다른 속성들에 대한 것을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한 것들에 대한 정보는 각각 뇌의 다른 부분에서 처리되어서 하나의 전체적인 것으로 통합되어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두 조각의 정보는 신경세포들이 동기화된 흥분신호를 발생할 때 정확하게 하나로 결합된다. 이 가설은 아마도 정보가 뇌에서 어떻게 통합되는가? 하는 쉬운 문제들 중의 하나를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정보들의 통합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문제를 차치해 두고라도 왜 동기화된 발진이 시각적인 체험을 생성하는가? 이 질문은 이 가설로는 설명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사실 크릭과 코흐는 정말 어려운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아래의 상자 글 참조). 이러한 종류의 비판은 의식에 관하여 수행되고 있는 최근의 거의 모든 연구에 대하여 적용될 수 있다. 1991년 출간된 ‘밝혀진 의식(Connsciousness Explained)'이라는 책에서 철학자 대니얼 드닛(Daniel C. Dennet)은 뇌에서 어떻게 수많은 독립적으로 수행되는 정보처리 과정들이 하나의 인식된 사건으로서 통합된 반응을 나타낼 수 있도록 결합되는가에 대하여 고도로 세련된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왜 신경과학은 의식을 설명할 수도 있는가? 프랜시스 크릭과 크리스토퍼 코흐
우리들은 의식을 설명하는 문제에 있어서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접근법은 뇌에서의 정보처리 과정이 의식에 가장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므로 의식을 신경학적인 상관관계로 설명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의식과 가장 상관성이 높은 대뇌 피질에 분포하는 뉴런의 위치를 파악함으로써 우리들은 뇌의 다른 영역에 존재하는 뉴런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밝힐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우리들은 데이빗 첼머가 지칭한 어려운 문제, 즉 이들 뇌에서의 정보처리 과정으로부터 어떻게 주관적인 경험이 발생되는가? 에 대하여 완전하게 설명할 수 있는 핵심적인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비록 우리들이 그의 사고 실험의 어떤 부분에 대하여서는 열성적이지 않지만 첼머가 현재의 이러한 초보단계에서 용감하게 어려운 문제를 인지하고 여기에 초점을 맞춘 것에 대하여 지지를 보낸다. 우리들이 깨닫고 있는 것처럼 어려운 문제는 몇 개의 서로 작은 문제들로 세분할 수 있는데, 즉 왜 우리들은 다른 것을 경험할 수 있는가? 무엇이 우리들에게 청색의 푸르름과 같은 특정한 의식적인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가? 왜 주관적인 경험의 어떤 측면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이 불가능할까? 다른 말로 표현하면 왜 이러한 요소들은 사적인 경험으로만 머물까? 우리들은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어떤 하나의 해답을 가지고 있으며 나머지 두 문제에 대하여서도 어떤 추론이 가능한데, 있는 그대로의 신경학적인 표상(explicit neuronal representation)으로 알려져 있는 현상이 주제가 된다. 여기서 있는 그대로(explicit)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마도 이것을 가장 잘 정의할 수 있는 방법은 실례를 드는 것일 것이다. 얼굴의 모습에 반응하여 망막의 모든 신경절 세포는 흥분해서 TV화면의 화소(pixel)처럼 함축적인(implicit) 얼굴 모습을 재현해내게 될 것이다. 동시에 이들 세포들은 그 이외의 다양한 다른 그림자, 선들 그리고 입사광의 차이 등의 특징에 대하여서도 반응할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시각 피질의 고위 중추에 있는 어떤 일부의 뉴런들은 주로 얼굴 또는 특별한 각도에서 보이는 얼굴에 대하여 반응할 것이다. 그러한 뉴런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뇌에 재현해내는 것을 돕는다. 뇌졸중이나 뇌의 상해로 인하여 이러한 기능이 상실되면 그 사람은 얼굴을 얼굴로 인식은 하나 그나 그녀 자신을 포함하여 친숙한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실인증(prosopagnosia)에 빠지게 된다. 이와 유사하게 시각 피질의 어떤 부위가 손상되면 눈의 색각수용체에 결함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희고 검은 그늘을 볼 수는 있지만 색상에 대한 경험을 할 수 없게 된다. 시각 감각계의 각 단계별로 정보가 새로 수정되거나 추가되어서 기록되며 전형적으로 준계층적인 방법으로 저장된다. 망막의 신경절세포는 각각의 광점에 반응한다. 추체 시각 피질의 뉴런들은 선이나 가장자리에 가장 잘 반응하도록 발달되어 있다. 고위 중추로 갈수록 동영상에 더 잘 반응한다. 물론 고위 중추에도 얼굴이나 낯익은 대상에 반응하는 부위가 존재한다. 시각 피질의 고위 중추에는 전운동중추(pre-motor)나 운동중추에도 신경섬유를 보내고 있어서 말을 하거나 달려오는 자동차를 피하는 행동을 개시할 때 그곳에 있는 뉴런들을 흥분시킨다. 우리들처럼 챌머도 경험의 주관적인 측면은 각각 관련된 신경학적인 연계와 일치하는 뉴런들의 흥분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고 믿고 있다. 그는 색상을 본 적은 없지만 색상의 지각에 대한 전문가인 가상적인 신경과학자인 매리와 관련된 잘 알려진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을 기술하였는데 그러나 매리가 색상을 본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는 이유는 그녀의 뇌에 색상과 관련된 단어나 생각은 있지만 색상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신경학적인 표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우리들은 믿고 있다. 주관적인 시각 경험을 기술하려면 말로 표현하거나 행동으로 나타내도록 명령하는 뇌의 운동 중추로 정보를 보내야 한다. 이러한 전달 과정에는 항상 정보의 재처리 과정이 포함되어 있어서 명시적인 정보가 관련된 운동 중추의 뉴런에 의하여 표현되기는 하나 시각 중추의 어떤 단계에서 색각경험과 관련된 뉴런이 흥분되어서 표현되는, 있는 그대로의 정보(the explicit information)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주관적인 경험의 독특한 특성을 말이나 생각으로서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예를 들면 적색과 주황색 같은 주관적인 경험들 간의 차이를 전달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러한 것은 시각 피질의 고등 영역에서의 차이는 운동 중추의 계층에 있어서의 차이와 상관성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함의가 시사하는 바는 우리들은 어떤 의식적인 경험의 주관적인 특성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다른 경험들과의 차이를 설명할 수는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왜 우리들이 의식적인 경험을 하며 무엇이 우리들에게 어떤 특정한 경험을 하도록 하는가? 하는 나머지 두 가지의 문제는 보다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챌머 등은 개체가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과 관련해서 경험을 세상에 존재하는 근원적이고 새로운 특성으로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유형의 신경학적인 정보가 의식을 형성하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이 녹색의 푸르름과는 다른 청색의 푸르름에 관련된 어떤 유형의 정보를 생성하는 것일까? 이러한 문제들은 의식에 대한 연구에서 그 무엇보다도 더 어려워 보인다. 우리들은 의미의 개념과 관련된 또 다른 접근법을 선호한다. 어떻게 얼굴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뉴런이 뇌의 다른 부분으로 얼굴의 의미를 전송시킬 수 있을까? 이러한 특성은 관련된 개념을 명확하게 저장하고 있는 뉴런들 사이의 신경연접의 유형, 즉 세포들 간의 연결망과 분명히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이러한 연결망은 운동에 이르기까지 확장된다. 예를 들면 어떤 얼굴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뉴런은 그 얼굴을 가진 사람의 이름을 표현하는 뉴런과 그녀의 목소리를 저장하고 있는 뉴런들 그리고 그녀와 관련된 것들을 기억하고 있는 신경세포들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뉴런들 사이의 이러한 연상은 틀림없이 행동학적으로 매우 유용하며 달리 표현한다면 신체와 외부세계로부터의 반응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 어떤 의미는 사전이나 관계 데이터베이스(relational database)와 유사한 광범위한 연상의 그물망의 형태로 뇌피질에 분포하여 있는 이들 표상들 사이의 연결망으로부터 형성된다. 이들의 연결망이 다양해질수록 그 의미는 더욱 더 풍부해진다. 만일 우리가 이전의 상모실인증(象貌失認症, prosopagnosia) 환자에서 본 것처럼 이러한 사람 얼굴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뉴런들 사이의 신경연접에서의 출력이 차단되는 경우에 세포들은 사람의 얼굴에 반응하고 있지만 관련된 의미가 형성되지 못하며 그러므로 경험의 량은 감소하게 된다. 그 결과 얼굴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 얼굴을 인식하지는 못한다. 물론 일군의 뉴런에게 새로운 기능을 부여해서 뇌가 얼굴을 포함한 새로운 부문에 대하여 학습을 하고 이미 존재하고 있는 정보들과 새로운 부문의 정보가 연상작용을 하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통증과 같은 일부의 원시적인 연상 작용은 어느 정도는 선천적으로 타고 나지만 태어난 후에 살아가면서 좀 더 정교해진다. 챌머가 추정하는 바처럼 정보는 사실상 가장 핵심적인 개념일지도 모르겠다. 복잡한 정보망에서 뉴런들의 기능처럼 고도로 병렬적인 정보의 흐름에 대하여 연구하는 경우에는 보다 확실한 정확성이 요구된다. 어떤 의미를 생성하기 위하여 어떠한 특성의 신경망이나 어떠한 양상의 컴퓨터 모형이 필요한지를 결정하기 위한 시도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과정에서 의미와 관련된 신경학적인 근거를 추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의식에 관한 어려운 문제들은 그 이후에 전혀 새로운 양상으로 해답을 시사하거나 또는 문제 자체가 스스로 사라질 수 도 있을 것이다.)
(카니자의 삼각형(Kanizsa triangle)은 명백하게 착시현상을 유발하는데 관련된 정보를 저장하고 있는 뉴런들을 자극한다.)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은 샌디 에이고 소재 새크생물학연구소의 석좌연구교수(Kierkhefer Distinguished Research Professor)이다. 크리스토퍼 코흐(Christof Koch)는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의 인지행동생물학과의 석좌교수(Lois and Victor Troendle Professor)이다.)
이 이론은 우리들의 내면상태를 어떻게 언어로 표현하는가에 대하여 많은 것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고의 밑바닥에 왜 주관적인 경험이 깔려 있는가에 대하여서는 별로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없다. 여타의 다른 환원주의자들의 이론들처럼 데닛의 이론도 단지 하나의 의식에 관한 쉬운 문제에 대한 이론일 뿐인 것이다. 이들 쉬운 문제들 사이의 공통적인 특징은 모두 인지 기능이나 행동학적인 기능이 어떻게 수행되는가와 연관되어 있다. 이들 모두는 궁극적으로 어떻게 뇌가 자극들을 구분하고 정보들을 통합하며 보고를 하는 등의 과업을 수행하는가와 관련되어 있다. 일단 신경생물학이 합당한 신경학적인 기전을 밝히면 어떻게 기능이 수행되는지가 밝혀질 것이고 쉬운 문제들은 풀리게 될 것이다. 이와는 달리 의식과 관련된 어려운 문제들은 어떻게 기능이 수행되는가 하는 문제들보다 해결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비록 의식과 관련된 행동학적인 기능이나 인지 기능에 대한 모든 것이 해결 된다고 하더라도 왜 이러한 기능이 수행될 때 의식적인 경험이 동반되는 지에 대한 문제를 포함한 많는 신비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의문들은 어려운 문제들을 더욱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설명할 수 없는 괴리(The Explanatory Gap)
일부의 과학자들은 어려운 문제들을 풀기 위하여 물리적 설명(physical explanation)을 위하여 비선형동력학(nonlinear dynamics)이나 신경과학에 있어서의 새로운 발견 그리고 양자 역학(quantum mechanics) 등의 새로운 도구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도 여전히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애리조나대학교의 스튜어트 해머로프(Stuart R. Hameroff)와 옥스퍼드대학교의 로저 펜로저(Roger Penrose)의 제안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뉴런 내부에 존재하는 단백질 구조인 미세소관(microtubules)에서 발생하는 양자물리학적인 과정으로부터 의식이 생성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해머로프와 펜로저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러한 가설이 꼭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뇌가 어떻게 결정을 내리고 수학법칙을 증명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길로 우리들을 이끌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 이론은 어떻게 이러한 과정들이 의식적인 경험을 생성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설명을 하지 못한다. 사실상 단지 물리학적인 과정으로만 의식을 설명하는 어떤 이론들도 동일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우리들을 곤란하게 하는 점은 물리학적인 이론은 각각의 체계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고 그들의 다양한 기능을 어떻게 수행 하는지를 설명하는데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과학적인 문제들은 이러한 형식을 취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서 생명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신체적인 체계가 어떻게 번식하고 적응하고 대사를 하는지를 기술해야 한다. 그러나 의식은 이와는 전혀 다른 문제로서 단지 구조와 기능이 대한 과학적인 이해만으로는 의식을 설명할 수 없다. 물론 심경과학이 의식의 연구에 부적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서 신경과학은 의식적인 경험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대부분의 정보를 처리하는 뇌와 의식과 의 신경학적인 관련성을 밝혀 줄 수 있을 것이다. 신경과학은 또한 뇌의 특정한 정보 처리 과정과, 관련된 경험의 요소들을 상세하게 대응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왜 이런 정보 처리과정이 의식적인 경험을 생성하는가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우리들은 철학자 조셉 레빈(Joseph Levine)이 말한 물리적인 과정과 의식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 설명할 수 없는 괴리(the explanatory gap)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 성과의 도약을 위해서는 새로운 유형의 이론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난관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주목해야 할 점은 과학의 모든 실체들이 보다 본질적인 요소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물리학에서 시공(space-time), 질량, 서로 다른 물체 간의 전하, 이런 것들은 세상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요소로 간주되고 있으며 이들은 보다 단순한 어떤 요소로 환원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세하고 유용한 이론들이 이들 각각의 서로의 관련성을 근본적인 법칙으로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과 법칙들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며 미묘한 현상들을 잘 설명하고 있다.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는 참된 이론(A True Theory of Everything)
일반적으로 물리학은 우주의 모든 특성과 법칙들을 규정한 완전한 목록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물리학자인 스티븐 와인버거(Steven Weinberg)가 1992년 출간한 그의 저서 '궁극적인 이론에 대한 꿈들(Dreams of a final theory)'에서 물리학의 목적은 그 이론으로부터 우주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은 이론(theory of everything)'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와인버거는 의식과 관련된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은 시인하고 있다. 강력한 물리학 이론에도 불구하고 의식의 존재는 물리학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는 물리학이 최종적으로는 그가 의식의 주관적인 상호관계(objective correlates of consciousness)라고 지칭한 것, 즉 신경학적인 상호관계(neural correlates)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옹호하고 있으나 물론 이것으로도 의식 자체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식의 존재를 물리학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어떠한 물리학 이론도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는 참된 이론(a true theory of everything)이 될 수 없다. 그러한 궁극적인 이론은 반드시 추가적으로 근본적인 어떤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나는 의식적인 경험이 더 이상의 기본적인 어떤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근본적인 특성으로 고려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생각은 처음에는 매우 이상하게 여겨질 것이나 그 생각은 모순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19세기에 전자기적인 현상들이 기존의 원리들에 의해서는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 결과 과학자들은 전자기적 부하(electromagnetic charge)라는 새로운 기본적인 실체를 도입하여서 관련된 근본적인 법칙들을 연구하였다. 이와 유사한 논리가 의식의 문제에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기존의 근본적인 이론들이 의식의 문제를 포용할 수 없다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근본적인 특성이 존재하는 곳에 근본적인 법칙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그 법칙들은 경험을 물리학적인 이론의 요소들과 연관시키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식과 관련된 법칙들은 현재의 물리학적인 세계의 요소들을 거의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즉 이 물리학적인 세계는 당연하게 그 자체로서 닫힌계(closed system)를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또한 의식과 관련된 법칙들은 경험의 바탕을 형성하는 물리적인 과정에 어떻게 의존하는가를 결정하는 다리처럼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 설명할 수 없는 괴리(the explanatory gap)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이론은 두 가지 요소를 구비하여야 할 것인데, 즉 물리학적인 법칙들(physical laws)은 우리들에게 극소의 세계에서부터 우주적인 범위에 걸쳐서 존재하는 물리학적인 체계의 거동에 대하여 가르쳐 줄 것이며, 우리들이 정신물리법칙(psychophysical laws)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정신물리법칙들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경험과 연관되어 있는지를 밝혀 주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는 참된 이론(a true theory of everything)을 구성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이러한 궁극적인 이론이 등장하게 될 시점을 가정할 때, 어떻게 우리들은 그러한 정신물리법칙들을 밝혀 낼 수 있게 될 것인가? 이러한 목표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가장 커다란 장애 는 바로 자료의 결핍이 될 것이다. 내가 여기에 기술한 바처럼 의식은 주관적인 것이므로 이것을 다른 사람이 직접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이 장애는 되겠지만 막다른 골목은 아니다. 이러한 연구의 시발점으로서 우리들은 우리들 각자의 경험에 접근해서 이론으로 공식화하는데 사용될 수 있는 믾은 수집물을 축적할 수 있다. 또한 우리들은 아마도 그들의 경험에 대한 주관적인 기술을 간접적인 정보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철학적인 논쟁이나 사고 실험도 또한 중요한 기능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들은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들이 연구를 시작하기에는 충분한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러한 이론들은 확정적으로 검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과학 분야에 비하여 불가피하게 보다 추정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험자의 보고로부터 얻을 수 있는 증거들뿐만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을 강경하게 제한해야 할 이유가 없다. 만일 우리들이 동등한 단순성을 가진 다른 이론들에 비하여 수집한 자료들에 대해 더 적합한 어떤 이론을 찾았다면 우리들은 그것을 수용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들이 수집한 자료에 적합한 하나의 단일한 이론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어떤 이론을 시험하는 것이 가능성한지의 여부에 대하여 걱정을 하는 것은 다소 미숙한 태도라고 생각된다. 우리들는 신체에서의 정보 처리과정을 일상의 경험들과 연결시키는 고차원적인 연결 법칙을 탐색하는 것으로부터 연구를 시작할 수도 있다. 이러한 법칙의 기본적인 구조는 우리들이 무엇을 인식할 때 관찰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자료들을 하나씩 수집함으로써 우리들은 점차로 그 법칙에 대하여 어떤 행동을 할 수가 있고 또한 그 법칙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주로 주관적인 상태에서 일어나는 신체의 기능들이다. 이와는 반대로 어떤 정보가 직접적으로 행동이나 언어로 나타날 수 있는데 이런 경우에 이러한 정보는 대체로 의식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의식은 우리들이 각성상태(awareness)라고 하는 것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데, 즉 뇌에서 일어나는 정보 처리 과정은 언어와 신체 행동 등의 운동신경계 전반에 걸쳐 작용을 하게 된다.
객관적인 각성 상태(Objective Awareness)
이 개념은 사소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서 규정한 것처럼 각성상태는 객관적이며 신체적인 상태이지만 의식적인 것은 아니다. 각성 상태의 개념을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동물들이나 유아에게까지 확장시키기 위하여 보다 정교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아주 친숙한 경우에는 정신물리법칙의 초보적인 양상을 관찰하는 것이 가능한데 이 경우에 각성 상태가 되어 있으면 의식이 존재하고 또한 의식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각성 상태가 동반된다. 이러한 논지에서 보다 발전적인 단계로 나아가기 위하여 의식적인 경험에 존재하는 구조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자. 예를 들어서 시각적인 경험은 끊임없이 변해 가는 색깔과 모양과 양 상 그리고 정밀한 기하학적인 구조의 모자이크에 대한 인식으로 체험된다. 우리들이 시계에 존재하는 요소들에 대하여 인식이 미쳐서 그에 따라 어떤 행동을 하고 이들 구조물에 대하여 기술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시계를 형성하는 구조물이 뇌에서 형성된 정보와 직접적으로 대응되며 이 정보가 우리들의 객관적인 인식에 관여하는 뇌에서의 신경학적인 처리 과정을 통해서 작용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우리들의 색채에 대한 경험은 뇌의 시각 피질에서 처리되는 정보의 구조를 반영하는 내인성의 삼차원적인 구조(intrinsic three-dimentional structure)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화가들이 사용하는 색상환(color wheels)이나 색상표(color charts)의 형태로 표현된다. 색상들은 한 좌표축에는 적색에서 녹색에 걸쳐서, 그리고 다른 축에는 청색에서 황색에 걸쳐서, 그리고 또 다른 축에서는 흑색에서 백색에 걸쳐서 체계적인 형태로 배열된다. 색상환에서 서로 이웃하여 있는 색채들은 유사한 것으로 경험된다(100페이지의 그림 참조) 아직까지 충분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지각된 대상은 뇌에서 아주 유사한 형태의 표상을 형성하며 이러한 표상은 뉴런들 사이에서 복잡하게 3차원적인 형태로 저장된 전체적인 체계의 일부를 구성한다.
(시각 피질에서의 혈류의 변화는 현재 보이는 대상의 형태에 따라 피험자의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 준다. 이 그림의 상에서 색상 분포의 차이는 피험자가 수직 형태를 보느냐 아니면 수평 형태를 보느냐에 따라서 시각 피질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실험은 시각적인 인식에 신경학적인 관련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들은 구조적인 대응 원리의 기본 개념에 대하여 이렇게 고쳐 쓸 수 있겠는데, 즉 의식적인 경험 속의 구조는 인지된 정보 속의 구조를 반영하며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할 수 있다. 또 다른 정신물리법칙의 후보가 될 만한 가능성이 있는 것들 중의 하나로서 조직불변성(organizational invariance)을 들 수 있다. 그것은 동일한 추상적인 조직을 가지고 있는 신체 구조는 비록 그 추상적인 조직을 형성하는 재료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의식적인 경험을 생성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들의 뇌를 구성하는 뉴런들 사이의 정밀한 상호작용이 실리콘 칩(silicon chips)으로 재현될 수 있다면 우리들의 뇌에는 동일한 의식적인 경험이 생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생각은 논의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뉴런이 실리콘칩으로 대치되는 사고 실험에 의하여 논리의 정당성이 확실히 입증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아래의 상자 글 참조). 이런 생각에 내포된 중요한 의미는 언젠가 멀지 않은 장래에 의식이 기계들로 대치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의식에 대한 이론(Theory of Consciousness)
의식에 대한 이론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물리학의 근본적인 법칙들처럼 단순하고 우아한 일련의 근본적인 법칙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상기한 이런 법칙들은 근본적인 것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이들 법칙들은 열역학이나 운동역학(kinematics)과 같이 물리학에서의 거시적인 법칙들과 유사한 고차원적인 정신물리법칙들로 생각된다. 근본적인 법칙들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도 그것을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나는 추측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나라의 기초적인 정신물리법칙은 반드시 정보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보에 대한 추상적인 개념은 1940년대 매사추세츠공과대학의 클라우드 섀넌(Claud E. Shannon)이 제안한 바에 의하면, 대상들 사이에서 유사성과 차이점의 기초적인 구조에 의하여 구분된 상태의 집합들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들은 어떤 정보를 10비트의 이진수(10-bit binary code)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정보는 전압과 같은 물리량 등에 대응시킬 수 있으며 이들 물리량의 연속적인 변화는 전화선과 같은 경로를 따라서 전송될 수 있다.
(이 사고 실험에서 사과의 색은 적색에서 청색으로 바뀔지도 모르겠다.)
(합성된 두뇌에서 춤추는 퀄라이어(Dancing Qualia in a Synthetic Brain):
의식이 복잡하게 합성된 체계에서 생성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그 자체로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비록 이러한 체계가 구축되기까지는 수십 년 또는 수세기가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제대로 조직된 합성된 뇌는 사람에서처럼 의식적인 체험과 유사한 것을 실제로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간단한 사고 실험은 이러한 의문에 논리적인 정당성을 부여한다. 당신의 뇌에 있는 뉴런들과 같은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고 기능하는 체계가 실리콘칩으로 구축되어 있다고 가정해보자. 즉 각각의 칩들은 사람의 뉴런들과 동일하게 작용하며 주위의 요소들과 같은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결과 인공적인 합성뇌로부터 나타나는 행동은 당신의 동작과 동일하다. 이러한 경우에 당신의 경우처럼 여기에도 의식 이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 핵심적인 안건이다. 논의를 할 목적으로 여기에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여기서 우리들은 귀류법(歸謬法, reductio ad absurdum)을 사용하기로 하자, 즉 하나의 부정 명제를 가정하고 그것인 모순으로 귀결되는 것을 보기로 하자.) 이렇게 설정된 상황에서 당신이 적색을 보고 있을 때, 인공뇌는 청색을 경험하거나 또는 아무 것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들은 먼저 두 가지 경우에서 모두 사유가 선행한다고 가정하는 한 가지 경우를 생각하여 보자. 칩과 뉴런은 동일한 기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들은 적당한 인터페이스만 있다면 서로 호환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뉴런은 칩들로 대치되고 결국 많은 뉴런들이 칩들로 대치된 연속체를 가정해 보자. 이 경우에 이 체계의 의식적인 경험 또한 변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서 당신의 시각 피질에 있는 모든 뉴런들을 실리콘 칩으로 대치시켰다고 가정하면 당신은 원래의 대상으로부터 다른 의식적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즉 이전에는 적색으로 보였던 것이 이제는 자색으로 보인다. (또는 대치된 실리콘 체계가 전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연한 분홍색으로 보일 것이다.) 당신의 뇌는 당신의 정상적인 시각 피질로 연결되거나 인공적인 시각 피질로 연결되는 스위치를 통하여 연결되어 있으므로 당신은 스위치의 연결 상태에 따라 적색이나 자색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스위치가 계속적으로 전환되는 경우에는 당신은 적색과 자색 사이에서 춤추는 퀄라이어(qualia)라고 하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의식 상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뇌가 변한 것은 아니므로 스위치가 끊겼을 때 당신의 행동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당신이 무엇을 보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당신은 바뀐 것은 없으며 당신의 눈앞에는 두 가지의 색깔이 춤추고 있지만 당신은 적색을 보고 있으며 단지 적색만 보고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매우 비합리적이어서 인체와 유사한 조직과 기능을 가지고 있는 인공적인 체계가 사람의 뇌와 다른 의식적인 경험을 한다고 가정한 초기의 가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가설의 기각으로서 우리들은 반대 명제인 동일한 조직을 가진 체계는 동일한 의식적인 경험을 한다고 하는 명제를 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D.J.C.)
우리들은 또한 의식적인 경험 속에 구현되어 있는 정보를 발견할 수도 있다. 예를들면 시계에서 색채가 배열된 양상은 화면을 덮고 있는 화소와 유사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의식적인 경험에 구체화되어 있는 정보와 물리적인 처리과정에 나타나는 정보의 상태는 동일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서 색채 공간(color spaces)에 대한 삼차원적인 정보는 색감의 정보 상태와 뇌의 정보 상태가 직접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들은 이러한 두 가지의 정보 상태를 물리적인 처리화 과정과 의식적인 경험 내에서 동시에 구현된 하나의 정보 상태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보의 다양한 모습들(Aspects of Information)
그 결과 다양한 가설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는데 아마도 정보는 또는 최소한 어떤 정보들은 두 가지의 양상을 가지게 되는데, 즉 물리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의 두 가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가설은 물리적인 처리과정과 경험 사이에 가로놓여져 있는 근본적인 법칙의 상태를 기술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들이 의식적인 경험을 발견한 곳에 정보의 한 측면이 존재하며 이러한 정보의 또 다른 모습은 뇌에서 물리적인 처리 과정으로 구현되어 있다. 이러한 가정은 만족스러운 이론을 만들기 위하여 구체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가정은 예를 들어서 동일한 조직을 가진 체계는 동일한 정보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 이전에 언급하였던 원칙들과 잘 부합하고 있으며 우리들의 의식적인 경험의 다양한 측면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적어도 물리학자인 존 휠러(John A. Wheeler)가 제시한 정보는 우주에 대한 물리학에서 근본적인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포함한 다른 많은 이론들과 아주 잘 부합된다. 물리학의 많은 법칙들은 궁극적으로 정보의 형태로 제시되며 이러한 경우에 우리들은 물리학과 정신물리학 법칙들의 성과물들 사이에 원만한 조화가 존재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아마도 최종적으로는 물리학의 이론과 의식에 대한 이론이 하나의 거대한 정보 이론으로 통합될지도 모르겠다. 정보의 편재(遍在, ubiquity of information)에 의하여 잠재적인 문제들이 파생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온도계조차도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고 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이 질문에는 두 가지 답변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첫째로 우리들은 정보가 물리학적으로 처리되는 과정을 근거로 이러한 근본적인 법칙의 적용을 경험적인 특성을 갖춘 어떤 정보만으로 국한시킬 수 있을 것이고 둘째로는, 모든 정보가 경험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어서 복잡한 경험에는 복잡한 정보 처리 과정이 작용하고 단순한 정보 처리과정이 있는 곳에는 단순한 경험이 이 존재한다고 하는 견해를 다소 무리해서 수용할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비록 그 경험이 기본적인 색채감보다는 훨씬 단순하고 확실히 감정이나 사고도 동반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온도계도 경험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이러한 생각인 매우 낯설게 여겨진다. 그러나 만일 경험이 정말로 본질적인 것이라면 우리들은 그것이 확장되기를 기대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전술한 양자 간의 선택은 어떠한 견해가 보다 강력한 이론으로 통합될 수 있느냐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견해들 모두가 틀릴 수도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견해들이 우리들 의 뇌에서의 물리적인 처리과정과는 달리 우리들의 의식적인 경험의 보다 정교한 구조를 예측해 줄 수 있는 보다 강력한 가설로 진화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 연구가 성공한다면 우리들은 이 이론은 거부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만일 실패한다면 우리들은 또 다른 목표를 추구하게 될 것이며 새로운 근본적인 이론이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미래의 어느날 우리들은 거대한 마음의 신비를 밝히게 될 것이다.
The Hidden Mind(이미 고요한데 마음은 찾아서 무엇하리?) 번역 끝.
이 글이 선생님의 마음 속에 있습니까? 밖에 있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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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http://gene.postech.ac.kr/bbs/zboard.php?id=job&page=4&sn1=&divpage=2&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7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