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4일 일요일(42km, 214km)
< 고성 마라톤 대회 후기 >
매서운 한파가 전국을 강타했다. 서울 영하18도,
남쪽 끝인 고성대회장도 영하 11도. 제주도도 영하 6도.
15년 전 1월에도 올해처럼 한파가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마라톤을 시작하고 나서 채 2년이 되지 않은
2001년 1월 그날도 서울 아침기온이 영하 18도였다.
이번에 매스컴에서도 15년만에 강추위라고 하는걸보니 그때 그날을
기억하는 모양이다.
그날 알몸마라톤을 갔었다. 대회장은 강원도 평창. 그날 평창의 기온은
영하 27도였다. 영하 27도의 날씨에 옷을 홀랑벗고 팬티만 입고 달리는
10km 마라톤 대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치지 않고는 참가하기 어려운
마라톤 대회, 그날 남,여 합하여 50여명이 완주를 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알몸 마라톤 대회. 그 뒤, 여타 알몸 마라톤 대회가 있었으나
영하27도의 혹한에서 달리는 알몸 마라톤은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기를 바랄뿐이다. 왜냐하면 그날 2명이 병원에 실려갔으니까.
영하 27도의 기온에 알몸마라톤도 완주했는데, 이깟 추위야 하면서 고성으로
향했다. 마석 화도 도서관 옆에서 거북이님의 차를 이용하여 경춘선님, 영일만님과
4명이 함께 동행을 했다. 고성에 도착하니 8시 10분. 출발시간까지 1시간 20여분이
남아있다.
고성의 현재기온은 영하 11도. 서울의 영하 18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강한 의지를 곧추세웠다. 바람이 매섭다. 쏴~~하며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온몸에 찬기온이 느껴진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던 마라톤 신발속 발가락이 추위에 아렸다. 안되겠다 싶어
테이프를 잘라 신발 앞쪽에 붙였더니 조금 나은 것 같다.
정각 9시 30분에 출발을 했다. 출발해서 15km까지는 춥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다.
왜 그런가 했더니 바람이 뒷쪽에서 불었고, 또 병풍처런 둘러진 산들이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분좋게 달릴 수 있었다. 몇몇 주자들은 팬츠에 반팔로 달리는
러너들도 있었다. 생각보다 춥지 않다는 생각에 팔도 걷어올리고, 장갑도 벗었다,
끼었다를 반복했다.
그러나 맹혹한 한파는 없는게 아니고 잠시 잠복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15km 이후 맞바람이 불면서 앞면을 강타했다. 노출된 얼굴이 얼기 시작했다.
3km 정도 가니 앞면 근옥이 마비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러다가 쓰러져
동사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주자들도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본다.
20km를 지나니 얼굴 근육들이 굳어져 아리기 시작한다. 참고 달린다.
몇몇 주자들은 포기를 하고 버스정류장 부스로 들어간다. 엠블런스가 쉼없이
왔다갔다 한다. 달려야 맞는건지 멈추어야 맞는건지, 잠시 갈등을 하게 된다.
그러나 멈춘다고 한들 바로 엠블런스가 오늘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며
저체온증으로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영하 11도의 날씨에 강력한 바닷바람.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는 넘는 것 같다.
참고 달린다. 다른 주자들도 달리는데, 나라고 달리지 못할것도 없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목표기록은 대략 3시간 40분~~50분으로 잡았다.
그런데 출발하고 100미터쯤 가는데, 내이름을 불러서 뒤돌아보니 쥐띠친구 조경숙이다.
실력도 비슷해서 대회에서 자주 만나 동반주도 몇번 했는데, 오늘 하프까지 5분 페이스로
간다고 하여 잘 됐다 싶어 함께 동반주 하기로 했다.
2km를 5분 20초에, 4km를 20분 48초에 통과를 했다. 대략 5분 12초정도 되는 페이스다.
정확하게 페이스를 맞추기 위해 속도를 올리니 친구가 뒤쳐진다. 그래도 친구의 속도에
맞추어 6km까지 달렸다. 경숙이도 자기 페이스가 늦다는 걸 아는지, 동반주가 어렵겠다며
먼저 가라고 한다.
혼자서 조금씩 페이스를 올리면서 앞으로 나가는데 후미에서 출발한 330페메가 나를
추월하며 지나간다. 잘됐다 싶어 속도를 올려 330페메에 합류했다. 330페메는 포항에
사는 야생마 황중창님이 하고 있었다. 나하고도 잘 아는 사이인데, 그는 풀코스를
400회 이상 완주를 했고, 최고기록은 2시간 48분이다. 정말 잘 달리는 러너이기에
함께 달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합류를 했다.
페메를 따르는 주자들은 나를 포함하여 10여명이었다. 그러나 페메가 이상하다.
언덕은 너무 느리게 오르고 내리막은 총알같이 내달린다. 330이라면 대략 5분페이스로
일정하게 달려야 하는데, 오르막은 5분 30초 페이스, 내리막은 4분 30초로 달리는 것 같다.
뒤따르는 러너들이 소근 소근한다. 오르막은 너무 느리고 내리막은 너무 빠르다고.
그런데 오늘 페메를 맡은 야생마님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호흡이 너무 거칠다.
마치 억지로 페메를 따라가는 주자같은 모습이다. 자세도 부드럽지 못했고 얼굴 표정도
어두어 보인다. 감기에 걸린건가. 혼자 생각해본다.
대략 18여키로 미터까지 그렇게 함께 달렸다. 그리고 페메의 속도가 느려짐을 감지하고
앞으로 나갔다. 이후 페메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풍선을 날리고 포기를 한 것 같다.
20km까지 1시간 39분 53초. 하프까지 5분 페이스로 안착을 했다.
그러나 15km부터 불어닥친 매서운 바닷바람에 얼굴근육이 굳어지면서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완주가 관건이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후반에 걷지만 않으면
3시간 45분 정도는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계산을 했다.
이후 바닷바람과 맞서면서 때로는 받아들이고 때로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정말 모든것이 다 그렇지만 나쁜 상태로만 계속 진행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번에도
실감을 했다. 좋다가도 나쁘고 나쁘다가도 좋고, 그렇게 호불호가 반복되며 도전을
멈추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오늘의 마라톤 역시 맞바람이 불다가 어느 코스에선
뒷바람이 불고, 그렇게 몸을 얼게 했다가 녹였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나 34m 지점에서 38km지점까지의 코스에선 최악의 맞바람이 주자들을 흔들었다.
달릴레~~멈출레~~이 구간이 오늘의 하일라이트였다. 에너지가 소진되어가는
후반부에서 이런 최악의 조건을 만나면 견뎌내기가 쉽지가 않다. 더욱이 기록을
목표로 하여 중후반까지 치열한 레이스를 하여 에너지가 바닥에 이르는 러너라면
스스로 타협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될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행히 아직도 여력이 있어서 달리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래서 이구간에서 많은 주자들을 추월했고, 이후 마지막까지 일정한 페이스로
달렸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2km 남았다. 달릴만 하다. 맞바람도 없고 칼 추위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담한 해안선을 따라 줄곧 달리니 골인 아치가 보인다.
마지막 200미터를 남겨두고는 전력질주를 했다. 그렇게 해서 골인을 했다.
3시간 39분 12초. 훈련을 많이 못한 상태에서 영하 11도의 날씨에 매서운
바닷바람을 뚫고 달려낸 기록치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마라톤에
대한 열정이 식어 훈련을 게을리 했는데, 이제 고성 대회를 계기로 동아마라톤
대회를 준비해야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라톤은 역시 달릴때는 힘들고 어렵지만 달리고 나면 좋은 에너지를 얻게
되는 것 같다. 몸도 튼튼해지고, 정신도 맑아지고~~
이 좋은 에너지가 삶의 영양제로 승화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 기록 정리--매 10km >
50분 07초, 49분 45초, 54분 16초, 53분 41초, 11분 21초(2.195km)
계--3시간 39분 1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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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목표달성축하드립니다
수고많이셨습니다 힘!
마사달도 이제 출전을 해야지~~!
2012년도에 마사달과 함께한 고성마라톤이 생각나네. ㅎㅎ
수고 많으셨읍니다.
마라톤은 거져 얻어지는게 아니라는걸 절실히 느겼읍니다...힘
괜히 330에 걸어가지고 고생만 시킨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살짝드네.
경춘선~~힘
목표기록 보다 잘 달리셨으니 성공한 대회란 생각입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힘!!!
그러게요. 성공한 대회로 봐야겠죠.^^
그런데 마라톤을 완주한 것으로도 성공한 거겠죠.
완주한 모든 러너가 영웅이니까요. 무사이님 힘
추운데 수고 많으셨어요...알몸 달리기도 몇일전에 한것 같더라구요. ㅎ
추울때 알몸 마라톤은 자제를 해야 할 것 같아.
무모한 것보다는 건강이 우선이니까.ㅎ
역시 고수십니다. 매서운 날씨에도 다년간의 내공으로 슬기롭게 호기록으로 완주해 내시고. 힘!!!
고수는 무슨 고수? 그냥 열심히 달릴뿐이지.^^ 새벽~~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