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예술과의 조우 27＞ : 거창국제연극제(2024-08-03(토)＞

[흐르는 등불]

거창국제연극제(2024-08-03(토)>

1. <부정>(극단 이유는 있다)

가족 간에 벌어진 ‘성추행’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놓고 기억의 왜곡과 사건의 진실 그리고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묘한 갈등을 추적하는 연극 <부정>은 탄탄한 대본을 바탕으로 등장인물의 미묘한 관계가 하나씩 드러나는 방식을 통해 불편하지만 어디에서든 발견할 수 있는 인간적 문제를 탐구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성추행을 고발한 한 여성의 행동에 대해 형사인 아버지는 순순히 긍정한다. 하지만 아버지와 같이 근무하던 오랜 동료는 그러한 사태를 인정하기 어렵다. 아버지의 딸에 대한 오래 전 ‘성추행’을 추적하는 과정은 서로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때론 타인의 기억을 수용하거나 내면의 고통 때문에 왜곡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딸이 상담사와 경찰에 진술한 ‘성추행’의 기억은 그녀의 기억이 아니라 아버지의 동료가 어릴 적 겪었던 상처이었으며, 그것을 그대로 시인한 아버지는 아내의 죽음 이후 어린 시절 제대로 돌보지 못한 딸에 대한 상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문제를 추적하는 동료와 성추행에 대한 트라우마를 진실이라고 확신하는 상담사의 견해가 충돌하고 숨겨진 사실이 하나씩 개봉되면서 어쩌면 ‘성추행’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의 근본적 원인은 서로에 대한 증오와 사랑이 뒤섞인 감정적 혼란이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그러한 혼란스러운 사건의 진행 속에서 각자가 믿었던 진실의 실체가 때론 잘못된 단서와 확신적 편향에 의해 결정되고 있음을, 때론 자신의 기억이라는 것도 누군가에 의해 형성될 가능성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최소한의 등장인물을 통한 압축적이며 생생한 대결과 관계는 연극적 작업의 핵심을 제대로 보여준다. 연극이 때론 화려한 무대와 다양한 볼거리를 지향하는 추세가 강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연극의 핵심은 텍스트의 정교한 구성과 대사의 심층적인 매력이 잘 드러나야 한다는 점이며, 그런 텍스트의 매력을 배우들이 얼마나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불필요하거나 과장된 볼거리나 다양성이라는 유혹은 때론 연극의 본질을 잃어버리게 한다. 연극은 무엇보다도 텍스트의 명료하거나 매력적인 표현을 통해 삶의 진실을 찾는 작업이어야 하는 것이다.

* 나중에 신문기사를 검색해 보니 이 작품이 1등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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