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1월5일 며칠째 항해를 조금씩밖에 못하다보니 부산을 출발한지 8일이 되었지만 겨우 강원도를 들어섰을뿐이다. 오늘은 날씨도 좋으니 충분히 강릉까지 갈수 있을것이다. 아침일찍 항해를 준비하고 7시30분 임원항을 나섰다. 0.5-1미터의 파도가 있을것이라는 예보와는 달리 항을 나가자 마자 3미터가 넘는 너울파도가 계속 밀려오고 있었다. 백파는 없었다. 동해 파도의 무서운 경험을 해서 인지 별로 무섭지 않는 바다임에도 육지쪽에 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항로를 따라 부의나 그물등을 피해가며 조심스럽 게 올라갔다. 너울파도를 올라타고 넘다보니 속도는 약간 떨어졌지만 오늘은 충분히 강릉의 사천항까지 갈수 있을 것같았다. 올라가는 방향으로 정면에 가까운 바람을 받으며 메인 세일만 올리고 엔진을 가동하여 올라갔다. 부표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 앞을 견시하며 한시간정도 항해해왔을 무렵 잠깐 지도를 보기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을때 배 밑에 둔탁한 소리가 나는 동시에 배가 정지해버렸다. 무슨일인가 당황해서 좌우를 살피니 가로로 깔려있는 그물에 배가 걸리고 말았다. 이 정치망그물은 육지쪽에서 시작하여 200-300미터가 유도그물이 있고 바다쪽에는 고기를 가둘수있는 둥근 그물이 있는 것이다.총 그물의 길이가 450미터이고 마치호가 넘어간 그물의 로프는 지름이 8센티정도되는 유도그물의 메인로프였다. 불과 50미터 전에 봤을때 보이지 않았는데 걸려버린것이다.
다른 그물과는 달리 물속에 잠긴부분이 많아 잘보이질않았다. 어쨌든 킬과 라다사이에 굵은 로프가 걸려있고 부력으로 로프는 배밑바닥을 사정없이 훑고 다녔다. 배도 정지 상태가 되니 많이 흔들려 이제 어느정도 익숙해 져가는 아들도 다시 멀미를 시작한다. 철벽임을 자부하는 나의 속도 이상해졌다. 주위에 어선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아무리 불러도 관심을 가지는 배가 한척도 없었다. 로프에 배가 상처를 입는 소리가 뼈속까지 파고 든다. 배는 해류따라 북쪽으로 자꾸 떠내려갈려고하고 바람은 파도는 배를 남쪽으로 밀어댄다. 로프는 톱이 되어서 킬과 라다사이를 사정없이 톱질하듯 훑어댄다. 지금 배밑에는 도대체 어떤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참으로 답답하고 심란해진다.무전으로 도움을 청하니 해경과 연결이 되었다. 10시간 처럼느껴진 1시간 가량을 기다리니 경비정이 도착했다.
경비정은 1키로쯤 떨어진곳에 대기한체 지켜보고 있다. 경비정도 어 쩔수가 없다. 어장을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해서 나오고 있다고 하여 다시 1시간가량을 기다렸다. 배는 계속해서 상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어장로프에 양쪽으로 로프를 걸어 배가 좌우로 많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방법외에는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작업선을 기다리며 아무리 생각해도 빠져나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 엔진과 프로펠러가 작동하는 상태이니 이 밧줄만 물속으로 깊이 누를수만 있다면 뒤로 배를 물리면 간단한일인데 이밧줄의 압력이 엄청나 50센티도 누를수가 없다. 어떻게 이밧줄을 2미터 깊이로 누를 수 있단 말인가.......
어망을 관리하는 작업선에 어부아저씨들과 해양경찰이 같이 타고 옆으로 왔다. 그분들과도 아무리 얘기를 해봐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 경비정이 이 밧줄을 선수를 이용하여 눌러주면 그사이에 우리가 빠져나갈수 있다고 의견을 내어봤지만 잘못하면 경비정도 그물에 걸릴수 있어 힘들다고 한다. 그리고 어장관리하시는 사람도 그물을 누르면 밧줄이 터질수 있다고 못하게 했다. 만약에 줄이 끊어지면 어장이 다 망가지는데 그 비용이 몇억이 된다 과 했다. 작업선도 아무런 방법을 시도하지 못했다.
어쩔수 없이 아들이라도 데려 가라고 보내고 배에서 남아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방법이 없다. 줄을 물속으로 가라앉혀야 되는데 방법은 없고 해상 크레인이라도 불어 배를 들어 올려 꺼내려 하니 파도치는 바다에서 그것도 보통일이 아닌것 같다. 어쩌란 말인가 아무른 해결방법도 없다. 다시 해경 구조대가 온다고 한다. 또다시 2시간 가까이 기다렸다. 기다리는 것은 기다리지만 와도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것같아 답답했다. 여러사람이 의논하여 생각해낸 방법은 요트의 라다를 재거한뒤 앞에 로프를 걸어 배를 빼 내는 것이었다.
해경구조대가 도착하여 다이버가 물속으로 들어가 라다에 로프를 묶어 놓은뒤 라다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나 20년동안 쩔어 붙어 있는 볼트는 도저히 풀릴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예 꼼짝을 하지 않는다. 라다를 푼다는 것은 포기했다. 이제 아무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이제부터 어쩐다 도무지 앞이 보이질 않는다. 구조대는 일단 배를 놓아두고 나가서 의논 하자고 한다. 배를 놓아두고 어떻게 나가느냐고 남겠다고 하자 배에 있어도 뾰쪽한 수가 없으니 나가서 의논해보자고 해서 일단 장호항으로 작업선을 타고 돌아왔다.
장호항으로 들어와서도 아무리 생각해도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끝에 라다를 잘라내기고 하고 철공소 아저씨와 같이 용접기며 절단기 등를 실고 가기로 했다. 어장 작업선은 배크기가 맞지않아 요트가 다칠수 있으니 작은 선외기를 하나 구해서 타고 가자고 했다. 여기서 부터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벌써 시간은 오후3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라다를 제거할수 있는 장비를 몽땅실고 마치호로 갔다. 일반 배를 붙여 대고 작업할 아저씨와 둘이 요트에 올라탔다. 라다제거를 위해 몇번을 시도하던 아저씨는 나와 마찬가지로 포기했다. 20년동안 한번도 풀지않았던 것을 출렁거리는 배위에서 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것이다. 믿었던 아저씨마저 포기해버리자 또 다시 심란해졌다. 이제 어떡한다. 이제 어떡한다... 방법이 없다.
이때였다. 작은 선외기를 몰고 같이온 선장님이 일단 마치호의 뒷쪽에 로프를 걸어 뒤에서 당겨보자고 한다. 출렁거리다보면 빠져나올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파도가 출렁거린다고 해서 부력으로 배 밑바닥에 바짝붙어 있는 밧줄을 넘어 나올수가 있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도해보기로 했다. 요트 뒤 양쪽에 로프를 걸고 1톤도 안되는 선외기 어선에 줄을 연결해 당겼다. 20여분동안 있는 힘을 다해 당겼지만 직각으로 내려가 있는 킬에 걸려 도저히 가망성이 없어 보인다. 많이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허망한 마음만 더했다. 그러나 옛날부터 정치망을 직접만들기도 했던 작은 배의 선장님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배를 옆으로 당겨보자는 것이었다. 순간 그방법이 있었구나 내가 왜 그생각을 못했나.... 그래 옆으로 당기면 가능성이 있겠다 이제 나갈수 있겠다 생각이들었다. 다시줄을 고쳐서 한줄은 뒤쪽에 한줄은 선수에 걸고 당기기 시작했다. 130마력의 엔진을 달고 있긴 하지만 워낙 배의 무게가 나가지 않아 제대로 당기질 못했다. 잠깐 쉬었다가 다시 시도하기로 하고 한편으로는 쉽게 당길수 있는 작업선을 불렀다.
그런데 배를 자세히 보니 라다가 로프를 넘어서 있었다. 야홋.... 그러나 북쪽에 1미터 깊이에 4센티 두께의 유도 밧줄의 그물이 쫙 깔려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넘어가는 것도 문제가 될수 있었다. 그러나 잘하면 빠져나갈수 있을것 같았다. 작은 어선은 다시 자리를 이동해 북쪽에서 마치호를 옆에서 당겼다. 그러자 마치호는 거짓말같이 빠져나왔다. 나는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이렇게 빠져나올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여태 배를 부수며 9시간 가까이 바다에 갇혀있었다 말인가. ...나는 나의 미련함을 자책했다. 마치호의 라다에는 로프가 감겨있는 상태이고 스크류의 상태도 아직 몰라 일단 배를 견인하여 장호항으로 들어왔다. 이미 어둠이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에 내일 날이 밝는 데로 물속으로 들어가 배의 상태를 확인하기로 하고 일단 배를 어선옆으로 정박하고 내려왔다.
오늘 이선장님이 아니었으면 나는 밤새 바다위에서 배를 지키느라 배가 부숴지는 소리를 들으며 몸과 마음이 많이도 망가졌을텐데 그물에 걸린 것이 불행한 일이라면 이분을 만난것은 정말 하늘이 도운것이다. 배만 구조하고는 할일을 했을뿐이라며 돌아가버린 이분은 장호항바로밑의 관목리에서 해녀횟집겸 민박을 하시며 낚시배를 하고계시는 임형순씨 이다. 정말 고마우신분이고 내게는 은인이신분이다. 저녁에 이분이 하 시는 횟집에 가서 식사를 하며 고마운인사를 몇번이고 계속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임형순 아저씨" 이렇게 힘든 하루가 지나갔다. 내일은 아침 일찍 물속으로 들어가 배밑바닥을 확인한 다음 항해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다. 이제 좀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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