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7, 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란드 러셀, 1937, 송은경 옮김, 1997, 총270쪽
이 책은 러셀이 1937년에 책으로 낸 것인데 1995년에 캐나다의 Saskatchewan대학교수 하워드 우드하우스가 발문을 쓴 것을 다시 우리나라 사회평론 출판사에서 1997년에 번역하여 한국어판으로낸 것이다. 러셀이 254쪽에 걸쳐 쓴 글들을 하워드 교수가 8장의 발문으로 정리해 놓은 것이 맨 뒤에 실려 있다. 얼마나 정리가 잘 되었는지 발문만 읽어도 254쪽을 쭈-욱 다시 한 번 훑어 본 느낌이다. 이것은 러셀을 꿰뚫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인것 같아 나는 이 하워드 교수도 무척이나 부럽다. 어찌되었건 나는 어제 낮부터 지금까지 1930년대의 지구 최고의 석학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머리가 맑아졌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회주의가 바로 러셀도 추종하는 그 사회주의라니 새삼 러셀이 더 친하게 생각되고 반갑기까지 하다. 몇 년 전에 러셀의 '권력'을 읽었는데 그 때는 나의 지식의 정도가 얕아서 그랬는지 지금 기억나는 문장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오늘은 그의 문장 하나 하나가 모두 내 머리에 쏙쏙 포도알처럼 들어오는 것을 보니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 정말 이런 것인가 보다.
러셀은 화이트 헤드와 함께 [수학원리] (1910~1913)라는 책을 썼다고 하니 그가 쓴 책들이 얼마나 논리가 정연할지 새삼 기대가 된다. 나는 올 초에 수학원리에 관한 책들을 여러 권을 보면서 수학 원리를 조금 그야말로 조금 깨우쳤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여름 방학 때는 러셀의 [수학원리]를 도서관에 가서 빌려봐야겠다. 20세기 최고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화이트 헤드와 버트란드 러셀의 작품이니 정말 큰 기대가 된다.
난 올 봄에 해바라기를 마당에 심어 놓고 정말 그 꽃을 기대하면서 6월을 맞이했는데 진짜로 둥그렇고 노란 달덩이같은 꽃이 수도 없이 피어났다. 그래서 카톡 프로필 사진을 해바라기와 나로 도배를 하고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었다. 그런데 그 애지중지하던 해바라기를 어느날부턴가 참새들한테 몽땅 빼앗기고 말았다. 아침마다 저녁마다 창문에서 "째재짹 째재짹" 매우 요란한 새소리가 들려오긴 했어도 갑자기 뭔 새소린가 했지만 별 생각없이 있었다.
그런데 아뿔사!!!
며칠 전에 해바라기를 들여다 보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제 남은 건 해바라기의 둥그런 꽃받침 뿐이었다. 해바라기 까만씨는 온데간데 없고 허연 꽃받침만이라니!!! 그래도 몇 알 박힌 씨를 또 까먹으려고 가끔씩 참새가 날아와 그 둥그런 꽃받침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곤 하는데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갖고 오면 벌써 가버리고 없다. ㅎㅎ 명장면을 놓친 것이다.
왜 이 해바라기 이야기를 이렇게 장구하게 쓰느냐하면 혹시 [수학원리]를 내가 너무 기대하고 읽다가 혹시나 씨없는 해바라기 받침대를 만나는 형국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내 입가에 큰 웃음이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킄
이 책은 1937년에 펴낸 책이다 보니 이제는 이런 이야기들이 이미 많이 회자되어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 당시에는 무척 새롭고 반체제적이고 진보적인 내용이었을 것이다. 지금 보아도 이런 노인네가 이런 진보적인 생각을 하다니 러셀은 아마 지금 경상도에 모셔와도 경상도에서 가장 앞서가는 세련된 노인네 일것 같다. 그가 98세까지 인생을 향유하며 즐기며 살았다고 하니 과히 그의 사고와 행동과 외모가 얼마나 발랄하고 앞서갔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요즘 유튜브에서 활짝 피고 있는 할머니 밀라논나는 옷만 세련되게 입는지 어떤지 그녀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러셀을 지금 만난다면 러셀도 밀라논나 할머니처럼 외모도 멋있을 것 같다. 밀라논나 할머니는 미래의 나의 패션롤모델인뎅!! ㅎㅎ
게으름을 왜 찬양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이미 다 아는 바와 같이 인간은 놀이 본능을 가진 호모플레이쿠스로서 놀이를 통해 온전히 자신을 찾고 기쁨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노예를 부리기 위해 노동의 가치를 설파한 못된 귀족들의 말은 이제 다 잊어버리고 인간으로서 놀고 먹고 사색하고 삶을 향유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가치임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이라고 러셀은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