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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사극 ‘연개소문’에서 사실상 주연 역할을 해온 수양제 김갑수가 지난 6일 퇴장했다. 폭정과 광기가 극에 달한 수양제는 전국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진압 자체를 포기한듯 오빈과 술로 세월을 보내다 우문술의 아들 우문화급에게 순순히 목을 내준다.
수양제는 최후를 맞는 순간까지도 시청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섬뜩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제 김갑수가 없는 ‘연개소문’은 어떻게 흘러갈까? 그동안 ‘연개소문’에는 호연한 배우들이 많았다. 김갑수의 포스가 너무 강해 이들의 연기가 쉽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수나라에서는 포산공 이밀역의 최재성, 우중문 장군 역의 김명국, 우문술 장군역의 임혁주 등이, 고구려 진영에서는 연태수 역의 정동환, 을지문덕 역의 이정길, 강이식 역의 김시원, 고건무(영류왕)역 최종환, 영양왕 역 이효정이 안정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연개소문’이 20%대의 안정적 시청률로 인기를 끌고 있는 데에는 이들 중년배우들의 연기력이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하지만 청년 연개소문역의 이태곤과 손태영(이화) 등 몇몇 젊은 연기자들은 출연분량이 얼마되지 않는데다 연기가 미흡하다는 평을 받았다.
김갑수의 퇴장과 함께 이태곤도 물러나고 오는 13일부터 유동근이 성인 연개소문 역을 이어받는다. 하지만 강한 연기 카리스마를 뽐내는 유동근이 나온다고 해서 바로 연개소문에게 관심이 집중될 것 같지는 않다.
청년 연개소문은 강인하고 활달하기 보다는 유약한 이미지였다. 항상 생각에 잠겨있고 병서(김해병서)를 직접 저술할 정도로 학구파다. 수나라에서는 이밀의 하수인 정도로 그려질 정도로 역할이 미미했다. 시청자들은 우수에 젖은 이태곤의 표정을 반복해서 봐야했다.
하지만 유동근이 연기할 성인 연개소문은 그와는 상반되는 이미지다. 대당 강경파인 연개소문은 영류왕을 극악무도한 방식으로 시해하고 수백명의 신료들을 죽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따라서 연개소문의 청년 시절 성장과정을 무장인 성인 연개소문의 이미지와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물론 이환경 작가는 중국사서에 입각해 쓰여진 삼국사기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해 연개소문의 이미지를 주체적인 시각에서 새로 만들어내려는 의도가 읽혀진다. 그러니 성인 연개소문이 앞으로 어떻게 그려질지는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태곤과 유동근이 연기하는 연개소문이 동일인이어야 한다는 부담은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연개소문’에서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여성 시청층을 끌어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연개소문’은 강하지만 섬세하지는 못하다. 그래서 남성 드라마다. 고구려에는 여자의 존재가 아예 없고, 수나라에도 왕비나 이밀 부인, 홍매 등이 주체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
‘주몽’에는 소서노(한혜진)를 비롯해 원후(견미리), 유화(오연수), 여미을(진희경), 양설란(박탐희), 예소야(송지효) 등 요즘 현대인에게 적용시키도 흥미를 자아낼만한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 점은 ‘주몽’이 남녀 시청자 모두를 끌여들여 40%대의 높은 시청률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전쟁 이야기가 태반인 ‘연개소문’은 여성을 그리거나, 여성 관점에서 사안을 다루기가 쉽지않다. 지금까지 수나라와 4차례 전쟁을 벌였고 당나라와도 전쟁을 해야한다. 유동근이 등장하며 2부로 접어드는 연개소문은 고구려로 들어와 기득권 세력들과 갈등을 겪어가며 권력 기반을 잡아나가는 과정이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유동근이 얼마만큼의 인간적 매력을 보여줄지가 드라마의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김갑수 퇴장 이후 ‘연개소문’의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