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영화를 보는 일은 유쾌하다. 오래된 일기장이나 편지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 우연히 얻어걸린 색 바랜 흑백사진 같다고 할까?! 희미한 추억 한 자락 만날 단서(端緖)라도 찾게 되면 그야말로 ‘유레카’ 소리가 절로 터져 나온다. 범물동에 있는 ‘가락 스튜디오’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전부터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찾아와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 가락.
얼마 전 모임에서 나는 하반기에 보고 싶은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얼떨결에 맡은 영화보기모임 방장(房長)자리는 흥미롭지만 조금 부담스럽다. 한 달에 두 번 상영하는 자리에 꼬박 참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영화와 그것을 둘러싼 대화를 위해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방장이 영화를 선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회원들이 만나고 싶은 영화를 추천하는 방식이다.
이런저런 영화가 거론될 때 기타리스트이자 극장장이 스치듯 말한 영화가 <돌아온 외팔이>다. 젊은 시절 그이는 대구의 대도극장 근처를 서성였던 모양이고, 그때를 대표하는 추억의 영화가 <외팔이>라 한다. 내게도 친숙한 영화지만, 실제로 그 영화를 본 적은 없다. 그래서 주저 없이 <외팔이>를 상영목록에 첨부했다. 헌데 ‘카카오 톡’으로 극장장이 난색(難色)을 표한다. 추천한 게 아니라 한다. 필름도 구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호기심이 발동한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못된 심사일까?! 어느 저녁나절에 인터넷을 떠돌다가 <외팔이>를 검색한다. 홀연 동영상이 얼굴 내민다. 1969년 흑백으로 제작된 102분짜리 <돌아온 외팔이>가 천연색 필름으로 9-10분 내외의 여러 단편(斷片)으로 이어져 한 편의 완결된 영화를 구성한다. ‘쾌재’를 부르며 영화와 대면한다.
반세기 전에 만들어진 <외팔이>의 주제는 강호를 떠난 절대고수가 실현하는 권선징악이다. 무협영화로 한 시대를 풍미한 왕우가 전설의 외팔이를 연기한다. 사악한 무림고수 8인이 패거리를 모아 평화롭던 강호에 살겁(殺劫)을 몰고 온다. 졸지에 사형과 사부 혹은 아버지를 잃은 군소문파의 연소(年少)한 청년들이 외팔이에게 구원을 청한다. 어쩔 것인가?!
강호와 절연(絶緣)하고 아내와 함께 촌부(村夫)로 살아가기로 약조한 외팔이. 정의로운 사내 외팔이는 강호에 불어 닥친 피바람을 외면하지 못한다. 어쩔 도리 없이 강호로 다시 나아가는 절정고수 외팔이. 사정이 이쯤 되면 명민한 독자는 <셰인 Shane>을 떠올릴지 모른다. 1953년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영화 <셰인> 말이다. 나이 어린 꼬마 조이가 영화 말미에 ‘셰인’ 하고 외치는 소리가 메아리 되어 울리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표표히 떠나가는 셰인.
그런 틀을 가진, 여기저기 피가 흥건하고 숱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영화 <돌아온 외팔이>. 넘치는 피범벅 때문에 혹자는 ‘마카로니웨스턴’ 창시자 세르지오 레오네의 <무법자 연작>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레오네 감독에게는 권선징악이 아니라, 세상의 혼탁한 양상을 그대로 재연하는 편이 소중했을 터. 그 점에서 그는 동양의 무술영화와 거리를 둔다.
정의를 실현하되, 그것을 강제한 현실과 작별하는 셰인과 외팔이. 그러하되 객석의 볼거리를 위해 뿌려지는 다량의 선혈과 허다한 죽음. 이런 영화를 고요한 저녁, 컴퓨터 화면으로 홀로 들여다보는 것은 축복이리라. <아랑곡(餓狼谷)의 혈투>(1970)를 보면서 소학교 끄트머리를 다녔던 상고머리 소년이 초로의 사내가 되어버린 세월의 반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주인공이 나타나면 그 시절 영화관에는 요란하게 박수소리가 울려 퍼지곤 했다. 정의는 결코 죽지 않으며, 반드시 보답을 받는다는 공식을 확인해주었던 추억의 무협영화. 그런 정의가 우리의 시공간에도 아직 살아있는지 궁금하다!
<경북매일신문>, 2018년 7월 13일자 칼럼 ‘파안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