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일행은 둘로 나뉘어 한팀은 하카타 역 주변에서 쇼핑을 하고 한 팀은
일본 전통 정원인 라쿠스이엔(樂水園)으로 간다.
라크스이엔은 사실 우리네 식으로 한다면 논어에 나오는 인자요산이요 지자 요수라 하는 그 말대로
요수원으로 읽어야 한다. 아마 한국에서 누가 낙수원 이렇게 읽으면 바로 한마디 돌아올 것이다.
"무식한 것!"
그런데 어쩌랴 일본에선 오로지 라쿠라고 읽는다는데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이곳에선 라쿠스이엔으로 읽을 수 밖에....
우리를 안내하는 성신일 정길자 부부도 팀이 둘로 나뉘니 자연스레 둘로 나뉘어 쇼핑을 싫어하는 성신일 선생이
함께 간다.
처음부터 이 분들이 이 곳을 보여주려 하셨기에 나는 기존에 보았던 일본 전통정원을 생각했는데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후쿠오카 관광안내서에도 나와 있는 이곳을 정작 이곳 시민들은 잘 몰랐다.
젊은 친구들은 대부분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나마 나이가 어느정도 된 분들만 알고 있다.
물어 물어 찾아갔는데 의외로 식사한 커넬시티 주변이다.
빌딩 숲 뒤로 숨어 있으니 큰 길로 다니는 사람들은 이런 곳에 이런 집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할 것이다.
그리 크지 않은 정원인 라쿠스이엔은 팜플렛에서 설명한 대로 담장이 멋지다.
화재로 소실되어 전국민에게 안타까움을 안겨준 낙산사의 별담이 아름답듯 이 곳의 담도 그러한 꽃담이다.
일본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고유의 돌담이라는 설명이 있지만 우리네에게는 익숙한 꽃담이다.
폐기와를 이용하고 화강암을 빽빽이 박아놓은 꽃담은 밤하늘에 별처럼 박혀 단아함과 여백이 아름다운
낙산사 별담을 순간 떠올렸다 에이 무슨 그런 생각을 하며 마치 죄지은 듯한 느낌을 갖는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비교하게 되는 것은 병통이라면 병이지만 절로 그렇게 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우리네 꽃담과 느낌이야 다르지만 붉은 색 가까운 황토색이 아닌 여린 노란색 색감의 흙이 검은 색 기와와 어울려 아름답다.
구름문양의 폐기와는 어느 곳에 쓰였던 것일까 궁금하다.
오래된 정원이란 기대와는 달리
이 곳은 하카타 지역의 상인이 1906년 세운 별장이다.
아호를 논어 <지자낙수>에서 따와 낙수라 칭하고, 1915년에 다실 낙수암을 지어 차를 즐겼다.
전후에는 한 때 여관을 했었는데 그 때 이름이 낙수장이었고 그 이름을 받아 낙수원이라 하였다.
특히 4칸짜리 다실은 설립자 친정(親正)의 다실을 복원하여 낙수암이라 부른다.
후쿠오카시에서는 이곳을 공원으로 지정하여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입구 안내판에서 요약
저 보이는 문이 입구다. 저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정원이 보이는 것이 아니고 대나무로 안 담을 둘러 골목을 만들었다.
골목이 만드는 풍경이 아름다워 외부의 도시 분위기를 일거에 없애며 새로운 기분을 만든다. 통과의례의 장치로서 안과 밖을 단절시키고 새롭게 마음을 창조하는 장치로 느껴진다. 물론 골목을 걸으면서 그 안에 대한 기대도 높이니 일석이조의 장치다.
골목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만나는 풍경이다. 정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찻집 낙수암에 있는 매표소에서 100엔을 지불해야 한다. 물론 낙수암에서 차를 마실려면 별도로 300엔을 지불하면 된다.
먼저 정원을 돌아보고 차를 한잔 하기로 한다.
정원으로 들어가면서 바라본 찻집 낙수암이다. 몇몇 분들이 정원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있다.
지나든 길에 만난 절마다 모두 일본 정통다도라는 푯말을 내걸고 있었는데 일본인들은 정말 차를 좋아하는 것같다.
정원은 연못을 중앙에 두고 그 주위를 산책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다.
사각형의 반듯한 모양에 직각으로 떨어지는 형태로 못을 판 우리네 전통연못과는 달리
이들은 돌을 세우고 눞혀 둘레를 정하는 들여쌓기를 하고 형태도 한눈에 다 보이지 않게 들쑥날쑥하게 해 놓았다.
연못과 주변 산책로
연못에는 비단잉어들이 떼지어 놀고 있는데 관람객이 먹이를 많이 던져주었는지 사람이 움직이는 대로 같이 따라 도니
꼭 같이 산보하는 느낌이 든다.
바깥 정원을 다 돌고 차를 마시러 간다.
말차가 300엔임을 알리는 안내판
300엔짜리 말차와 그에 딸려 나온 사탕- 단 맛이 있어야 차의 풍미가 더 좋아진다는 설명과 함께 내온 사탕이다.
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단 과자나 사탕을 같이 먹는지 알았다.
다다미 방인데 이 냄새도 좋았다. 우리네 초가집에서 나든 그 냄새랑 비슷했는데 사람의 마음을 은근히 편안하게 해준다.
가운데 다다미안에 들어가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차시중을 드시는 분이 저 안에 들어가 앉아 각 둘러앉은 사람에게 차를 한잔씩
나누어 주었다. 저 다다미 밑은비어있어 겨울에는 들어내고 화로를 놓는 공간이란다.
겨울 난방을 어떻게 하는 지 알게 되었다. 저걸 들어내면 밑이 뚫리니 일식집에 가면 상 밑이 비어있어 의자처럼 쓸 수 있는 것과
같게 된다.일본인들의 생활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차를 마시고 보이는 창을 열고 나와 정원을 거닐 수 있다. 이곳은 300엔을 낸 사람을 위한 전용정원이라고 할 수 있다.
가격에 따라 차별대우를 하는 일본인의 좋다면 좋은 서비스정신이다.
낙수암 끝방인데 이곳에 들어오는 누구나 머리를 숙이라고 문을 밑에 두었다.
이곳을 지은 상인 친정씨도 정치인이나 세도가에게 나름대로 푸대접을 많이 받았나보다. 저런 공간을 만들 생각을 한 것을 보니
우리네 절집에도 더러운 양반놈들이 말타고 들어오지 못하게 누각을 낮게해 밑으로 들어오게 한 것과 같은 이치다.
정원 곳곳에 저런 것들이 많이 보여 주인장에게물어보았다. 작은 돌무더기는 그 밑으로 물길이 지나가는데 손님들이 빠질까
덮어 놓은 것이다. 나름대로 멋을 부리면서 손님의 안전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실을 묶어 놓은 큰 돌은 그 길로 가지 마시라는 의미란다.
같은 길도 나름대로 변형을 주었다. 암막새와 기와를 이용한 것이 꽃담을 한 장인의 정신과 이어져있다.
다시 다실로 돌아와 편히 쉬면서 돌아갈 시간을 본다.
얼추 예정된 시간이 되어 나오는데 기모노를 입은 여인들이 화로를 들고 나온다.
장소를 빌려 다회를 마치고 나가는 모임이란다.
정원을 돌 때 여기저기 석탑이 몇기 보였다.
우리네 무덤가에 서 있는 장명등도 보이고 일반 석등도 보인다.
이곳 관리인 말로는 조선의 탑도 있다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탑은 조잡하고 잘 갖추어져 있지도 않고 처음 보는 양식이라 한국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장명등은 우리네 무덤가에
서 있던 바로 그것과 똑같았다.
많은 문화재가 밀반출되어 일본인의 정원에 놓였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곳에서도 그것을 보니 마음은 쓸쓸하다.
관리인은 그런 심사도 모르고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말에 자랑스레 한국것이 여기에 있다고 한다.
너네 문화를 나도 사랑한다는 심사로 알아주길 원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 내가 사랑해서 너를 겁탈한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사랑해서 죽여서 씹어 먹었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사랑의 매를 한번 맞아볼래 하는 심사가 들었다.
라쿠스이엔을 마지막으로 3시까지 회의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가는 길에 신사가 하나 보인다.
작은 곳인데 여기도 753제가 열리는지 꽃단장에 전통기모노를 차려입은 아이들이 보이는데
그에 더불어 결혼식을 올린 신랑신부와 하객들도 보인다.
결혼식을 주로 신사에서 한다드니 드디어 신랑신부를 보게된다.
두 쌍의 신혼부부를 보니 즐겁다.
그저 새로 출발한다는 것은 가슴설레는 일이다. 보는 사람에게도 그 떨림이 전해져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인력거를 타고 떠난 신혼부부도 남은 절차를 마치러 가는 신혼부부도 모두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일본에 온 이유도 아시아민중기금을 만들기 위해 온 것이니만큼 다 똑같이 새출발을 하는 것
모두의 앞날에 무궁한 영광 있기를
첫댓글 일본남자가입은 -이름은 또같이 기모노인가...바지가 아니고 주름치마인가여.....반쪼개진모습이안보여.....
스님들 승복도 치마이니 아마도 남자 옷도 치마일것이요.... 기모노란 말이 우리말로 하면 입는것 입을것 뭐 이런 뜻이니 남자옷도 기모노일 것 같은데 핫타리니 너무 믿지는마오
인력거 탄 신혼부부 참 아름답고 멋지네... 주로 전통의상을 입고 결혼식을 하는가봐요?? 우리나라는 한복이 들러리인데...
신사에서 전통의식으로 결혼을 하고 호텔을 빌려 친지나 친구들을 불러 이차로 피로연을 합니다. 이때에는웨딩드레스를 입고 연미복을 입습니다. 그래서 두번에 걸쳐 결혼식을 하는 것처럼 되어있지요...피로연비용도 만만치 않고 예식비용이 정말 비싸게 들어서 사회문제화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장례식은 절에서 하는데 납골당 비용만 천만엔정도니 우리 돈으로 일억몇천은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