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관과 내관만 디자인이 아니다. 컬러와 내장재도 디자인이다. 일반적인 디자인 과정이 그렇듯, 컬러나 소재 역시 철저한 계획과 목적에 맞춰 만들어진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일반적으로 디자이너 여러 명이 팀을 이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내·외장 디자인과 달리, 컬러와 소재 디자인은 디자이너 1명이 전적으로 모든 것을 책임진다. 담당 디자이너의 역량이 그만큼 중요하다.
8세대 쏘나타를 시승했던 기자들은 컬러의 색감과 소재의 높은 퀄리티에 높은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이 근사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 주인공은 현대칼라팀의 이종근 책임연구원이다. 그에게 8세대 쏘나타의 이모저모를 들었다.
쏘나타에 파격적인 컬러가 적용된 배경
8세대 쏘나타에는 옐로우, 레드, 화이트, 그레이 등 8가지 외장 컬러가 적용된다
8세대 쏘나타의 외장 컬러는 모두 8종이다. 이 중 미드나잇 블랙과 화이트 크림을 제외한 나머지 6종(쉬머링 실버, 녹턴 그레이, 햄턴 그레이, 글로잉 옐로우, 플레임 레드, 옥스포드 블루)은 새롭게 추가된 컬러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옐로우와 레드다. 옐로우와 레드는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국산 중형 세단에서는 만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쏘나타에 이런 파격적인 컬러를 적용한 이유는 뭘까?
“신형 쏘나타는 보시다시피 한층 젊어졌습니다. 중형 세단의 전형성을 깨고 감성적인 스포티함을 전달하려 하는 차죠. 고채도 플레임 레드와 파워풀한 글로잉 옐로우를 넣은 건 이런 쏘나타의 성격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파격적으로 바뀌어도 되는 것이냐는 논란이 없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분석과 토론 끝에 결국 과감하게 변신을 선택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쏘나타는 감각적인 세단으로 태어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비율, 구조, 스타일링, 기술, 네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감성을 더한 스포티함’을 표현하고자 하는 센슈어스 스포트니스(Sensuous Sportiness)가 반영된 내·외장 디자인이 그 증거다. 여기에 톡톡 튀는 컬러가 더해지며 화룡점정을 찍는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국산 중형 세단에 옐로우 컬러가 적용되리라는 기대는 하기 어려웠다
“1982~2000년 사이에 출생한 Y세대의 특징은 개인·개방·감성주의입니다. 호기심이 많고, 튀는 패션을 즐기죠. 8세대 쏘나타는 바로 이들을 타깃으로 삼아 그들의 취향을 충족시키고자 했습니다. 과감한 컬러를 사용한 이유입니다.”
3중 코팅 방식으로 완성된 플레임 레드 컬러
쏘나타의 플레임 레드 컬러는 3중 코팅이라는 독특한 기법을 통해 완성됐다
신형 쏘나타에 사용된 모든 컬러가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플레임 레드 컬러에 대해서는 조금 더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 이렇게 색감이 깊고 풍부한 질감의 컬러는 대중 브랜드에서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신형 쏘나타의 레드 컬러는 제네시스 G70의 블레이징 레드 컬러에도 적용된 바 있는 3중 코팅 방식을 사용했다. 3중 코팅 방식은 메탈릭 레드층, 고채도 레드 나노 안료층, 클리어층으로 세 번 도색하는 기법인데, 기존 2중 코팅보다 훨씬 채도가 높고 깊이감 있는 컬러를 구현할 수 있다.
2개의 컬러를 포기하면서까지 채택한 플레임 레드 컬러에 대한 이종근 책임연구원의 자부심은 남달랐다
“3중 코팅 방식의 컬러를 적용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쏘나타의 플레임 레드 컬러는 도색 시 도료 탱크를 3개나 써야 합니다. 보통 도료 탱크 1개로 1개의 컬러를 운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들어가는 자원이 확연히 큽니다. 결국 플레임 레드 컬러를 위해 다른 컬러 2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차라리 레드 컬러를 포기하고, 다른 컬러 2개를 추가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레드 컬러는 한국에서 그리 선호되는 색상도 아니다. 하지만 다른 컬러 2개를 포기하고, 이 풍부한 레드 컬러를 채택한 것은 현대차가 신형 쏘나타를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 보여주는 증거 같다. 고객에게 훌륭한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뜻이다.
쏘나타에는 톡톡 튀는 레드 컬러 외에도 풍부한 색감을 지닌 컬러가 또 있다. 모던하면서 스포티한 햄턴 그레이 컬러가 대표적이다. 평상시에는 솔리드 컬러(단색)로 보이지만, 빛을 받으면 화려한 메탈릭 입자감이 돋보이는 컬러다. 이종근 책임연구원은 햄턴 그레이 컬러는 개성이 강한 젊은층에게 선호되는 컬러로, 8세대 쏘나타의 외장 컬러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하이테크하고 고급스러운 실내 느낌을 살려주는 컬러와 소재
8세대 쏘나타의 실내 컬러는 블랙 원톤, 네이비 투톤, 카멜 투톤, 그레이지 투톤 등 총 4종으로 운영된다. 각기 성격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하이테크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내장 디자인에 어울리는 컬러와 소재를 사용했다.
고급스러운 컬러와 소재가 더해져 라이트 아키텍처 디자인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고급스러우면서 편안한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대시보드에 기존 쏘나타에서 볼 수 없었던 인조가죽 감싸기를 적용했습니다. 동시에 대시보드, 도어, 콘솔부 장식부(크롬 도금부)에 리퀴드 크롬을 적용하여 신형 쏘나타 특유의 하이테크한 느낌을 강조합니다. 또한, 최고급 사양인 그레이지 투톤과 카멜 투톤의 나파가죽 시트에 퀼팅 패턴을 더해 인테리어 완성도를 한층 더 높이려고 했어요. 실내 천장에 내추럴하고 고급스러운 멜란지 패턴을 적용해 탑승객들이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도록 했습니다.”
그 외에도 콘솔 상단의 SWB 버튼식 변속기 부분에 모던한 메탈릭 패턴과 블랙 하이그로시를 적절히 섞어 쏘나타의 하이테크한 이미지를 더욱 높였다는 것이 이종근 책임연구원의 설명이다.
이처럼 자동차에 있어 컬러와 소재는 콘셉트와 디자인을 한층 분명하게 드러내주는 효과적인 방법이자 수단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컬러와 소재 중요성, 더 나아가 창작의 고통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얼핏 보기에 비슷한 계열의 컬러는 다 같아 보이고, 소재를 직접 만져보지 않으면 그 특성을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쏘나타의 고급스러운 컬러와 소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레이지 투톤
최근 자동차의 내장 컬러는 밝고 화사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경우, 화이트에 가까운 컬러를 사용하는 경우가 다수다. 하지만 쏘나타 같은 대중 모델에서는 이런 컬러를 구현하는 데 제약이 많다. 비용의 문제도 있지만, 그간 소비자들이 이런 밝은 컬러를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8세대 쏘나타는 소비자들의 바뀐 성향을 충족시키고 감성적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그레이지 투톤 컬러다.
“그동안 현대차의 실내에 적용된 그레이와 베이지 컬러의 명도(명도 수치가 높을수록 흰색에, 낮을수록 검은색에 가깝다)는 40~55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8세대 쏘나타의 그레이지 투톤 컬러는 과감하게 70 이상의 명도를 적용했습니다. 비침으로 인해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할 수 있는 대시보드 부분을 제외한 도어 암레스트, 센터콘솔, 시트 등에 화사한 컬러를 사용한 겁니다.”
이종근 책임연구원은 최고의 컬러와 소재를 적용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종근 책임연구원은 컬러와 소재 선택의 제약에 대해 좀 더 말을 이었다. 고급스러운 소재를 아낌없이 적용하고 싶은 것이 디자이너의 마음이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하지만 신형 쏘나타의 중요도를 알기에 주어진 상황 안에서 최선의 노력을 했다고 한다.
“사실 모든 트림의 실내 장식부(크롬 도금부)에 리퀴드 크롬을 적용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위 트림이라고 저렴해 보이는 느낌을 주고 싶진 않았어요. 대안으로 고급스러운 리퀴드 크롬에 뒤지지 않는 리퀴드 타입의 실버를 개발해 적용했습니다.”
이종근 책임연구원은 쏘나타에 적용된 파격적인 컬러가 대한민국의 도로 풍경을 바꾸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종근 책임연구원은 8세대 쏘나타에 적용된 파격적인 컬러가 무채색이 다수인 대한민국의 도로 풍경을 바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이번 쏘나타의 외장 컬러를 디자인하면서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무난함을 택할지, 전에 없던 파격을 택할지에 대한 고민부터, 새로운 컬러를 소비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까지 많은 생각이 있었죠. 하지만 결국 과감한 시도를 택했습니다. 그리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의 많은 사람들이 옐로우와 레드 등의 컬러가 적용된 것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줘 안도감과 뿌듯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종근 책임연구원의 바람대로 이번 8세대 쏘나타를 기점으로 대한민국의 도로 풍경이 바뀔 것 같다. 화이트와 그레이 등 전통적인 컬러의 선택 비중이 여전히 높지만, 플레임 레드와 글로잉 옐로우 등 화사한 컬러를 선택한 소비자의 수도 예상보다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바람대로 신형 쏘나타의 화려한 색깔이 칙칙한 아스팔트의 분위기를 바꿔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