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기도를 이렇게 하라
누가복음 11 : 1 - 4
한국 교회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가 기도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의 교회도 한국 교회만큼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작은 교회도 하루도 빠짐없이 한 두 사람이라도 새벽기도를 합니다. 한국교회는 새벽기도로 부흥 성장하였습니다. 도움 받던 나라가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된 것도 한국교회의 기도라고 나름대로 생각합니다.
60여년 전만해도 얼마나 가난했습니까?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새마을 노래에 ‘새벽종’은 교회마다 치는 새벽종입니다. 요즘은 종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그때는 새벽마다 종소리에 잠 깬 성도들이 성전 마루바닥에 엎드려 너무 가난해서 울며 ‘잘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의 새벽기도는 세계 여러 나라의 교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성도들은 기도하는 습관이 아예 몸에 배였습니다. 아침에 눈만 뜨면 잠깐이라도 기도합니다. 일을 할 때도 기도하고 일합니다. 식사 때 마다 기도합니다. 찬물 한 모금도 기도하고 마십니다. 자리에 앉으면 기도부터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는 복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복은 두 가지 방법을 통해서 주십니다. 첫째는 말씀 순종이고 두 번째는 기도입니다.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시는 것이고 기도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복 받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복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복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을 통해서 들을 수 있고, 설교를 통해서 듣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그 말씀이 잘못되었으니 이렇게 하라든지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변명이나 이유가 없이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무지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말씀하는 것이므로 잘못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들을 수 없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배워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것처럼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였습니다(1).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고 하시며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2). 기도는 배우지 않고 자기 맘대로 기도하는 것은 합당한 기도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기도는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기도를 두 번 가르쳐 주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 산상보훈을 하실 때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1장에는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하는 요청을 받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같은 내용이지만 시간과 장소는 다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주기도문’이라고 합니다. 주기도문은 기도의 모범이 됩니다.
마태복음 6장에는 기도를 가르치기 주시기 전에 잘못된 기도가 무엇인가를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는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시는 줄 알고 중언부언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방인처럼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기도를 하는 데 가만히 들어보면 앞뒤가 없는 말을 하고 또 하는 것 입니다. 이런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응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배워서 하나님께서 들으실 수 있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기도한 것을 스스로 돌이켜 보시고 과연 하나님께서 들으실 수 있는 기도를 하였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잘못되었다면 지금이라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먼저 기도를 누구에게 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없지만 마태복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6:9). 기도는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 외 그 어떤 존재에게도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기도를 누구에게 하는 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해나 달을 보고 기도합니다. 바위나 나무를 보고도 기도합니다. 천지신명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허공을 치는 기도가 될 뿐입니다.
성도는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라고 하니까 멀리 계시는 분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하늘에 계신다는 것은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라고 했습니다(마6:6). ‘골방에 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는 매우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골방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께 속삭이는 은밀한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네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더욱 친근감이 있습니다. 양자의 영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과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가 됩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곧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내 아버지는 골방에 은밀한 중에 하는 내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하는 것 입니다.
이제 기도의 내용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도는 먼저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무엇부터 구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필요한 것을 먼저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먼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2)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것을 구해야 합니다. 기도는 청원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룩한 분으로 섬기겠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거나 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마치 자신의 종처럼 부릅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해결사처럼 부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고 만홀히 여기는 것이 됩니다. 성도는 기도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것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는 기도는 종말론적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대망하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대망하는 기도를 잘 하지 않습니다. 재림을 대망하기 보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도와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는 기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타락하여 죄로 오염된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져 사단의 세력이 종식되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뜻이 인류의 마음과 생활에 점점 더 완전하게 이루어지길 바라는 기도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된 기도를 한 다음 이제 필요한 것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고 하셨습니다(3,4).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영적인 것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까지도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은 매일 사용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 입니다. 중요한 것은 매순간 우리는 우리의 지상 생활에 필요한 것조차도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하루도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실 때 매일 주셨습니다. 여러 날 먹을 것을 한꺼번에 주지 않고 매일 아침 만나를 주셨습니다. 만약 한 달이나 몇 달 먹을 것을 한꺼번에 주셨다면 백성들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심이 사라졌을 것 입니다. 매일 만나를 주시므로 매일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신 것은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많으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위해 매일 기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에 대한 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육신을 위한 기도라면, 용서에 대한 기도는 영혼을 위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하여 용서를 구하는 자는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기를 꺼려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4절을 봅시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하셨습니다.
죄 용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공로에 근거합니다. 다만 하나님께 죄 용서함을 받은 자는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잘못하는 것을 용서함으로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죄 사함의 증표를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용서 받은 것처럼 나에게 잘못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에 들게 하지 않기를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진심으로 죄 사함의 은총을 누리고자 하는 자는 더 이상 죄 짓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악의 시험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시기 위해 시험을 허락하시기도 하지만, 결코 성도들을 시험에 빠지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시험에 들게 하지 않기를 구하는 자는 항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며, 마귀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시험받는 자들은 주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시험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므로 시험을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렘33:2,3).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으면 응답해 주실 뿐 아니라 더 크고 은밀한 것까지도 이루어 주십니다. 신구약 성경에 믿음의 선진들은 모두 기도의 사람이였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도와주심으로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어려운 일들이 있을 때 도와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도와주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하고 원망할 때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그럴 때 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지켜주셨습니다.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백성로부터 원망을 들을 때마다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라는 기록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모세의 믿음의 특징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어려운 일이 있을수록 더욱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가 기도하지 않고 무엇을 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을 붙잡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늘의 보물 창고를 열게 하는 열쇠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도와주시는 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 할 수 있다는 것은 무한한 은혜요 축복입니다.
우리 모두는 기도를 배워서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하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