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우수영시절, 내가 94년 갈꽃섬 노화도에 복직하여 1년을 보내고
겨우 헤엄쳐서 상륙한 바닷가 학교였으니 96년 쯤이지 않을까 싶다.
당시 조명준선생님과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영의 선생님 더불어 참 눈부시던 시절이 있었다.
큰 나무 작은 나무들이 어우러져 오랜 숲이고 호숫가였던 곳에 가든파티를 할 수 있는 전원음식점이 있었고
그 곳을 종종 찾던 우리는 쥐오리가 한가로이 물 위를 노니는 창가에 앉아
풍금을 치고 바이올린을 켜고 노래도 하며 행복한 여흥에 취했던 그림!
바로 그 섬처럼 그리운 공간의 주인은 박승식.
나와 단박에 친구가 되었던 사람이다. 이 사람......
"소이부답심자한... 웃으며 대꾸 않느니 내 마음 절로 편해요"
몇일 전 도곡에 나와 식사를 하는데 전화가 왔다.
한 20년 쯤 훌쩍 지난 것이 믿어지지가 않게
" 해남의 박승식이에요."
순간 얼마나 만감이 교차했는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어떤 말을 남길까가
서로 뒤섞여 사는 곳이나 근황을 듣기도 하고 내 전화번호를 카페에서 알았던 것,
선물 하날 보내려? 했다는 말도 들은 것 같고 곧 오가자는 약속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긴 세월만큼의 여운이 담담히 흘렀다.
언듯 낙관에 박자 식자가 있는 것을 보고 승식씨가 직접 쓴 작품인가 하고 놀랐다. .
"아, 승식씨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글씨엔 사람의 형(形)과 품(品)과 능(能)이 고스란하고
정서와 감각과 태생이 소복하며, 세월과 인생과 운대가 가지런하여
오장과 육부의 질서도 넌즛 보이는 법!
승식씨가 언제부터 이러하였을까.
몰라도 그 옛시절에 이미 붓이 많이 닳았을 터이다." 했다.
글씨완 상관 없이 그미도 전적으로 그런 인물이다.
연화재수, 연꽃은 진흙에 피나 물들지 않는다.
아, 궁금하다. 이 사람의 말이 느린 듯 조용하며 더딘 듯 무심하더니
이 늙어감이 조금은 아쉬울 찰나에 내게 연락을 한 것이다.
고마운지고, 이리 작품까지 보내다니! 내 갤러리가 마냥 기쁘다.
이제 저 글 속의 이야기를 화두 삼아 벗을 그리워하겠다.
그러다 와짝 만나면 술이나 한 잔 곱게 취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