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농업단체연합회에서 일하면서 단체들의 연대를 고민하게 된다. 그중 요즘 집중하고 있는 것은 농지보전을 위한 연대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대는 물론, 단체들끼리의 연대도 필요하다. 정부의 시장개방 등에 함께 반대 목소리를 낼 때도 연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유기농 지속을 위해서는 농지 확보·유지가 우선이고, 그를 위한 연대가 필요하다.
사유지의 비극, 각개전투의 한계
유기농을 지속하려면 안정되게 농사지을 땅을 확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지만 정작 생산자들은 임대로 농사짓는 경우가 많다. 지주가 농지를 처분하거나, 각종 개발 사업 붐이 일어나면 생산자들은 애써 가꾼 유기농지를 포기하게 된다. 유기농지가 일반 농지로 바뀌거나 개발 사업으로 농지가 없어지면 생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매우 큰 손실이다.
농지 면적이 감소하면 당연히 식량 자급률이 떨어진다. 또 홍수 조절, 토양 유실 방지, 기후 조절, 자연생태계 균형 유지 등 그간 유지농지가 감당해 온 공익적 기능을 유지할 수 없다. 다 같이 연대해 농지를 공유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내가 숲에서 호도를 따고 있을 때, 삼림감시원이 달려와 뭘 하고 있냐고 묻기에 호도를 딴다고 대답했다. 호도를 따지 말라는 감시원의 말에 ‘다람쥐도 호도를 따는데 왜 나에게 못 따게 하는가?’라 했더니 이 숲은 공동의 것이 아닌 백작의 소유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에 ‘숲속에 있는 모든 것은 먼저 따는 자가 임자이니, 만약 백작에게 호도가 필요하다면, 얼른 숲으로 오라고 하게’라고 말했다.” - 《저항자들의 책》(1796)에서
개럿 하딩은 《공유지의 비극》(1969)’을 발표하며 정부의 규제와 공유지의 사유화를 주장했다. 하지만 엘리너 오스트롬 교수를 비롯한 많은 연구자들은 역사적으로 ‘공유지의 성공’이 대부분이며, 수천 년 동안 지역사회는 공유토지를 성공적으로 관리해 왔고, 실제 ‘사유지의 비극’이 훨씬 많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문제를 공동체에서 극복할 수 있음이 공유운동의 바탕이다.
농지공유는 공유경제와 맥이 닿아 있다. 공유경제란 구성원이 지분을 공유하는 전략이 포함된, 소유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제 활동’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한계비용 제로 사회》(2014)에서 ‘협력적 공유사회’라는 새로운 경제가 등장할 거라고 예고했다.
한국은 이전에 마을 단위로 형성했던 ‘동계’를 통해 땅을 공유하고 마을공동체의 자치 구조를 유지했다. 공동재산이었던 동유토지는 동네주민이면 누구나 향유할 수 있지만 이를 처분하거나 나누어 가질 수 없었다. 19세기 말 미국 헨리 조지는 토지 사유화의 모순점을 해결하기 위해 토지가치 공유화를 제시했다. 영국에서는 공익 증진을 목적으로, 공동토지의 사회적 자본화·공유화에 바탕을 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이 일어났다.
생협 소비자들이 힘 합쳐 농지 공유
한국의 대표 사례로 농업법인 제도를 이용한 ‘한살림 DMZ평화농장’과 한살림성남용인생협에서 한 ‘논 지키기’, 홍성 평화토지기금, 문화유산 국민신탁제도를 이용한 군포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 및 농지,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강화 매화마름 서식지 및 동강 제장마을 농지 등이 있으며 도시농업에 활용될 수 있는 경기도 ‘랜드쉐어' 사업이 있다.
한살림성남용인생협의 ‘한살림 논 지키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2015년 강원 홍천에서 고령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생산자회원의 논 2천644㎡(800평)을 홍천 생산지에서 매입하기로 했다. 한살림성남용인생협에서 유기농지 지키기의 일환으로 조합원 특별출자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매각 위기에 처한 농지의 매입 자금을 조합원에게 출자받아 농지를 지키고, 도농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신뢰를 두텁게 한 사례다. ‘한살림 DMZ평화농장’의 경우, 한살림생산자연합회와 한살림 지역 소비자생협(서울, 고양파주, 경기서남부), 천지보은공동체, 한살림가공생산자가 함께 연대해 농지공유를 통해 임진강 장단반도의 농지를 보전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한살림 생산자 중 40%가 임대농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또 강원 홍천 명동리 유기농논 800평이 언제 관행농으로 전환될지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다. 한살림성남용인생협은 조합원들에게 '논 지키기' 운동을 같이하자고 독려하고 있다. 조합원의 출자로 매입하는논은 홍천 생산자들이 설립한 '뫼내뜰영농조합'에서 소유하고 관리한다.
농지보전을 위한 외국 연대 사례
외국 사례로는 미국의 공동체토지신탁(CTL), 영국에서 1907년 제정된 국민신탁법에 근거한 국민신탁, 호주와 미국의 공공신탁 등이 있다. 농지공유운동에 부합하는 공동체토지신탁은 지역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토지의 가치를 공유하고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시스템으로, 지역공동체의 지원에 기반한 농업(CSA)과 연계하여 농지를 보전한다.
미국 메사추세츠주 윌리암스톤에 있는 케어테이커 농장의 스미스 부부는 농장 보전을 위해 CLT 단체인 윌리엄스톤루러랜즈파운데이션(WRLF)과 메사추세츠주정부, 새롭게 참여할 농부인 돈 자사다와 브릿지 스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농장을 마련했다. 안정되게 농산물을 생산하도록 토지 소유권은 WRLF가 갖고, 농장은 메사추세츠주의 농업 보전 규제에 의해 보호된다. 농부들은 토지 99년 임대권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농산물을 생산하고 인근의 CSA 회원들이 이 물품을 공급받는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한국에서 펼치기 어렵다. 토지 사적 소유에 규제가 없는 미국에서나 가능한 방식이다. 한국은 헌법 및 농지법에 의거한 ‘경자유전’의 원칙에 의해 농지를 쉽게 취득하기 어렵다. 그래서 농업법인이 소유주가 되어 공유 운동을 실험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기우일 수도 있지만 농지소유주인 농업법인에 경영상 어려움이 생기면, 법적인 한계로 인해, 농업법인이 농지 매각 권한을 갖게 되고 농업법인 이외에는 농지에 관한 어떤 권한도 누리지 못하게 되면 농지보전운동의 의미가 퇴색될까 봐 염려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한살림 같은 생협이 이런 운동을 할 때 지역 차원을 넘어 연합하여 참여해도 좋겠다. 또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단위에서 농지보전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협력과 연대로 농지공유화를
농지공유운동이 안착하기 위해 지킬 원칙이 있다. 첫째, 농지를 확보할 때 토지신탁자·생산자·소비자를 중심으로 관련 단체, 중앙 및 지방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야 한다. 둘째, 개발로 농지 훼손이 우려되는 지역을 피하고 유기농지를 우선하는 등 생태를 생각해야 한다. 셋째, 개발 가치를 없애 농지를 절대 보전하고 친환경 농업을 실천한다. 넷째, 농지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등 사업을 다각화하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 농지공유 원칙은 개인과 단체와 정부 등 여러 수준의 주체들이 협력하고, 식량안보·로컬푸드·환경정책 등 다양한 운동 주체들과도 연대해야 실현할 수 있다.
도시에서도 농지공유운동을 펼칠 수 있다. 도시 내 유휴지를 보유한 조합원과 텃밭농사를 짓고 싶어 하는 조합원을 연결할 수 있다.
공동체성이 살아 있는 한살림이 농지공유운동을 추진하고 있어 적지 않게 기대가 된다. 더 나아가 농지가 올바르게 보전되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각자 소유하고 있거나 상속 받을 농지를 공유한다면 세상은 보다 살기 좋아질 것이다.
↘ 최용재 님은 환경농업단체연합회 부설 유기농업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유기농 지속을 위한 농업단체들의 연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첫댓글 이 글을 읽으며 나는 또 밀림이 된 논둑에 둘러싸여 보이지도 않는 우리 불쌍한 논 생각이... 벼들아, 잘 익고 있니? 찰벼야, 너는, 너는... 살아 있니? 크흐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