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이 합천군수에게 보내는 편지
경남 합천군이 새천년 생명의 숲 명칭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으로 변경하기로 한 이후 국민들의 비난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9일 인터넷 매체 <서프라이즈>와 <오마이뉴스>에 합천의 한 고등학생이 합천군수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기고하여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글쓴이는 경남 합천 원경고등학교 학생회장 정겨울군으로, 학교 홈페이지에 전국각지에서 격려 글이 쇄도하고 있다. ''광주시 e-뉴스레터''는 정겨울군의 글과 함께 긴급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인터넷 매체 <서프라이즈>에서 정군의 글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가슴속에 잔잔한 감동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경남 합천군의 ''일해공원'' 파문이 확산된 이후 많은 항의 시위와 글들이 이어졌지만 어린 고등학생이 쓴 이 글만큼 감동적이고 설득력있는 글은 없었던 것같다. 학생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댓글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원경고등학교 홈페이지에도 전국에서 격려하는 글들이 답지했다. 전화가 연결되자 순박하면서도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터뷰를 요청하니 수줍은 듯하면서도 선뜻 응해주었다. 질문서를 미리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답변이 막힘없이 터져나왔다. 그만큼 평소 자신이 갖고 있던 소신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일해공원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행위
-합천군수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방학 때 네이버등 포털사이트에서 ''합천'' ''일해공원''이 지식검색 순위 1위로 올라 궁금해서 열어보게 되었고 ''이건 뭔가 아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뒤 며칠동안 관련기사를 찾고 그동안 깊게 알지 못했던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일해공원을 만든다면 5.18을 폭동으로 규정한다는 것인데, 결국 우리가 배워온 ''광주민주화운동''을 완전히 부정하는 행위라고 보았다. 그래서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한번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마이뉴스에는 아버지 ''정요셉''의 이름으로 올라와 있던데...
"첨엔 기고하겠다는 계획없이 이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간략하게 몇 가지를 적고 있었는데 나와 컴퓨터를 함께 사용하고 있는 아빠가 이 내용을 보고 자기가 오마이뉴스에 올려줄테니 제대로 써보라고 권유하는 바람에 평소 알고 있는 지식을 활용해서 쓴 것이다."
-많은 네티즌들이 댓글을 달고 학교 홈페이지에 격려 글을 보냈는데 지금 심정은
"어떤 분이 정말 고맙다면서 자기가 쓰신 역사책도 보내주시고 격려도 많이 해주셨다. 저는 솔직히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아니고...(웃음) 그런데 너무 많은 격려들을 해주셔서 어깨가 많이 무거워진다. 요즘 학생회에서 행사를 많이 주최하다보니까 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이렇게 많이 격려를 보내주셔서 이젠 정말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됐다."
합천군민 의사 왜곡행위에 분노
-학생들과 이 문제를 많이 상의했나
"우리 학교는 대안학교여서 제도권 교육의 불합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마음공부하면서 아이들과 대화해 보니까 일해공원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함께 이 문제를 토론하고 발표했는데 주변에서 많은 격려를 보내줬다. 다음주에는 다른 글들을 쓰고 서명작업도 추진할 것이다. 제가 합천청소년자치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다. 우리 학교는 학생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다른 학교와 연대해서 학생회 힘을 모아나가겠다. 학생들이 교육의 주체라는 생각을 갖고 많은 활동을 해나갈 생각이다."
-얼마 전 합천지역 초중고 교사 가운데 2/3가 ''일해공원''에 반대하고 나섰다는 기사를 봤다. 일해공원에 대한 주변 여론은 어떠한가
"제가 가장 화나는 것은 군민들이 그렇게 반대하고 있는데도 주민들의 설문조사 결과 찬성여론이 많았다는 합천군수의 발언이다. 하지만 제가 알아보니 허수아비들만 모아놓고 체육관에서 대통령 선거했듯이 면장같은 특정세력들만 모아놓고 설문조사를 했다고 한다."
-5.18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제가 경험한 일은 아니라서 평소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기회닿는대로 아버지에게 물어보고 할머니에게 듣기도 했다. 우리가 배운대로 (5.18항쟁이) 민주화운동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할머니 세대나 경상도 사람들 중엔 아직도 5.18을 폭동으로 보시는 분들이 많다"
합천군수와 5.18묘역 참배하고 싶어
-지역감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뭔가 풀리지 않는 연결고리가 있는 것같은데... 지역감정을 갖는 사람들의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특정 세력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교육받은 결과일 것이다. 우리나라와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사람들을 폭도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슬픈 현실이다. 역사의 진실을 알고 있는 우리 학생들이 잘못된 현실을 바꿔나가야 한다. 나는 앞으로 이런 편견과 지역분쟁을 없애고 싶다"
-망월동 국립5.18묘지에 와봤는가
"직접 가보지는 못했다. 제 바램인데 정말 광주시민들과 얘기가 된다면 심의조 군수님과 함께 망월묘역을 참배하고 싶다. 그 분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같이 가서 서로 느낀 점을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광주에 대한 인상은
"광주는 광역시 중에서 잘 알지 못한 곳이다. 하지만 광주민주화운동같은 어려운 일을 많이 겪은 도시이고 그만큼 참 좋은 분들이 많이 살고 있는 따뜻한 도시라고 생각한다."
-가족관계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누나, 형, 남동생 등 4형제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신가
"아버님은 제가 어렸을 때 ''미술세계'' 잡지사등지에서 근무하셨는데 어느 날 도시 생활을 접고 경기도 안성의 한 시골마을로 내려가 귀농한 가족들과 함께 ''희망나무공동체''를 꾸리며 살고 계신다. 그곳에서 우리 콩으로 계약재배하고 저온으로 숙성해서 자연을 닮은 두유와 청국분, 대안소금 등을 만드신다."
아빠 영향으로 대안학교 진학
-대안학교에 진학한 이유는
"아빠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같다. 아빠가 대안제품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셨기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대안''이란 말을 많이 들었다. 중학교 때 방황을 많이 했는데 가정문제나 친구들 문제는 아니고 그냥 학교가 정말 싫었다. 그래서 학교가는 대신 집에서 공부하려 했는데
아빠의 권유에 따라 풀무학교에 가보고 대안교육에 눈을 떠서 이 학교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학교생활은 어떤가
"공동체 생활에 적응이 잘 안되어 첨엔 참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꿈을 가진 청소년들에게 대안학교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학생 의견을 참 존중해주는 학교니까..."
-지금 몇학년인가
"이제 3학년 올라왔다."
-학생회장은 3학년때 출마하나
"1학년때 지회장에 출마할 수 있고 회장 임기는 2학년 중간부터 3학년 중간까지다."
-취미는 무엇인가
"잘 쓰지는 못하지만 글쓰는 것을 즐겨한다."
-책은 자주 읽는가
"책을 많이 읽지는 못지만 제가 읽고 싶은 책은 안가리고 열심히 읽는 편이다."
-감명깊게 읽은 책은
"''할아버지''라는 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저자는 잘 생각이 안나는데...미국 건국 당시 원주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쫓아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원주민들의 생활상도 잘 나타나 있다."
-특기는 무엇인가
"특기라고 해야할 지 잘 모르겠지만....학생회에서 추진할 일들을 직접 기획하고 모임에서 사회를 보고 위원회같은 것을 만들어 조직을 운용하는 것들이 재밌다."
-요즘 각광받는 특기인데....(웃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
-장래 희망은
"터무니없는 지식들로 인해 사람들이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데 이런 것들을 바로잡고 우리 몸과 마음을 살릴 수 있는 대안적인 것은 이것저것 다해보고 싶다. 아빠처럼 자연 속으로 돌아가 살고 싶다."
-진학문제는
"19살이라 대학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다. 대학은 막연히 가고는 싶지만 내가 꿈을 키워갈 학과를 아직 찾지 못했다. 원하는 학과를 찾지 못한다면 차라리 사회경험을 하지 대학 타이틀을 얻기 위해 굳이 대학에 진학하고 싶지 않다."
-존경하는 인물은?
어렸을 때 가장 존경했던 사람은 아빠였는데, 지금은 솔직히 노무현 대통령을 더 좋아한다.
-어떤 점에서 존경하나
"과거 대통령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매우 권위적으로 통치하였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권력을 포기하고 야당이나 언론의 무차별적인 공세 속에서도 상식과 원칙을 저버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참 존경스럽다."
-아버지는 어떤 점을 존경하나
예전엔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을 갖고 남부럽지 않게 생활했는데 서울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시고 시골에 내려가 뜻맞는 사람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신다. 첨엔 참 힘들어하셨는데, 지금은 대안식품을 만드시고 방학 때는 아이들 프로그램도 열면서 자연 속에서 더 느리고, 작고, 낮게 살기를 실천하려 애쓰신다. 그런 모습을 보고 존경하게 되었고 제 꿈도 닮아가더라.
-겨울이란 이름은 누가 지어줬나
"제 이름은 아버지가 지으셨다. 따뜻한 봄이 오기 전에 매섭게 몰아치는 추운 겨울을 견뎌내는 마음으로 살라고 지어주셨다고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