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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가장 젊은 땅, 젊은 강
용암천, 한탄강
드넓은 철원평야 논 사이에 가파른 협곡이 있었다, 아찔했다, 20-30cm 깊이의 용암, 그 많은 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신답리 수력발전소 밑 절벽에는 알려지지 않은 비경이 숨어 있다.
이삭이 패기 시작한 벼가 드넓은 철원평야의 논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뜻밖에도 그 논 사이에 아래를 내려다 보기가 아찔할 정도로 가파른 협곡이 숨어있었다. 지난 21일 찾은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의 대교천은 너른 들판을 칼로 베어낸 듯 깊이 패인 현무암 협곡을 이루고 있었다. 거무튀튀한 절벽에 기둥처럼 들어선 주상절리에 세차게 부딪친 계류는 방향을 돌려 맞은편 절벽을 때리며 빠른 속도로 흘러내렸다. 여울과 소, 작은 폭포를 잇달아 이루며 바닥과 벽을 깎아내면서 흐르는 이 협곡은, 대교천 하류의 한탄강과 만나기까지 1.5km 구간에서 나타난다.
북한 땅인 평강 오리산과 그 동북쪽 '680m 고지'에 분출구
동행한 원종관 강원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유년기 계곡지형"이라며 "약 27만 년 전
용암이 이 하천 구간을 완전히 메운 뒤 새롭게 물길이 났기 때문에 이런 지형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협곡의 절벽은 3차례에 걸쳐 흘러온 용암이 굳어 생겼는데, 그 깊이가 20~30m에 이른다. 다시 말해,
협곡 좌우의 넓은 들판 밑에도 이 정도 깊이의 용암이 쌓여있다는 것이다.
그 많은 용암은 어디서 분출했으며 어디로 흘러갔을까. 일본 지질학자 기노사키는 1937년 철원평야의
용암대지를 형성한 분출구로 지금은 북한땅인 강원도 평강 서남쪽 3㎞ 지점에 위치하는
오리산(해발 452m)과 여기서 동북쪽으로 24㎞ 떨어진 '680m 고지'라고 발표했다. 이 설명은 아직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오리산 화산체는 정상에 직경 400m가량의 분화구가 있는 것이 위성사진으로
확인된다.
한탄강 협곡의 지각 변동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절벽이 장관을 이룬다.
점성이 작았던 용암은 꿀럭대며 분출을 계속해 낮은 지대로 흘렀고, 옛 한탄강의 물길은 불길로
바뀌었다. 강물과 만난 용암은 뜨거운 수증기를 내뿜으며 굳었지만, 가차없이 밀려든 용암은 곧
강을 넘어 주변으로 넘쳤다.
구글 위성영상이 잡은 오리단(왼쪽 아래) 분화구의 모습. 오른쪽 시가지는 평강이다.
하와이 물 속 활화산에서나 볼 수 있는 베개용암이 삐쭉
용암이 옛 한탄강과 만나 급격히 식어 형성된 아우라지 베개용암 (절벽 아랫부분)
임진강 하류인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에는 율곡이 즐겨 찾던 정자인 화석정이 절벽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부근 임진강변에는 유장하게 흐르는 하류인데도 한탄강 협곡에서 보는 현무암 절벽이
서 있다. 용암이 여기까지 흘러왔다는 증거다.이문원 강원대 과학교육학부 교수는 "분화구에서 115km
떨어진 이곳에 8m 높이로 용암이 쌓이려면 어마어마한 양이 흘러내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탄강을
따라 흘러온 용암은 전곡에서 병목현상을 일으켜 임진강 상류 쪽으로 역류하기도 했다. 두 강의
합류점에서 현무암의 두께는 30m에 이르렀고, 여기서 12km 상류인 선곡리까지 6m 두께의 현무암층을
남겨 놓았다. 한탄강이 영평천과 합류하는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궁평리 아우라지도 유명한 용암 병목
지점이었다. 한탄강의 용암이 영평천으로 역류한 이곳에선 하와이의 물속 활화산에서나 볼 수 있는
베개용암이 물 위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용암이 물과 만나 거죽은 급히 식어 굳지만 안쪽에서
액체 상태로 계속 흐르면, 표면 틈으로 마치 치약처럼 삐져나와 굳어 생긴 것이 베개용암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철원을 두고 "들 가운데 물이 깊고 검은 돌이 마치 벌레를 먹은 것과 같으니 몹시 이상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한탄강의 특징은 바로 이중환이 가리킨 대로 '용암이 굳은
현무암 협곡'이다.
신생대 지층 밟고 절벽 아래로 내려오면 수억년 전 중생대 암석
한탄강의 유명 관광지인 고석정
화강암 암반이 드러나 있는 순담계곡
용암 층 위를 흐르는 직탕폭포
절벽의 형태는 주변 암석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현무암 사이로 강이 흐르면 대교천처럼 양쪽이
가파른 협곡이 되지만, 강이 화강암 등 기반암과 현무암 사이를 흐른다면 현무암 쪽에만 가파른
절벽이 만들어진다.
한탄강에는 재인폭포, 직탕폭포, 고석정, 순담계곡 등 지질학적 명소가 많지만, 연천읍 신답리
수력발전소 밑 절벽에는 한탄강 용암분출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알려지지 않은 비경이 숨어 있다.
절벽 맨 아래엔 강바닥에서 흔히 보는 굵은 자갈층이 깔려있다. 용암이 흘러오기 전 옛 한탄강의
강바닥이다. 그 위에 강물의 최후가 기록된 베개용암이 나타나고 이어 현무암이 판상절리와 주상절리
형태로 차곡차곡 쌓여 있다. 40m 절벽 꼭대기엔 식물이 자라는 충적층이 깔려 있다. 원종관 교수는
"신생대 지층을 밟으면서 절벽 아래로 내려와 수억년 전 중생대 암석을 만져볼 수 있는 곳"이라며
"한탄강은 용암에 의해 한반도에서 가장 젊은 땅이 만들어졌고 그 위로 가장 젊은 강이 형성되고 있는
역동적인 지형•지질학 현장"이라고 말했다.
한탄강 용암 분포도
대교천 협곡 : 한탄강 지류인 대교천의 현무암 협곡.
한탄강 협곡 : 현무암 협곡을 뚫고 흐르는 한탄강의 모습이 보인다.
차탄천 현무암 절벽 : 한탄강 지류인 차탄천 하류에는 거대한 용암층이 흐른 흔적이
현무암 협곡으로 남아 있다.
화석정 부근의 임진강 : 한탄강을 따라 100여킬로를 달려온 용암은 임진강의 이곳까지 밀려 내려왔다.
위에서 내려다 본 현무암 협곡 : 절벽 아래에서 지질답사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현무암층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용암 만난 하천 자갈 : 용암이 뒤덮은 하천 바닥에 깔려있던
자갈층이 아직 굳지 않은 채 현무암 밑에 깔려 있다.
090902
1300년간 땅속에서 잠 잔 마애불의 비밀
흔들리는 땅
6.2m~70t의 멀쩡한 거대 불상이 발견됐다, 그것도 뒤집힌 채, 우연일까, 뭘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경남,북 일때 단층 30여개가 발견되면서 지진 안전론은 쑥 들어갔다.
완벽한 미소를 머금은 채 1300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다. 2007년 5월에 발견된 신라 마애불은
왜 무너졌을까. 높이 6.2m 무게 약 70t인 이 거대한 불상은 풍화가 거의 되지 않아, 제작 직후
엄청난 외부 힘에 의해 넘어져 땅에 묻힌 것으로 추정돼 왔다.
불상은 8세기 양식…역사 기록엔 779년 경주 지진으로 100여 명 사망
김영석 부경대 환경지질학과 교수팀은 <지질학회지>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여래입상의 붕괴 원인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마애불과 인근 암반에 나 있는 미세한
균열의 양상을 비교한 결과 마애불을 현 위치에서 약 12m 떨어진 사면 상부 자연암반에
조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또 마애불이 반시계방향으로 약 20도 회전하면서 넘어진
사실도 밝혀냈다.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여래입상
김 교수는 "지진이나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처럼 큰 자연적인 힘만이 70t짜리 불상을 12m
옮길 수 있다"며 "불상이 8세기 후반 양식이라는 고고미술학계 의견과 779년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100여 명이 사망했다는 역사기록이 맞아떨어져 주목된다"고 말했다.마애불이 있는
경주 남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동성이 높은 양산단층과 울산단층이 만나는 부근에 위치한다.
지각판 경계부에 놓인 일본, 대만 등과 달리 유라시아판 주변부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지진 위험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남•북 일대에서 제4기 최후기의
단층 30여 개가 최근 발견되면서 이런 얘기는 쑥 들어갔다. 1995년 핵폐기물 처분장 후보지였던
굴업도에서 최근 1만 년 사이에 활동한 4개의 활성단층이 발견돼 터 지정이 취소되면서
본격적인 활성단층 연구가 시작됐다. 학계에서는 최신의 지질시대를 가리키는
제4기(180만 년 전~현재)에 일어난 지각운동은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경북 경주시 암곡동의 산자락에는 산사태로 무너져내린 높은 절벽이 있다. 이곳엔 우리나라
4기 단층 가운데 땅이 움직인 거리가 가장 긴 왕산단층이 드러나 있다. 절벽에는 지층을 왼쪽 위
45도 각도로 자르는 단층면이 지나고 있다. 단층면 오른쪽 지층은 압축력을 받아 왼쪽 지층에
비해 무려 28m나 미끄러져 올라갔다. 경계면엔 지각운동 당시의 마찰과 열로 생긴 미세한
점토층이 40~50㎝ 두께로 끼어있다. 이곳에선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부산까지 흔들린 규슈 지진같은 일이 8번 일어났다면 생길 수 있는 일"
2004년 12월 26일 인도양에서 일어난 수마트라-안다만 지진은 지진해일을 일으켜 28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지진으로 해저 지층이 1200km에 걸쳐 미끄러졌는데, 그 거리는
왕산단층보다 작은 최고 20m였다.
그러나 경주에서 수마트라보다 큰 지진이 일어난 증거는 없다. 이진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지난 1만 년 동안 여러 차례 일어난 지진의 결과가 누적돼 28m의 변위를 보인 것으로
보인다"며 "2005년 부산까지 흔들린 규모 6.6인 규슈 지진의 최고 변위가 3.2m이므로,
그런 지진이 8번 일어났다면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왕산단층이 대규모 지진의 흔적이라는 데는 다른 견해도 있다. 최성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는 "왕산단층은 좁은 범위에서 큰 규모로 움직인 단층의 하나"라며 "구조적인 이유로 생긴
대규모 지진인지는 더 자세한 연구를 해 봐야 안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시 청하면 유계리에
위치한 유계단층은 한반도에서 가장 최근에 움직였던 활성단층이다. 양산단층대의 북쪽에
자리 잡은 이 단층은 지층이 4.2m를 미끄러졌다. 이 단층을 연구한 김영석 부경대 교수는
"약 2000년 전 규모 7.0~7.3의 지진이 일으킨 흔적이며, 지진으로 생긴 파열대의 길이는
130~280km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지진의 90%는 한 번 일어난 곳에서 다시 발생한다. 지진은
땅속에 축적된 에너지가 지각의 약한 부분을 통해 갑작스럽게 방출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동남부의 주요 단층
단층에서 지진이 빈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활성단층이 속속 발견되는 경남•북
지역은 특히 주목의 대상이다. 이 지역에는 핵발전소를 비롯해 각종 산업시설과 대도시,
핵폐기물 처분장까지 몰려 있다.
국내최대의 왕산단층. 오른쪽 지층이 수직높이 16m나 밀려올라갔다
이 단층 경계면이 압착돼 형성된 40~50두께의 점토층
대규모 지진은 내년이라도 발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 작은 지진만 일어난다고 큰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속단하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김영석 교수는 "큰 지진은 발생하는 주기가 길 뿐"이라며 "다음번 대규모
지진이 언제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며, 그것은 내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부산 금정산에서 바라본 양산단층대의 지표 모습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역사기록을 보면 규모 5의 지진은 10~15년마다,
규모 6~7의 대규모 지진은 수백 년마다 일어났다"며 "경주 울산 포항 등은 암석 자체가 최근의
지각변형을 받아 균열이 많은데다 대규모 산업시설이 몰려있어 지진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의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지질 안정성보다 지역 여론을 먼저 고려하는 정부의 정책에 비판이 쏟아진다.
손문 교수는 "지질학적으로 가장 안전한 곳을 선정하고 사회적 수용성을 고려해야 하는데
일단 부지부터 선정하고 취약한 지질을 공법으로 보강한다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것"이라며 "수십만 년 동안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을 지을 때 이런 절차가
꼭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양산단층대는 부산~경주~영덕을 잇는 약 200km의 단층곡이며,
울산단층대는 경주 동부~울산의 약 50km 구간을 가리킨다.
이 두 단층대는 다시 수많은 작은 단층들로 구성돼 있다. 한반도 동남부에 이처럼 단층대가
발달한 것은 지각판이 충돌하는 지점과 상대적으로 가깝기 때문이다. 해양지각인 태평양판과
필리핀판은 일본 근해에서 대륙지각인 유라시아판 밑으로 파고들면서 한반도를 북서쪽으로
밀친다. 약 5000만 년 전 유라시아 대륙과 충돌한 인도판의 영향도 아직 살아있다.
지진에 관한 오해와 진실
공포와 재앙을 가져오는 지진은 수많은 신화를 낳았다. 일본인들은 지구 밑바닥 흙탕물 속에
사는 거대한 메기가 꿈틀거릴 때마다 지진이 일어난다고 보았고, 시베리아 원주민은 지구를
끄는 썰매 개가 벼룩이 가려워 긁어대면 땅이 흔들린다고 믿었다.
지진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나서도 신화는 끊이지 않는다. 지진에 대한 가장 흔한 잘못된
지식을 간추려 본다.
지진은 예측 가하다?
최첨단 장비를 가지고도 지진이 언제 일어날지 예측하지 못한다. 단지 과거 관측자료를
바탕으로 확률적으로 추세를 알 뿐이다.
유계단층은 한반도에서 가장 최근에 움직였던 활성단층이다.
동물은 지진을 미리 아나
메기, 닭, 꿀벌, 개 등이 지진이 나기 직전 이상한 행동을 했다는 보고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단편적인 증거가 지진과 관련 있다는 일관성 있고 신뢰할 만한 근거는 아직 없다.
중국과 일본에서 일부 과학자들이 이를 연구하고 있다.
지진이 나면 땅이 갈라진다?
지진으로 입을 쩍 벌린 지층 속으로 사람이 빠지는 영화 장면이 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지진은 단층선을 따라 땅이 움직이는 것이지 단층선과 수직방향으로
벌어지지 않는다. 지진이 산사태를 일으켜 얕은 협곡이 생길 수는 있다.
작은 지진이 나면 큰 지진을 예방한다?
작은 지진이 지층에 축적된 에너지를 방출시켜 큰 지진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규모 6의 큰 지진은 규모 4 지진 1천 개, 규모 3 지진 3만 2000개를 합친 에너지를
갖는다. 관측 결과 규모 6짜리 지진이 한 번 일어날 동안 규모 4는 100번, 규모 3 지진은 1천 번
발생한다. 작은 지진으로는 큰 지진 에너지의 극히 일부밖에 줄이지 못함을 알 수 있다.
090916
10억 년 전, 소청도 바닷가 뽀글뽀글
생명융단 탄생
2003년 한반도 '태초 생명'의 비밀의 열쇠를 찾았다, 광합성으로 지구에 첫 산소를 내뿜은
남조세균의 흔적이다, 그들은 20억년 동안 황량했던 지구에 숨을 불어넣었다.
지구가 태어난 뒤 나이의 절반을 먹을 때까지도 세상은 황량했다. 식물이 없는 바위와 모래 언덕이
끝없이 이어졌고 요동치는 바다는 텅 비어 있었다. 산소가 없는 대기를 뚫고 해로운 자외선이 그대로
내리꽂혔다. 약 20억 년 전 중대한 변화가 지구 곳곳에서 나타났다. 얕은 바다 밑바닥을 초록 융단이
뒤덮었고, 거기서 뽀글뽀글 공기 방울이 솟아올랐다. 바로 지구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은 산소다.
초록 융단을 만든 주인공은 최초로 광합성을 한 원시 미생물인 남조세균(시아노박테리아)이다.
다시 10억 년이 지난 원생대 후기, 현재의 인천시 옹진군 대청면 소청도가 될 해변에도 초록 융단이
깔려있었다. 육지엔 아직도 풀 한 포기 없었고 바다에도 껍데기를 가진 몸집 큰 생물은 없었다.
남조세균은 여전히 강한 자외선을 막기 위해 점액을 뿜어냈다. 점막층에 주변의 퇴적물이 들러붙었고,
여기에 세균이 배출한 탄산칼슘이 엉겨 시멘트처럼 굳었다. 남조세균은 햇빛을 향해 마치
고층아파트를 올리듯 켜를 이루며 위로 성장했다. 이 건축물을 스트로마톨라이트라 부른다.
켜켜이 쌓인 게 스트로마톨라이트…열과 압력 따른 변성 덜 받아 보존
지난 22일 이광춘 상지대 교수(지질학)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있는
소청도를 찾았다. 섬으로 접근하자 남동쪽 해안을 따라 하얗게 분칠을 한 것처럼 보이는 분바위가
한 눈에 들어왔다.분바위는 거대한 대리암 암벽이었다. 새하얀 대리암 절벽은 홍합과 굴이 다닥다닥
뒤덮은 흑갈색 해변과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이 교수는 “대리암은 바다 밑에 퇴적한 석회암이
변성작용을 받아 생긴 암석”이라며 “대리암 표면이 풍화돼 흰 가루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분바위 꼭대기에는 진흙이 굳어 생긴 암석이 종이를 구겨놓은 것처럼 뒤틀린 습곡이 있다. 지각변동의
흔적이다. 하지만 소청도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지난 10억 년 동안 열과 압력에 의한 변성작용을
덜 받은 선캄브리아 시대 지층이 남아있다.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소청도 전경. 남쪽 해안의 하얀 분바위가 눈에 띈다.
분바위를 돌아 작은 만으로 들어서자 소나무 껍질 같은 무늬를 한 바위들이 눈길을 끌었다.
안에 가느다란 켜가 촘촘히 들어있는 주먹 크기의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무언가에 짓눌린 듯 일그러져
빽빽하게 뭉쳐있는 모습이었다.
이성주 경북대 교수는 김정률 한국교원대 교수와 이광춘 교수와 함께 이곳 스트로마톨라이트에서
남조세균의 화석을 발견해 2003년 학계에 발표했다. 이 원시세균은 나선 형태, 얇고 긴 머리카락 모양,
공 모양 등 다양했는데, 이 가운데는 세포가 두 개로 분열하던 도중 화석으로 굳은 것도 있었다.
연구진은 나선형 화석을 근거로 지층의 연대를 원생대 후기, 약 10억 년 전으로 추정했다. 김정률
교수는 “빗방울 자국, 물결무늬와 바닥이 갈라진 흔적이 함께 화석으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소청도는 얕고 따뜻한 바닷가 조간대였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십억년 전 따뜻하고 얕은 바닥에 살던 광합성 세균의 집단 서식지 스트로마돌라이트 화석
황색 세일이 지각변동으로 휴짓조각처럼 구부러져 있는 습곡
생업 방해될까 천연기념물 반대…세계지질공원 지정 필요
소청도와 같은 선캄브리아 시대 지층은 황해도 등 북한으로 이어지고 20억 년 전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북한에서 보고된 적도 있다. 남한에서는 소청도 이외에도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강원도의
약 5억 년 전 고생대 석회암 지층과 경북 등의 약 1억 년 전 중생대 호수 퇴적층에서 발견됐다. 그러나
소청도 스트로마톨라이트와 분바위는 자연유산 가치를 인정받기 훨씬 전부터 훼손돼 왔다.
일본 강점기 때에는 이곳의 대리암을 대량으로 채굴했고, 스트로마톨라이트의 무늬를 이용한 문양석
가공공장이 1980년대 초까지 섬에서 가동했다. 화석 산지의 바위에는 쇠말뚝과 굴착 흔적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다. 이 교수는 “좋은 화석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보존가치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학계의 보존 목소리는 10여 년 전부터 나왔지만 문화재청은 지난달 이곳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겠다고
예고했다. 김태회 대청면 소청출장소장은 “문양석을 캐는 일은 이제 전혀 없다”며 “그러나 주민들은
천연기념물 지정으로 생업에 방해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광춘 교수는 “지질유산이 풍부하고 서로 가까운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를 묶어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정을 받아 보존과 동시에 지역사회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해 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분바위 - 흰 대리석 절벽이 홍합 등 해양생물이 뒤덮인 해변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소청도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
소청도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을 살펴보고 있다.
스트로마톨라이트 확대 모습 - 막대 모양 안에 켜를 이뤄 자란 형태가 보인다.
분바위의 아랫부분은 소금기와 파도 해양생물이 깎아내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원시세균이 준 선물, 철광석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만든 원시 박테리아는 철광석이란 선물을 우리에게 남겼다. 남조세균이 처음
광합성을 시작하던 무렵 지구의 대기와 바닷물엔 산소가 거의 없었지만 철은 풍부했다. 지구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무거운 철은 가운데로 모여 핵을 이루었지만 상당량이 지각과 맨틀에 남아있었다.
철은 아직도 지각의 5%를 차지한다.
산소가 없는 선캄브리아 시대 바닷물에는 다량의 철이 녹아 있었다. 철은 물과 만나면 쉽게 녹슬지만 이때 산소가 필요하다. 남조세균이 광합성을 시작하면서 산소에 목마른 바다에 산소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물에 녹은 철 이온은 가장 먼저 산소를 가로채 산화철 형태로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았다. 황량한 지구를 점령한 남조세균은 전세계 바다에 번창했고, 그 덕분에 산화철의 침전은 무려 7억년 동안 계속됐다. 그 결과 오스트레일리아나 미국 미네소타 등지에 수백m 두께의 철광층이 수십km2에 걸쳐 펼쳐진 거대한 철광산을 형성했다.
철광층은 산화철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바닷물 속 산소농도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철이
퇴적하지만, 그 이하에선 철은 침전하지 않고 대신 점토나 모래가 쌓인다. 결국 철광층과 퇴적층이
교대로 층을 이루는 이른바 호상철광층이란 모습을 띤다. 호상철광층에 고정된 산소의 양은 현재
대기 중 산소의 양보다 20배나 많다.
호상철광층의 단면
약 26억~19억 년 전 사이에 쌓인 호상철광층은 오늘날 연간 10억t이 채굴되는 철광의 90%를 차지한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철광석의 55%를 차지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서부의 필바라 노천 철광도 이런
호상철광층이다. 필바라의 샤크 만에서는 아직도 살아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볼 수 있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나 소청도 선착장에 닿는 쾌속선의 철판에는 초창기 지구에 산소를 불어넣었던
원시 박테리아의 숨결이 살아있는 셈이다.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란?
스트로마돌라이트 화석은 점토와 스트로마돌라이트가 교대로 쌓여 이룬 지층이다.
‘양탄자처럼 깔린 암석’을 뜻한다. 남조세균이나 남조류 무리가 층층이 쌓여 굳은 석회암의 하나로서,
생물이 만든 퇴적구조를 갖는 암석이다. 모든 지질시대에 걸쳐 나타나지만 특히, 선캄브리아
시대의 것은 지구 생명 탄생의 비밀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가장 오랜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오스트레일리아 서부 필바라에서 발견된 것으로 35억년 전의 것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분포한 것은 12억 5천만년 전이고, 고생대 캄브리아기에 들어서면 전성기의 20% 수준으로 줄어든다.
현재 염도가 너무 높거나 환경이 나빠 다른 생물은 살지 못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서부, 브라질,
멕시코 사막, 바하마 등에서 형성되고 있다.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지구 생물의 역사 가운데 8분의 7에
해당하는 기간에 산 가장 생명력이 강한 생물이 만들었다
또 광합성을 하는 이들이 산소를 방출해 인간을 포함해 산소를 호흡하는 생물이 지구에 살 터전을 마련하기도 했다. 미생물이 분비하는 탄산칼슘과 퇴적물이 켜를 이루며 자라 반구형, 돔형, 가지형, 기둥형 등 여러 형태를 이루며, 1m 이상으로 자라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첩층석(疊層石)’으로, 일본에서는 영어발음 그대로 쓴다. 우리나라에서도 쉬운 우리말로 바꾸려고 시도했으나 마땅한 대안이 없어 영어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091028
태백산 분지에 가면 바다 냄새가 '솔솔'
5억년 전의 흔적
당시 태백산 분지는 적도 부근에서 막 호주와 헤어져 북상을 시작했다,
얕은 바다여서 삼엽충과 함께 조개류 등 다양한 동물이 살았다, 영월도 비슷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 중간쯤이 없다, 수수께끼다.
고생물학자들은 강원도 태백, 영월, 평창, 정선으로 둘러싸인 태백산 분지에서 바다 냄새를 맡는다.
약 5억년 전 고생대 캄브리아기 때 이곳은 끝없이 펼쳐진 얕은 바다였다. 해안에는 따가운 햇볕에
졸여진 소금결정이 반짝였고, 바다 속에는 삼엽충들이 조개와 오징어의 조상 사이로 꾸물꾸물
돌아다녔다. 5억년이 얼마나 먼 과거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면, 길이로 환산하면 된다. 1년이 1㎝라면
5억년은 5000㎞, 서울에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까지의 거리이다. 요즘 학생들에겐 1원과 서울의
중형 아파트 값으로 비교하는 편이 쉽다는 지질학 교수도 있다.
당시 태백산 분지는 적도 부근에서 막 오스트레일리아와 헤어져 북상을 시작하고 있었다. 태백산
분지가 올라탄 북중국 땅덩어리에는 오늘날의 북한 평남 분지, 중국의 산둥, 만주, 시안이 함께
있었다(남중국과 함께 있던 경기지역과는 한참 뒤인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만난다). 수천㎞에 걸쳐
산이라고는 없는 평탄한 땅과 얕은 대륙붕이 멀리 뻗어나간 독특한 곳이었다.
바다에 살던 조개류 등 생물 화석이 발견되는 태백 구문소 구석기 퇴적층
삼엽층이 살던 고생대 바다 밑 가상도
석회암을 원료로 만드는 시멘트는 삼엽충이 준 선물
지난 3일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 구문소를 찾았다. 고생대 캄브리아기에서 오르도비스기
(5억4천만년~4억6천만년 전) 사이 태백산 분지에 쌓인 약 1200m 두께의 퇴적층 가운데 최상부에
가까운 곳이다. 지층이 비스듬히 누워 있어 여기서 남동쪽으로 갈수록 과거로 거슬러 오른다.
태백시가 짓고 있는 고생대 자연사박물관 터 아래 황지천변에 짙은 회색의 펄이 굳은 ‘셰일’이 깔려
있었다. 동행한 박태윤(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박사과정)씨가 단단한 암석표면을 가리켰다.
완족류와 두족류와 함께 세 쪽으로 나뉜 몸과 빗살무늬의 마디가 선명한 삼엽충 화석이 들어 있었다.
박씨는 “이곳은 태백산 분지에서도 화석이 가장 풍부한 곳”이라며 “얕은 바다였던 곳이어서 삼엽충과
함께 필석, 완족동물, 조개류, 복족류, 두족류, 개형충 등 다양한 동물 화석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하류로 50m쯤 내려오자 암반이 흰 돌로마이트로 바뀐다. 셰일 층보다 약 1천만년쯤 전에 퇴적한
석회암의 일종이다. 층층이 가지런하게 쌓인 돌로마이트를 마구 헤집어놓은 수많은 저서생물의 흔적과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지거나 물결이 남긴 자국 화석이 당시 환경을 말해 준다.
최덕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구문소는 적도의 태양 아래 증발이 많고 염분이 높은 조간대의
특성을 보여 오늘날의 페르시아만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태백산 분지 퇴적층의 더 먼 과거를
보기 위해 경북 봉화군 석포리 석개재로 향했다. 석개재 임도를 따라 고생대 초기 지층이 펼쳐져 있다.
구문소보다 2천만~3천만년 전 조금 더 깊은 바다 밑에 쌓인 퇴적층이다.
석개재의 고생대 퇴적층
구문소에서 발견된 삼엽충 꼬리 부분 화석
강원도 태백시 구문소는 우리나라에서 삼엽충 화석이 가장 풍부하게 산출되는 곳이다
약 5억년 전 지층은 회색 석회암과 황토색 셰일이 교대로 쌓여 시루떡 같은 모습이었다. 생물활동이
왕성해 석회암이 쌓이다가 무언가의 이유로 중단되고 펄이 쌓이는 일이 수백만년 동안 계속됐다.
이 임도를 따라 한 시간을 걸으면 적어도 5천만년 동안의 퇴적층을 거슬러 오를 수 있다. 암석 곳곳에는
연구자들이 화석 등을 연구하기 위해 흰 페인트로 채집 위치를 표시해 놓았다. 고생대 캄브리아기 동안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금보다 10배나 높았다. 온실효과로 기온이 높았고 풍부한 이산화탄소를
이용하여 탄산칼슘 골격을 만드는 삼엽충, 완족동물 등 생물이 번창했다. 전 세계에 걸쳐 막대한 양의
석회암이 이때 형성됐다. 석회암을 원료로 만드는 시멘트는 삼엽충이 준 선물이다.
1억5천만년 동안 퇴적층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려
태백산 분지에서 1924년 처음으로 삼엽충 화석을 발견한 이래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것은 일본인
학자들이었다. 특히 고바야시 도쿄대 교수는 1931~1971년 동안 연구결과를 보고해 한반도 삼엽충
연구의 토대를 닦았다. 1990년대 들어서야 최덕근 서울대 교수 등 한국인에 의한 삼엽충 연구가 본격
시작했다. 1995년에는 영월의 삼엽충을 연구한 최초의 국내 박사가 배출됐다. 최 교수는 “어떤
삼엽충이 있나를 넘어 삼엽충의 진화와 발생, 고환경 복원으로 연구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르도비스기의 조간대가 말라 갈라진 흔적인 건열 화석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지도
태백과 영월의 삼엽충이 왜 다른지는 흥미로운 관심거리이다. 캄브리아기의 4천만년 동안 두 곳에서
서식한 삼엽충 가운데 같은 종은 전혀 없다. 그러나 오르도비스기로 가면 공통종이 나타난다.
최 교수는 캄브리아기에 좀더 깊은 바다였던 영월이 오르도비스기에 들어 퇴적작용으로 수심이
낮아지면서 태백과 비슷한 환경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영월과 태백의 중간쯤 되는 수심을
가진 지역이 여전히 발견되지 않는 것은 미스터리다. 고생대의 오르도비스기 중엽인 4억4천만년
전부터 석탄기에 이르는 1억5천만년 동안 퇴적층이 전혀 없는 ‘대결층’도 수수께끼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와 북중국에서도 나타나는 이 현상이 “해수면이 하강해 태백산 분지가 육지가 됐지만
퇴적물을 공급할 높은 산지가 없었고, 곤드와나 대륙에서 떨어져 대륙이 이동하는 과정이어서
퇴적층이 쌓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설을 밝혔다.
구문소의 돌로마이트 - 약 4억6천만년 전에 퇴적된 석회암이 변형된 것이다.
구문소의 생흔화석 - 바다 밑바닥 생물들이 퇴적층을 뒤적인 흔적을 보여주는 화석이다.
삼엽충 화석 - 구문소에서 출토된 삼엽충 화석, 크기가 꽤 크다.
금빛 삼엽충 - 화석에 침투한 황철광이 미처 녹슬지 않아 반짝이고 있다.
삼엽충이란?
캄브리아기 초인 5억2천만년 전부터 페름기 말인 2억5천만년 전까지 고생대 전시기에 걸쳐 약 3억년
동안 생존했던 절지동물의 조상이다. 삼엽충이란 이름은 머리를 위로 두고 세로로 놓았을 때,
세로로 머리, 가슴, 꼬리 세 부분으로 나뉘고, 가로로도 중심과 양옆 부분으로 나뉘는 ‘세쪽이’인 데서
왔다. 키틴질과 방해석으로 된 껍질로 부드러운 몸과 다리를 보호한다. 크기는 1㎜에서 72㎝까지
다양하나 보통 3~10㎝ 크기이다. 모두 2만종이 밝혀졌으며 해마다 새로운 종이 발견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300여종이 기록돼 있다. 삼엽충은 새우나 게처럼 자랄 때 탈피를 하고 죽은 뒤 쉽게
몸이 조각나 많은 양의 화석이 조각 형태로 발견된다. 온전한 형태의 화석은 드물다.
포식자를 피해 공처럼 몸을 만 삼엽충의 화석
더듬이까지 생생하게 보전돼 있는 미국 버제스셰일에서 출토된 삼엽충
삼엽충은 동물 가운데 처음으로 정교한 눈을 발달시켰다. 많은 종이 투명한 방해석 렌즈가 모인 겹눈을
지녔으며, 이중렌즈로 구면수차를 해결한 것은 17세기 네덜란드 광학자 호이겐스보다 3억년 앞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발달한 눈은 포식자의 움직임을 알아채기 위한 것으로, 위험에 닥치면 쥐며느리처럼
몸을 공처럼 마는 습성이 화석으로 드러났다. 몸에 가시나 사슴벌레처럼 뿔이 난 것도 있다.
고생대 초인 캄브리아기에 전성기를 맞았으나 고생대 중기부터 쇠퇴하다 페름기 말 지구적인 대멸종
사태와 함께 사라졌다. 가장 가까운 현생동물은 투구게와 전갈이다.
염산이 녹인 삼엽충의 비밀
강원도 영월과 태백에는 1960년대 일본인 화석수집가들이 몰려와 아이들에게 돈을 주고 삼엽충 화석을
사들였을만큼 온전한 화석이 적지 않았다. 좋은 화석 구하기가 힘들어진 요즘, 화석 연구자들은
단단한 퇴적암 속에서 삼엽충 화석을 캐내느라 애를 먹는다.
화석이 든 암석을 망치로 쪼갰더니 절개면에서 화석이 활짝 모습을 드러내는 운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대개는 석공이나 조각가처럼 전동 드릴, 진동기, 압축공기 등을 이용해 화석을 가린 암석을
조심스럽게 떼어내는 힘겨운 작업을 해야 한다.
2006년 박태윤(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대학원생)씨는 화석이 든 석회암을 염산으로 녹이는 기법을
태백에서 처음으로 시도했다. 규소가 암석에 침투해 화석이 규화됐을 경우, 화석만 빼고 주변
석회암을 녹여 없앨 수가 있다. 외국에선 오래 전부터 해 온 방법이지만 화석이 규화될 확률이 워낙
낮아 국내에선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태백산 분지의 석회암을 염산으로 처리해 얻은 여러 종의 삼엽충 화석 조각들
방법은 간단하다. 화석이 든 석회암을 7% 농도의 묽은 염산에 하룻밤 담가놓으면 이튿날 석회암은
다 녹아버리고 삼엽충 화석만 남는다. 주먹 만한 석회암 2~3개를 녹이면 수백 개의 삼엽충 화석 조각이
나오기도 한다. 염산 기법은 삼엽충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특히, 알에서 깨 유생 단계를 거쳐
성체로 자라는 과정을 화석으로 확인할 수 있어 삼엽충의 발생과정을 세밀하게 추적할 수 있게 됐다.
박씨는 지난 7월 미국의 저명한 고생물학술지인 <진화생물학회지>에 삼엽충의 가장 큰 분류집단인
아사피다 무리의 구분법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논문을 실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태백시
사군다리에서 염산 기법으로 확보한 화석에서 발생과정을 추적해 삼엽충의 주요한 계보가 잘못됐음을
밝힌 것이다. 영월군 상동면 직동리에서는 사슴처럼 뿔이 달린 삼엽충을 이런 방법으로
찾아내기도 했다.
091111
30억년만에 첫 상륙 뒤 원시림 '미라'
1억년 전의 선물, 석탄
바다가 태초의 고향인 생물들이 원정에 나섰다, 척박한 육지로, 천신만고 끝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열었다, 나무의 시대다,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 듯 죽어 석탄을 남겼다, 삼척탄좌도 그 무덤이다.
바다에서 태어난 생물들에게 육지는 넘보기 힘든 곳이었다. 메마르고 온도 변화가 큰데다 자외선이
강하게 쪼였기 때문이다. 최초의 생물이 바다에 나타난 지 30억년이 지나도록 육지는 텅 빈 상태였다.
약 4억 2천만년 전 마침내 물가에 교두보를 마련한 원시 식물은 빠르게 진화해 육지를 초록으로 덮기
시작했다. 리그닌(목질소)의 발명은 두번째 도약을 촉발했다. 식물 조직을 단단하게 만드는 리그닌을
벽돌 삼아 최초의 나무가 탄생했다. 중력에 짓눌려 땅바닥을 기던 식물은 하늘을 향해 키자람을
시작했다. 물과 양분을 나를 관다발과 뿌리, 잎이 잇따라 등장했다. 육지에 나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약 3억5천만년 전 고생대 석탄기에 이르면 지구 최초의 원시림이 펼쳐진다. 바닷가 늪지대에
고층아파트 높이의 소철, 석송, 나무고사리가 삐죽삐죽 서 있는 사이로 비둘기보다 큰 잠자리가
날아다녔다.
고생대 석탄기와 페름기에 지구엔 어떤 일이?
고생대 석탄기에서 페름기에 걸쳐 1억년 가까이 적도를 중심으로 지속된 거대한 숲의 시대는 인류에게
석탄을 남겼다. 삼척탄전 등 강원도의 무연탄도 이 시대의 유산이다. 국내 최대의 탄광인 강원도
태백시 장성탄광에서는 오늘도 수백명의 광부가 지하 1000m 깊이에서 1인당 하루 9t꼴로 무연탄을
캐낸다. 이들은 서민의 구들장을 데우는 연탄을 만들거나 동해화력발전소의 연료로 쓰인다.
유시근 대한석탄공사 개발부장은 “탄광에서 석탄은 시루떡의 팥고물처럼 층을 이루고 있는데
지각변동을 받아 45~70도 기울어진 모습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다량의 석탄이 부존된 지층이 형성된 지질시대를 석탄기라고 부른다. 영국의 지질학자
윌리엄 코니베어러와 윌리엄 필립스가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822년 지은 것으로 최초의 지질시대
구분이기도 하다.
최초로 육상에 진출한 고생대 실루리아기 식물 쿡소니아 화석(좌()과 가상도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호주 등에 막대한 탄층을 형성시킨 고생대 석탄기와 페름기에 지구엔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석탄기와 페름기에 걸친 3억~2억5천만년 전 지구는 유럽, 그린란드, 시베리아,
북미, 북중국 등으로 이뤄진 로라시아 대륙과 남극, 아프리카, 인도, 호주, 남미 등을 포함한
곤드와나 대륙이 초대륙 판게아를 형성하던 참이었다.
석탄기 대륙 분포도
게임 프로그램 팩맨이 동쪽으로 입을 벌린 듯한 모습의 판게아 대륙은 남극에 두터운 얼음에
뒤덮혔지만 적도에 있던 고 테티스 해 주변에는 따뜻하고 얕은 바닷가 습지가 광대하게 분포했다.
판게아 대륙의 한가운데는 히말라야 산맥에 버금가는 커다란 산맥이 있어 적도 일대에 강우벨트가
형성됐고, 비에 씻긴 엄청난 양의 퇴적물이 강을 따라 하구에 쌓여 삼각주와 습지를 만들었다.
해수면 상승속도가 조금만 빨랐거나, 조금만 느렸어도…
석탄을 이루었던 고생대 거대 석송류의 줄기 화석
고생대 고사리 화석. 강원도 태백에서 출토됐다.
박석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석탄지질학)는 “죽은 식물이 미처 썩지 않은 상태에서 토탄층을
이룬 뒤 해수면 변화로 퇴적층에 묻히는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땅속에서 높은 온도와 압력을 받아
석탄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삼척 탄전에서는 모래가 굳은 10~40m 두께의 사암층 위에 평균 2m
두께의 석탄층이 있고 그 위에 5~10m 두께의 펄이 굳은 셰일층이 놓여있는데, 이런 탄층이 6개나
되풀이된다. 박사는 “장성탄광에서 두께 4m인 석탄층이 10㎞ 길이로 연장돼 있는데, 이 정도 두께의
탄층이 형성되려면 처음 퇴적층의 깊이가 적어도 40m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의 지형과 기후는
대규모 탄층이 형성되기 위한 조건을 갖추었다.
열대 해안의 강 하구와 석호의 습지에는 지름 1.5m에 높이 30m에 이르는 석송류와 지름 30~60㎝에
키 20m짜리 나무고사리, 30m 높이의 소철 조상 등이 무성했다. 죽은 나무는 서서히 상승하는 바닷물에
잠겨 썩지 않고 토탄이 됐다. 만일 해수면 상승속도가 너무 빨랐다면 습지가 사라졌을 것이고,
너무 느렸다면 죽은 식물은 토탄이 되지 않고 썩어 없어졌을 것이다.
고생대 석탄기와 비슷한 환경을 지닌 미국 디스멀 늪지대
죽은 식물이 2m 이상 쌓여있는 인도 갠지즈 강 하구나 미국 버지니아와 노스캐롤라이나의
디스멀 습지는 석탄 층 형성 당시와 비슷한 환경을 보여준다. 낙동강 하구의 옛 하상에서 메탄가스가
발생하는 것도 땅에 묻힌 식물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생대처럼 많은 양은 아니지만 석탄은
지금도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석탄기 나무 시길라리아 둥치 화석 - 독일 오스나브뤼크에서 1886년 발견
중국 내몽골 동성탄광의 석탄층 모습 - 중생대 쥐라기에 형성된 것
고생대 대형고사리의 잎 화석 - 강원도 태백시에서 출토
석탄기와 페름기는 거대 곤충의 시대
세계에서 가장 큰 곤충을 꼽으라면 흔히 남미산 장수풍뎅이나 아프리카 골리앗풍뎅이를 든다. 길이가
10~13㎝나 된다. 무게로 치면 뉴질랜드의 원시 귀뚜라미인 자이언트 웨타가 70g이나 되고,
나뭇가지처럼 가늘지만 말레이시아의 대벌레가 55㎝로 가장 길다. 이처럼 아무리 큰 곤충이라도
다른 동물에 비하면 왜소한 편이다. 혈액이 혈관 밖으로도 흐르는 개방 혈관계이어서 몸이 너무 크면
산소가 몸 구석구석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기 속 산소농도가 높아지면 몸도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일이 석탄기와 페름기 초에 걸쳐 일어났다. 거대한 습지대가 형성되고 죽은 나무가 썩지 않은 채
쌓여 토탄층을 이루자 대기조성에도 큰 변화가 왔다. 당시 대기 속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혁명
이전보다 3배나 높은 800ppm에 이르렀지만 숲이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나무로 바꾼 뒤
토탄이 돼 땅속에 묻혔다. 이산화탄소가 격감하자 대기 중 산소 비율은 현재의 21%보다 훨씬 높은
35%에 이르렀다.
산소 농도가 높아지자 산불이 잦아졌고 거대한 곤충과 양서류가 등장했다. 지구상 최대의 나는
곤충이었을 날개 폭이 75㎝인 잠자리가 속새류 거목이 들어찬 습지에서 작은 곤충이나 양서류를
노렸다. 길이 1.8m의 노래기, 길이 70㎝ 전갈을 비롯해 하루살이와 바퀴의 조상도 몸집을 키웠다.
보트만한 크기의 선탄기 양서류(위)와 고생대 페름기 초기 양서류(아래)
물속에는 이들을 노리는 길이 6m짜리 보트만한 양서류가 잠복해 있었다. 페름기 말에 이르면 날씨가
춥고 건조해지면서 열대의 늪지대도 사라졌다. 이와 함께 거대 곤충과 거대 소철, 속새류는 모두
사라지고 오늘날 우리가 보는 아담한 크기의 곤충, 양서류, 양치류 등이 진화의 끈을 이어갔다.
거대 잠자리가 석송과 나무고사리 사이로 날아가는 석탄기 늪지의 상상도
독일베를린 자연사박물관에 있는 거대잠자리 모델의 모습
석탄의 나이는 갈탄-유연탄-무연탄 순
석탄은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화석연료이지만 당분간 중요한 에너지원 자리를 차지할
전망이다. 전세계 산업부문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가운데 전력생산 과정에서 약 30%가 나오는데,
석탄화력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석탄화력발전은 전체 설비용량 가운데
33.2%로 전체 가장 비중이 큰 발전용 에너지원이었다. 1980년대까지 겨울철 주종연료이던 무연탄은
이제 서민용으로 명맥을 잇고 있지만, 석탄은 아직도 전등 3개 가운데 하나꼴로 밝히고 있다. 정부의
제4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2022년에도 석탄발전의 비중은 29.2%로 원자력발전 32.6%에 이어
두번째로 중요한 발전원이다. 우리나라는 유연탄을 화력발전, 제철, 시멘트 산업용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네시아, 중국 등에서 수입한다. 지난해 그 양은 9300만t으로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았다.
채광이 중단되기 전의 강원도 태백시 철암저탄장 모습
우리나라의 석탄 생산은 1988년 2429만t으로 정점에 이르렀으나1989년부터 석탄산업합리화 조처 이후
급격히 줄어 지난해 277만t에 머물렀다. 석탄공사가 소유한 장성, 도계, 화순 탄광과 민영탄광 등 6개
탄광이 채광을 하고 있으며, 150개 탄광이 합리화 조처로 채굴할 수 있는 석탄이 있는데도 문을 닫았다.
전국의 석탄 매장량은 약 15억t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 채굴한 석탄은 주로 동해화력발전소의 연료와
시설원예농가, 서민층의 연탄으로 쓰인다. 연탄을 쓰는 서민은 약 28만 가구에 이른다. 연탄 1개의
가격은 812원이지만 정부가 40%를 보조해 소비자 가격은 489원이다.
땅에 묻힌 토탄은 온도와 압력을 받아 갈탄-역청탄(유연탄)-무연탄 순으로 변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채굴하는 석탄은 모두 무연탄이다. 세계적으로 무연탄은 석탄 가운데 1%에 지나지 않는다
장성 탄광 - 국내 최대 태백시 장성탄광의 채탄 모습
무연탄은 열량은 높지만 휘발성분이 적어 느리게 타, 연탄용으로는 좋지만 발전용 연료로는
부적합하다. 석탄 분자 사이에는 메탄가스가 결합돼 있다. 최근 미국, 중국 등 탄층에서 메탄가스를
상업적으로 뽑아내고 있다. 석탄층가스(CBM) 개발은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을 연료로 활용하는
청정기술로도 주목받고 있다.
[출처] 한반도 자연사 2 |작성자 mokbba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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