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정『李光庭. 1674(현종 15)∼1756(영조 32)』
조선 후기 학자.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천상(天祥), 호는 눌은(訥隱). 삼척부사 말(煞煞)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예산군수 경종(慶宗)이고, 아버지는 정언 주(澍)이며, 어머니는 진주유씨(晉州柳氏)로 군수 사필(師弼)의 딸이다.
1696년(숙종 22) 진사가 되었으며, 영조 때에 참봉·감역·세마를 제수하였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조현명(趙顯命)이 경상도관찰사로 있을 때 지방에 학문과 교화를 일으키고자 많은 선비를 뽑았는데 그를 스승으로 모셔 안동부훈도장(安東府訓都長)으로 삼았다.
조정에서 효렴(孝廉)을 천거하라 하였을 때 조현명이 그를 문학과 행의(行誼)가 산남(山南)의 제일이라고 천거하였고, 뒤에 김재로(金在魯)가 영백(嶺伯)으로서 조정에 들어가 또 천거하여 후릉참봉(厚陵參奉)을 제수하였는데, 서경덕(徐敬德)과 성수침(成守琛)이 그 자리를 사양하였음을 알고 병을 핑계로 물러났다.
그 뒤 장릉참봉(莊陵參奉)을 제수받았지만 끝내 사양하였다. 당시 재상이던 조영국(趙榮國)은 그가 문장과 학술에 중망이 있었음에도 여러 차례의 관직 제수를 사양하고 산림에 묻혀 후학을 교수한 점을 높이 평가하여 6품직 하사를 건의하여 왕의 허락을 얻었다. 영남 문원(文苑)의 모범이며 세교(世敎)를 떨쳤던 인물로 전해온다. 저서로는 『눌은문집』. 『칠공자전(七公子傳)』이 있다.
한옥션 1995-587
많은 저술을 남겼던 거창 출신 후기 학자 평암 정형진(平巖 鄭滎振) 선생 집안(동래 정씨)소장 자료로 눌은 이광정(訥隱 李光庭. 1674∼1756) 선생이 撰書한 친필본의 평암선생정공묘갈명병서(平巖先生鄭公墓碣銘幷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