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檀君)
한민족의 시조(始祖)로 받드는 고조선(古朝鮮:檀君朝鮮)의 첫 임금. 천제(天帝)인 환인(桓因)의 손자이며, 환웅(桓雄)의 아들로, BC 2333년 아사달(阿斯達: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하였다. 한국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고조선과 단군에 관한 기록으로는 중국의 《위서(魏書)》를 인용한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편(紀異篇)>에 실려 있는 자료가 있을 뿐, 정사(正史)인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아 대조를 이룬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記)》, 권남(權擥)의 《응제시주(應製詩註)》에도 《삼국유사》와 비슷한 기술이 보이나, 단군에 관한 문제를 다룰 때에 우선 《삼국유사》의 기록을 사료(史料)로서 인용하고, 여기에 더 많은 신빙성을 둔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옛날 환인의 서자 환웅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므로, 아버지가 환웅의 뜻을 헤아려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가 사람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의 신단수(神壇樹)에 내려와 신시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善)·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렸다. 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 속에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일렀다. 곰과 범은 이것을 먹고, 곰은 37일 만에 여자의 몸이 되고 범은 못참아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어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배게 해달라고 축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잠시 변하여 혼인하여서 아이를 낳으니, 그가 곧 단군 왕검(王儉)이다. 왕검이 당고(唐高:중국의 가장 오랜 역사 고전인 상서 첫머리에 올라 있는 제왕) 즉위 50년인 경인(庚寅:50년은 丁巳이니 틀린 듯하다)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으며, 이어서 백악산(白岳山)의 아사달로 옮긴 뒤 그 곳을 궁홀산(弓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 하였다.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주(周)나라 호왕(虎王)이 즉위한 기묘년(己卯年)에 기자(箕子)를 조선의 임금으로 봉한 후 장당경(藏唐京:황해도 신천군 文化面)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山神)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 이 개국신화는 이후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라 많은 해석이 나왔다. 한 예로서 이 신화는 고조선의 한 부족(部族)신화이던 것이, 훗날 고려시대에 대몽항쟁(對蒙抗爭) 등 민족의 단합이 요구되는 시대를 맞아서 민족의 시조로 받들게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단군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는 《삼국유사》의 편찬시기가 앞에서 언급한 시대와 거의 같다는 점도 유의할 만하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평양에 사당을 짓고, 단군과 고구려의 동명왕(東明王)을 함께 모시기도 하였다. 한편, 민족의 형성과정과 관련된 단군신화에서 중심이 되는 곰 숭배사상이 한국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등지에 널리 퍼져 있던 고(古)아시아족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조상신이라는 점에서, 단군신화의 시대와 성격을 한국의 신석기시대 주민과 관련시키는 견해도 있다. 물론 이 신화를 청동기시대의 산물로 보는 견해도 있고, 지배자의 출현을 빛내는 신화로 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단군신화 시대를 무문토기문화(無文土器文化)와 관련시키면서 환웅족(桓雄族)의 등장에서 그 의미를 찾으려는 견해도 있다. 이와 반대로, 역사과학의 입장에서 신화라는 것은 고대인의 한 관념형태이므로 단군신화를 곧 역사적 사실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원래 신화는 역사적인 사실 바로 그 자체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 속에 담겨 있는 역사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으므로 어떤 맥락으로든 간에 신화의 의미는 풀려야 한다. 그러나 단군의 신화가 그대로 왕조사(王朝史)인 것처럼 해석하는 것도 무리이다. 아무튼 단군신화는 한민족이 수난을 당하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족의 단합을 요구하는 구심체적(求心體的) 역할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