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한양 다음 가는 왕도
평양은 241년간 고구려의 도읍이었고, 부여와 공주는 각각 122년, 64년간 백제의 도읍이었다. 고조선의 수도 아사달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고 요동지방에서 기원해 지금의 평양으로 여러 번에 거쳐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역사상 천 년 신라의 경주, 5백 년 조선의 한양 다음으로 오랫동안 한 나라의 도읍이었던 곳이 김해다.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고대왕국 가야의 도읍지였으니 유적과 유물이 적을 리가 없건만 그 동안 김해를 역사도시라고는 아예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가야는 잊힌 왕국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역사의 패자에 대한 당연한 무관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옛날 가야는 한반도의 여러 나라들 중 가장 약체였고 영역도 좁았다. 하지만 지금의 김해는 경주와 공주, 부여 인구를 다 합친 것과 맞먹는다. 비밀스런 고대왕국의 도시 김해는 요즈음 시세의 급성장과 더불어 역사성을 되찾아가고 있다. 왕이나 최고 지배층의 집단묘지로 추정되는 대성동고분이 발굴·복원되고, 국립박물관과 고분박물관 등 2개의 박물관이 세워졌다. 허물어졌던 분산성도 웅장한 옛 모습을 찾았다. 왕궁 터로 추정되는 봉황대 일대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가야시대의 옛집과 포구가 복원되었다. 높이 7미터, 길이 12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회현동 패총은 가야 성립 직전의 초기 철기시대 유적으로, 세련된 전시관이 들어서서 패총의 놀라운 단면을 볼 수 있다. 김해의 주요유적은 시내를 관통하는 해반천 주변에 모여 있는데, 해반천 둔치에는 산뜻한 자전거도로가 나 있고, 국립김해박물관에서 봉황대 사이에는 ‘가야의 거리’를 조성해 역사도시의 격조를 높였다. 이제 김해평야가 훤히 보이는 분성산 봉수대부터 억새가 소슬대는 대성동고분 언덕을 넘어 여의낭자와 황세장군의 전설이 어린 봉황대 숲길까지, 두 바퀴로 누빌 곳이 매우 다채롭다. 이 고대왕국의 숨결을 천천히 더듬는 동안 눈과 가슴과 머리는 공허감에서 포만감으로 점점 차오를 것이다.
코스안내 1. 주요 유적지는 시내에 집중되어 있으나 일부는 시가지와 좀 떨어져 있어 하루 종일을 잡아야 한다. 출발지는 고속도로 IC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가까운 봉황대가 적당하다. 먼저 봉황대 일대에 가야시대 당시의 포구를 재현한 물가와 옛날 집, 패총 등을 돌아본다. 경사지가 많아 자전거를 끌어야 할 곳도 있지만 언덕이 낮아서 무리는 없다. 봉황대 정상에는 가야시대 황세장군과 여의낭자의 전설이 어린 바위가 있고, 숲속에는 여의낭자를 추모하는 여의각도 숨어 있다.
2. 시내 구간만 둘러보려면 봉황대를 출발해 김수로왕릉~대성동고분~국립김해박물관~구지봉~허왕후릉을 돌아오면 된다. 이 구간은 대부분 평지이고 길이도 6km 정도여서 생활자전거나 미니벨로를 이용한 가벼운 역사산책 코스로 알맞다. 김수로왕릉만 시내 쪽으로 500~600m 들어가야 할 뿐 나머지는 ‘가야의 거리’ 가까이 모여 있어 찾기 쉽다.
3. 체력에 자신이 있고 산악자전거를 탄다면 구지봉에서 백운대 고분~사충단 방면으로 분성산을 올라 최근 복원된 분산성과 봉수대, 가야민속촌, 산꼭대기에 자리한 해은사를 돌아보기를 권한다. 분성산 기슭을 오르는 길은 힘든 오르막이지만 전망이 좋고 길 자체도 매우 아름답다. 산성에서는 김해천문대 뒤쪽의 임도를 통해 가야대학교로 하산할 수 있다. 가야대학교에서는 종합운동장~구지봉을 거쳐 출발지로 돌아올 수 있다.
4. 분산성과 해은사, 김해천문대를 거쳐 가야대학교로 내려오는 코스가 김해의 핵심 유적을 다 볼 수 있는 코스다. 김해천문대 입구의 임도 삼거리에서는 왼쪽 내리막길로 가야하며, 비포장 임도여서 반드시 산악자전거를 타야 한다. 시내 반대편의 가야랜드 방면으로 내려가면 신어산 자락에 안긴 은하사와 MTB대회가 열리는 일주 5km의 싱글트랙 코스도 타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