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산(也山) 이달(李達) 선생과 신소천(申素天) 스님
이 세상에서 가장 볼 만한 구경거리 가운데 하나가 사람구경이다.
1950년대 중반 주역의 대가인 야산과 금강경 대가인 신소천(申韶天) 선사가 만났다.
금강경은 한국 선불교(禪佛敎)에서 가장 귀중하게 여겼던 경전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모든 번뇌가 상(相)에 대한 집착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금강경에서는 이 상을 떼어내기만 하면 그 즉시 해탈한다고 설파한다.
50년대의 신소천은 바로 이 금강경의 본질을 확실하게 깨친 선승으로 소문나 있었다.
그가 남긴 '금강경 강의'는 오늘날에도 식자층 사이에 인기가 있다.
그런 신소천이 야산에게 편지를 보냈다. 어느 날 야산이 자갈길을 걷다가 잘못 디뎌서 그만 발을 삐었는데,
그날 오후에 편지 한 통이 도착하였다. 내용은
'이차기여우국성(以此寄與憂國聖) 하기상족보기신(何其傷足保其身)'.
'나라 걱정하는 성인에게 보낸다. 어찌하여 발을 다쳤는가, 몸을 잘 보존하시오'라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보낸 사람의 이름은 밝히지 않고 다만 '거이탈삼취무공'(去二脫三吹無孔:
둘을 제거하고 셋을 벗겨내면 구멍 없는 퉁소를 분다)이라고만 씌어 있었다.
해독을 못한 야산의 제자가 스승에게 물으니 야산은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서
"이 편지는 申씨가 보낸 것이다"라고 단정하였다. 옆에 있던 제자들이
그 이유를 물으니, "申자의 양쪽 둘을 떼어내고, 다시 가로로 된 상.중.하의
세 획을 떼어내면 작대기(l) 하나가 남는다.
그 작대기가 바로 구멍 없는 피리(吹無孔)를 상징한다"라고 설명하였다.
申씨가 보낸 편지였다는 말이다. 야산과 신소천 사이에 편지를 통해 선문답을 주고받은 것이기도 하였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당시 부산에 머무르던 신소천과 부여에 거주하던 야산이 대구에서 회동하게 되었다.
주역의 장문인과 금강경의 장문인이 만나면 스파크가 튀게 되어 있다.
유교와 불교. 이종격투기의 만남이라고나 할까.
먼저 신소천이 야산에게 물음을 던졌다. "주역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건괘(乾卦) 구오(九五)에 있습니다." "구오의 극치점은 무엇입니까?"
"점(占)입니다"라고 야산이 대답하였다.
그러자 신소천은 "점이라면 하나의 술(術)에 지나지 않군요"라고 내뱉었다.
매우 짤막한 두 사람의 문답이었지만 그야말로 핵심은 다 들어 있는 대화였다.
주역의 64괘 중에서 제일 비중 있는 괘는 첫 번째 괘인 중천건괘(重天乾卦)이다.
위아래가 모두 건괘로 이루어져 있다.
그 구오는 '비룡재천(飛龍在天)이니 이견대인(利見大人)이라'는 구절이다.
용이 하늘에서 여의주를 굴리며 신묘한 변화를 부린다는 내용이다.
용이 부리는 신묘한 변화란 현실세계에서 막힘이 없는 경지를 의미한다.
그 막힘이 없는 경지를 현실세계에 실천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야산은 그 방법을 바로 점(占)이라고 보았다. 신소천은 주역의 핵심이
결국 점이라는 말을 듣고, 이를 하나의 술(術)로 평가절하해 버렸던 것이다.
신소천이 야산에게 라이트 훅을 한방 날린 셈이다.
이번에는 야산(也山)이 질문을 던졌다.
"금강경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에 있습니다."
야산이 다시
"그 극치점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신소천은 들고 있던 염주를 책상 위에 탕 하고 떨어뜨리며
"파상(破相:상을 부숨)"이라고 대답하였다.
선문답은 0.5초 내에 나와야 한다. 3초 후에 나오면 머리를 굴려 나온 대답이므로 가짜에 해당한다.
신소천은 질문을 받자마자
'상을 깨는 데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준 셈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 대목에서 진한 감동을 받으며 말문을 닫았을 것이다.
그러나 야산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또 한 수를 날린다.
"파상이라면 너도 없고 나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아니오?"
"그렇소.”
"금강경 사구게(四句偈)에 보면
'일체의 모든 법칙이 꿈과 같고, 환상과도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도 같으며, 이슬과도 같고 번개와도 같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又如電)고 하였는데,
선생의 주장대로라면 이슬과 번개가 파상이란 말이오?"
이번에는 야산이 신소천에게 레프트 훅을 한방 날린 셈이다.
그 순간 신소천이 약간 당황하면서 "그건 순간(瞬間)이오"라고 대답하였다.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당신의 주장인데,
이슬과 번개는 있지 않느냐는 되물음이었다.
무(無)에 대한 유(有)의 반격이자, 금강경과 주역의 입장차이이기도 하였다.
그러고 나서 야산은 점과 술에 대한 설명을 추가하였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글자가 뚫을 곤(l) 자이고,
여기에다 점(.)을 하나 찍어서 아는 것이 점칠 복(卜)자가 된다.
이 결과를 입(口)으로 말해주면 점(占)이 된다.
주역을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그것을 점술로 풀이하여 내놓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게 야산의 생각이었다.
야산의 제자였던 대산(大山) 김석진(金碩鎭.1928~)의
'스승의 길 주역의 길'을 보면 보다 자세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출처 : 무진장 -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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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周易)의 대가이신 야산(也山) 이달(李達) 선생은
기축년인 1889년 음력 9월 16일 경상북도 김천 원터의 연안김씨((延安金氏) 문중에서
부친 현귀(鉉貴)와 모친 창녕 조씨(昌寧曺氏) 사이에 장자로 태어나셨다, !
어릴 때 향리의 서당에서 수학하였으나
청년 시기에는 전국을 편력하며 독학으로 유경(儒經)을 두루 통달하고
도교 불교와 제자백가(諸子百家)마저 섭렵하였다,
더욱이 주역(周易)을 싸들고 산에 들어가 거듭 탐구한 끝에 심오한 진리를 깨우치시니
세상 사람들이 "주역의 달인" "주역학의 종장"이라 칭송하였다,
선생은 대자연(大自然)을 표방하며 순환론적 미래를 예단하였다.
그 일환으로 후천(後天)시대를 예견하고 그때 쓰여 질 책력으로 경원력(庚元歷)을 창제하였다.
1987년 12월 29일 태극사상에 바탕한 동양학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홍역학회(洪易學會)를 창립하고 통강(通講)한 제자가 108 명이고
전체 회원이 1만 2천명이었다.
태극지하(太極之下) 종교연합회를 조직, 종교의 화합을 통해 민족통일을 제창하였다.
한국전쟁 직전에는 가족과 함께 따르는 제자 회원 3백호를 이끌고
안전한 서산 안면도에 이주시켜 무사히 피난하게 하였으며,
전쟁을 겪는 제자들의 어려움을 딱하게 여겨 직조공장. 철물공장. 성냥공장 등을
공동체로 운영케 하여 생계를 해결하게 하였다.
9.28수복 후인 1951년 1월 가족과 제자들을 부여군 은산면 옥가실(玉佳室)로 옮겨 살게 하며
은산면 가곡리 성주산 기슭의 양지바른 곳에 삼일학원(三一學院)을 설립하고
남자 제자 64명과 여자 제자 6명을 양성하였다.
삼일학원 뒷편에 단황단(檀皇團)을 모아 국조(國祖) 단군을 받들며
홍익사상(弘益思想)을 고취하고 민족정기를 앙양하였다.
70세를 일기로 부여 동남리 본가에서 타계하시어 부여 용정리 청마산 사좌(巳坐) 언덕에 장사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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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 스님(申素天)은 1897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불교 대중화에 헌신한 실천적 사상가입니다.
《금강경》의 현대적 번역과 보급을 주도했으며,
그의 호국 및 구세 사상은 제자인 광덕스님으로 이어져 현대 불광 운동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본관 및 속명 : 평산 신씨, 속명은 세순(世淳)
생애와 업력 : 만주 등지에서 독립운동에 투신1952년 56세의 늦은 나이로 비구계 수지
《금강경》을 번역하여 전국을 돌며 강의' 구심(求心)·구국(救國)·구세(救世)'의 실천불교 운동 주창
사상의 영향 : 광덕스님과의 깊은 교류를 통해 그의 가르침과 불교 대중화 운동이 오늘날까지 이어짐.
출처 : 네이버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