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부모님, 1966년 11월 7일 초교파기독교협회 창립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소서’(요 17:21)라고 간곡하게 기도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소원이요,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의 현실은 처참했다. 교파 간의 장벽은 높고 분쟁은 끊이지 않았다.
참부모님께서는 이러한 한국 교회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시고 모든 크리스천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교회의 개혁과 일치의 신성한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하시고 기독교연합운동단체를 창립하셨다.
이재석 목사는 인연된 장로교, 감리교, 성경학회 목사들과 함께 서울시내에서 연합부흥회를 개최해오다 참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1966년 11월 7일 기독교초교파운동본부(이하 초교파운동본부)를 창립하였다. 그 후 현재의 사단법인 초교파기독교협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지속적으로 교회일치운동을 전개하였다.
교역자 간담회와 연합부흥회
초교파운동본부의 창립은 잠들어 있는 한국 교계와 교회 지도자들에게 연합운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사건이었다. 초교파운동본부는 인위적인 교파의 장벽을 넘어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친교와 협력과 일치를 추구해 나가는 한편, 교단간의 대화를 통해 교파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운동부터 시작했다.
초교파운동본부는 창립 1개월 후인 12월 5일에 ‘교역자간담회’를 서울 명동 삼오정에서 개최하였다. 이 모임에는 27개 교파에서 180여 명의 교역자가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독일인 신부로서 한국을 지극히 사랑하며 교회일치운동에 누구보다 열의를 갖고 있던 안토니오 신부가 부산에서 일부러 서울까지 달려와 축사를 하였다.
초교파운동은 시대적인 강력한 요청에 의하여 한국 교계의 큰 관심사가 되었다. 이러한 교계의 열기와 사회의 관심과 호응에 따라 초교파운동본부는 지방에서도 교역자 간담회를 실시하였고, 이를 통해 더 많은 교역자들이 초교파운동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초교파운동본부는 1967년 1월부터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통일교 등 6개 교파의 연합부흥단을 직접 조직하고 연합부흥회를 하기로 하였다 기독교장로회 서울동부교회를 시발로 하여 한반도의 남단에 위치한 항구도시 마산의 중앙감리교회와 부산의 보수감리교회를 거치는 동안 은혜 속에 부흥회를 개최함으로써, 부흥회를 통한 에큐메니컬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교파교리공청회와 기독교 사상 강좌
초교파운동본부는 각 교파의 신학을 공개 강의하여 타교파의 교리를 연구하고 상호 이해하여 자신이 신봉하는 교리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만큼 타교파의 교리도 존중할 줄 아는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교파교리공청회’를 개최하였다.
이러한 취지하에 1967년 3월 28일부터 30일까지 안식교 우필원 목사, 가톨릭 김남수 신부, 통일교 유효원 협회장, 성서학회 박철수 목사, 나사렛교회 조문경 목사, 침례교 차광석 박사 등 6개 교파 지도자들이 ‘말세와 천국’이라는 주제로 한국 교회사상 초유의 ‘교리공청회’를 신문회관에서 개최하여 크나큰 관심을 집중시켰다.
한편 초교파운동본부는 1967년 4월 13일 제1회 기독교사상 강좌를 ‘기독교와 공산주의’라는 주제로 진행하여 김기석 서울시교육회장, 박동운 한국일보 논설위원, 한재덕 공산주의문제연구소장, 통일교회 안창성 선생 등이 주제 발표를 하였다.
제2회는 동년 5월 22일에 ‘기독교와 사회 참여’라는 주제로 개최되어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당면과제를 성찰하였다. 이 강좌를 통해 기독교의 사회 참여는 기독교의 일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새로운 각성을 촉구하는 모임이 되었다.
창립 1주년 기념행사 및 순교자유가족위안회
교파를 초월하여 하나의 교회를 실현하자는 초교파운동이 다양하고 적극적으로 추진됨에 따라 초교파운동에 대한 교계와 사회의 관심이 날로 높아졌다. 이와 함께 통일교회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초교파운동을 반대하는 일부 교권주의자들의 움직임도 강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거센 풍파가 휘몰아치고 있는 와중에서 초교파운동은 창립 1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임원 및 회원들은 기념행사를 계획대로 실시할 수 있을지 매우 불안한 가운데 11월 7일을 맞이했다. 그런데 시간이 되면서 인간적인 염려와는 달리 수많은 목사들이 운집해 왔다. 각 교단의 참가금지령이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을 뒤엎는 대성황을 이룬 것이다.
이 모임에는 기독교감리교, 기독교장로교, 예수교감리교, 예수교장로교, 성결교, 통일교, 성공회, 천주교 등 전국에서 600여 명의 교역자가 참석하였다. 초교파운동본부 총재에 새로 취임한 장석영 목사는 인사말을 통하여 “초교파운동은 하나님의 참된 영광이 비치는 하나의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한편 본회 창립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한국 기독교의 개선할 점과 일치운동의 구체적 방안에 대한 기념논문을 공모하기로 하였다.
초교파운동본부는 창립기념행사에 이어 신·구교를 막론한 순교자유가족위안회를 열었다. 일제와 공산치하에서 순교한 기독교인과 납북교직자의 유가족에 대한 위안회를 개최한 것이다. 한국 교회가 미처 관심을 갖지 못하고 있던 순교자의 신앙을 기리며 그 가족들을 위로하고 생활비까지 보조하였다. 이와 같은 계획과 배려는 전적으로 참부모님의 사랑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출처: 「평화세계를 향한 여정, 섭리기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