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과나무 길
영주시 봉현면의 ‘소백로’ 산책
지난 12일(토) 아침, 봉현면 유전리 힛트재 본가에서 아침식사를 하고서 8시에 집을 나섰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과나무 길인 ‘소백로’를 산책을 위해 나선 것이다. 유전리에서 중앙고속도로 풍기 나들목까지는 대략 4KM다.
전국 사과 생산량의 13%를 점유하고 있는 영주시에서도 봉현면은 특히 사과나무를 빼고는 이야기 할 것이 없을 정도로 온통 사과재배가 농업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실재로 풍기 나들목에서 좌회전하여 예천방향으로 8KM 정도를 차로 가면 ‘이곳은 사과밭뿐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수원이 많다.
원래 경상도에서는 대구지역이 사과주산지였지만, 70~80년대를 거치면서 재배지역이 점점 북상하여 현재는 경상도의 안동, 영주, 봉화지역과 충북의 충주, 단양, 제천지역, 강원도의 영월, 정선, 평창지역까지 재배지가 이동한 상태이다.
아무튼 영주시에서는 부석사를 품고 있는 부석면과 소백산 옥녀봉 아래에 위치한 봉현면이 사과주산지다. 흔히 영주시를 알리는 명품 농특산물 가운데 풍기인삼, 풍기인견, 영주한우와 함께 영주사과는 인기가 높다.
그 가운데 영주사과는 봄에는 하얀 사과 꽃과 가을에는 빨간 사과를 볼거리로 제공하여 나그네들에게 보는 기쁨과 먹는 상큼함을 제공하는 특산품이다.
7년 전 엄친께서 영주시내에 거주하시다가 봉현면 유전리 힛트재에 과수원(kim's apple 네이버 카페 http://cafe.naver.com/kimsapple.cafe )을 마련하신 이후 나는 이곳을 자주 찾으면서 사과나무 길을 산책하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원래는 사과나무 길을 아래에서 올라가면서 둘러보는 것이 가장 올바른 코스지만, 오늘은 집에서 잠을 자고 나와 풍기 나들목 방향으로 걸어서 내려오는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봉현면의 ‘소백로’ 전체를 보자면 해발 400미터 정도의 힛트재를 가운데 두고 아래로 풍기 나들목까지 대략 4KM, 예천군 감천면과의 경계지역까지 대략 4KM로 전체가 8KM 정도인데, 그 중의 반 정도를 걸어서 내려온 것이다.
우선 부모님의 과수원을 둘러 본 다음 천천히 길을 나선다. 9월 중순의 아침이라 덥지는 않았지만, 햇살은 눈이 부시다. 선글라스를 쓰고 카메라를 둘러매고는 약간의 언덕을 오른다. 채 2분도 오르기 전에 힛트재 정상에 위치한 유전리 버스정거장이 보인다.
시골 버스 정거장이지만, 벽돌 건물에 담쟁이를 올린 것이 제법 운치가 있다. 내부에는 잘 앉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소파도 설치되어 있는 것이 재미있게 보인다.
정거장 뒤로 무덤과 정갈한 소나무 몇 그루가 보인다. 그 뒤편으로 오르면 산과 계곡이 좋다고 하는데 난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정거장을 지나면 이제부터는 아래로 내려가는 편한 길이다.
이내 좌측에 ‘하늘샘 된장’을 만드는 된장 공장이 보인다. 두 부부가 경영하는 곳으로 작지만 정원과 된장 항아리가 아름다운 곳이다.
저 멀리로 풍기읍이 한눈에 들어온다. 1시간 정도면 걸을 수 있는 곳이기에 힘차게 걸어본다. 시골길은 대체로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면서 인도를 잃어버려 아쉬울 때가 많다. 이곳도 사과나무가 무척 좋은 곳이지만, 2차선 도로가 정비된 이후로는 인도의 폭이 채 1M를 넘기지 못하는 것이 약간은 아쉽기까지 하다.
하지만 차량 통행이 많지 않고, 대부분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면 천천히 가거나 조금 둘러가는 관계로 크게 위험하지는 않다. 단 어린이나 노약자의 경우에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할 것 같다. 눈이 튀는 복장이나 밝은 색 모자 같은 것을 착용하는 것이 상대방 운전자를 위한 배려가 될 것 같다.
사과나무를 보면서 지나다 보면 저 아래 한천리 샘골이 보인다. 대부분 산촌(散村)인 유전리와는 달리 30여 가구가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사과밭 사이사이에 집들이 아담하고 예쁘다.
언덕배기의 과수원을 사이에 두고 조그만 개울이 흐르고 그 중간 중간에 깜찍한 농가주택과 별장형의 펜션을 닮은 집들도 보인다. 나도 마을 가운데 어딘가에 집을 한 채 얻어 농사도 지으며 글을 쓰고 살고 싶어진다.
한천리를 좌측에 두고 우측 마을 입구에는 대성사라고 하는 조그만 암자가 보인다. 사과나무 사이로 큰 불상이 보이는 것이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번 올라가 보고 싶어진다. 멀리서 불상을 향해 기도를 한 다음 다시 출발한다.
길가에는 코스모스며 도깨비 박, 조롱박, 나팔꽃 등이 보기 좋게 피어있다. 밭과 도로를 가르는 석축 위에는 이끼가 끼어 있기도 하고, 돌나물이 꽃을 피우고 있기도 하다.
사과 밭 사이사이로 몇 안되는 논이 보이기도 하고, 인삼에 고추를 키우는 농가와 대추나무, 감나무, 밤나무가 보이기도 한다. 온통 사과나무뿐인 이곳에서 생경한 나무들이 더더욱 정겨운 것도 여기만의 묘미인 것 같다.
경운기에 사과를 가득 싣고 지나가는 노인의 뒷모습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고 보니, 아무래도 사진이라는 것이 눈으로 보는 전부를 담기에 곤란한 점이 많은 것 같다. 내 사진 실력에도 한계가 있지만, 내 눈엔 그렇게도 예쁘게 보이는 사과와 사과나무들이 사진기에 담기고는 숨을 죽이고 마는 것이 안타깝다.
경운기를 타고 노인이 지나간 자리 뒤편엔 큰 느티나무 두 그루가 사이좋게 서 있고, 길 우측에 새롭게 조성이 되고 있는 것 같은 주택 단지는 아직도 빈터만 남아 휑하다.
이리저리 사과나무 길에 취해 길을 가다보니 어느덧 목적지가 성큼 나가와 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두 사람과 마주하며 인사를 나누고 나니 좌측에 대촌교회가 보인다.
차를 차고 지나가다 보면 언제나 십자가만 보였는데, 좀 더 다가서 정문 앞으로 가니 수령이 500년도 넘게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를 옆에 두고 작은 교회가 그림 속 풍경처럼 서 있다.
신자가 몇 명이나 될까? 무척 궁금하다. 시골교회의 목사님은 사례비를 받기도 어렵다고 하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뵙고 싶어진다. 어떤 훌륭하신 분이 이런 시골 교회의 목사님으로 와 계실까?
교회 앞 실개울을 건너면 봉현초등학교와 봉현전원마을이 보인다. 최근에 학교 담장을 없앤 이후로 아주 깨끗하게 보이는 것이 아이들이 공부하기 좋은 학교처럼 보인다.
100여명 정도의 학생이 공부한다고 들은 것 같다. 방과 후 학습지도와 원어민교사의 영어지도, 동문들의 장학금 지급 등으로 시골학교지만 인근에서 지원자가 몰리는 곳이라고 한다. 우리 연우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1년 정도는 이곳에 보내고 싶은데, 쉽지 않다.
학교를 둘러보고 나서 풍기 나들목 방향으로 가는데, 뒤쪽 담장 아래에 호박꽃이 이쁘게 피어 있다. 지금이라고 된장국에 넣어 먹으면 맛이 좋을 것 같은 호박도 함께 있어 욕심이 났다.
시계를 보니 9시가 다 되었다. 소백산 등산을 위해 9시 경에 풍기 나들목에서 만나기로 한 동료들은 방금 전 죽령터널을 통과했다는 연락이 왔다. 이제 그들과 함께 소백산 초암사를 둘러본 다음, 국망봉에 오르고자 한다.
나는 오전 8시부터 한 시간 동안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과나무 길을 혼자서 행복하게 걸었다. 이곳의 사과밭은 9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2개월 동안 아름다운 사과 향과 붉은 빛깔을 뽐내며 트레킹 족을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영주시는 사과나무 길을 찾는 손님들을 위해 지금의 좁은 인도를 좀 더 넓혀 주었으면 한다. 현재의 채1M도 되지 않는 인도는 너무 좁고 위험하다. 가능하다면 편도일지라도 최소 폭 2M 정도 되는 황토 길을 만들어 주셨으면 한다.
그래야 사과도 사먹고, 사과나무 길도 산책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 같기 때문이다. ‘소백로’ 는 차를 타고 그냥 스쳐지나가기에는 너무 아까운, 아름다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