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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해지려는 언어의 표정 / 박철영
-송태웅 시집 《파랑 또는 파란》
송태웅 시인의 시는 슬픔 같은 여운이 길어 오래도록 울림으로 가슴을 깊게 짓누른다. 그런 시편들은 거의 다 과거의 아픔에 기반하여 현재까지도 아물지 못한 통점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의 시는 이별과 배반마저 지극함에서 시작하여 결과물로 남은 상흔을 고스란히 몸으로 껴안아 홀로 괴로워한다. 그런 시적 세계에서 보여주려는 고뇌는 시대적 양심 앞에서 더는 나가지 못하고, 시의 미학적 진전으로 발화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다. 오히려 삶에서 분리되지 못한 트라우마를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숙명적 의미를 종종 증명이나 하려는 듯 시를 징표로 남기려 한다. 시를 통해 지나온 과거마저도 쉽게 잊거나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되짚어주듯 반복적 어투지만 내재하고 있는 의미를 촘촘히 직조하고 있다. 그러고서도 남아있는 고통에 대한 온전한 폐기는 끝내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시어의 조탁 이전 심층적 내면에 온재한 폭력적인 슬픔을 소화해내지 못했고, 전이된 분노를 몽땅 끄집어내 불사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인해 한낮의 이글거리는 해는 물론이거니와 밤하늘의 별마저도 순한 눈빛으로 바라볼 수 없다. 그 별 속에 간직하고 있을 기억은 유년의 눈빛으로 바라본 것처럼 새록새록 빛나는 별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뜨고 지는 별을 바라볼수록 더 짙어지는 어둠과 죽음의 그림자는 별빛처럼 과거의 한 순간 속에서 더 선명해진다. <별> 전문은 그런 시인의 시적 세계를 잘 드러내 보인다. “별은 푸른 갈기를 휘날리며 평원을 질주하던 종마들의 눈동자//댓잎 같은 속눈썹을 걷어내고 깊이 도려내질 당시의 피 냄새//공회당 앞마당에 진열되던 주검들, 그때의 순박한 아비와 영특한 아들//가마니에 둘둘 말아서 달구지에 싣고 가 툭 던져진 꽃들의 유해//그때 얼굴에 쏟아지던 빛의 무덤들, 생애의 마감을 연습하던 최초의 기억//저 어두운 저수지, 하늘로 아버지를 따라 올라간 오 악몽만 같은 그림자 몇 개”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죽음들에서 되살아난 영혼들이 별이 되어 밤하늘을 위로하는 눈빛이 된다. 무수히 빛나는 별들은 달구지에 실려 갔던 슬퍼서 더 아름답게 빛나는 유해다. 그 별들도 누군가에게 잦아들면 오래도록 기억될 고통스러운 노래 가사가 되어주었다. 별과 별이 가까워질수록 껴안은 슬픔은 선명하게 환생한다. 제주 성산포와 구례 하사마을은 하늘에서 바라본다면 지척간이다.
제주 성산포에서 구례 하사마을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제주의 숱한 오름들을 떠돌던 바람이었다가 반야봉의 써레와도 같은 구상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헛간 옥상으로 쏟아지는 별들은 떠돌던 내 마음을 기억할지도 모릅니다
-<무명의 노래>의 부분
별들도 사람처럼 거처를 옮겨 간다. 송태웅 시인에게는 별처럼 그것마저도 가능한 일이 된다. 제주 성산포의 별을 구례 하사마을의 밤하늘로 함께 이주시킨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사람이 살아가는 처소로 끌어들여 시詩말을 찾아낸다. 그런 시인에게 있어 문학의 처소는 어디인가. 별이나 사람이나 안주할 수 있는 장소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딘가에 안주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의지의 자유를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시인에게는 정처를 정하는 것이 중요해졌고, 크나큰 의미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단순한 주거 안정의 문제보다 심적 안정의 긴박한 필요에 기인한다. 그래야만, 주변적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고 주체로서의 시적 성숙을 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긴 도시의 피로에서 오는 긴장에서 자연스럽게 피폐한 시적 세계를 회복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문학의 완성은 백지상태로 제출되는 시를 의미한다는 말라르메의 말처럼 현실태(energeia)로써 가능한 것인가에 확신이 서지 않고서는 주어진 명제에 대해 참眞으로 인식해 나아갈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런 면에서 송태웅 시인의 문학은 성공한 문학이 아닌 성공하지 못한 문학임이 자명하다. 그것은 어떤 경우라도 공백 상태인 하얀 종이를 완성된 시라고 내민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유는 분명하다. 시인의 가슴속에 맺힌 분노에 찬 응어리가 너무 깊어 절필할 수 없기에 그렇다. “틀 음악이 훤히 짚이는 디제이처럼/나도 내가 쓸 시가 미리 다 짐작되는/그런 시인이고 싶다/알다가도 모를 그런 사람이 아니고/구례 동아식당이나 광주 영흥식당 뒤지면/반드시 막걸리 주전자처럼/둥글둥글 웃으며/구석자리 차지하고 있을 사람/결연한 편지 남기고 사라져 봤자/휴전선 아래 어느 산자락이거나/퇴락한 바닷가 마을 어슬렁거리다가/누렇게 웃으며 나타날 사람/이것저것 다 해보아도/실패가 늘 밥상처럼 차려진 사람”일 거라고 단정해버린다. 그러면서도 그 실패를 딛고 스스로 <생강나무 잎새처럼> 자연의 변화에 수긍하며 물들어가고 싶어 하는 시인이다. 김현은 “실패에 의해 열린 공백 안에 자신을 기입”하는 행위를 역설적으로 성공한 문학으로 말한다. 그렇다면 아직도 송태웅 시인의 문학적 가용 시간은 많이 남아있다. 해야 할 말을 시로 쓰는데 더는 주저해서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이미 송태웅 시인이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찾아가는 시점부터 실패한 문학적 발화를 모반하였다. 그런 징후는 이미 시의 발화 속에서 잉태된 첫 번째 시집에 수록된 <<바람이 그린 벽화>> 에서부터 변주를 거듭해왔고, 두 번째 시집에서도 변화의 시계열은 멈추지 않았다. 더구나 송태웅 시인의 시 세계에 깊숙하게 침투한 상처의 트라우마는 끈질기도록 자신에게 추회追悔를 강요했다. 그런 아픈 기억에서 과감하게 단절할 수 없을 때 오는 상실감으로 고통은 배가될 뿐이다. 정신적 고통의 극한 상태에서 얻을 수 있는 위안마저 불안감은 더해져 최소한의 위안이 되어 주질 못했다. 오히려 사랑에 대한 절망과 배신이 해소되지 않았고 그 비수가 닿은 곳은 되려 자신의 가슴이어서 상처는 더 깊게 마련이다. 80년대 광주 민주 항쟁 시대에 목격한 상처는 너무 깊어 치유될 수 없었을뿐더러 어떠한 것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 더군다나 서슬 퍼렇던 시대와 맞물린 이십 대 초반의 정신적 고통은 오히려 생애로 번져버렸다. <그 이후>에서 “감나무 그림자 짙은 마당엔/양철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가 서 있고//느닷없이 사이렌 소리 들리거나/탱자나무 울타리 옆 토란대들 수런거”린 환청과 환각에 시달린다. 그런 시대를 목도한 죽음의 시간은 공포를 확인시켜주는 트라우마로 남아 스스로의 노력에도 치유되지 못했다. 오히려 더 예민해진 삶마저 환부가 되어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80년 광주를 기억하도록 강요한다. 되돌아보지만, 다른 시인들처럼 격렬하게 생명을 불사르며 항쟁에 대한 혁명의 시를 쓸 수도 없었고, 시대의 억압에 긴 침묵으로 저항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라도 많은 사람에게 역사 앞에 부채負債처럼 안고 있던 침묵의 담론을 백지에다 고해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침묵으로도 해소될 수 없었던 진실에 대한 미안함이고 용서와 화해이며 사랑이기에 그렇다. <고요의 얼굴> 부분처럼 “가을은 추사에게 당도하는 초의의 서신처럼 누군가의 안부를 걱정하는 사람의 눈빛으로 오는가 추사가 그랬다지 그대 나를 걱정하는 편지 더는 보내지 말라고 초의가 보내온 차 한 줌 우려 마시면서 추사는 뭍에 사는 이의 뜻을 다 알아챘”다는 것이다. 소식은 감정의 산물이다. 그 감정마저 배제한 편지에는 고요뿐이다. 찻물 우린 찻잔 안에 담긴 다향의 고요가 추사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 마음의 눈이라면 못 볼 것이 없다. “그저 흘러간 옛 노래나 부르면서 벽지의 미로 속을 헤매듯 삶이 늘 번복할 수 없는 것”을 예감한다.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다지만, “여기는 육자배기에 갇힌 곳 난바다로부터 멀고 청승과 울화로부터 가까워서 사람들은 피보다 붉은 홍주를 마시며 아침부터 취”해야 사는 <진도> 명량 바다다. 그 바다 위로 거침없이 산화해 가던 눈송이처럼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서는 편히 다가설 수 없다. 그렇다면 세상과의 화해는 요원한 것인가.
별은 언제쯤이면 하늘에 붙박이가 되어 있을까. 아직도 시인의 유랑은 진행형이다. 하늘의 별이 처소를 옮기듯 지상의 별처럼 땅에서 정처에 머물지 못했다. 힘들 때마다 어릴 적 어머니 무릎 아래로 흘러내리던 노랫가락을 자신의 노래인 양 슬픈 가락으로 별을 헤아려본다. 어두워져야만 빛나 보이는 별처럼 <어둠의 뒤에 서야만> 그리워지는 “분홍빛 속치마 입던 시절 어머니가 부르던 노래 밤하늘에 잔별 같은 수많은 사연 꽃은 피고 지고 세월이 가도 그리움은 가슴마다 사무쳐 오고 그리하여 어둠의 뒤에 서야만 어머니가 보여요 술 취해 들어온 아버지의 양복을 간신히 벗기고 부르던 어머니의 노래 그 노래가 지금 내가 부르는 노래예요 어머니”라며 못다 한 말을 가슴으로 전하고 있다. 누구나 그렇듯이 잔잔한 달빛이나 별빛을 보면 아련해진다. 그런 밤이면 아픈 가슴을 어루만지듯 <어머니의 잠> 든 품이 그리운 것이다. “나는 어머니를 잠 못 이루게 이 세상에 온 생이었다/나는 아버지의 월급봉투를 통째로 훔쳐 통일호를 타기 위해 이 세상에 온 생이었다”며 “들창문 너머/팔십 어머니는/저녁내 잠을 못 이루고/덜커덩거린다”라며 시인의 통곡 같은 자탄은 너무 늦은 후회와 성찰이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여태껏 어머니의 모습을 닮지 못했다.
거친 바다의 파도를 이겨내고 성체로 자란 연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모천을 찾아 나선다. 시인도 지나온 삶의 긴 피로에 지친 몸과 마음을 받아줄 어머니를 떠올린다. <강가의 푸른 억새처럼> 문득문득 어머니를 통해 세월의 찰나를 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요즘 어머니가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동안에만 우리는 영원할 수 있”다는 그 시간마저 찰나에 불과하다. 생이라는 시간은 어디에서도 영원으로 존재할 수 없다. 영원으로 가기 위한 하루마저 버거운 시간이다. 그래서 더 완강한 삶의 유한성을 통감하는 <새로 두시의 비>는 폭우다. “당신 살았을 적 다짐들 허허로운 뒤/담양 창평 연화촌 영원히 묵을 집 찾아” 또 길을 나섰지만, 그것도 영원일 수 없는 순간의 정처임을 알고 있다. 어차피 세상살이란 것이 모질기는 마찬가지다. “내 마음은 낯선 정처를 찾아 떠돌다/어느 뇌우에 빗맞은 영혼이었을까/새로 두시도 넘었는데/비만 내리고/사납게 사납게 세상을 때리”더라도 몸을 맡겨야 한다. 그것이 지금껏 살아온 자신에 대한 참회인지 모른다. 시는 문학이기에 이미지를 중시한다. 이미지는 세계이고 시의 전부나 부분으로 구조화한다. 발화된 이미지는 시의 구조 속에서 긴장과 힘이 있어야 한다. 송태웅 시인의 시에는 도사리는 사실적 긴장이 있다. 긴장은 팽팽한 체험에서 오는 체화 속 탄력이 근원이다. 그런 근원은 깊숙이 내재하고 있는 80년 국가에 의해 자행된 폭력의 심각성으로 시작되었다. 사회에 만연한 허위와 모순에 대한 반감도 시적 세계에서는 긴장된 반항으로 유도된다. 그 긴장을 조금이나마 유연하게 해주는 것은 노동이다. “기적처럼 전화가 와/상반기 일 끝났으니/나오지 말라고 한다”는 전언이다. 그럴 때는 아예 “텃밭의 풀들은 내버려두고/마당의 강아지들도 내버려두고/풀도 강아지도 /한세상 사는 일/참견말자고 내버려두고/너희들도 나처럼/한세상 사는 일/참견하지 않으려고 내버려두”는 것이어서 세상 티끌 하나라도 몽땅 이참에 비워내는 것이다. 노동이 취소된 뒤 지친 심신을 달래준 곳이 <섬진강 물 냄새>다. 그렇게 위로받고 투명해지려는 삶의 노력은 또 이어진다. 스스로 <파랑 또는 파란>에 다가가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내게 온 남루여/뒤뜰 토란잎에 맺힌 물방울처럼/고요히 내려앉은 파란”으로 되돌아가길 주저하지 않는다. 자기 회복의 시간은 짧아도 부족하지 않다. 어차피 “생은/한 필지의 주민등록지 위에 내리는/폭우와 싸워 나가는 것”처럼 유한한 시간으로 남아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치는 다양하다. 다양한 가운데 삶을 유지하는 수단이 노동이라면 그 가치는 특별한 의미로 봐야 한다. 시인도 노동의 참된 가치를 통해 변화를 꿈꾼 적이 있었다. <아직 오지 않은 날>에서 “내가 가르친 아이는 끝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배달천국에 배달 영업사원으로 취직했다 나도 선생질을 작파하고 산에 오르내리면서 노가다를 뛰”었다는 것이다. 그런 자신처럼 어쩔 수 없이 그 아이도 세월이란 더께에 찌들어가며 세상의 생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라고 비관한다. 노동으로는 공평한 기회나 평안한 미래를 담보해줄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사회 현실과 교육 현장의 괴리만큼 노동의 가치로 그 간극을 좁힐 수가 없다. 그런 난관 앞에서 스스로를 포기하거나 타협하지 않으려는 의지만으로 세상이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 시인이 거쳐 온 세상은 자율적으로 건강해지거나 그러한 징조를 보여주지 못했고 오히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무서운 옛날”은 작금에도 반시민적 위협의 위세로 더 견고해지고 있다. 그럴 때 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세상과 멀어져야만 하는 이유를 알아버렸다. 시인을 <독毒>하게 마음먹도록 한 것은 “세상이 항상 나에게 우호적일 거라는 /허황된 믿음을 버리지 못해/생이 얼마나 초라”해졌는가를 안 것이다. 절망에도 비겁한 연명은 얼마나 구차한 것인가. 기껏해야 분노에 찬 소주 한 컵으로 상처받은 스스로를 위로할 뿐이다. 어차피 시는 과거를 소환하는 일이고, 부제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고드름>을 보며 한 시절 단단한 결기로 세상과 타협하기를 거부했던 시인은 자화상을 본다. 그 “싸움도 사람도 그 무엇에서도/완전히 패퇴하는 것만이/맑게 돌아오는 일”임을 알아 버렸다. 지금껏 인식해온 세계를 유연하게 바라볼 줄 아는 것이야말로 훼손된 정신을 맑고 선명하게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허나 지나간 시간을 죄다 바르게 되돌려 놓을 수는 없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도열한 은사시나무들이 푸른 옷의 제복으로 바뀌어 어디론가 행군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운동장은 연병장으로 바뀌고 병아리들처럼 깔깔거리는 소리는 구령소리로 바뀌었다 탐조등 불빛이 침을 흘리며 미친 듯이 어두워진 하늘 여기저기를 훑었다 호루라기소리가 운동장의 모래알들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갑자기 헛배가 고파져서 반합통에 라면 두 봉지를 끓여 우겨 넣었다 전역한 병사 하나가 거수 경례를 붙여왔다 아이였다”
-<봉화초등학교> 부분
긴 방황의 여정 속에서 발표한 시집 <<파랑 또는 파란>>은 그런 의미로 본다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백지에 눌러쓴 묵시록에는 시간의 깊이와 침묵이 깊숙하게 각인되어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마음은 너무 여려 어느 것 하나 쉬이 베어내지 못한다. 자신에 의한 누군가가 상처로 아파할지 모를 고통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런 심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시인은 순천의 변두리에 있음 직한 <봉화초등학교>의 운동장을 서성이고 있다. 살며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임은 분명하다. 그런 시절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어 마음 아파하다 기어이 광주를 떠올린다. “도열한 은사시나무들이 푸른 옷의 제복으로 바뀌어 어디론가 행군하기 시작”하고 “어느새 운동장은 연병장으로 바뀌고 병아리들처럼 깔깔거리는 소리는 구령소리”로 빠르게 전화해간다. 잊어야 하는 과거의 실재 속으로 거듭 지쳐 들어갔다 밀려 나오기를 반복한다.
상상일지 현실일지는 알 수 없지만, “전역한 병사 하나가 거수 경례를 붙여왔다 아이였다”며 자신이 그랬듯 과거는 현재도 반복되고 있다. 가슴속 아픔이 아이로 대물림하는 순간이다. 또 아픔처럼 찾아오는 허기는 어디에서 채울 수 있을까. 그 해답은 어릴 적 순수했던 시절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어쩌면 불가능한 상상의 화해로 다가가려는 모순일지 모른다. 과거 속 모든 사람에게 거수 경례를 하며 다가가고 화해하고 싶지만, 때를 놓쳐버린 것이다. 모든 것이 때가 있음을 모를 리 없다. 오랫동안 자신을 불편하게 했거나 불편할 수밖에 없던 과거와 화해란 요원한 것인가. 보이는 사상事象이 죄다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다.
한때 햇살처럼 빛나던 기억들
혁명으로 부활하려던 기도들
유령처럼 일어나
어두운 창고의 철제문에
자물쇠를 채우네
-<어두운 기억의 저편> 부분
너도 어두운 상으로
사라진 사람들 그리워하는가
집채 같은 바위에 움막을 짓고
제 가슴에 영점 사격을 해오는 자들과
동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이곳을 참혹이라고 말하지 말자
-<남로당 구례군당 비트에서> 부분
자연계의 공간은 모든 곳을 포용한다. 공간 속 땅은 자연계 일부다. 그런 땅에는 다양한 생물 종이 살아간다. 그 땅에 사람이 살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공존의 땅에다 금을 긋고 울타리를 만들고 담을 쌓았다. 경계의 어느 곳에도 설 곳이 없는 사람들이 생겼다. 옥죄던 울타리를 벗어나 경계를 허물고 싶어 했던 그 사람들은 왜 지리산으로 들어갔는가. 그때까지는 다행스럽게 산은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오직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가려는 그들에게 세상은 “독버섯만 같던 어느 날의 생”으로 다가온다. 어쩔 수 없이 “그리움 날마다 키워/길어진 제 그림자”를 밟아 찾아간 곳이다. 그런 순정한 마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자신을 위하여 눈물 흘리지 말”자던 산 사람들이다. <남로당 구례군당 비트에서>처럼 스스로 산으로 찾아들어 세상을 위해 눈물 흘린 사람들이 그들이다. 산도 땅의 일부다. 다만 산을 가리켜 땅이라고 말하지 않고 산이라서 산 일뿐이다. 그곳에는 경계가 없고 문이 없다. 그런 산을 스스로 찾아 들어간 산 사람들도 언젠가는 산을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은 동학군이 발호했던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묵묵히 <허수아비>처럼 참았겠지만, 사람답게 사는 것을 기어이 보고 싶어 “장태를 굴리며 황룡강을 건너/장성 갈재를 향해 진군하던 사람아/제 땀 흘리던 논으로 끌려나와/제 피 말리며 빈 들 지키는 사람”인 동학 혁명군처럼 지리산에 숨어든 빨치산의 뜨거운 피는 같았다. <어두운 기억의 저편>에서 도사리고 있는 곳도 사람 사는 세상이다. 그래서 굳이 세상을 위해서라고 말할 필요까진 없다. 시인은 기억 저편에 있던 과거의 철제문을 떠올린다. 그곳은 고통스런 과거를 유폐시킨 철제문이었다. 철제문 안에 위태롭게 갇혀 있는 사람들도 지리산의 <남로당 구례군당 비트에서>의 빨치산의 눈빛처럼 똑같다. 다만 그들이 스스로 찾아 들어 지리산 계곡의 비트 안에 자신을 가두었지만, 철제문 속의 그들은 누군가에 의해 억압된 것이 다를 뿐이다. 모반은 그럴 때 필요한 것이다. 회의懷疑를 거듭하다 보면 모반에 이르고 그 모반이 닿고자 하는 곳이 바른 세상의 이치理致인 거다. 그런 이치를 알았으니 더는 늦출 수 없다. 이제 타협할 수 없는 현실의 고통을 치유해줄 곳을 찾아 나서야 한다.
사람이 사는 사회는 꾸준히 변화한다. 80년대 혁명의 시대 이후 열망했던 민주화의 열기만은 아니었다. 유구한 삶의 근본이던 농촌 사회는 거주민의 이탈로 붕괴는 정점으로 치달았다. 무엇이든 너무 빠르면 탈이 나게 된다. 산업화의 속도가 문제였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무너진 농촌의 몰락한 여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 속에서도 2,000년대에 접어들어 떠나기만 했던 농촌에 변화의 기미가 보였다. 몰락의 끝에서 오는 반성력으로 회복의 기미가 조금씩 나타났다. 고단한 삶을 포기한 뒤 보상받지 못했던 농촌의 뿌리 같은 사람들이 살았던 빈집에 귀촌의 이유를 갖고 하나둘 사람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처럼 송태웅 시인도 “살기 위해 서울, 인천, 광주, 제주 등지를 떠돌았다/살아 보기 위해 지리산 자락 구례에 짐을 풀었다/떠돌던 짐들 사이 여기저기에서/메모해 둔 시들이 담뱃가루처럼 흩어졌다”며 <시인의 말>에 적고 있다. 불화했던 도시 주변을 떠나 지리산을 들어온 이후 변화의 빌미를 찾아냈다. 그것은 지리산을 닮은 말들이었고 시인에게는 지면을 메울 수 있는 문장이 되어 주었다. 80년 광주로부터 지금껏 유랑해온 시인의 양심이고 시의 회로回路다. 돌이켜보면 80년 광주는 지루한 생애의 지울 수 없는 장벽이었다. 이성보다는 감정으로 내장된 긴 침묵의 시간을 끝없이 강요했다. <그렇게 우리는 삶이라는 지옥을 탈출했다>의 시는 자유 의지를 회복하겠다는 선언이다. “그곳은 어떤 아우성도 들려오지 않고 매일매일 잉크로 쓰는 일기장도 순식간에 백지로 남는 세상이었다 아, 우리는 백지 한 장 위에 한평생을 싣고 바다를 건너려 하였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얼마나 무모한 세상에 사는 가를 알 수 있다. 생의 이면은 죽음이다. 우연인지 모르나 그럴 때마다 시인은 죽음을 접하며 살아난 향수를 잊지 못한다. 그런 기억의 행위는 죽음을 통해 불투명한 미래를 전망해보려는 최소한의 시인 정신이다.
네 몸 타는 두세 시간 동안
담배 열 개비 정도 피우는데
그 산에 이팝나무 꽃들 여전하더군
뜨겁지도 않니, 잘도 견디더구나
꿀단지 같은 상자 하나에
담겨 나온 네 뼛가루
지난 겨우내 너랑 나랑 끙끙대며
지은 작업실 뒤에 뿌리고
그 다음날이 구례장날이었는데
거짓말처럼 네 이름자 찍힌
전화벨 울리지 않더구나
온종일 기다려도
너에게서 소식 없더구나
-<너 보낸 다음날> 부문
시인에게 죽음의 상상력은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미 스무 살 청년의 뇌리에 박혔던 80년 광주의 죽음의 그림자가 구례까지 따라와 현실로 보여주고 있다. 어차피 과거 기억 속 죽음 같았던 고뇌의 시간을 매듭짓는 순간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것은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구례라는 지명 속에 갇히기 시작한 이후 맺어진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런 연원은 먼 과거 속 시인의 태생지인 담양의 어느 시골에서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시골 사람들의 관계는 구례에서 다시 확인된다. 짧은 시간 함께한 사람과 이별의 안타까움에도 인연의 질김을 놓아야만 된다. 사람은 죽음을 보며 후회보다 더한 미련 때문 안타까워한다. 사람들에게 끝없이 이어져야 할 죽음은 질긴 생의 인과다. 누구나 때가 되면 죽음의 길로 들어서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죽음의 고통을 지켜보며 생의 한계를 직시하고 슬픔은 더 깊은 반성으로 자기 안에 내장된다. 지인의 죽음을 통해 사는 것의 별것 아님을 보며 허탈해한다. 그토록 목숨 줄을 이어가려는 질긴 생이었지만 죽음을 맞이한 고인 앞에 인간의 몽매한 집착을 깨닫는다. 사람에 대한 관계가 죽음을 통해 소멸하고 더 이상 미래에 대해 전망할 수 없을 때 망각은 찾아온다. <소진>에서 “한 마음이 쓰러지는 데에서/한 마음이 일어나는 거였다”고 말한다. 사람 마음이란 것이 다 그렇다. 그것은 꼭 사람만 한정한 것은 아니다. 시인은 사물에 대한 이별도 사람 못지않게 애착을 갖는다. 시적 상상력으로 사람을 바라보았듯 가슴 깊게 사유했던 바다가 있었다. <제주 바다를 떠나며>에서도 “나는 그대의 등 뒤에 서서/겨우 말더듬이를 벗어난 소년/해안 절벽에 묶여 풀 뜨는 종마/잉크 색으로 물들어 손짓하는 쑥부쟁이//안녕/간신히 잠잠해져 나를 에워싸던 바다여/온 몸에 구멍 뚫려/바람이 먼저 도달하던/이복형제여”라며 불러본다. 사소한 만남으로 시작해 인연이 되어버린 사람이나 사물이나 매한가지 질긴 정을 쉽게 놓지 못한다. 그런 상상 속의 바다도 사람과의 죽음처럼 이별을 거쳐 자연의 이치임을 깨달았다. 제 몸속 욕망을 다 비워야 얻어지는 사리 같은 시 한편을 얻어낸다. 시인은 그런 천성 때문에 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한다.
자연은 사람과 불가분의 관계다. 최상위가 자연이고 그 아래 작은 단위로 존재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러다가도 때론 사람이 자연보다 상위처럼 인식될 때가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이치를 배운 탓이다. 사람과 자연은 공존하는 이유만큼 거리를 유지하며 관계를 지속해간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자연 앞에서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기에 측은할 뿐이다. 죽음 직전까지 생으로 연명해가는 지루한 시간은 타자 아닌 자신이었음을 깨달아간다. <꽃들>을 보며 “내가 상처라고 생각한 것도 실은 당신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며 시인의 변화된 인식을 시적 세계로 보여준다. 지금껏 살아온 시간에 대한 술회다. 자본주의의 심화로 왜곡된 틈바구니에서 존재의 괴리감은 컸을 것이다. 자체의 모순을 안고 있는 삶이 <유적流謫>에서 “라면상자 두어 개로 거처를 옮기고/여름 햇살 폭주하는/낯선 마당을 서성”거린다. 그런 순간들에 몹시 낯설어한다. 낯섦의 시간이 오랫동안 적막처럼 흐른 뒤 그마저도 귀향임을 깨달았다. “현세는 길고 내세는 짧은 건가/제 나온 근본은 기억나지 않고/제 걸어갈 날들은 끝없는 평원이어서/그 평원은 온통 길 없는 길들이어서/이제 비로소 제 어미 손잡고/길 나서던 날 떠올”리게 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회복해가며 사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장마 무렵>인데 시인의 마음은 맑다. “저기 저 진흙탕물을 흐르는 물도 저리 맑은데/나도 그리 흐리지 않겠구나/아직 내 영혼 흐리지 않아서/떠나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굳힌 듯하다.
선명해지려는 시어처럼 송태웅 시인은 백지로 위임된 여백에다 자본으로 채색된 음험한 허세를 단호히 거부한다. 그리고 자본과 결탁한 권력의 비인간성이 내민 화해마저 주저 없이 외면해버린다. 타협의 빌미가 될 추호의 여지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심화된 병폐와 해악이 주어적 시어로 틈입할 수 있음을 극도로 경계한다. <겨울 숲>에서 시인은 스스로 “내가 아무리 오래 살았던들/나는 피려다 만 한 송이 꽃이다/괴로움이 메주덩이들처럼/속이 쩍쩍 갈라지며/죽은 증조모의 은회색 머리카락을/보여준다 할지라도/이 숲에서 나는/지난가을 떨어진 잣 열매 찾는/청설모 한 마리”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자신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낯선 곳으로 다가가 몸에 걸친 것을 벗어 던져도 늦은 것은 아니다.
어느 날 문득 화엄골에 갔더니
세상의 모든 깃발들
형형색색 다 모였습디다
나만의 것이었던 이별도
제2훈련소에 모인 오합지졸
그 하고 많은 사연들 속에선
내 처음도
당신이 오래전에 흘린 눈물
저 화엄골의 물처럼 흐르자고
한 생이 물이 되어야한다고
당신의 말은
자꾸 뒷덜미를 붙잡아
당신의 주변을 흐르던 나는
함께 흘러가서 좋았습니다
끝은 시작이니
생의 낯선 결단이니
어느 어둠도 너무도 낯익어
시방 저 온 천지 만장들은
분명 돌아온다는 언약이라지요
다 모였습디다
세상의 모든 깃발들 형형색색
어느 날 문득 화엄골에 갔더니
-<어느 날 문득 화엄골에 갔더니> 전문
세월은 모나던 것들을 둥글게 만들어간다. 무릇 거친 것들만이 아니라 사람마저도 세월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생의 날 것 같던 섬뜩한 언어가 예전 같지 않다. 수시로 이성의 경계를 넘어 섬뜩한 날을 휘둘러대더니 완곡해져 저무는 석양 탓인지 스스로 화엄에 들기를 자처한다. “세상의 모든 깃발들 형형색색”이라지만, 시인은 화엄의 세상에 이르기 위해 어느 만장을 꽂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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