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순이 탁자 위에 집문서와 도장, 통장을 놓은 다음,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 그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방문을 닫고 돌아선다. 천천히 닫히는 미닫이문 사이로 보이는 반지가 쓸쓸한 한편 홀가분해 보인다.
영화 <소풍>을 보았다. 극 중 금순과 은심은 사돈 사이이자 막역한 고향 친구다. 늙어 몸이 불편해진 두 친구는 누구의 신세도 지지 않고 제힘으로 살다 곱게 생을 마감하기를 소원한다. 하지만 몸은 그런 그들의 바람을 외면할 것이다. 아니, 기어코 외면한다. 해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쥐고 있던 것 모두 놓아버리고 아름다운 고향 남해 바다를 바라보며 생의 마지막 소풍을 함께하는 것이다. 존엄사가 허용되지 않는 현실에서 스스로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병든 몸은 그마저 허락하질 않는다. 다음날 겨우 몸을 추스른 그들은 김밥을 싸 길을 나선다. 섬망(譫妄)에 파킨슨씨병을 앓고 있는 은심이 허리를 못 쓰는 금순을 부축하여 힘들게 오른 정자에서 그들은 마지막 만찬, 김밥을 먹는다. 마침 그들 앞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희희낙락하는 젊은 연인들 덕분에 잠시 자신들의 풋풋했던 시절 우정과 사랑을 회상하는 행복을 누리지만, 현실은 누추요, 팍팍한 김밥이다. 체하지 않게 꼭꼭 씹어 먹으라는 둥, 김치를 싸 올 걸 그랬다는 둥, 죽음을 앞두고도 본능과 아이러니를 연출하는 금순. 아니, 마지막까지 생에 충실한 것일까. 마침내 벼랑 끝에 올라선 두 사람. 윤슬 반짝이는 아름다운 고향 바다를 묵묵히 눈에 담고 있던 은심이 독백 같은 질문을 허공에 던진다. “우리 열심히, 잘, 살지 않았냐?” 이어 금순에게 무서운지를 묻는 은심, 대답 없는 금순. 소풍을 마무리하려는 듯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뒤를 돌아보는 두 사람의 얼굴이 천천히 클로즈업된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펼쳐지고 있는 내내 나는 미묘한 감정에 휩싸여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슬프지만 행복하고, 누추하지만 아름답고, 두렵지만 편안한, 상반된 두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나를 흔들고 있었다. 노년의 삶과 죽음ㅡ 곧 나의 현실이기도 한ㅡ 어둡고 무거운 주제에 ‘행복’이라든가 ‘아름다움’, ‘편안함’이라는 감정이 병행될 수 있다는 것에 혼란을 느꼈다. 어쩌면 그것은 연출의 힘일 수도 있겠다. 누추한 현실을 시시콜콜 늘어놓지 않은 절제된 장면들, 주인공과 같은 연령대에 있는 두 여배우의 자연스럽고 현실감 있는 연기와 유쾌한 티키타카, 시의적절하게 풋풋함을 선사하는 회상 장면,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열린 결말들이 그것이다. 거기에 한 수 더한 것이 있다면 탁월한 음악 선택이다. 감독은 보사노바풍의 가요와 동요, 클래식 리스트의 피아노곡 <위로>,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황제> 2악장 등, 시종일관 밝고 감미로운 음악을 배경에 깔아 침울함을 상쇄시킨 한편, 따뜻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발라드곡 임영웅의 <모래 알갱이>를 마지막 장면에 삽입함으로써 전체 스토리를 아우르고 슬픔을 아름답게 승화시켰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게 그런 이중적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한 데는 ‘소풍’이라는 제목이 가장 큰 몫을 했던 것 같다. ‘소풍’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휴식’의 의미에, 순수했던 시절 설레고 즐거웠던 소풍의 이미지,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歸天)> 속 소풍의 아름다운 이미지가 한데 어우러져, ‘죽음’과 유쾌한 동행을 할 수 있게 해준 게 아닌가 싶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금순과 은심의 ‘소풍’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이승이라는 세계에서의 마지막 의식이기도 하고, 본래의 세계로 떠나는 또 다른 여행이기도 하다. 소풍에 있어 필요한 것은 가벼움이다. 은심과 금순이 재산을 정리하며 삶에의 미련을 떨쳐버린 것도 가벼워지기 위해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라는 말도 있듯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목숨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란 쉽지 않다. 자의든 타의든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죽은 시간을 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승을 돌아보는 은심과 금순의 얼굴이 밝고 편안하게, 어쩌면 행복하게도 보였던 것은 발목을 잡는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 놓여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작은 바람에도 흩어질/나는 가벼운 모래 알갱이….” 한 톨 모래알처럼 가벼워진 그들을, 고향 바다는 모태처럼 포근히 안아 편히 쉬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