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일기에는 날이 갈수록 성숙해져 가는 안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숨어산 지 1년 반이 지나자 이렇게 쓴다. "아마 당신도 1년 반이나 갇혀서 지낸다면 종종 견딜 수 없게 될 때가 있을 거에요. 아무리 올바른 판단력이 있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의 솔직한 느낌까지 억누를 수는 없거든요. 자전거를 타고, 춤을 추고, 휘파람을 불고, 세상을 보고, 청춘을 맛보고, 자유를 만끽하고, (…) 나는 이런 걸 동경해요. 그러나 그런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서는 안 되죠. 하기는 우리 여덟 사람 모두가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거나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지낸다면, 도대체 어떻게 될까요?" 안네의 일기에 적혀있는 나치의 만행 소식을 듣고 유대인들을 위해 울면서 기도하는 모습이나, 총소리, 대포소리,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 등 전쟁에 대한 공포, 실수로 은둔처에서 발각될까 봐 조바심을 치는 모습이 있다. 저항문학으로 평가되었던 이러한 면보다는 보통 소녀로서 꿈꾸고 있는 안네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어머니에 대한 불만, 언니와의 말다툼, 성적인 호기심, 첫사랑 소년에 대한 그리움들. 2년이 넘게 숨어 사는 동안 그녀는 음지에서 자라는 식물처럼 점점 꿈꾸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었다. 소녀에게 환한 태양 아래서 마음대로 활보하는 잠깐의 시간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