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우고 뜻을 거룩하게
“내가 귀하여 남들이 나를 받들어 주는 것은 나의 높고 큰 관대(冠帶)를 받드는 것이요, 내가 천하여 남들이 나를 업신여기는 것은 나의 베옷과 집신을 업신여기는 것이다.[아귀이인봉지(我貴而人奉之), 봉차아관대대야(奉此峨官大帶也). 아천이인회지(我賤而人悔之), 회차포의초리야(悔此布衣草履也).]”(채근담).
내가 높은 자리에 있을 때 나를 떠받드는 것은 나의 지위 때문이지 결코 자연인인 나를 떠받드는 것이 아니며 내가 어려운 처지에 있어 허름한 옷을 입고 헤진 신발을 신었을 때 나를 업신여기는 것은 볼품없는 나의 모습 때문이니, 어찌 존경받는다고 기뻐할 일이며 무시당한다고 슬퍼할 일이겠는가? 내 인품이 널리 유익하며 인격이 고매(高邁)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만이 기뻐할 일이요 내가 공부가 부족하고 인격수련이 덜되어 업신여김을 받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높음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 핵심은 마음을 비워 사악(邪惡)한 생각과 탐욕을 멀리하고 가슴에 품은 뜻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는 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닮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수련하고 단련해 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의 대표적인 특징은 온유(溫柔)와 겸손(謙遜)이라고 하겠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태복음 11장 29절)”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우리가 이런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과 태도를 지니고 인생을 살아간다면 마음을 비워 사악한 생각과 탐욕을 멀리하고 가슴에 품은 뜻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백강 이경여 선생이 이러한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를 것을 목표로 정진할 것을 말씀한 바가 있다.
『본심이 지켜지지 않으면 덥지 않아도 답답하고 춥지 않아도 떨리며 미워할 것이 없어도 노엽고 좋아할 것이 없어도 기쁜 법이니, 이 때문에 군자에게는 그 마음을 바루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바로 잡히고 나면 덥더라도 답답하지 않고 춥더라도 떨리지 않으며 기뻐할 만해야 기뻐하고 노여울 만해야 노여우니, 주자(朱子)가 대근본(大根本)이라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 함양하는 방도는 반드시 발동되기 전에 지키고 발동된 뒤에 살피며 미리 기필하지 말고 보존해 마지않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비고 밝은 한 조각 마음이 그 속에 거두어져 북돋는 것이 깊고 두터우며 이(理)가 밝고 의(義)가 정(精)하여 경계하고 삼가고 두렵게 여기는 것이 잠시도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공부가 어찌 일조일석에 되는 것이겠습니까.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천덕(天德)·왕도(王道)는 그 요체가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데에 있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홀로 있을 때를 삼가지 않아서 유암(幽暗)하고 은미(隱微)한 데에 문득 간단(間斷)되는 곳이 있다면 어떻게 날로 고명(高明)한 데에 오르겠습니까. ··· 덕을 밝히려는 옛사람이 마음을 바루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는 하였으나, 본심의 착함은 그 체가 지극히 작은 반면 이욕(利欲)이 공격하는 것은 번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색(聲色), 취미(臭味)와 완호(玩好), 복용(服用)과 토목(土木)을 화려하게 하고 화리(貨利)를 불리는 일이 잡다하게 앞에 나와 거기에 빠지는 것이 날로 심해집니다. 그 사이에 착한 꼬투리가 드러나 마음과 몸이 고요한 때는 대개 열흘 추운 중에 하루 볕 쬐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학문을 강명(講明)하여 이 마음을 개발(開發)하지 않으면, 또한 어떻게 이 마음의 바른 것을 회복하고 이욕의 사사로운 것을 이겨 만화(萬化)의 주재가 되고 끝이 없는 사변(事變)에 대응하겠습니까. 그 강학(講學)은 장구(章句)나 구독(口讀)을 뜻하는 것이며, 반드시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깊이 몸 받고 지취(旨趣)를 밝혀서, 자신에게 돌이켜 의리의 당연한 것을 찾고 일에 비추어 잘잘못의 기틀을 증험함으로써,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참으로 아는 동시에 미리 생각하여 익히 강구하고 평소에 대책을 세워두어야 합니다.』<효종 4년(1653) 7월 2일 백강 이경여 선생, 재변을 이겨내는데 힘써야할 항목 상차문(上箚文) >.
2025.11. 8.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