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공복리(법률준수) | 불공정국(법률이 유린) |
1인 | (왕정) | (참주정) |
소수 | (귀족정) | (과두정) |
다수 | (민주정) | (중우정) |
플라톤은 『국가』8권에서 본격적으로 민주정체에 대한 비판하는데, 그에 따르면 민주정체는 과두정체의 붕괴로부터 시작된다. 과두정체에서 재산이 많은 부류와 가난한 부류가 대립하고, 이 대립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이김으로써 민주정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민주정체는 구체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이겨서 상대편 사람 중의 어떤 자들을 죽이고 또 어떤 자들은 추방하고, 남은 사람들에게는 공평하게 시민권과 공직을 나눠줄 때 생겨나며, 민주정체에서 대개의 경우 공직은 추첨에 의해 정해진다. 이러한 민주정체의 가장 큰 특성은 ‘무제한의 자유’라 할 수 있는데, 민주정체에서는 언론의 자유와 같은 인간의 모든 자유가 허용되며 이로 인해 인간의 다양한 형태의 생활방식이 공존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자유는 무엇이든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플라톤이 지적하는 민주정체의 치명적 약점을 낳는다. 통치자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 있더라도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통치를 하지 않아도 되며, 전쟁이 일어나도 원하지 않는다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통치자들은 진정으로 철학을 하여 훌륭함이나 지혜를 갖추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국가는 무정부 상태로 흘러가게 된다. 이러한 극단적인 자유는 질서와 방종을 낳고 이는 결국 참주의 출현과 전제정치를 초래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민주정체의 또 다른 핵심적 결함은 바로 교육의 부재이다. 교육은 특히나 플라톤의 정치철학에서도 강조된 것으로, 인간이 본성적인 자질을 갖고 훌륭한 인간이 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그런데 민주정체 하에서는 교육의 의무도 없어 체계적인 어린 시절부터의 교육이 무시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플라톤은 민주정체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이 민주정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다고 해서 플라톤이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 대해서까지 반대했다고는 할 수 없다. 플라톤의 민주정체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그 지배의 다수성이나 추첨제와 같은 민주적인 형식에 있었다기보다는 정치교육의 부재, 곧 무자격의 지배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즉, 플라톤은 정치에 관해 지식도 없으며 교육도 받지 못한 자들에 의해 폴리스가 통치되는 민주정체를 비판한 것이다.
Ⅳ.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달리 국가의 유래를 인간들이 살아남기 위해 결합된 것으로 본다. 또한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처음부터 본성적으로 국가를 형성하도록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생성된 국가에서 지배자의 수와 국가의 목적에 따라 정치체제를 분류하고, 실현 가능한 최선의 국가로서 법치주의적 민주주의인 'Polity‘를 제시한다. 이는 과두제의 부에 대한 개념과 민주제의 수에 대한 개념을 혼합한 중간형태의 정치체제로, 이 체제 하에서 지배자들은 부자의 거만함과 빈민자의 시기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재물을 탐하지 않으며 재물을 소유하기 위해 남을 모함하지도 않는다. 이로써 지배자는 탐욕과 거만, 시기와 질투라는 서로 대립하지 않는 두 성향을 소유하게 되어 완충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한편, 포괄적으로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체제에서 현실에서의 안정성을 중시하며, 그의 정치철학은 현실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플라톤과 비교해보면, 그와 마찬가지로 정의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윤리학적인 안정성을 중시하지만 플라톤보다 현실에 안주하는 식의 국가체제를 설명하고 있다.
Ⅴ. 아리스토텔레스의 ‘민주주의’에 대한 설명과 평가
| (순수형) | 사리사욕(부패형) |
일인 | (군주정치) | (참주정치) |
소수 | (귀족정치) | (과두정치) |
다수 | (입헌적민주정치) | (빈민정치) |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여러 가지 정치체제를 제시한다. 그는 통치행위가 지향되는 목적에 따라 국가를 순수한 형태와 타락한 형태 두 가지로, 또 통치권에 따라 1인이 지배하는 체제, 소수가 지배하는 체제, 다수가 지배하는 체제의 세 가지로 나누었다. 즉, 전체적으로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통치권자의 이해만을 목적으로 설립된 정부라면 이는 타락했다고 보았으며, 일반을 위한 통치개념을 중심으로 정치체제를 분류했다. 이를 표로 나타내 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1인이 지배하는 왕정이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이긴 하지만 그 가능성을 제고해 볼 경우 불가능이라고 생각하여, 6가지 정치체제 중에서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법치주의적 민주주의인 Polity가 가장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하다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민주정치,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입헌적 민주정치의 타락한 형태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칭한 ‘빈민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자유’의 구현이다. 여기에서의 자유는 빈민정치의 최대의 목적이며 만인을 위해 지배하고 차례로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빈민정치에서의 정의란 숫자적인 평등이지 비례적인 평등은 아니며, 다수가 동의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부분에서 민주주의의 결함이 나타나는데, 바로 다수의 지배에 의해 소수의 의견은 무시되어 불평등과 부정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와 관련해 다수의 횡포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된 소크라테스를 실례로 들기도 한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빈민정치의 또 다른 문제점은 빈민정치가 Polity의 변질된 형태이기 때문에 그 원리상 이미 법치국가의 건설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빈민정치에서 정권 획득은 법에 위배되는 행위인 혁명 등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빈민정치는 기존체제를 변혁하기 위해 이제까지 국가권력을 장악했던 계층에 대항해 피지배계층이 그 권력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얻어내는 권력 교체 방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배계급이 정권을 획득함에 있어서도 그들이 폭력적이거나 독재적인 방식으로 통치할지라도 그 다수의 피지배 대중의 정권이라면 여전히 민주주의가 되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개념이 국민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닌 단지 다수의 지배에 의한 것으로 변질되게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Ⅵ.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민주주의’에 대한 비교 분석
먼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민주주의에 대한 비교 분석에서 유사점을 찾는다면, 둘 다 민주주의를 변질된 정치체제로 생각했고 민주주의에서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중시했다는 점이다. 또한 ‘부’와 관련해서 정치체제가 성립되었다는 점도 유사하다.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를 인간의 소유욕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두 철학자 모두 부로 인한 정치체제의 변질을 고찰한 것이다. 플라톤은 인간의 소유욕에 의해 정치체제가 변질된다고 보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소유욕으로 빈자와 부자가 나누어지고 이러한 구별이 결국 혁명과 같은 것을 통해 Polity의 변질된 형태인 빈민정치를 초래했다고 하였다.
한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 속에서 나타나는 차이점은 둘의 철학사상에서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바로 플라톤은 이상적인 사상을 갖고 있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적인 사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플라톤의 경우에는 철학사상에 있어서 '이데아론'을 주장한다. '이데아론'이란 감각들 속에는 현존하지 않는 그래서 오직 이성을 통해서만 접근 가능한 실체들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으로, 플라톤은 이 실체들이 가장 참된 실재이며 진정한지식의 대상들이라고 말한다. 현실세계와 이상세계를 구별해 생각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인 것이다. 플라톤이 민주주의 비판에 있어서 민주정의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측면이 아닌 교육의 부재를 비판한 것은 이러한 플라톤의 사고를 잘 보여준다. 이상주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교육'이라는 이상세계로 나아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의 부재를 민주주의 비판의 중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는 달리 현실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가 『정치학』에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 것은 인간이 현실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의 현실주의적 입장을 잘 보여준다. 또한 그가 법치주의적 민주주의인 Polity를 강조한 것도 현실주의적 사고를 보여준다. '법'이라는 것이 이성을 지닌 인간만이 만들어 낼 수 있고 인간만이 지킬 수 있는 것이며, 인간의 욕망과 현실의 한계를 반영해 고안해 낸 정치질서를 위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서로 다른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적 시각에 따라 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근본 사고에서의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국가의 기원을 바라보는 시각 등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것에서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의 결함에 대한 의견은 유사하지만 그 또한 서로 더욱 중요시 하는 가치와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 자세한 부분에 있어서는 차이가 난다.
Ⅶ. 비교분석을 통해 드러난 민주주의의 문제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와 그 결함에 대한 지적을 통해 현대 민주주의에서도 나타나는 문제점을 도출해 볼 수 있다. 이 문제점들은 민주주의 자체의 결함이라기 보다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의 특성상 나올 수 있는 것인데, 이는 현대사회에서도 제기되고 있는 만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첫 번째는 정치가들의 자격에 대한 문제이며 두 번째는 소수의 의견에 대한 무시에 대한 문제이다.
먼저 첫 번째 문제점인 정치가들의 자격 문제는 두 철학자 모두에게서 발견되지만 그 중에서도 주로 플라톤에 의해 지적되었다. 플라톤의 지적은 그가 생각하는 4덕목과 영혼의 3분설에 대해 알아야 쉽게 이해될 수 있다. 플라톤은 각각의 시기에 맞는 적당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또한 4주덕과 영혼의 3분설의 맥락에서 인간이 태초에 지니고 나온 본성에 알맞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역량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중시한다. 그가 철인왕에 의한 철인정치를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플라톤은 철인왕이라는 존재가 교육에 의해 완성되는 만큼, 민주주의에서는 정치가들에 대한 교육의 미비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그리고 정치를 함에 있어서 철인왕과 달리 자격을 갖추지 못한 우매한 사람들이 하는 정치가 민주주의라고 설명하고 있다. 플라톤에 따르면 각자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고 그 중에서 통치자의 자질을 갖춘 자가 제대로 교육 받아서 철인왕이 되는 것이 이상국가를 위해 필요한 것인데, 민주주의에서는 이러한 질서가 붕괴되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우매한 이들이 정치를 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플라톤의 지적을 현실세계, 특히 우리나라의 상황에 적용해 보면 정치를 할 만한 자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하는 국회의원 혹은 정부의 고위관리 등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정치인들이 자유가 보장된 상황 속에서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만, 이들의 자격이 정치가로서는 미달된다고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국회의원들이나 고위 공무원들의 로비, 비리문제 등이 종종 뉴스를 통해 보도되며 이로 인해 이들의 자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민들의 저조한 투표율이나 잘못된 판단에 의한 투표로 초래된 결과일 수도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실제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무원들을 포함한 국가 공무원들의 자질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국가 공무원이라면 진실로 국가의 유지와 발전에 기여하는 역할을 해야 하며 더불어 국민들의 세금을 통해 운영되는 국가 기관에서 일하는 만큼 청렴해야 하는데, 오늘날에는 직위를 악용해 공금을 가로채는 등의 부패를 저지르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플라톤의 민주주의의 속성에서 찾자면, 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는 구성원들이 모두 자신의 선천적 특성과 부합하는 일에 종사해야 하지만, 민주주의 하에서는 개인의 자유로운 판단과 결정을 중시하기 때문에 국가 권위나 지배자에 의한 강압적인 교육이나 직무의 배치가 불가능해 지배계층에 속할 자질이 없는 이들이 지배계층에 속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지적되었는데 바로 민주주의에서는 소수의 의견이 무시될 수 있다는 점이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는 이상국가에서처럼 소수의 지배자가 통치하되, 국가가 순수한 형태를 유지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에서 위에서 제기된 문제와 같이 지배계층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자가 통치에 관여하는 문제나, 소수의 권위적인 독재체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후대에 나온 것이 다수가 정치에 참여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 그 중에서도 간접 민주정치인 대의제인데, 이 체제에서도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뿐만 아니라 여러 학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플라톤의 철인정치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왕정에서처럼 다수의 의견이 무시될 가능성은 적지만, 여전히 소수의 의견이 무시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없고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 또한 다르기 때문에 모든 이의 의견이 반영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결함은 다수의 의견이 옳지 못할 때 치명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플라톤이 우매한 민중들이 통치한다며 중우정치라고 지적한 것처럼, 다수의 옳지 못한 판단으로 올바른 소수의 의견이 무시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는 다수의 의견이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절차적인 측면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내재적이며 치명적인 결함이 된다.
Ⅷ.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민주주의에 대한 개인적 견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많은 선진국들에서 최선이라고 여겨지는 ‘민주주의’를 비판하고, 독재정치나 과두정치를 불러올 수 있는 정치체제를 이상적인 정치체제로 제시한 점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의아하게 느껴질 것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러한 이상국가를 구상해 낸 데에는 자신의 정의에 대한 관념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지만 현재로써는 실현되기 어려운,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치체제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플라톤의 이상적 정치체제는 이상적인 사고방식에 기반해 비현실적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인다. 물론 그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기의 천성에 적합한 일에 종사해야 하기 때문에 통치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 자가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의 철인정치는 제대로 실현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의 철인왕과 같은 통치자는 국가 통치에 있어서 현대 민주주의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부정부패, 비리문제나 자질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의 4주덕이나 영혼의 3분설, 철인왕의 개념들도 받아들여지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지적대로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 하더라도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많다. 플라톤이 제시한 철인왕과 같은 존재를 현실에서 찾거나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다수에 의한 지배에서 중우정치를 방지하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자유가 방임으로 왜곡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현실세계에서도 해결과제로 남아있는 것들을 플라톤의 정치체제 구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상주의적 시각도 현실에 적용될 수 없는 이상적인 시각에 불과하기 때문에 비판받지만, 지나치게 현실적인 사고는 새로운 무언가를 연구해내기 보다 단지 학습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데만 그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또한 그의 ‘자유’에 대한 관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플라톤은『국가』에서는 ‘자유’를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는 자유라고 생각했었지만 마지막 저서인『법률』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해 상당히 적극적인 평가를 내리면서 자유에 대한 발전된 생각을 제시했다. 물론 일정한 전제를 달았고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긍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자유'의 가치를 내세웠다.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혼합체제‘라는 개인의 자유를 고려한 정치체제를 제시하고 국가의 통일을 위한 대중의 불만 해소, 추첨제, 국민의 참여, 자유, 자발적 복종을 강조하기도 했는데, 이는 현대 민주주의에 있어서도 민주주의의 중요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국가』에서와 같은 플라톤의 사고는 현대적 관점에서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더라도 우리에게 이상적인 정치체제를 위한 요소를 제고해 볼 기회를 제공하고『법률』에서는 현재의 민주주의와 유사한 체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한다.
한편,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었던 만큼, 그의 이상적인 정치체제에 대한 구상은 현실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수의 집합적인 판단이 법의 원리에 근거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날의 현실과 부합하는 측면이 강하다. 또한 그는 민주정치 하에서 다수의 시민들이 다양한 교육을 받음으로써 선하고 정의로운 이가 될 수 있으며, 민중들이 자신들의 결정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당사자들이므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최선의 판단자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핵심 기반인 다수의 판단에 대해 어느정도 신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는 현실에서 종종 다수의 옳지 못한 판단이 일어나는 경우를 고려해 보았을 때 보완이 필요하지만, 플라톤보다는 현실적이어서 받아들이기에 더 적합하다고 본다. 또한 인간의 이기심과 한계를 인정하고 이상적인 국가를 위해 '법'이라는 현실적 수단을 생각해 낸 점도 현대 민주주의 도래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Ⅸ. 결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두 철학자의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에는 합당한 근거가 있었으며, 현대에도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결함이 지적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민주주의'에 대한 설명과 평가를 통해 현재 ’한국사회‘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민주주의의 결함으로 지적된 통치자의 자질 문제나 소수의 의견 무시에 관한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해결되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한국사회의 '정의'에 대한 확실한 관념을 세우는 것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나름의 ‘정의’의 기준을 세웠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합의된 ‘정의’의 기준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해결할 때, 이것에 대한 방향을 설정해 주기 위한 것으로 ‘정의’에 대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통치의 자질 문제나 소수의 의견 무시 등의 문제는 민주적인 절차가 결여되어 있어 발생할 수도 있지만 민주적인 절차의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다수의 의견이 반영되더라도 그 결과가 필연적으로 정당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통치자의 자질 문제에 있어서 민주적 절차를 따라 선출했지만 선출된 대표자가 결과적으로 공약을 지키지 않는다거나, 독재적인 정치를 한다거나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경우들처럼 말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독재국가에서 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국민들과 독재정권간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나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촛불시위, 소수자의 권리 요구 등도 절차상의 민주주의로만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절차상에서 뿐만 아니라 결과상에서도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종종 좋은 의미로 쓰기는 하지만 명백한 개념정의가 되어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의 ‘정의’에 대한 생각을 ‘민주주의’의 맥락에서 합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의’와 ‘민주주의’가 서로 기본 가치에 있어서 일정 부분을 공유하도록 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올바른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발생되는 문제점들을 민주주의와 가치를 공유하는 ‘정의’라는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의사가 최대한으로 반영되도록 하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적인 절차에 의한 결과가 국가 구성원들에 의해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적으로 적용 가능하며 대다수의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의’의 원칙, 기준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소유의 분배와 같은 문제도 ‘정의’의 기준 확립과 이에 따른 민주주의를 통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상황과 가치에 맞는 기준에 따라 문제점을 고찰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점, 또 그 기저에 있는 정치철학과 정의에 대한 관점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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