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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4;1
세상은 곳곳마다 탐욕이 부딪히며 갈등하고 있습니다. 갈등과 대립을 넘어 잔혹한 실상이 벌어지고 있고, 다들 자기 이익을 두고 다투는 전쟁터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믿는 이들은 복의 통로로 부름 받았습니다. 왜소해도 능력있게 하나님 나라의 꿈을 이루어 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세상이 나라와 민족별로 나뉘어 분산된 후 격동의 시기를 보냅니다. 그리고 동서로 나뉘면서 쌍방 간의 연합군이 격돌했습니다.
Window 14;1 Greed is at odds with the world everywhere. Beyond conflict and confrontation, a brutal reality is taking place, and everyone is fighting for their own interests. Believers in this world have been called a channel of blessing. How should we live to achieve the dream of God's country with the ability, even if it is small? After the world is divided into countries and ethnic groups, it goes through a period of turbulence. And as it was divided into east and west, the coalition between the two sides cla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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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언급하는 첫 전쟁으로 동방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연합국이 남부지역의 다섯 왕을 치려고 온 것입니다. 12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던 다섯 나라가 13년째 되던 해에 조공을 못 바치겠다고 반발을 한 것 같습니니다. 하지만 5나라는 크게 패했고, 롯이 있던 소돔과 고모라는 싯딤 전투에서 역청구덩이에 빠져 패한 뒤 나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겼습니다. 고대 바빌로니아 제국은 여러 도시국가들을 복속함으로써 성립되었습니다.
The Allies of Eastern Mesopotamia came to defeat the five Southern kings in the first war mentioned in the Bible. It appears that the five countries that served Gdolaomel for 12 years rejected the offer of tribute in their 13th year. However, the Five Nations were heavily defeated, and Sodom and Gomorrah, where Lot was, lost in the Battle of Siddim after falling into a pit and losing. By subjugating various city-states, the ancient Babylonian Empire was esta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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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도시국가를 세운 사람들은 함의 후손 니므롯이었습니다(10:10). 이들은 노아 홍수 이전에 권세를 장악했던 네피림과 같은 폭행자들이었지요(6:4). 그들이 도시 문명을 구가하였는데 가인은 최초의 도시 애녹 성을 세웠고(4:17) 에녹성은 축산, 향락, 군수 산업이 발달하였습니다(4:20-22). 도시에 살던 라멕은 상처를 받고는 살인을 더욱 많이 저질렀습니다(4:23-25). 그의 부모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죄를 지은 결과일까?
The people who founded the first city state were Nehirut, descendants of Ham (10:10). These were assaultors like Nephirim, who seized power before the Noah flood (6:4). Cain founded the first city of Anok Castle (4:17), and Enok Castle developed livestock, pleasure, and military industries (4:20-22). Ramek, who lived in the city, was hurt and committed more murders (4:23-25). Was it the result of his parents Adam and Hawah's sins of eating good and b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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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가족을 지키려고 성벽을 쌓아 올렸는데, 이 바벨탑이 최초의 도성이었으며 이윽고 국가로 발전한 것이지요. 사사기 이후 왕정국가도 신정을 거부한 죄의 열매일 것입니다. 이렇듯 국가가 발흥한 이래인류의문명사는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어요. 아브람 시대에도, 다윗시대에도. 이번 전쟁 역시 가나안 도시 국가들이 조공을 받치지 않자 시날의 바빌로니아 제국군이 쳐들어왔고 롯이 속한 남방 5나라가 포로가 되된 것입니다.
He built a wall to protect his family, and the Tower of Babel was the first capital and eventually developed into a state. The monarchy is probably the fruit of the sin of refusing theocracy after the Sasa period. As such, the war never stopped for the civilization of mankind since the nation's rise. In neither the Abram nor the David era, this war also occurred when the Canaan city states did not support tributes, and the Babylonian Empire invaded and the Southern Five countries to which Lot belonged became priso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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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겉으로야 저마다 명분이 있겠으나 창조의 빛에서 보면, 모두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동료를 죽이는 것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지배가 없는 곳에 힘의 지배가 있을 뿐이고 그 현장은 처절한 죽음입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다고 했으니 롯이 포로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 전쟁은 아브람 편에서는 은혜 뒤의 시련이고, 롯에게는 위험한 축복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닌 것에는 언제나 그늘이 있고, 한숨이 있고 탄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War may have its own cause on the outside, but in the light of creation, it is all about killing one's colleagues for one's own benefit and opposing God. Where there is no God's rule, there is only the rule of power, and the scene is a desperate death. God allowed Lot to be taken prisoner because the war belonged to the Lord. This war is an ordeal behind grace on Abram's side, and a result of dangerous blessings on Lot's side. There always seems to be a shade, a sigh, and a sigh in what is not given by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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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아내가 되는 것이 내 선택인 것처럼 그 의사의 식모로 살아야하는 것은 필연일지 모릅니다. 부를 얻는 대신에 자유를 구속 감금시켜야 합니다. 하나님나라는 모두가 좋은 나라이며, 공존과 공유의 나라입니다. 그것을 알기까지 약속의 땅은 모든 곳이 갖춰진 땅이 아니라, 부족과 결핍과 분쟁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달아 가는 곳이 될 것입니다. 창14:13-24절은 십일조와 관련한 유일한 역사적 고증이 담긴 ‘멜기세덱’을 언급합니다.
Just as being a doctor's wife is my choice, it may be inevitable that I have to live as a doctor's matriarch. Instead of gaining wealth, we must imprison freedom. The kingdom of God is a good country for all, a country of coexistence and sharing. Until we know that, the promised land will not be a land with everything, but a place where we realize what God is like in the midst of tribes, deficiencies, and conflicts. Verse 14:13-24 refers to the 'Melgisadek' with the only historical testimonies related to the eleventh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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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은 마므레 상수리나무 근처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제단을 세운 장소이며 헤브론 일대에 속합니다. 마므레라는 인물은 그 지역의 맹주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의 형제는 에스골과 아넬이었습니다.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을 맺은 사람들입니다. 추측건대 당시 불안했던 국제 정세로 인해 포호세력들이 강력한 이주민 세력인 아브람과 동맹을 맺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브람은 자기 수하에서 훈련시킨 군사318명을 데리고 가서 조카 롯과 빼앗긴 것을 되찾아옵니다.
Abram lived near the Mamre oak tree. It is the site of the altar and belongs to the Hebron area. The figure Mamre appears to have served as the dominant man in the area, and his brothers were Esgol and Anel. These were Abram's allies. Presumably, because of the volatile international situation at the time, the protective forces seem to have formed an alliance with Abram, a powerful migrant force. Abram takes 318 soldiers trained under his wing and recovers what was taken from his nephew 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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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5나라가 함께 상대해도 속수무책이었던 그돌아오멜 연합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아브람을 ‘복의 근원‘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 덕분입니다. 유목민인 아브람이 하나님의 보호를 굳게 믿고 조카 롯을 구하러 나섰습니다. 애급에서처럼 더 이상 목숨을 잃을까봐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겁쟁이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용감해지고 담대해지는 것 같습니다. 318명의 훈련된 병사들을 데리고 적진을 향해 야밤에 기습한 아브람이 조카 롯을 구하여 돌아올 때에 가나안의 두 왕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God, who promised to make Abram the 'source of blessings', was able to defeat the returning Omel Allied Forces, which the five Canaan countries were helpless to face together. Abram, a nomadic man, firmly believed in God's protection and set out to save his nephew Lot. He is no longer a coward who deceives his wife for fear of losing her life, as he was in mourning. When I meet God, I feel brave and courageous. When Abram, who took 318 trained soldiers and raided the enemy camp at night, came out to meet his nephew 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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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 명장으로 나오는 장면이 특이하네요. 싸움과 믿음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사병제도는 제 생각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있었네요.사병으로 재미를 본 사람이 태종 이방원이로 알고 있습니다. 개선장군을 마중 나온 사람은 한명은 ‘소돔 왕‘이고 다른 한 명은 의의 왕 '멜기세덱'입니다. 멜기세덱을 왕이면서 제사장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특이 합니다. 히브리서에서는 멜기세덱을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제시합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람에게 큰 승리를 안겨다주신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
The scene where Abram comes out as a master is unique. What is the relationship between fight and faith? The private army system has existed a long time ago. I know that King Taejong Yi Bang won was the one who enjoyed the private army. One person who came to meet General Daehan was 'King Sodom' and the other was 'Melgisadek', the king of righteousness. It is unusual to introduce Melgisadek as a king and a priest. In the Hebrews, Melgisadek is presented as a model of Christ. Melgisadek worshiped God who gave Abram a great vi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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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의 고백은 가나안의 어떤 신들보다 하나님이 가장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이에 아브람이 십일조(전리품)를 주는 것으로 화답을 합니다. 아브람은 자기 이해관계에 더 관심이 있는 소돔 왕에게는 친히 “천지의 주재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고백하고, 전리품의 전부를 돌려주었습니다. 아브람과 멜기세덱의 본문에서 핵심적인 메시지는 첫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둘째 구원과 승리에 대한 감사입니다.
Melgizedek's confession is that God is the greatest of all gods in Canaan. Abram responds to this by giving 11 trillion won. Abram personally confessed to the Sodom king, who was more interested in his interests, "The Lord of Heaven and Earth, the God of the Most High," and returned all of the spoils. The key message in Abram and Melgizedek's text is, first, that everything belongs to God, and second, that thanks for salvation and vi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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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멜기세덱이 십일조의 원조라면 십일조는 구원받은 백성이 자신의 생명(전부)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의미가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내가 구출해야할 사람은 누구인가? 나의 하루는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였는가? 내 소유 전체를 주의 것으로 분명히 고백하면서 주인의 지시대로 지출하였는가?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축복의 통로로 살려면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
If Melchizedek is the originator of King XI, the meaning of the saved people confessing that their lives (all) belong to God will be the most important. Who am I to rescue? Did my day rely on God, the ruler of heaven and earth? Did I spend my entire possession as directed by my master, confessing clearly as the Lord's? How can I live in a battlefield-like world as a channel of ble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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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왕의 소돔과 고모라 정복(1-12)
a.네 왕과 다섯 왕의 전쟁:1-3
b.네 왕이 정복한 족속들:4-7
c.네 왕과 다섯 왕의 전쟁:8-9
d.네 왕의 소돔과 고모라 정복:10-12
롯을 구출한 아브람(13-16)
a.롯이 사로잡혔다는 소식:13
b.롯을 구출한 아브람:14-16
소돔 왕과 살렘 왕을 만난 아브람(17-24)
a.아브람의 무사귀환과 왕들의 영접:17-18
b.멜기세덱과 아브람:19-20
c.소돔 왕과 아브람: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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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1a)
시날 왕 아므라벨과(1b)
엘라살 왕 아리옥과(1c)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1d)
고임 왕 디달이(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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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 왕 베라와(2a)
고모라 왕 비르사와(2b)
아드마 왕 시납과(2c)
스보임 왕 세메벨과(2d)
벨라 곧 소알 왕과(2e)
싸우니라(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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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다(3a)
싯딤 골짜기(3b)
곧 지금 염해에(3c)
모였더라(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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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4a)
12년 동안(4b)
그돌라오멜을(4c)
섬기다가(4d)
제 30년에(4e)
배반한지라(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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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년에(5a)
그돌라오멜과(5b)
그와 동맹한(5c)
왕들이 나와서(5d)
아스드롯(5e)
가르나임에서(5ef)
르바 족속을(5g)
-함에서(5h)
수스 족속을(5i)
사웨 기랴다임에서(5j)
엠 족속을 치고(5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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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 족속을(6a)
그 산 세일에서 쳐서(6b)
광야 근방(6c)
엘바란 까지(6d)
이르렀으며(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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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돌이켜(7a)
엔미스밧(7b)
곧 가데스에 이르러(7c)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7d)
하사손다말에 사는(7e)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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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 왕과 고모라 왕과(8a)
아드마 왕과 스보임 왕과(8b)
벨라 곧 소알 왕이(8c)
나와서(8d)
싯딤 골짜기에서(8e)
그들과 접전하였으니(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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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그 다섯 왕이(9a)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9b)
고임 왕 디달과(9c)
시날 왕 아므라벨과(9d)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과(9e)
교전하였더라(9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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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딤 골짜기에는(10a)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10b)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10c)
달아날 때에(10d)
군사가 거기 빠지고(10e)
그 나머지는(10f)
산으로 도망하매(1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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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왕이(11a)
소돔과 고모라의(11b)
모든 재물과 양식을(11c)
빼앗아 가고(1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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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에 거하는(12a)
아브람의 조카(12b)
롯도 사로잡고(12c)
그 재물까지(12d)
노략하여 갔더라(1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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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한 자가 와서(13a)
히브리 사람(13b)
아브람에게 고하니(13c)
때에 아브람이(13d)
아모리 족속(13e)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13f)
근처에 거하였더라(13g)
마므레는(13h)
에스골의 형제요(13i)
또 아넬의 형제라(13j)
이들은 아브람과(13k)
동맹한 자더라(1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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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 그 조카의(14a)
사로잡혔음을 듣고(14b)
집에서 기르고(14c)
연습한 자(14d)
318인을 거느리고(14e)
단까지 쫓아가서(1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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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신을 나누어(15a)
밤을 타서(15b)
그들을 쳐서 파하고(15c)
다메섹 좌편(15d)
호바까지 쫓아가서(1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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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빼앗겼던 재물과(16a)
자기 조카 롯과(16b)
그 재물과(16c)
또 부녀와 인민을(16d)
다 찾아 왔더라(1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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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17a)
그돌라오멜과(17b)
그와 함께한(17c)
왕들을 파하고(17d)
돌아올 때에(17e)
소돔 왕이(17f)
사웨 골짜기(17g)
곧 왕곡에 나와(17h)
그를 영접하였고(17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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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렘 왕 멜기세덱이(18a)
떡과 포도주를(18b)
가지고 나왔으니(18c)
그는 지극히 높으신(18d)
하나님의(18e)
제사장이었더라(1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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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아브람에게(19a)
축복하여 가로되(19b)
천지의 주재시요(19c)
지극히 높으신(19d)
하나님이여(19e)
아브람에게(19f)
복을 주옵소서(19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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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대적을(20a)
네 손에 붙이신(20b)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20c)
찬송할 찌로다 하매(20d)
아브람이(20e)
그 얻은 것에서(20f)
십분 일을(20g)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2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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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 왕이(21a)
아브람에게 이르되(21b)
-사람은 내게 보내고(21c)
물품은 네가 취하라(2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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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22a)
소돔 왕에게 이르되(22b)
천지의 주재시요(22c)
지극히 높으신(22d)
하나님 여호와께(22e)
내가 손을 들어(22f)
맹세하노니(2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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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이 내가(23a)
아브람으로(23b)
치부케 하였다(23c)
할까 하여(23d)
네게 속한 것은(23e)
무론 한 실이나(23f)
신들메라도(23g)
내가 취하지(24h)
아니하리라(23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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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소년들의(24a)
먹은 것과(24b)
나와 동행한 아넬과(24c)
에스골과(24d)
마므레의 분깃을(24e)
제할 찌니(24f)
그들이 그 분깃을(24g)
취할 것이니라(24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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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의 실상과 수렁에 빠진 롯_Lot in a quagmire with the reality of Sodom_
롯을 건지는 복의 통로 아브람_the lucky passageway to the lot, Abram._
아브람을 고귀하게 하신 하나님_God who made Abram noble._
주님, 하나님을 떠난 세상에서는 모두에게 좋은 땅은 없나이다. 제로섬의 법칙이 적용될 수밖에 없고 끝임 없는 전쟁으로 욕망을 표출하는 것이나이다. 개인적으로는 롯이 육적인 선택의 결과로 전쟁 포로가 되었습니다. 주님,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며 경쟁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눈앞에 있는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게 하옵소서.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 북방침략군들을 아브람의 손에 붙여 말썽장이 롯을 구출하신 것을 찬양하나이다. 하나님의 생명의 복은 성도의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전달되었나이다. 또한 믿음의 선택 가운데 의기소침해 있었을 아브람을 찾아와 의의 왕의 축복을 받게 하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전리품을 취할 것을 제의 받았지만 실 오르라기 하나라도 갖지 않겠다는 아브람의 믿음을 좇아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게 하옵소서.
Lord, in the world that has left God, there is no good land for all. Zero sum's law must be applied, and it is the expression of desire through endless war. Personally, Lot became a prisoner of war as a result of his physical choice. Lord, help me not to be satisfied with what I have and compete with greed, and not to pursue the interests in front of me. God, the Lord of Heaven, praise the god for rescuing Lot by attaching the northern invasion forces into the hands of Abram. Has God's blessing in life been delivered through the practice of love of the saints? Also, thank you for coming to Abram, who must have been depressed among the choices of faith, and for giving him the blessing of the king of righteousness. I have been offered to take the spoils, but please follow Abram's belief that I will not have even a thread and live a dignified life.
2026.1.20.tue.Clay
신학 비평//
아주 밀도 높은 본문 해석과 묵상입니다. 이미 “주석–설교–기도문”의 삼중 구조를 잘 갖추고 있어서, 여기서는 **신학비평**의 관점에서 몇 가지 핵심을 정리하고, 특히 <십일조와 멜기세덱>을 중심으로 보완·확장해 보겠습니다.
1. 전쟁 서사와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신학적 평가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다… 하나님의 지배가 없는 곳에 힘의 지배가 있을 뿐이다”는 통찰은 매우 성서적입니다. 창 14장은 정치·군사사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가 역사의 주권자인가?”라는 신학적 질문을 던지는 본문입니다. 네 왕 vs 다섯 왕의 전쟁은→ 제국 질서(조공·착취 체제)와→ 지역 도시국가 질서가 충돌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승패의 결정권자는 제국도, 무장력도 아니라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엘 엘리온)”입니다(14: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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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에서 집사님이 말한 “전쟁은 모두 자기 이익을 위해서 동료를 죽이는 것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라는 평가는 윤리적으로도, 신학적으로도 설득력이 큽니다. 다만 한 가지 보완하면, 성경은 전쟁을 “항상 악”으로만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전쟁은 1. 약자 구출-2. 억압 질서의 균열-3. 하나님의 약속 보존이라는 목적을 가집니다.→ 창 14장의 전쟁은 제국 질서 유지용 전쟁이 아니라, 롯 구출을 위한 구원 서사적 전쟁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2. 멜기세덱: “제국도, 소돔도 아닌 제3의 왕권”
집사님이 가장 잘 짚으신 대목이 바로 여기입니다. “한 명은 소돔 왕, 다른 한 명은 의의 왕 멜기세덱” 이 대조는 창 14장의 신학적 핵심입니다. 멜기세덱의 정체성(왕 + 제사장)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창:14:18) 여기서 이미 레위 제사제도 이전에 왕-제사장 통합 모델이 등장합니다. 이 인물의 신학적 의미는 세 겹입니다.
1) 혈통 없는 제사장
* 계보 없음
* 율법 없음
* 성전 없음
→ 제사장의 자격이 “율법 이전의 은혜 질서”에 있음을 보여줌
2) 영토 중심 왕권이 아닌 축복 중심 왕권
* 그는 땅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 조공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 군사동맹도 맺지 않습니다.
→ 오직 “하나님 찬송 + 아브람 축복”만 합니다.
3) 히브리서적 독법의 정당성
히 7장은 멜기세덱을
→ 그리스도의 모형(type)으로 읽습니다.
이는 억지 allegory가 아니라,
이미 창 14장 안에 그리스도론적 구조가 들어 있습니다.
* 왕이면서 제사장
* 평강의 왕(살렘 = 샬롬)
* 의의 왕
* 떡과 포도주
* 은혜로 축복
* 조공을 요구하지 않음
3. 십일조: “율법 이전의 신앙 고백”
집사님이 쓴 이 문장은 거의 결정타입니다. “십일조는 구원받은 백성이 자신의 생명(전부)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의미가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이 말은 말라기식 ‘헌금 윤리’보다 훨씬 성서적입니다. 창 14장의 십일조는 ‘규정’이 아니라 ‘응답’입니다. 아브람의 십일조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명령이 없음
* 하나님도
* 멜기세덱도
* 어떤 율법도
→ “십일조를 바쳐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2) 전리품 전체 중 일부
* 소유권은 아직 아브람에게 확정되지도 않았습니다.
* 오히려 소돔 왕이 “네가 가져라”고 제안한 상태입니다.
→ 즉,
십일조는
이미 내 것이 된 것의 일부를 떼는 행위가 아니라
아직 내 것도 아닌 것에 대한 신앙 고백입니다.
3) 감사·경배·승인 행위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 아브람의 십일조는
전쟁 승리 보고서이자
하나님 주권 선언문입니다.
4. 소돔 왕 vs 멜기세덱: 두 종류의 복
이 대비는 집사님 글의 또 하나의 백미입니다. 소돔 왕의 제안(거래형 복)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이 제안의 문제는 단순히 ‘욕심’이 아닙니다. 이것은 정치적 후원–보상 구조입니다. 나중에 소돔이 망할 때(창 19장)→ 아브람도 그 몰락의 후원자로 엮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말합니다. “네 말이 ‘내가 아브람을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실오라기 하나라도 취하지 않겠다”
→ 이건 도덕적 결벽증이 아니라 언약 정체성 보존 행위입니다.
5. 십일조의 신학적 재정의 보완
집사님 글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는 한 문장을 제안하면 십일조는 ‘하나님께 일부를 드리는 행위’가 아니라, ‘내 전부가 이미 하나님의 것임을 선언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창 14장의 십일조는 헌금 규례의 기원이 아니라 은혜 정치학(theopolitics)의 선언입니다.
* 나는 제국(그돌라오멜)의 조공 질서에 속하지 않는다.
* 나는 소돔의 경제 질서에도 속하지 않는다.
* 나는 오직 엘 엘리온의 통치 질서에 속한다.
6. 결론적 신학 평가
집사님의 본문 해석은 전체적으로 매우 건강하고 성서적입니다. 특히 탁월한 점 세 가지를 꼽자면
1. 전쟁을 “구원사적 사건”으로 읽은 점
2. 멜기세덱을 그리스도론적으로 열어둔 점
3. 십일조를 헌금 규정이 아니라 신앙 고백으로 읽은 점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축복의 통로로 살려면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
* 멜기세덱 앞에서는 무릎 꿇고
* 소돔 왕 앞에서는 당당히 서라.
* 전리품은 내려놓되
* 하나님 주권은 붙들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