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북단 수피령에서”
-한북정맥 1(수피령-복계산-복주산-회목봉-광덕산-광덕고개, 24㎞, 2015.11.1.)
한북정맥의 최북단 수피령은 강원도 철원과 화천을 연결하는 56번 국도에 있다. 휴전선이 멀지 않은 탓인지 ‘필사즉생, 골육지정’이라고 쓰인 군부대 입간판들만 보이고, 민가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대성산지구 전적비 아래 공터에서 무사 완주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막걸리 몇 잔씩을 마시고 아침 9시가 넘어 느지막이 출발했다. 오늘 걸어야 할 구간이 짧지 않은데도 대원들은 늦가을 단풍놀이하는 사람들처럼 한가롭다.
북한의 추가령에서 일어난 한북정맥은 남한의 수피령, 복주산,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청계산, 운악산, 불곡산, 도봉산, 북한산, 노고산, 고봉산을 풀어놓고 교하의 장명산에서 235.5킬로의 긴 숨을 놓는다. 남한 구간인 수피령부터 장명산까지는 160.4킬로다. 남서쪽으로 비스듬히 누운 능선의 동쪽 물은 한강으로, 서쪽 물은 임진강으로 흘러들어 교하에서 합쳐진다.
산을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복계산에 도착했다. 매월당 김시습 선생이 은거하였던 복계산(1,057.2m)은 비무장지대에 가장 근접한 산이다. 북쪽으로 군사기지가 있는 대성산이 보이고, 그 왼쪽으로 북녘의 산들이 보초 서듯 늘어섰다. 산들은 첩첩이 방어선을 구축하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까치발을 하고 멀리 보았으나 산들의 너머는 훔쳐지지 않았다. 이쪽과 저쪽은 함성을 질렀으나 가로지른 방음벽에 소리를 잃었고, 산맥을 휘감고 울어 대던 바람은 이쪽으로 넘어오지 않았다.
복계산에서 복주산까지는 10킬로가 넘는다. 부지런히 선두를 뒤쫓는데 아무리 가도 꽁무니조차 보이지 않았다. 겨우 중간조로 가던 강과산님과 오키짱님을 만나 과일로 허기를 채우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능선을 따라 교통호가 구불구불 뻗었고, 군데군데 낙엽이 수북한 참호는 낮게 웅크리고 있었다. 잡풀에 덮인 벙커는 북쪽을 향해 총구멍을 부릅떴는데, 적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두려워 비명을 지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참호에는 전투식량 빈 봉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벌써 눈이 내렸을까, 눈얼음이 꽃받침처럼 나무들의 밑동을 감싸고 있다.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다 복주산에 닿았다. 6·25 당시 치열한 격전지였던 복주산(1,152m), 그 서쪽으로 철원평야가 펼쳐졌다. 선두로 갔던 바보도사님과 9988님이 이미 점심을 먹고 기다리고 있었다. 선두조는 서둘러 광덕산으로 향하고, 후미조는 뒤에 남아 강과산님이 준비해 온 라면을 끓여 먹었다.
햇살은 여리고, 바람은 유순하다. 토방에 머물던 그 가을인데, 정상의 단풍은 이미 흙빛으로 질렸다. 발갛게 달아올랐던 기억으로 나무들의 매무새는 아직 헝클어져 있다. 오키짱님이 라면은 좀 추워야 맛있는데 하면서 서운해 한다. 생각해 보니 백두대간을 하면서도 이렇게 좋은 날씨에 라면을 먹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한 시간쯤 쉬었다가 7킬로 떨어진 광덕산으로 향했다. 대간이 끝나고 술 담배에 찌들었더니 허벅지에서 자릿자릿 신호가 왔다. 회목봉을 지나 포장된 천문대길을 천천히 걸었다. 병사들의 숙영 천막들이 우측 산허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근무 중인 병사에게 물어 보니 6·25전사자 유해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1951. 4. 20. 중공군 4개 사단은 이곳 사창리 일대에 총공세를 폈으나 국군에게 저지되어 더 이상 내려가지 못했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흘렀어도 젊은 뼈들이 어디 묻혔는지 산기슭은 알지 못했다. 지휘천막에 있던 병사가 거수경례를 하고 앳되게 웃었다. 병사의 웃음 속에 죽은 자와 죽인 자의 시간들이 뒤엉켜 포개졌다. 내려온 자들은 남쪽으로 더 내려가야 살았고, 막는 자들은 내려가면 죽을 것이었다. 죽음 속에서 아군과 적군은 한편이 되었고, 증오는 이념의 색깔만큼이나 허망한 것이었다. 삭제당한 시간들을 파헤쳐도 목숨은 호출되지 않을 것이다. 제자리를 잃은 뼈는 기다렸던 자들에게 삶인가, 죽음인가.
천문대를 끼고 돌자 곧바로 광덕산이 나왔다. 광덕산(1,046m)은 화천, 철원, 포천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세가 웅장하고 덕기가 있어 광덕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오후 네 시가 지나자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서쪽으로 멀리 을씨년스러운 노을이 내리고, 반값 떨이하는 가게의 현수막처럼 나뭇가지들은 바람에 끄덕끄덕 흔들렸다. 서둘러 광덕고개 쪽으로 하산했다. 선두로 내려온 바보도사님, 9988님, 행운별님, 산개미님은 벌써 빈대떡에 막걸리 5병째를 마시고 있었다. 2,300킬로의 첫걸음, 한북정백 1구간이 끝났다.
가을은 이미 남쪽으로 줄행랑을 친 지 오래다. 수다를 떨던 나무들은 빈 몸으로 적요했다. 팽개쳐진 옷들을 주워 들고 길은 그 무게를 믿지 못한다. 발부리에 이별은 차이는데 푸르고 붉었던 시간들이 산길에 뭉그적댔다. 네가 떠나간 가을을 덩그맣게 가로질렀다.
첫댓글 첫구간에서 유해 발굴지역을 지나며 많이 숙연해지셨을듯 합니다.
정맥팀 합류 감사 드리며 앞으로 기나긴 산행 함께 하는동료 분들과
형제애로 잘 이겨 내시고 극복 하시면서 한국의 산줄기 대탐험 잘 마무리 하시기 바라비낟.
첫 산행기 감사드립니다.
아이고, 방장님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멀고먼 정맥길이 시작되었네요
글쓰시는 내용들이 마치 수필을 읽는 느낌..
앞으로 필독해야될듯하구요
첫구간 수고했습니다..
ㅎ 감사합니다. 산길에서 언젠가 뵙기를요~~
정맥 첫구간 즐겁게 산행하셨네요
2구간부터는 대간도 끝났으니 정맥길 바로 합류하겠읍니다
즐겁고 행복한 정맥길 기대합니다 ^.^
ㅎ 담 구간부터 뵙겠군요. 기대됩니다~~
손변님 생생한 산행 스토리에 빠져봅니다~~
첫구간 무사안녕 기원속에 긴~~여정의
시작을 대장님과 팀원들 하나된 모습으로 멋진걸음 하시길 빕니다.
대간 잘 마무리짓고 자주 함산하겠습니다.
첫 구간 무사완주 수고 많았습니다^-^
백구님, 반갑네요. 얼마 전 사당에서 뵀지요. 대간 마무리 잘 하시고 담 구간부터 같이 해요~~
내용이 소설을 읽는듯 합니다~~*
1회부터 벌써 다음회가 기다려 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ㅎ 감사합니다. 틈나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변호사님 답게 가을을 또한정맥 첫구간 아주 잘 대변 하셨네요 산행기 기대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2구간째 뵐께요
감사^^ 담 구간부터는 두령님 따라다녀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어요 ㅎ
호젖한 정맥길 잘보고 갑니다~~^^
ㅎ 감사합니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 저도 기대됩니다~~
ㅋㅋ손변 선배님~닉네임이 왜 손변이지 했더만~ㅎ
정맥길 시작 동료들과 즐겁게 끝까지 잘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산행기 잘 보고 갑니다.
ㅋㅋㅋ 원래는 손오공으로 했다가 바꿨어유. 언젠가 길에서 뵙기를~~
한북정맥 겨울맞이 준비가 한참입니다
9정맥 첫걸음 축하드리구요 긴거리 무탈한걸음 기원합니다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뵙겠습니다~~
산행기가 길 위에서 써 내려간 한편의 서사시이군요.^^
" 발부리에 이별은 차이는데 푸르고 붉었던 시간들이 산길에 뭉그적댔다."
가을 떨어지는 이즘의 계절에, 그 길목에 선 마음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표현이십니다.
본시 이별은 계절 뒤척이 듯 뒤척이고, 뭉그적거리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아고, 감사합니다. 이 가을 잘 건너시길요~~
한구간 한구각 가다보면 어느새 정맥도 졸업이 가까워 올 겁니다.
멋진 산행기 즐감합니다.
넵. 뭐 가다보면 끝도 보이겠지요. 감사합니다^^
오래전 걸었던 광덕산 구간 잘봅니다
반값떨이하는 나뭇ㄴ잎~~~~~ 너무 적절한 표현이네요
손변님 정맥길 내내 무탈산행 기원드려요
응원 감사합니다. 뽀송뽀송한 주말 되세요 ~~
감성이 풍부한 산행기 잘 보았읍니다...
다음 산행기가 마 ~ 이 기대됩니다.....
ㅎ 산개미님, 행복한 동행길이었습니다. 담 구간 때 봬요^^
문장력이 대댠하십니다.. 연애편지도 마니 써 보셨는지..ㅎㅎ 첫구간 접수 축하합니다...
ㅎㅎ 떠난 뒤에 편지 쓰는 게 제 전문이었습니다만, 감사합니다 ~~
사진과 글이 분리되어도
이렇게 멋질수 있군요.
다음 조행기도 기대하고,
시간되는대로 합류하여 인사 드리겠습니다.
늘 안전한 산행을 기원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ㅎ 자주 뵙겠습니다 ~~
잘 보았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산이야님 덕분에 재미있는 트랭글의 세계를 알았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요~~
교과서를 보고 공부하는 느낌입니다
의미있는 구간에서 첫발걸음 무사히 마친걸 축하드리고요
담 구간 반갑게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담 구간에 뵙지요 ~~
정성들여 써주신 산행기 잘보았습니다
예상못했던건 아니지만 멋진 산행기 입니다 ^~^
대장님이 편하게 이끌어 주셔서 넉넉한 산행이 되었습니다. 출장 잘 다녀오시고요~~
힘든 정맥길을 걸음하시며 아름다운 시인의 마음으로 그 길을 음미하신 멋진산행기..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벌써 반보다 조금 더 해내셨네요 ! 가고싶은 정맥길.. 부럽습니다 ^^ 멋진 한바리 수고 많으셨습니다. 긴 걸음 끝까지 홧팅입니다 !
응원 감사합니다. 나머지 반도 열심히 가겠습니다. 뽀송뽀송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