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바라기
1호선 전철 아랫길을 지나는 굴다리 위 동네는 명품 벽화를 가졌다. 감나무, 자두나무가 담장너머로 가지를 뻗고 있는 주택단지 가운데 길 좌우로 미장원, 담배 가게, 양화점, 대폿집, 옷 수선집, 헌책방 등 상가가 늘어서 있고, 그 길을 따라 굴다리가 시작되는데, 지난 4월의 어느 날 굴다리 입구 공터를 감싼 담벼락에 아이들이 동화그림을 그려 놓고 갔다. 서명을 보니 관내 고등학교 벽화 동아리 학생들이었다.
늦은 봄날의 경치쯤일까. 꽃이 활짝 핀 대지 위에 벌과 나비와 조그만 새가 어울려 날고, 병아리 떼가 종종종 열 지어 달려간다. 물 오른 나무들이 진초록 이파리에 벌레를 붙여 식사를 돕고, 하늘에는 두둥실 뭉게구름이 흐른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알록달록 일곱 빛깔 색동저고리를 뽐내고, 해와 달과 별이 무지개 뒤편 하늘을 수놓고 있다.
고깔모자를 쓴 아이들이 두 팔을 벌리고 하늘바라기를 하고, 배경 풍경보다 과장되게 그려진 커다란 별들은 유성우로 내리고 있는지 길게 궤적을 끌어, 아이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 준다. 모두가 평화롭고, 모든 것이 친구인 세상이다.
앞서 나가려는 이가 아무도 없는 동화 속 나라, 원근법이 무시된 이차원 그림 속에 낮과 밤이 공존하고 위와 아래의 구분이 모호한 이상한 나라가 펼쳐져 있다. 일여덟 명 아이들이 20미터 남짓한 담벼락에 붙어 옹기종기 한 나절을 보내더니, 그렇게 뚝딱 꿈속 경치를 만들어 놓고 갔다.
골목 안 동네사람들이 한 사람씩 다가와 고개를 주억거린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때는 무심한 척 지켜보기만 하던 어른들이다. 한두 사람씩 다가왔다 잠깐씩 머물고 간 후, 플라스틱 물병에 들꽃이 꽂혀 담벼락 아래에 놓였다. 누군가 근처 하천변에서 꺾어온 들꽃으로 벽화를 완성시키려 했나보다.
굴다리길 위 담벼락을 따라 두 뼘 남짓한 자투리땅이 길게 뻗어 있었다. 평소 쓰레기와 자갈 무더기가 쌓이고 잡초가 듬성듬성 고개를 내밀고 있는 곳인데, 누군가가 돌을 골라내기 시작했고, 이내 거드는 사람들이 나섰다.
텃밭 가꾸는 게 취미라는 자두나무집 중늙은이 부부가 손자손녀에게 끌려 꽃모종을 들고 왔다. 코스모스, 채송화, 봉선화가 늙은 손과 어린 손의 합심 노력으로 심어졌고, 콩, 들깨, 고추, 가지, 토마토는 이웃 담배 가게 주인의 주말농장에서 이사를 왔다.
모종을 들고 오지 못한 헌책방 주인은 플라스틱 물병에 담긴 들꽃을 요모조모 다시 꽂아 예쁘게 보이려했고, 대폿집 여사장은 손잡이가 달린 1리터들이 특대 유리컵을 들고 나와 플라스틱 물병과 바꾸어 놓았다. 쓰레기와 담배꽁초가 모여 있곤 했던 담벼락 아래 공간은 하루 사이에 꽃밭으로 바뀌었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벽화 속 동화그림에 빠져들었다.
조용한 행보였고, 경건한 하늘바라기였다. 벽화 속 아이들의 하늘바라기를 보면서,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하늘바라기를 하였다.
그림 속 아이들의 하늘바라기를 하는 사연도, 궤적을 그리면서 낙하하고 있는 별의 행로도, 그림을 그린 아이들의 움직임이 조심스러웠던 이유도, 묻거나 답하는 이는 없었다. 그림을 남긴 아이들처럼 구경을 온 사람들도 조용히, 유리컵에 들꽃 한 송이를 갈아 꽂고 하늘바라기를 하고 갔다.
누군가 버려진 고구마를 옮겨 묻어 싹을 키워냈다. 앵두나무와 대추나무 묘목을 심어 훗날을 기약하기도 했다. 절로 난 개똥참외에 물을 듬뿍 주어 열매를 보려 했다. 굴다리 길 좌우의 주택단지에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 모자란 것이 없나 살펴 꽃과 나무를 심었다.
비와 바람과 해님이 꽃그림의 나머지를 그려 냈다. 돌나물과 비름나물과 씀바귀는 원래부터의 터줏대감으로 제 흥에 겨워 잎을 내밀었고, 불청객 제비꽃과 팬지가 꽃을 피운 건 작년에 시청 사람들이 굴다리 길을 따라 늘어놓았던 장식용 화분의 흔적이었다. 까마중과 배추이파리와 개양귀비가 자란 건 기왕에 싹튼 생명을 소중히 여긴 비와 바람과 해님의 은혜일 뿐 동네사람들이 무심했던 때문은 아니었다.
아이들과 동네사람들의 합심 노력으로 굴다리 위 공터 담벼락에 동화가 그려지던 그날, 멀리 태평양 건너 아메리카 땅에서 야구선수 류현진이 승리투수가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라커룸에 고국의 불행을 애도하는 문구를 새긴 비장한 출전이었다고 하는데, ‘세월호 4.16’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했다. 소식을 전한 이는 현진이가 고국 땅을 그리며 하늘바라기를 하였을 거라고 안쓰러워하였다. 너나없이 한 동포인데 벽화를 그린 아이들과 하늘바라기를 하는 마음에 다를 바가 있었겠느냐고도 하였다. 사람들이 꽃모종을 옮겨 심으며 나눈 대화는, 그러한 소식들을 전한 게 전부였다.
쑥쑥 자란 꽃밭에 벌 나비가 날아들 무렵, 벽화를 그린 아이들이 다시 와서 사진을 찍고 갔다. 어딘가에서 있는 추도식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하였다. 동네사람들은 눈인사로 마음을 전했고, 아이들은 조용히 유리컵에 들꽃을 꽂아 답례에 대신했다. 고구마는 많이 자라 꽃밭 전부를 덮을 기세였고, 잘 자라던 앵두나무는 누군가 옮겨간 후였다.
동화그림이 있는 담벼락과 담벼락 아래 꽃밭은, 도시 안의 명소가 될 만큼 잘 그려졌다. 1호선 전철이 지나는 소도시의 철로 아래로 뚫린 굴다리 위 동네는, 그렇게 명품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과 그 아래 꽃밭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1년, 다시 4월을 보낸 꽃밭은 앵두나무 묘목 몇이 새로 심어져 이파리를 펼쳤고, 누군가 대파와 쪽파를 심어 꽃대가 나오도록 키워냈다. 지나는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림 속의 아이들을 볼 때마다 하늘바라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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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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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하늘바라기 음~ 잘봤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잘 봤어영 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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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 감
네 조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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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2.06 22:29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잘 읽고 갑니다.
잘보았읍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좋은글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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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잘읽고갑니다 ~~
고마워요
작은 씨앗을 심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책이 생각나네요.
우리 집앞에 쓰레기 쌓이는 곳이 있어서 참으로 골치아파 저도 한동안 꽃밭을 가꿀까 생각했었지요.
잘 읽고 갑니다. ^^*~
잘봤습니당
수고많으세요^^
수고요
작은 정성이 모여 명품을 만들지요.
감사합니다 좋은글잘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
그렇습니다.
수십 수백으로 퍼져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감사.
잘 읽고 갑니다^^
좋은글 감사드리고 행복하십시요
잘 봤습니다.
좋은 글 감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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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