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한글문학의 선구자 정지용-끝
나는 한글세대의 첫 주자이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시 초등학교 6학년 재학 중이었고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를 부르며 졸업한 1회 졸업생이기 때문이다. 짧았지만 초등학교 시절 한글로 공부해서 일본어 글씨보다 한글이 비교 우위를 확인한 탓인지는 몰라도 나는 남다르게 한글을 사랑한다.
50여 년 전 내 주변의 문인들이 곱고 쉬운 우리글을 놓아두고 일부러 한자를 넣어가며 어렵게 글을 꾸미는 경향을 보면서도 나는 철저히 될수록 쉬운 우리말과 한글을 고집했다.
더구나 소설과 함께 시를 쓰는 나로서는 산문과 같이 객관적 사물 묘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인 자신의 주관적 내면세계에서 분출되는 정신요소가 형상화되기 때문에 한자보다 한글 표현이 더 편리하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그러나 산문과 달리 읽는 사람마다 그 이해도가 산문보다 난해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 하겠다. 설명이 없는 데다 길고 긴 사연을 단 몇 줄로 응축하는 데 쉬운 문장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인은 고의로 난해한 기교로 철학적 요소가 가미된 것처럼 억지로 시를 꾸몄다면 시인과 독자의 문맥 내용이 판이해질 수 있다.
시인의 권위 의식이라 할까 고답적인 심성으로 독자들에게 한 차원 높은 자기 의식세계를 과시할 양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른바 난해시(難解詩) 가운데는 도저히 풀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런 것은 시가 아니라 작자 자신만의 글 장난으로 보고 싶다. 은유( metaphor)가 지나치면 시문이 아니라 넋두리가 된다.
이제 내가 겪었던 지난 시절과는 달리 보편적 한글 문학이 전체 우리 문단을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문학인으로서는 감격해 맞이않는 사변이다. 그러나 지금의 문학인들은 이 감동을 모른다. 당연한 흐름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글문학의 정착이 국가나 문학 관련 단체에서 강요하거나 권장한 결과가 아닌 자연스럽게 그야말로 민주적으로 오늘의 한글문학이 정착된 축복을 나는 눈물로서 감동한다.
그러나 한글문학에 어려움이 있다. 漢字 단어가 너무 많기 때문에 자라나는 새 세대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漢字를 이해하고 있는 우리 세대는 부담 없이 漢字 용어를 써 내려가지만 漢字를 익히지 못한 세대는 곤혹스러운 경우를 당할 수밖에 없다. 漢字 단어를 순수 우리 말로 고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그 용어를 한글로 익히는 방법밖에 없다.
내가 읽은 시 가운데 한글시로 으뜸가는 감동을 준 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읽기 바란다. 그러나 이 시의 감동은 한글만이 갖는 한계가 있다. 만일 향수를 영어나 일어로 번역한다면 그 감동은 반감될 수 있다. 한글 문장의 외국어 번역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그만큼 한글의 오묘한 감성이 뛰어난 증거다. 그래서 나는 한글을 더 사랑한다.
정지용 시인은 우리에게 일찍이 한글 사랑을 깨우쳐 준 한글 사랑 선각자임은 분명하다. 정지용 시인에게 정부는 늦었지만 2018년 문화계 최고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잡음을 물리치고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정부에게 경의를 표한다. 내 문학계 소원이 이루어졌다.
정지용 시인의 행적과 사망 원인에 대해 나는 30여 년 동안 나름대로 추적해 왔지만 두 가지만을 확인해 당국에 알렸다.
첫째, 항간에 떠도는 월북설이 허구라는 사실. 그는 분명히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 둘째, 한국전쟁 중 폭격이나 포탄에 의해 사망한 수만 명의 민간인 가운데 한 분이라는 사실. 그래서 정지용 시인의 묘지나 유해는 없다. 문화계 인사 납북 북행 과정에서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증언이 신빙성이 있다.
PEN 회원 여러분, 끝으로 한글문학 최고의 작품, 정지용 시인의 한글시 '향수' 를 감상하기 바란다.
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자료 사진
충북 옥천 정지용문학관 밀랍 정지용 포토죤에서 아내와 함께. 2018년 12월 5일